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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은 1989년 첫선을 보인 뒤 27년 만인 지난해에 3만개를 돌파했다. 밝고 환한 편의점은 소비의 최전선이 된 지 오래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도깨비>의 주인공 김신(공유)은 900년을 사는 불사의 존재이지만 현재에서는 도깨비 신부와 편의점서 물건을 산다. 티브이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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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편의점 도시락 열풍
매년 두자리 성장하던 도시락
지난해 무려 180%까지 ‘대폭발’
가성비 중시 소비 원인 꼽히지만
혼밥 인식 변화 가장 큰 이유
풍성한 반찬 ‘갓혜자’ 도시락
강한 맛 백종원 도시락 인기
“도시락보다 공간 소비” 분석도
원두커피로 업계 전망 청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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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은 1989년 첫선을 보인 뒤 27년 만인 지난해에 3만개를 돌파했다. 밝고 환한 편의점은 소비의 최전선이 된 지 오래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도깨비>의 주인공 김신(공유)은 900년을 사는 불사의 존재이지만 현재에서는 도깨비 신부와 편의점서 물건을 산다. 티브이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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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의점 도시락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끼를 때우는 ‘열량 건전지’쯤으로 취급받았다. 나트륨 범벅이라는 질책도 받았다. 하지만 편의점 도시락은 지금은 든든한 한끼로 인정을 받고 있으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증샷이 올라가고 있다. 덕분에 편의점 도시락은 지난해 저성장시대 홀로 200% 가까운 성장을 하며 편의점업계의 효자로 떠올랐다. 눈물 젖은 편의점 도시락은 어떻게 이런 역전홈런을 치게 됐을까?
“나에게 편의점은 ‘세계의 톱니바퀴’에 ‘정상 부품’이 되어 살아갈 수 있는 ‘빛의 상자’다.”
지난해 일본 가장 권위있는 아쿠타가와 문학상을 받은 소설 <편의점 인간>의 일부다. 무라타 사야카(38)가 쓴 자전적 소설의 여주인공은 현실에서는 부적응자이지만 편의점에서만 당당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다. 편의점은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한 세상으로부터 그를 보호해주는 유일한 공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편의점에서 먹고 마시고 그리고 사랑하는 편의점 인간이 낯설지만은 않다.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티브이엔(tvN) 드라마 <도깨비>의 주인공은 9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사는 불사의 존재이지만, 현실에선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편의점에서 연애를 한다.
1989년 첫선을 보인 우리나라 편의점은 도깨비마저도 물건을 구입하는 삶의 일상이 됐다. 우리나라 편의점 규모는 일본에 견줘 작지만 성장률은 가파르다. 국내 편의점 수는 지난해 3월 3만개를 넘어섰다. 마라도, 울릉도에도 편의점이 생겨날 정도다. 2015년 전국의 1일 편의점 방문 소비자는 1090만명에 육박한다. 우리나라 사람 5명 가운데 1명은 하루에 한번씩은 편의점에 들른다는 이야기다.
편의점의 가파른 성장세를 이끌고 있는 주역은 도시락이다. 지에스(GS)25의 지난해 도시락 매출 증가율은 무려 176.9%였다. 씨유(CU)의 같은 해 도시락 매출 증가율도 168.3%였다. 1970년대 고도성장기에나 볼 법한 세 자릿수의 매출 증가에 힘입어 지난해 편의점 업계는 무려 20% 가까운 성장을 기록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의 연간 도시락 매출 증가율은 10~60% 정도였으나, 지난 한해 동안 매출이 무려 180% 가까이 늘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에는 백종원 한판도시락이 편의점업계의 절대강자로 군림해오던 소주와 바나나맛우유를 따돌리고 매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편의점 도시락을 즐겨 먹는 ‘편도족’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과연 지난해 ‘편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도시락 난공불락 바나나맛우유 눌러
편의점 도시락은 그동안 매우 단순한 함수로 취급됐다. 판매 증가율이라는 와이(y)값을 구하기 위해선 1인가구, 제자리걸음인 가처분소득, 강도 높은 노동시간 등 이제는 익숙해진 잿빛 통계를 엑스(x)값으로 사용해왔다. 하지만 이런 변수만으로 2016년 ‘도시락 대폭발’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1인가구와 노동시간이 유독 2016년에만 급증한 것은 아닌 까닭이다.
특히 편의점 도시락의 매출 증가는 주로 1인가구라는 변수로 설명돼왔다. 편의점 주 이용고객이 미혼 비중이 높은 20~30대이기 때문이다. 편의점산업협회의 ‘2015 편의점 산업 통계’에서, 2014년 기준 편의점 고객 연령별 구성비를 보면 20대와 30대가 각각 32.8%와 31.9%로 전체의 64.7%를 차지했다. 다음이 40대, 50대 순이다.
