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내가 ‘데이터 빈민’을 자처한 이유
스마트폰 환경에 익숙해질수록
뇌가 퇴화하는 것 같았다
월 1기가 요금제로 갈아탔다
텔레·카톡…메신저부터 절제
와이파이와 ‘극약처방’ 덕분에
데이터 다이어트는 일단 성공했다
280배 빠른 5G 시대가 오면
퇴화는 더 빨라질까 느려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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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때도 없이 날 호출하던 스마트폰과 몇년을 함께했다. 이제 내가 먼저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폰을 찾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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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터 없는 것과 돼지고기 없는 것 중에 하날 고른다면 뭘 택할래?”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육식주의자 조카에게 물었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돼지고기 없는 거. 다른 고기 먹으면 되지만 데이터는 대신할 게 없잖아.” 데이터로 돌아가는 스마트폰은 조카에게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의 삶에 필수품이 되었다. 그 필수품 소비를 좀 줄여보고 싶었다. 너무 과해서 탈이 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침 7시. 스마트폰 알람이 울리면 나의 ‘스마트(폰에 잠식당)한’ 아침이 시작된다. ①사파리를 열어 페이스북을 ‘새로고침’한다. ②새로운 이메일이 왔나 확인한다. ③간밤 인스타그램에 새로 생긴 좋아요와 팔로어가 얼마나 되나 확인한다. 시간 여유가 있는 아침엔 ④게임 앱 붐비치(슈퍼셀사에서 개발한 모바일 전략 게임)를 열어 ‘자원’을 획득한 뒤 12시간 이상 걸리는 유닛 업그레이드까지 해놓는다. 침대에 모로 누워 안경도 쓰지 않은 채 ①~④를 끝내면 그제야 슬슬 일어나 기지개를 켠다. 잠자기 전 밤엔 ①~④를 역순으로 반복한다.
스마트폰으로 시작해 스마트폰으로 끝나는 하루는 침대 밖에서도 계속된다. 출퇴근길 버스나 지하철 안에선 말할 것도 없고 운전을 할 때도 신호를 기다리며 ①~④ 중 일부를 하거나 메신저를 확인한다. 먼저 메신저 알림음이 울릴 때도 있지만 울리지 않아도 보는 경우가 더 많다.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며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런 스마트(폰에 잠식당)한 사람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던 내가 어느새 그들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충 언제부터였는지는 확실히 알고 있다. 2016년 3월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시작하고부터다. 디지털 관련 부서에서 일하면서 시작된 스마트한 생활은 무제한 데이터 세례를 받아 꽃을 피웠다.
페북을 켤 때마다 잃어가는 것
애초 ‘통신비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은 생활비 절감 차원에서 시작했다. 내가 가입한 케이티(KT)에서 가장 저렴한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는 부가세 포함해 한달에 6만5000원. 여기에 단말기 할부금을 포함해 매달 9만원 가까운 돈이 통신비로 빠져나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돈 쓸 곳은 늘어나는데 수입은 이에 비례해 늘지 않으니 씀씀이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른 씀씀이는 좀처럼 눈에 잘 보이질 않았다. 매달 꼬박꼬박 나가는 비용이라도 줄여볼 심산이었다.
이동통신사들의 요금체계는 왜 하나같이 비싸고 복잡한 걸까. 이통사들은 최근 정부가 제시한 ‘월 2만원에 음성 200분, 데이터 1기가바이트’의 보편요금제 도입을 거부했다. 이상헌 에스케이텔레콤 상무는 지난 9일 열린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에서 “우리나라 요금 수준은 해외보다 저렴하고 데이터 사용량 증가로 인해 가계통신비 부담이 증가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정말 외국보다 저렴할까?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가 지난 7일 나라별 저가요금제를 비교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월 3만2890원에 데이터 300메가바이트를 제공하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10기가·2만917원), 네덜란드(4기가·2만8760원), 영국(2기가·2만원), 이탈리아(10기가·3만2683원) 등 많은 나라들이 한국보다 요금이 저렴하다.(음성과 문자는 모두 무제한) 더군다나 국내 통신 3사는 짬짜미라도 한 듯 데이터중심 요금제 최저가가 3만2890원으로 똑같다.
이통사를 향한 불만과 함께 ‘데이터에서 자유롭지(Free) 않고도 살 수 있을까’라며 망설이던 지난 2월 초. 페이스북 담벼락에 뜬 한 카드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페이스북을 한번 켤 때마다, 카톡을 확인할 때마다 여러분이 잃어가는 게 있습니다.”
