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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4.08 11:16 수정 : 2017.04.08 12:10

[토요판] 뉴스분석 왜?
표창원 의원과 <보통사람> 김봉한 감독의 대화

표창원 의원과 영화 <보통사람>의 김봉한 감독이 5일 한겨레신문사 한겨레티브이 스튜디오에서 김대두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최근 개봉된 영화 <보통사람>은 애초 1970년대를 배경으로 기획됐다가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1980년대로 무대가 바뀐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의 모티브는 1975년 발생한 국내 최초의 연쇄살인 사건이다. 이 사건은 유신통치가 극에 달한 당시 국내 정치사회적 상황에서 벌어진 것으로, 이 때문에 영화에서 감독은 실체가 지나치게 부풀려졌을 가능성을 조심스레 열어두고 있다.

1975년 전국을 돌며 17명을 살해한 혐의로 검거돼 1976년 사형을 당한 김대두. 그는 ‘한국 최초의 연쇄살인범’으로 불린다. 그런데 김대두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진 최신 개봉영화 <보통사람>에선 강력계 형사가 단순 살인사건을 연쇄살인 사건으로 조작하라는 지시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그저 감독의 상상일까, 아니면 이미 공인된 사건을 뒤집으려는 적극적 문제제기일까?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오랫동안 김대두 사건을 조사했던 <보통사람> 김봉한 감독과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6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김대두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범죄심리학자 출신인 표 의원은 2005년 <한국의 연쇄살인>이란 책에서 김대두 사건을 시대적 상황과 연관해 분석한 바 있다. 사건 이해를 돕기 위해 두 사람이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정리했다. 두 사람의 좌담은 한겨레티브이(www.hanitv.com)를 통해 볼 수 있다.

3월23일 개봉 영화 <보통사람>
‘한국 최초 연쇄살인범’으로 불리는
‘김대두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돼
단순 살인사건 과장 의혹 최초 제기

범죄심리학적으로 연쇄살인 동기 부족
검거 다음날 17건 범죄 상세자료 뿌려져
유신시대 사회정화운동 열기 불던 때
우리 사회의 ‘과거’가 합리적 의심 낳아

김봉한 감독(김) 2003년 <살인마 김대두>라는 제목으로 처음 이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권에서 유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개봉이 어려워지면서 80년대로 배경을 옮기고 제목을 <보통사람>으로 바꿨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김대두 사건이 중심이다. 그 사건으로 17명이 희생당했고 유가족들이 계신데 자칫 상처가 커지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유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진실이 밝혀져야 하기 때문이다. 제가 보기에 이 사건은 의문투성이다.

표창원 의원(표) 알려진 것만으로 보면 김대두 사건은 미국 연방수사국(FBI)에서 분석하는 전형적인 연쇄살인범은 아니다. 살인의 원인은 보통 원한·치정·금품 3가지인데, 연쇄살인엔 그 동기 부분이 빠져 있다. 미국에선 1960~70년대에 피해자에게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할 이유도 없는 사람이 여러차례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며 살인을 하는 사건이 여럿 일어나면서 연구가 시작됐다. 선천적 요인, 변태성욕형, 어린 시절 학대했던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공격한다는 분노형, 조현병이나 종교에 의한 망상 등을 이유로 꼽는다. 그런데 김대두 사건 이후부터 사회문제가 되기 시작한 한국의 연쇄살인범들을 보면 미국이나 유럽식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사회적 분노형이라고 할까. 차별과 지속적인 불이익을 당한 결과 범인들은 대체로 사회적 자존감이 아주 낮다는 것도 서구의 연쇄살인범과 다른 점이다. 김대두를 연쇄살인범 유형별로 분석하자면 성욕형도 아니고 마늘이나 고추도 훔치긴 했지만 금품이 동기도 아니었다.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1975년 10월8일 한 세탁소 주인이 피묻은 청바지를 맡긴 수상한 청년을 신고했다. 8일 김대두가 검거되자 9일 그의 살인사건 전모를 밝히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사진은 김대두 검거 장면을 담은 9일자 <동아일보> 사진과 표창원 의원이 당시 보도를 근거로 쓴 책 <한국의 연쇄살인> 조소영 <한겨레티브이> 피디 azuri@hani.co.kr
영화 <보통사람>의 원작이 된 시나리오 <살인마 김대두>는 김대두의 흔적을 일일이 검증하며 극화한 영화로 기획됐다. 조소영 <한겨레티브이> 피디 azuri@hani.co.kr

