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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03 15:26 수정 : 2018.11.03 21:52

[토요판] 뉴스분석 왜
80년생 기자가 80년생 장자연에게

지난 2009년 11월 서울 인사동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은 고 장자연씨를 위해 여성연예인 인권지원서포터스 ‘침묵을 깨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준비한 씻김굿 행사가 열렸다. 한겨레 자료 사진

▶ 지난 10월28일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재조사하고 있는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은 2009년 당시 경찰의 수사가 매우 허술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냈다. 술자리 접대와 성상납을 강요당했다는 문건을 남기고 그가 죽은 지 9년이 훌쩍 지났지만 접대를 받은 이들 중 처벌받은 사람은 없다. 이제야 드러나는 엉터리 수사 과정을 보며 그에게 편지를 띄운다.

아직도 9년 전 당신의 이름이 박힌 ‘문건’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이 생생합니다. 기획사 대표의 폭언과 폭행, 술자리와 성접대 강요에 대해, 잠자리까지 요구했던 권력자들에 대해 빼곡히 적은 뒤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고 당신은 적었죠. 그 옆에 쓰인 ‘장자연’이라는 이름 석 자와 빨간 지장, 그리고 주민등록번호에 시선이 고정됐습니다. 80년생. 저와 같은 해에 태어난 당신에게 제가 진작 ‘기자 친구’가 되어줄 수 있었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피해자 죽어 입증 어렵다”던 경찰

물론 큰 도움은 안 됐을 겁니다. 당시 막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의 작은 배역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신인배우였던 당신처럼, 2009년엔 저도 취재기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짜’였거든요. 그래서 ‘장자연 사건’ 발생 당시 전 허둥댈 뿐 제대로 된 취재는 하지도 못했습니다. 경찰 수사 상황을 지켜보며 연예계에 이런 성상납이 얼마나 만연한 지 알아보려 동분서주했지만 많은 이들이 말하길 꺼려했죠.

“성접대의 은밀성을 알고 있지만, 목격자가 없고 고인(피해자)이 살아있지 않으면 입증하기 어렵다.” 2009년 7월10일 경찰은 ‘장자연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스물아홉 나이에 경기도 분당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 숨진 지 4개월만이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성접대 사실을 기록한 일명 ‘장자연 리스트’가 세상에 알려지자 자살로 종결했던 수사를 재개했었죠. 4개월간의 수사를 마치며 경찰은 “분당경찰서장을 수사본부장으로 지방청 인력까지 동원해 대대적인 수사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대대적인 수사’ 결과 성접대 대상으로 지목된 이들 중 기소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피해자가 죽어서’ 성접대 입증이 어렵다던 경찰과 검찰은 과연 당시에 수사를 제대로 하긴 한 걸까요? 경찰은 유족이 고발한 7명을 포함해 20명을 수사 대상에 올려 놓고 참고인을 118명이나 불러 조사하는 등 수사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저는 술집 접대부와 같은 일을 하고 수없이 술 접대와 잠자리를 강요받아야 했습니다”라고 적은 뒤 밝힌 성접대 대상, 소위 ‘유력인사’라 불리는 사람 중에는 유력 언론사 대표부터 유명 기업 대표, 금융계 간부, 드라마 피디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검찰이 결국 기소한 사람은 기획사 대표였던 김종승씨, 전 매니저였던 유장호씨 둘 뿐이었습니다. 김 전 대표는 당신을 폭행한 죄, 유 전 매니저는 김 전 대표를 모욕한 죄로 처벌받았죠. 많은 이들이 당신을 ‘성적 노리개’로 삼았던 일은 없던 일처럼 처리됐습니다. 자신도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였던 이은의 변호사는 분개하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피해자가 죽으면 수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지만, 피해자가 죽을 정도의 고통과 억압이 있다면 사안이 더 중대할 수 있다. 따라서 할 수 있는 수사들은 더 열심히 했어야 한다.”

이 억울한 죽음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건 국민들이었습니다. 지난 2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고 장자연의 한맺힌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고 청원 참여자가 23만명을 돌파했죠. 지난 4월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실무 조사기구인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이하 조사단) 조사4팀이 당시 사건 처리 과정의 문제점을 추적해오고 있죠.