통계청 통계를 보면, 2010년 421만명이던 1인가구는 2015년 520만명으로 늘었다. 이에 따라 전체 가구 대비 1인가구의 비중은 23.9%에서 27.2%로 증가했다. 통계청은 2035년에는 일본의 1인가구 수준인 34%까지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강도 높은 노동시간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의 평일 여가시간은 지난해 3.1시간으로 최근 10년 사이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 3.0시간 이후로 가장 낮았다(문화체육관광부 ‘2016 국민여가활동조사’). 지갑 사정도 나빠졌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2016년 12월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처분가능소득의 증가율은 2015년 4분기(12월) 5.2%에서 2016년 3분기 3.5%로 크게 낮아졌다.
소비자들이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이 뛰어난 음식을 찾아 나선 건 바로 이런 사정에서 비롯됐다. 2016년이 ‘가성비의 원년’으로 불리는 까닭이다. 보통 4000원대인 도시락은 한끼 6000원대부터 시작하는 식당밥에 견줘 가성비가 높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편의점 도시락의 가격 상한선을 4500원으로 잡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가성비를 따진다, 고로 존재한다
그러나 편의점 도시락의 성장은 가성비로 대표되는 정량적 분석만으로도 설명이 부족하다. 오히려 ‘한끼를 때운다’는 편의점 도시락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 시각들이 ‘나름 괜찮다’로 바뀐 소비자 의식의 변화가 더 큰 원인이라고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편의점 도시락이 ‘서러운 한끼’에서 ‘재미있는 트렌드’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추세는 지난해부터 뚜렷해졌다. 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전국 20~60살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전체 응답자의 87.3%가 편의점 도시락 수준이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대답했다. 또 76.9%는 재구매 의향이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2015년 같은 조사(30.7%)에 견줘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도시락을 이용하는 이유는 ‘시간이 없다’(40.6%, 중복응답)가 가장 많았고 ‘주변에 갈 음식점이 없다’(37.9%), ‘밖에서 먹기 귀찮다’(37.7%) 순이었다. 가격 때문이라는 답변은 24.6%에 그쳤다.
편의점 도시락에 대한 우호적인 생각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편의점 도시락’과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호화스럽다’였다. 다음소프트의 사회관계망 트렌드 분석툴(소셜메트릭스)을 통해 19일까지 한달간 트위터(6949건)와 블로그(842건)를 조사한 결과다. 10위 안에는 ‘맛있다’, ‘먹고 싶다’, ‘괜찮다’ 등 긍정적 단어가 7개였고 부정적 의미의 연관어는 ‘망하다’, ‘엉망진창’ 등 2개였다(중립은 1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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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가구가 혼밥을 탐닉하는 이유
편의점 도시락에 대한 긍정 반응이 늘어난 데는 혼자 먹는 식사, 즉 ‘혼밥’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도 한몫했다. 혼밥에 대한 연관어를 에스엔에스로 분석해보면 ‘외롭다’, ‘청승맞다’에서 ‘즐겁다’로 어느새 바뀌었다. 다음소프트 소셜메트릭스의 한달간 에스엔에스 분석을 보면, 혼밥과 함께 언급된 단어는 ‘즐기다’, ‘좋다’, ‘대세’ 등 90%가 긍정적이었고 중립적인 단어가 1개였다. 부정적인 단어는 없었다.
혼밥에 대한 누리꾼들의 포스팅이 본격적으로 늘어난 것 역시 2016년부터다. 구글 검색어 순위를 알려주는 구글트렌드를 보면 혼밥에 대한 검색빈도는 2015년까지는 10 이하였다가 2016년 초부터 급증하면서 지난해 8월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구글트렌드는 1~100으로 나눠 검색빈도를 나타내는데 100에 가까울수록 검색빈도가 높다는 뜻이다. 이를 반영하듯이 에스엔에스에서는 편의점 도시락 관련 포스팅이 몇년 사이에 급증했다. 혼밥이나 편의점 도시락을 비롯해 다양한 피비(PB·자체 브랜드) 음식에 대한 인증샷을 올리는 젊은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누리꾼들의 편의점 음식 리뷰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대표적인 블로그가 2004년부터 편의점 음식 리뷰를 게재하고 있는 ‘다인의 편의점 이것저것’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기존의 인상비평과 달리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정밀평가가 유행했다. 관련 포스팅이 넘쳐나자 덕후(한가지 일에 몰두하는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 ‘오타쿠’의 한국식 표현)들이 생겨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1월 디시인사이드에 백종원 한판도시락과 김혜자 진수성찬도시락을 비교 분석한 글이다. 이 작성자는 3500원인 두 도시락을 저울을 이용해 밥과 반찬의 무게와 가짓수를 계량하는 모습까지 그대로 사진을 찍어 올렸다. 한판도시락이 1g당 가격이 8.4원으로 진수성찬도시락의 8.8원보다 가성비가 뛰어나다고도 분석했다. 이 분석 글은 무려 11만번이나 조회됐으며 에스엔에스를 통해 퍼졌다. 편의점 도시락이 트렌드가 된 데에는 누리꾼들의 헌신이 있었던 셈이다.