학습능력 부진했다면서 명문장 편지

이 사건에 결정적으로 의심을 품은 계기가 있다. 김대두를 변호했던 국선변호사님 소개로 당시 김대두를 선교하기 위해 그를 면회하고 편지를 주고받던 한 여자 집사님을 만났다. 이분은 제게 김대두와 주고받았던 봉함엽서들을 건네줬다. 집사님은 김대두가 직접 썼다고 믿고 있지만, 놀랍게도 편지는 모두 다른 필체로 쓰여 있었다. 또한 한결같이 사자성어나 성경을 인용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바라는 내용들이다. 학습능력 부진으로 중학교도 진학하지 못했다는 그가 당시 수준으론 최고의 명문장을 구사해서 편지를 쓴 것이다. 또 집사님은 “김대두는 정말 착한 아이”라며 내게 “김대두를 악마로 그릴 거면 영화를 만들지 말라”고 여러 차례 당부했는데 신문기사 속 그에 대한 묘사와는 달랐다. 키 160㎝, 몸무게 50㎏이 안 되는 왜소한 체격의 김대두가 30~40대 부부들을 살해했다는 것도 물리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이다.

연쇄살인범이라고 해서 모두 사이코패스인 건 아니다. 다만 어린이와 갓난아기까지 잔인하게 죽이는 김대두 유형의 연쇄살인범은 온몸에 분노가 가득 찬 사람이어야 한다. 김대두의 살인 패턴은 1999~2000년 부산 경남 일대에서 9명을 살해하고 8명에게 중상을 입힌 정두영과 비슷하다. 정두영도 키 160㎝가 조금 넘는 체격으로 왜소하다고 맞고 무시당하며 자랐지만, 대신 늘 무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누군가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할 때 ‘선빵’을 날릴 만큼 공격성이 강했다. 정두영은 키 190㎝가 넘는 청년을 잔인하게 살해하기도 했다. 체격보다는 공격성이 강하고 폭력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런데 김대두 같은 경우엔 연쇄살인범으로 돌변하기 전까지는 전혀 공격성이 발견되지 않는다. 당시 기사를 보면 김대두는 신체적·심리적으로 미성숙해 주변에서 놀림도 많이 받고 그것을 못 견뎌서 친구를 폭행살인하고 그때부터 연쇄살인이 시작됐다고 했다. 어느날 돌연 공격성을 발휘해 사람을 여럿 죽였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또 김대두처럼 평생 농촌에서 살아온 사람이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뒤 갑자기 서울·경기에서 능수능란하게 피해자를 선정하고 관찰하다가 살인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인다. 김대두의 가장 큰 특징은 신체적인 유약성과 질병이다. 학교도 다니지 못할 만큼 허약하고 지적능력도 부족했다는 사람이 갑자기 검거되자마자 이렇게 차분하고 논리적이고 지적인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김대두가 한 종교인과 감옥에서 주고받은 편지들. 달필에다가 편지마다 각기 다른 필적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쓰여졌다. 조소영 <한겨레티브이> 피디 azuri@hani.co.kr
김대두가 한 종교인과 감옥에서 주고받은 편지들. 달필에다가 편지마다 각기 다른 필적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쓰여졌다. 조소영 <한겨레티브이> 피디 azuri@hani.co.kr
김대두가 한 종교인과 감옥에서 주고받은 편지들. 달필에다가 편지마다 각기 다른 필적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쓰여졌다. 조소영 <한겨레티브이> 피디 azuri@hani.co.kr

또 김대두는 1975년 10월8일 서울 전농동 세탁소에 피 묻은 청바지를 맡겼다가 10월9일 검거됐다고 한다. 그런데 당일(9일)부터 김대두의 범행 전모에 대한 기사가 쏟아진다. 연쇄살인범이 하루 만에 17건 범죄를 자백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해도 당시 통신 상태로 경찰이 하루 만에 전국에 전화를 돌려 17건을 전부 사실 확인하고 보도자료까지 작성할 수 있었을까? 표 의원님 책에 수원사건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작성된 몽타주가 김대두의 외모와 너무 닮아서 수사 관계자들이 놀랐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제가 알기론 검거 전엔 몽타주가 배포된 적이 없었다. 그 상황을 비틀어서 영화 <보통사람>에선 용의자를 앉혀두고 몽타주를 그리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저는 김대두 사건이 검거 전에 미리 설계된 것이 아닌가 상상했다.

현장검증 사진은 연출된 것?

분명히 피해자는 있었다. 전남 광산·무안부터 광명·시흥·서울까지 살인이 일어났고 이 사건들이 모두 한 사람 소행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있었다. 당시 치안도 불안하고 사람들 생활도 어려우니까 강력사건이 많이 일어났다. 범인이 잡히기 전엔 무장공비나 불순집단 소행이라는 추측 보도들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김대두가 검거된 것이다. 검거 하루 만에 사건 전모를 밝힌다는 건 가능은 하겠으나 기적 같은 일이다. 감독님이 제기한 의혹을 모두 인정한다기보다는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는 뜻이다.