조사단은 지난 28일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앞서 국내 최고 대기업 오너 일가 명의의 휴대폰과 당신이 통화를 자주했었다는 의혹이 보도되기도 했고 최근 국정감사에서 당시 수사가 부실했다는 비판이 이어졌기 때문이지요. 조사단은 우선 9년 전 압수수색이 얼마나 허술하게 이뤄졌는지 설명했습니다. “2009년 3월14일 장자연의 집과 차량 압수수색에 걸린 시간은 57분에 불과했고 평소 들고다니던 핸드백도 열어보지 않았다 한다. 핸드백 안과 립스틱 보관함 사이에 있던 명함들, 침실 여기저기에 있던 수첩·메모장 등 장자연의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 증거들이 초기 압수수색 과정에서부터 다수 누락됐다.”(조사단 보도자료)

한 검찰 관계자는 “압수수색이라는 게 주머니 속 명함부터 매트리스 밑까지 숨겨 놓은 것 찾자고 나가는 건데 집안에 굴러다니던 수첩이나 명함 이런 것도 안 가져 온 것을 보면 의아하다”고 말하더군요. 때문에 검찰 안팎에서는 “당시 수사 의지가 없거나 사건을 축소할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닌가 의심이 된다”는 한탄이 흘러나옵니다.

재조사 나선 검찰 진상조사단
“2009년 압수수색 나간 경찰
57분만 머물며 핸드백도 안 열어봐”
통화 자료 없고 미니홈피도 안 봐

“피해자 죽어 입증 어렵다”던 경찰
“성상납 증거없다” 기소 안한 검찰
“수사의지 없거나 사건 축소 의심”
2009년에 ‘미투’ 있었다면 달랐을까

통화목록과 다이어리는 어디로

그런 허술한 압수수색을 해놓고도 당시 경찰은 기자들에게 열심히 브리핑을 했습니다. 2009년 3월16일 경찰은 기자들을 모아놓고 “고인 집에서 압수한 다이어리, 수첩 등을 확인했지만 자살·폭행 등과 관련된 특별한 자료는 발견된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껏 확인된 사실만 봐도 당시의 수사 과정은, 앞에서는 ‘피해자가 살아있지 않아 성접대 입증이 어렵다’고 변명하고 뒤에서는 ‘죽은 피해자’를 조롱한 행위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조사단이 9년만에 다시 꺼내본 수사 기록은 엉망이었습니다.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당신의 휴대폰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연락처, 컴퓨터 분석 내용, 다이어리와 메모장 복사본 등이 전혀 수사 기록에 첨부되어 있지 않았죠. 한 마디로 수사기록물 보관 박스 안이 텅 비어있었던 겁니다. 애초에 첨부를 하지 않았든, 누군가가 수사 기록을 없앤 것이든, 이건 여간 큰 문제가 아닙니다. 다시 작정하고 사건 수사를 시작한다 해도 이제는 그 내용을 알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9년 전 경찰은 기자들에게 ‘대대적인 수사’를 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줄곧 ‘통신수사’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경찰은 3월16일 브리핑에서 “고인 및 관련자 통화 분석 위해 통신사 영장 발부 받아 오늘 집행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3월20일에는 “전 매니저 유장호씨 통화내역 1만9000건을 포함해 9만6천건에 대해 분석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결국 조사단은 수소문 끝에 최근 당시 수사 검사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당신의 통화내역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기록물은 최종 수정일자가 통신사에서 통신 내역을 받은 날이 아니고 편집한 형태여서 원본 파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경찰이 왜 ‘핵심 증거’라고 브리핑해온 통신기록을 수사기록에 남기지 않았는지, 검사는 왜 개인적으로만 그 기록을 갖고 있었는지 의혹 투성입니다.

경찰은 또 2009년 3월31일 수사기록에 ‘장자연씨 싸이월드 미니홈피 압수수색 영장 신청 예정’이라고 써놓고도 영장을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싸이 미니홈피’에는 저 역시 비공개 일기장·방명록·쪽지 등을 통해 참 많은 비밀을 쌓아놓곤 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당신의 미니홈피에 접속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전혀 들여다보지 않았다더군요. 조사단 관계자는 “장씨가 싸이월드를 통해 개인 기록을 남겼을 가능성이 큰 데도 압수수색조차 하지 않아 이제는 영원히 그 기록을 볼 수 없게 됐다”고 아쉬워했습니다.