장어, 굴라시 도시락 드셔보셨나요
기업들은 편의점 도시락이 나온 지 28년 만에 그동안 쏟아온 노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변화를 이끌어온 곳은 김혜자 도시락을 만드는 지에스리테일과 백종원 한판도시락을 만들어온 씨유다. 김혜자도시락은 2012년부터 엄마의 정성이라는 콘셉트로 푸짐한 나물 반찬 등 기존의 도시락과 차별화를 꾀해 새바람을 불러왔다. 덕분에 ‘갓혜자’, ‘마더혜레사’라는 최상급 칭찬을 받았다. 2015년 12월부터 등장한 백종원 한판도시락은 고기 중심의 푸짐한 양과 개성있는 맛이 특징이다. 공교롭게도 편의점 도시락의 매출이 급증한 것도 이 제품이 출시될 즈음이다.
백종원 한판도시락을 기획한 비지에프(BGF)리테일의 김정훈 팀장은 “풍성한 양, 확실한 맛으로 차별화했다. 타깃을 명확하게 하고 장식은 배제하는 대신 거기서 절감한 비용을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쪽으로 기획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1만원짜리 장어도시락, 고등어도시락 등을 기획했던 지에스리테일 정재현 대리는 “편의점 도시락은 싸고 푸짐해야만 하는 게 아니라 좋은 재료와 트렌드를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대리는 지난해 스페인의 파에야(해물냄비밥), 헝가리의 굴라시(소고기스튜) 같은 독특한 종류의 도시락을 기획하기도 했다. 지에스25는 지난해에는 도시락 예약 시스템인 ‘나만의 냉장고’라는 서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들 회사가 1년에 선보이는 새로운 도시락은 20~30여종이다. 이 가운데 기획자의 의도대로 시장에서 롱런하는 것은 3~4개 정도에 불과하다. 3주면 소비자의 반응이 오기 때문에 기획자는 긴장을 놓칠 수가 없다. 소비자들의 요구는 까다롭다. 가장 원하는 것은 맛과 질이고 가장 불만인 것은 가성비다. 하지만 어느 한쪽에 치중하면 어느 한쪽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김정훈 팀장은 “지난해가 가성비의 해였다면 올해는 비플러스(B+) 프리미엄의 해”라며 “가성비 외에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외면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씨유는 지난해 11월부터 균질한 밥맛을 위해 혼합미가 아닌 신동진미 한 품종의 쌀을 쓰고 있으며 2월 초부터는 모든 김을 완도산으로 바꿀 계획이다.
나트륨 과다와 고기 중심 메뉴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서울시가 지난해 7~8월 편의점 도시락 20종의 나트륨 함량을 조사해보니, 도시락 1개 평균 함량은 1366.2㎎이었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 기준 1일 섭취 권고량의 68.3%에 이른다. 일부 도시락은 최대 1078㎉ 열량을 내는 제품도 있었다. 도시락 한끼로 1일 필요추정량의 절반 이상을 섭취하게 되는 것이다(성인여성 기준).
“도시락이 아니라 공간을 소비한다”
앞으로도 편의점의 외연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에스케이(SK)증권 손윤경 연구원은 비지에프리테일과 지에스리테일이 향후 3년간 매년 20% 성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손 연구원은 특히 편의점 도시락과 함께 편의점 커피에 집중했다. 편의점은 지난해부터 자체 블렌딩한 원두커피를 시중 커피숍의 절반 가격 수준인 1000원에 공급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편의점은 매출 1위인 담배 때문에 남성 고객이 많았다”며 “커피 판매는 여성 고객을 늘려 매출의 새로운 상승을 이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비자들은 온갖 상품과 생활밀착형 서비스 이용이 가능한 편의점에서 묘한 안정감을 느낀다. 편의점은 백화점이나 커피숍처럼 공간을 소비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편의점처럼 밝고 쾌적한 곳에서 한끼의 밥을 저렴한 가격에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곳은 드물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치킨전>의 지은이인 정은정 작가는 지난해 지방대에 출강하면서 학생들에게 ‘나의 삼시세끼’라는 과제를 제시했다. 그는 “보고서를 보면, 바빠서 점심을 거르기 일쑤인 학생들이 짬을 내 밥을 먹기 위한 혼밥의 최적인 장소로 편의점을 꼽았다”고 말했다. 이는 편의점 도시락의 충성고객인 30대 남성의 도시락 구매 이유와 대체로 일치한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은 혼자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혼밥 인증샷을 에스엔에스에 올린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것 같은 안도감은 어쩌면 편의점이 도시락과 함께 주는 최적의 1+1 상품이 아닐까.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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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한 누리집에 올라온 편의점 도시락 분석. 공력이 느껴지는 정밀한 분석이어서 당시 화제가 됐다. 디시인사이드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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