체제 입장에선 김 감독님 같은 분들이 가장 두려운 존재다. 누군가 우연히 사건을 접하고 합리적 의심을 느낀다면 국가는 충분히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제가 국가는 아니지만 살인사건을 연구했던 사람으로서 누군가 의혹을 제기할 때 지나친 오해라면 설명을 드린다. 그런데 지금 김대두 사건에 대해 제기된 의혹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김대두가 만약에 가족들이 힘이 있고 돈이 있었거나 끝까지 무죄를 확신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다시 들여다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고 증거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검증이 어려울 것이다.

1975년 10월8일 한 세탁소 주인이 피묻은 청바지를 맡긴 수상한 청년을 신고했다. 8일 김대두가 검거되자 9일 그의 살인사건 전모를 밝히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사진은 9일자 <경향신문> 사회면. 조소영 <한겨레티브이> 피디 azuri@hani.co.kr

제가 누군가 이 사건으로 무엇을 얻었을까, 생각하게 됐던 것은 현장검증 사진 때문이다. 당시 신문기사는 김대두가 장도리를 들고 있는 사진을 내보내며 “살인마는 껌을 씹으며 태연히 살인을 재연했다”고 보도했다. 수사관이 시키지 않았다면 피의자가 현장검증 하면서 껌을 씹을 수 있을까? 누군가 극악한 살인자라는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서 일부러 연출한 것은 아닐까? 김대두 사건 직후 사회 정화를 촉구하는 보도들이 이어진다. 1975년도 1년치 사회면을 훑어보면 빨갱이나 간첩 검거-사회정화-살인마 검거-사회정화 운동이 반복된다. 혹시 연쇄살인범 검거조차도 체제 단속의 일환은 아니었을까?

1970~80년대의 엉성하고 이상한 수사는 2017년 시선으론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범죄심리학적으로 분석할 땐 시신을 훼손해 유기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범죄자가 악독해서가 아니라 그가 나약해서, 두려움이 크고 이동수단이 없어서라고 본다. 그런데 그 당시엔 시신 훼손 사건이 일어나면 천편일률적으로 그가 악마라는 보도가 이어진다. 그러곤 국론의 통일이라고 부르는 과정이 이어진다. 사회정화운동이나 관제 데모다. 사회 분위기를 긴장시키고 얼리고 시민들을 동원하는 데 대단히 유용한 통치 도구로서 범죄 사건들이 활용됐다. 반대로 통치에 필요없는 살인사건은 묻히기도 했다. 1986년 청산가리로 5명을 독살한 김선자 사건은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1년엔 충남 대천지역에서 영아 4명과 어린이 1명이 사라지는 연쇄유괴·살인 추정 사건도 축소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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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의심이 사라지지 않은 우리 사회

영화는 박종철 사건과 1987년 6·10항쟁을 그렸지만 원래는 김대두 사건과 장준하 선생 실족사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장준하 선생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 민심이 들끓었다가 두달 뒤 김대두가 검거되면서 다시 사회단속이 시작됐다. 그래도 장준하 선생은 유족과 사회가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했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 이름 없는 사법 피해자들은 얼마나 될지 헤아리기 어렵다. 저는 김대두가 우이동 살인사건 하나만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는 물론 살인범이지만 영화에서 말했듯 “자신이 저지른 죗값만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에 하나 제 추측이 맞다면 다른 16건 살인의 진범은 아직도 처벌받지 않은 것이 아닌가.

수사에선 피해자의 원을 풀어주는 것도 중하지만 피의자가 범인이 아닐 가능성이 한 톨이라도 남아 있을 때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느냐가 정의의 핵심이다. 정의가 더디 실현되고 사회가 불안하다고 하더라도 피의자가 범인이 아닐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수사해야 한다. 정의로운 수사를 위해선 대통령 지시, 사회의 비난 등 수사관을 둘러싼 압력에 진공의 범위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감독님은 ‘보통 사람’은 체제를 이길 수 없다고 하지만 수사관은 직무를 수행할 땐 보통 사람이어선 안 된다. 수사에 있어서 정의라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불편하며 개인적 불이익까지 감수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표창원 의원이 당시 보도를 근거로 쓴 책 <한국의 연쇄살인> 조소영 <한겨레티브이> 피디 azuri@hani.co.kr

김대두가 17명을 다 죽였을 수도 있고, 1명도 죽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당시 수사관들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간첩뿐 아니라 살인범 조작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회였고 기록을 충분히 남기거나 철저히 수사를 하거나 범인이 아닐 가능성을 끝까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2017년까지 합리적 의심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 <보통 사람>과 김대두 사건을 다시 이야기하는 의미가 있다.

진행·정리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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