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콘돔 구입은 탈선도 불법도 아니지만 일부는 법적으로 일부는 관습적으로, 콘돔은 여전히 청소년에게 유해한 물건으로 취급되고 있다. 피임과 성병 예방을 위해 장려돼야 할 콘돔이 불순한 것으로 인식돼 청소년의 접근이 제한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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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헌법심판대 오른 청소년 ‘쾌락통제법’
청소년의 콘돔 구입은 탈선도 불법도 아니지만 일부는 법적으로 일부는 관습적으로, 콘돔은 여전히 청소년에게 유해한 물건으로 취급되고 있다. 피임과 성병 예방을 위해 장려돼야 할 콘돔이 불순한 것으로 인식돼 청소년의 접근이 제한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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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능성 콘돔’이라는 게 있습니다. 사랑의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진 콘돔입니다. 그런데 법은 이 콘돔들을 청소년에겐 팔지 못하게 합니다. 음란하다는 거죠. 20년 동안 유지됐던 이 법이 최근 헌법심판대에 올랐습니다. 어떤 결정이 내려질까요?
성민현 이브(EVE) 대표가 청소년에게 팔다 고발당해 약식기소된 돌출형 콘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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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 고시에 헌법소원
“자기결정권·명확성 원칙 침해
청소년의 성 억압하려는 발상”
일반형 콘돔 구입은 합법인데
포털·쇼핑몰서 콘돔은 ‘19금’
‘성=어른들만의 것’ 편견 탓에
청소년의 피임 방법만 봉쇄돼 포털 검색창에 “콘돔”을 입력해봤다. 네이버와 다음 모두 제한된 검색 결과를 보여주면서 성인 확인을 요구했다. 온라인 쇼핑몰도 대부분 성인 인증이나 로그인을 하지 않고서는 콘돔을 구입할 수 없게 돼 있다. 일부 콘돔 전용 쇼핑몰들만 ‘19금’ 콘돔과 그렇지 않은 콘돔을 구별한 뒤, 일반 콘돔은 성인 인증 없이 또는 비회원으로도 구입할 수 있게 돼 있다. 대형 종합쇼핑몰의 경우 콘돔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어 일반형과 19금을 구별하는 장치를 마련하지 않는 실정이다. 한 대형 쇼핑몰 관계자는 “여가부는 ‘기능성 콘돔만 청소년의 구매를 제한하라’고 하는데, 일일이 우리가 그걸 구별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일괄적으로 청소년의 구입을 제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포털들의 정보 제한을 모두 여가부 고시 탓으로만 돌리기엔 무리가 있다. 네이버나 다음은 청소년보호법에서 정한 청소년 유해물건과는 무관하게 기능이나 사용법 등 콘돔 자체에 대한 정보에도 대부분 19금 딱지를 붙였다. “유해정보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라는 게 그들의 설명이지만 구체적인 정책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네이버 관계자는 “사용자가 어떤 의도로 콘돔을 검색하는지 일일이 판단하기 어려워 성인 인증을 걸어놨다. 그렇다고 모든 결과물을 차단하는 건 아니다. 신뢰성이 인정된 정보 등은 성인 인증 없이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지식백과 결과 등은 누구나 볼 수 있는 반면 블로그나 카페 게시글 등은 성인 인증이 필요하다”고 예를 들었다. 이 관계자의 말을 따라 네이버에 로그인 없이 ‘콘돔 사용법’을 검색해 봤다. 몇 안 되는 지식백과 검색 결과 중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콘돔의 기본 기능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이 전부다. 반면 로그인을 한 뒤 같은 내용을 검색하면 그림과 친절한 설명이 포함된 블로그글과 지식인(iN) 답변들이 검색된다. 블로그나 지식인의 내용들은 사용후기 등이 많아 신뢰성 여부와 무관하게 이용자들이 유용하게 활용하는 정보들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네이버는 “정보를 제한하는 건 아니”라며 “사회적 합의가 있으면 (제한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은 다음도 마찬가지다. 성은 어른들의 것? 성민현 대표는 헌법소원을 낸 것과 관련해 “성은 오로지 어른들만의 것이라는 편견을 깨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편견은 깊고도 ‘넓다’. 실제로, <한겨레> 토요판에 연재 중인 ‘이런, 홀로!?’ 코너의 지난 3월4일치 ‘혼자서 만나는 내 몸…왜 우린 말하지 않았을까요?’ 제목의 기사는 최근 구글로부터 성인용 콘텐츠 판정을 받았다. 로그인 없이 검색창에 ‘길거리’라는 단어만 입력해도 ‘몰카성’ 사진이 끝도 없이 검색되는 구글이 성인용 콘텐츠를 구별한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여성의 자위’를 다룬 외부 기고를 ‘성인용 콘텐츠’로 분류했다는 점도 선뜻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에 대해 구글 쪽은 “‘누드 및 포르노’ ‘노골적인 문구 및 극단적인 비속어’ 등이 담긴 콘텐츠를 성인용으로 구별해 광고 게재를 제한하고 있는데 여성의 자위를 다룬 ‘이런 홀로’의 기사가 ‘성적 조언 및 성적 건강’ 항목에 해당돼 성인용 콘텐츠로 분류됐다”고 알려왔다. ‘혼자서 만나는…’을 쓴 혜화붙박이장(필명)은 이 소식을 듣고 “성인만 자위하나 보다”라는 짤막한 말을 남겼다. 콘돔과 마찬가지로 자위 역시 청소년에겐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오롯이 청소년에게 돌아간다. 질병관리본부가 2016년 청소년 6만5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 조사 통계’를 보면 한국 청소년들의 성관계 경험률은 4.6%였다. 성관계를 처음 시작한 평균 나이는 13.1살이었고, 성관계 경험자 중 51.9%만이 피임을 했다고 답했다. 여학생들의 임신 경험률은 0.3%였지만 이들 중 81%가 임신중절수술을 했다고 밝혔다. 임신중절수술이 불법인 한국에서 당사자들이 겪어야 했을 고통과 따가운 시선들을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여전히 많은 학교에서의 성교육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 착상을 한다’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교육을 받았다”고 답한 청소년은 네명 중 한명꼴이지만 콘돔 사용법 같은 실질적인 내용이 담긴 성교육은 학교에 따라, 교사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한채림씨는 “콘돔 구입의 어려움 여부를 떠나, 친구들 중엔 성관계를 하는 데 콘돔이 필요하다는 인식 자체가 없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콘돔은 피임과 성병 예방을 위해 현재까지 입증된 가장 간편하고도 확실한 수단이다. 성인들에게 필요하다면 청소년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성은 어른들만의 것도 아니고 숨겨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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