내용인즉, 스마트폰을 자주 이용해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 어려워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력을 탓하지만 그건 의지력이 아니라 스마트폰 환경에 익숙해진 우리의 뇌가 많은 정보를 빠르게 수집하는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만 발달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스마트폰 환경이 계속 유지되는 한 논리적 분석력, 비판적 사고, 상상력 등 ‘깊은 수준’의 사고력은 점점 퇴화할 거라는 내용이었다. 인터넷이 엄청나게 느린 산악지대로 이사하고 나서야 책 원고를 마감할 수 있었다는, 미국 아이티(IT) 미래학자 니컬러스 카가 쓴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다룬 주제였다.
딱 내 얘기 같았다. 논리적 분석력이나 비판적 사고까지 갈 것도 없었다. 머릿속에 무언가 맴돌지만 정확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고 챙겨야 할 물건을 두고 오는 일들이 최근 들어 갑자기 늘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 어려운 건 말도 못할 지경이다.(이 글 또한 이틀에 걸쳐 쓰는 중이다) 역시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충 2015년을 전후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해 여름 국외출장을 가서 300만원 가까운 돈을 호텔방 금고에 뒀는데 다른 도시로 이동하고 나서야 생각난 일이 있었다.(결국 찾긴 했다) 대형 사고에 긴장할 법도 한데 두달 뒤 여름휴가를 다녀오다 스마트폰을 비행기에 두고 내리기도 했다.(이건 결국 못 찾았다) 그즈음부터 자동차 정비소에 노트북이 든 가방을 두고 오거나 헬스장에 옷가방이 아닌 노트북가방을 들고 가는 일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과거엔 일어나지 않던 일이었다.
그게 죄다 스마트폰 탓만은 아니겠지만 뭔가 행동을 하려면 이유가 있어야 했다. 마음먹은 뒤 찾아보긴 했지만, 적어도 유아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스마트폰의 과다사용이 두뇌 활동을 저하시킨다는 결론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때마침 통신비 지원 금액을 줄인다는 회사의 결정도 있었다. 이유는 충분했다.
결국 셀룰러를 off 하다
‘스마트폰이 바보 같은 뇌를 만든다’는 카드뉴스를 본 그날, 요금제를 바꿨다. 그동안 써온 6만5000원짜리 요금제는 음성은 무제한, 문자는 기본제공(하루 200건 이하), 데이터는 ‘월 10기가바이트+(초과시) 하루 2기가바이트’로 설계돼 있었다. 사실상 문자나 음성, 데이터 모두 무제한인 요금제였다.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1월까지 석달 동안 내가 쓴 데이터는 월평균 15기가바이트, 음성 통화는 348분이었다.
집과 회사에선 와이파이에 연결하면 되고, 데이터로는 게임이나 동영상 재생을 안 하면 되니… 여러 요인들이 있었으나 다 고려하긴 복잡해 데이터 1기가 요금제로 바꿨다. 부가세 포함한 요금이 월 3만8390원이었다. 하루아침에 데이터와 음성이 동시에 제한된 삶을 살긴 두려워 음성 무제한은 유지했다.
요금제를 바꾼 첫 주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크게 불편하거나 ‘긴장’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걱정했던 금단 증상도 없었다. 습관적으로 꺼내던 스마트폰을 필요할 때만 쓰자고 마음먹으니 정말 열어볼 일이 별로 없었다. 노트북 앞에 앉으면 페이스북이든 메일 확인이든 메신저든 모두 노트북으로 가능했다.(노트북 앞에서의 집중력 부재 역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긴 하다)
가장 의식적으로 자제했던 건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같은 메신저였다.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고 내려받지 않는다면 메신저로 인해 소비되는 데이터는 미미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메신저 절제를 요금제 변경 이후의 행동수칙 1순위로 꼽은 것은 나 스스로 옭아맨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전부터 스마트폰 메신저들의 알림 기능을 모두 꺼놓고 지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단체방의, 급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때로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톡’들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채팅방에서 몰래 나가기 기능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이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알림 기능을 끈다고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기능을 꺼놨더니 언제부턴가 시도 때도 없이 나 스스로 메신저를 확인하고 있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9~11월 스마트폰 사용자 2만971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5% 이상(복수응답)이 주 이용 콘텐츠로 메신저를 꼽았다. 만 20살 이상의 경우 99%를 넘었다. 주 이용 콘텐츠는 ‘주로 구속당하는 콘텐츠’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그렇게 벗어나고픈 메신저를 제 발로 찾아들어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기도 하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데이터를 의식하면서 제일 먼저 느낀 건 와이파이의 존재감이었다. 데이터를 의식해서라도 불필요한 스마트폰 이용을 줄여보자는 게 요금제를 낮춘 이유였는데, 데이터를 의식하지 않아도 될 만큼 곳곳에 와이파이들이 빵빵했다. 출근길에 참았던 페북과 메신저는 출근 뒤 노트북이나 회사 와이파이로 해결했고, 퇴근길에 참았던 페북과 메신저는 퇴근 뒤 집 와이파이로 해소했다. 1주일이 지났을 무렵 사용한 데이터는 100메가바이트가 채 되지 않았다. 한달 15기가바이트를 쓰던 때와 비교한다면 큰 변화였지만 줄어든 데이터 사용량만큼 와이파이 이용시간이 늘어났다는 게 문제였다. 그 문제는 설 연휴에 본색을 드러냈다.