당시 경찰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실마리가 있습니다. 지난 7월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으로 수사를 지휘했던 조현오씨가 문화방송 <피디수첩>과의 인터뷰에서 ’장자연 리스트’에 사주 일가가 거론된 <조선일보>로부터 협박을 당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조선일보가 두 번 이상 날 찾아와서 ‘우리 조선일보는 정권을 창출시킬 수도 있고 정권을 퇴출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정권 운운하면서 협박을 해댔다”며 “나 때문에 정권이 왔다갔다 할 수 있다니까 심각한 협박으로 느껴졌다”고 말하더군요.

이제라도 다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려 하지만 이미 사건이 발생한 지 9년이 지나 공소시효가 만료됐을까봐 우려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검찰은 일단 지난 6월, 전직 <조선일보> 기자 ㅈ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2008년 8월 술자리에서 테이블 위에 올라가 노래해야 했던 당신을 끌어당겨 추행해 목격자가 존재하는데도 기소가 안 됐던 자입니다. 공소시효 10년이 만료되기 전 허겁지겁 기소를 한 것이지요. 이제 이런 식의 기소를 할 수 있는 시간도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윤예림 변호사는 “성접대 등 사건 발생 시기가 2007~2009년이어서 공소시효가 5~10년인 강요, 강요방조, 성매수, 강제추행, 성매매 알선 등의 공소시효가 대부분 만료되었다”면서도 “만약 2009년 발생한 강제추행 등 추가 범죄 사실이 있다는 점을 밝힌다면 아직 기소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제2, 제3의 장자연이 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지만 특별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여성 연예인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한 결과 조사 대상(351명)의 60.2%가 성접대 제의를, 45.3%가 술시중을 들라는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성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는 연기자의 48.4%는 이를 거부한 후 캐스팅이나 광고 출연 등 연예 활동에서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답했습니다.

지난 4월5일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전국언론노조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 앞에서 ‘장자연 리스트’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서지현 검사도 침묵해야 했던 그 시절

당신 없는 이 세상에서는 지난해부터 전세계적으로 ‘미투(나도 고발한다) 운동’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사회 각계에서 “사실 나도 성폭력 피해자였다”라는 폭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죽기 전에 이런 운동이 시작됐다면 어땠을까요? 미국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력을 폭로한 배우 로즈 맥가원, 19살 때 음악 프로듀서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고백한 미국의 유명 가수 레이디 가가를 보며 당신도 죽지 않고 폭로할 용기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당신이 성접대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2000년대는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지요. 성폭력을 당하고서도 아무 말 하지 못하는 이들이 차고 넘쳤습니다. 2010년까지 연희단거리패에서 활동했던 배우 김지현씨는 연극계 권력자인 이윤택 예술감독에게 2005년부터 성폭행을 당해 임신, 낙태까지 해야 했지만 10년 넘게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0년 서지현 검사도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 장관을 수행하고 온 안태근 당시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에게 강제추행을 당했지만 “입 다물고 근무하라”는 검찰 내부 분위기 속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 기사가 세상에 나가는 11월3일 토요일에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주최하는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가 열립니다. 2003년부터 시작된 행사인데 지난 15년 동안 600명 정도의 성폭력 피해자가 말하기에 나섰습니다. 대회 초창기에는 행사 내용이 알려지는 것도 조심스러워 언론 취재에도 잘 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말하기에 나서는 이들도 많아지고 행사도 훨씬 더 공개적으로 진행된다고 하네요. 이런 흐름이 오늘의 ‘미투 운동’을 만든 거겠지요.

부모님을 일찍 잃고 고향인 전북 정읍을 떠나 홀로 서울에서 지내며 견디기 힘든 날이 많았을 80년생 장자연씨. 배우의 꿈을 놓지 못했던 당신을 짓밟은 ‘유력 인사들’, 그런 가해자들을 비호했던 세상의 실체가 이제라도 드러나길 바라봅니다. 그리고 지금도 어디선가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당신에겐 돼주지 못했던 ‘기자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제 이름과 이메일 주소를 남깁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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