부모님댁엔 와이파이가 없었다. 평소 삼촌의 핫스팟(스마트폰을 무선공유기화해서 무선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을 찾던 초등학생 조카는 제한 요금제로 바꿨다는 얘길 듣자 가까이 오지 않았다. 딱히 할 일이 없으니 습관이 튀어나왔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열고 네이버 뉴스를 보고 조카들 사진을 찍어 메신저로 올리기를 하루이틀 반복하니 위기가 닥쳤다. 900메가바이트를 넘던 ‘잔여사용량’이 400메가바이트 아래로 떨어져버렸다. 한달 250메가 요금제를 시작했다가 하루 만에 탕진했다는 친구 생각이 났다.
1기가바이트를 다 쓴 뒤 부가되는 요금이 문제가 아니었다. 큰맘 먹고 시작한 ‘데이터 다이어트’를 실패하고 맞게 될 자괴감이 더 두려웠다. 극약처방이 필요했다. 카카오톡과 텔레그램, 뱅킹앱을 제외하고 셀룰러 데이터 버튼을 꺼버렸다. 끝내 메신저는 포기하진 못했다. 아이폰끼리 주고받는, 문자메시지 같지만 사실은 데이터를 소모하는 아이메시지 기능도 꺼버렸다. 데이터 빈민인 내게 아이메시지는 문자메시지가 제한적일 때나 환영받던 구시대의 유물에 불과했다.
데이터가 없는 스마트폰은 전화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스마트폰으로 할 게 없었다. 덕분에 데이터는 설 연휴 상태 그대로 유지됐다.
그렇게 극약처방 상태로 1주일, 데이터 빈민으로 한달 가까이 살았다. 스마트폰의 굴레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는 만족감과 동시에 라디오 수신 기능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커졌다. 제조사들은 왜 스마트폰에 라디오 수신 기능을 넣지 않는 걸까. 2016년 경주 지진 이후 정부가 삼성, 엘지 등 제조사들과의 논의 끝에 올해부터 출시되는 제품에 에프엠(FM) 라디오 수신 기능을 넣기로 했다고 한다. 그동안 뭐 하다 이제서야. 그런데 또 아이폰 제조사인 애플은 들은 척도 안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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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하거나 운전을 하거나 화장실에서도 우리는 스마트폰에서 눈과 손을 떼지 않고 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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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 브레인’이 될 순 없다
웬 호들갑이냐고 하겠지만, 케이티가 평창올림픽에서 열심히 홍보중인 5G 시대가 난 두렵다. 이제 곧 5G 시대가 온다고, 일반 엘티이보다 280배 빠른, 1기가바이트 영화 한 편을 10초 안에 내려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온다고 한다. 10초 만에 한달 데이터 사용량을 탕진해버릴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말이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진 뇌가 현실에 무감각하거나 무기력한 대신 즉각적인 자극에만 반응하는 현상을 미국 워싱턴대학교 데이비드 레비 교수는 ‘팝콘 브레인’이라고 불렀다. 5G 시대가 오면 내 뇌의 ‘팝콘화’는 지금보다 280배 빨라질지도 모른다. 데이터 다이어트만으로 그 시대를 버텨낼 수 있을까. 통신사에 웃돈을 줘가며 팝콘 브레인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당분간 데이터 빈민의 삶을 이어갈 작정이다. 오는 3월엔 월 500메가 요금제로 바꿔야겠다.
*참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니컬러스 카·2011)
<스마트폰 과다사용이 유아의 기억과 추론에 미치는 영향>(전초원 박사학위 논문·2017)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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