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전세계적으로 공유주방 유행
국내서도 업체들 속속 생겨나
우버 창업자도 뛰어들어
“한국 제 2거점으로 삼을 것”
푸드트럭·배달전문업체 등
매장 필요 없는 창업자들에게
주방공간·설비·창고 등 제공
메뉴개발·마케팅 등도 도와줘
배달인프라 강하고 창업수요 많은
사회구조가 유행의 원인
현행법상 분리된 시설 없으면
사업자 등록 못하는 점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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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공유주방 ’심플 키친’ 심플 키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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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호씨는 친구와 함께 푸드트럭에서 스파게티 등 이탈리아 음식을 만들어 파는 사업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니, 트럭 대여 외에도 식자재 준비, 메뉴 개발, 음식 이동, 트럭 관리 등 해야 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고민 끝에 김씨는 공유주방업체를 이용하기로 했다. 업체에서 제공한 공유주방에서 두달 동안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보고 최종 메뉴를 결정했다. 트럭에서 하기 힘든 식재료 손질, 식재료 보관 등도 모두 공유주방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김씨는 “필요한 시간만 주방을 빌릴 수 있어 좋다. 공유주방에서 식재료 손질을 하고 푸드트럭에서 조리를 한다. 식재료·포장재료 등 보관해야 할 짐이 많은데 냉장고, 냉동고, 창고 등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편리하다”고 말했다.
치킨과 피자를 동시에 파는 ㅊ업체는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근처에서 꽤 유명한 배달맛집이었다. 이 음식점은 서울 강남 지역에 사업을 확장하기로 한 뒤, 따로 매장을 내지 않고 강남에 있는 한 공유주방에 들어갔다. 매장 위치, 주방설비 구입 등에 대해 고민은 할 필요가 없었다. 이들은 공유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어 강남 일대에 배달을 하는 방식으로 분점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공유주방 바람
“한국에서 20여개 이상의 빌딩을 매입해 공유 주방으로 만들 것이다. 수십여개 레스토랑의 주방을 한 곳에 입점시키고 음식을 주문·배달해주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겠다. 공유 주방을 활용하면 식당 인테리어나 홀 서빙 인력이 필요 없기 때문에 비용은 10분의 1 이하로 줄일 수 있다.”
세계 최대의 차량 공유업체인 우버를 창업한 트래비스 캘러닉이 지난해 10월 국내 요식·배달 대행 업계 관계자 80여명을 초청해 공유주방 사업과 한국 진출 방안을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캘러닉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첫 공유주방 ‘클라우드 키친’을 만든 데 이어 두 번째 거점으로 한국을 선택했다.
공유주방은 주방 설비와 기기가 갖춰진 공간을 외식 사업자들에게 대여하는 서비스다.(개인들이 주방을 함께 쓰는 것은 흔히 ‘공유부엌’이라고 불린다.) 미국과 유럽, 중국 등을 중심으로 전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공유주방 업체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음식배달업체 등에게 주방만 임대하는 업체도 있고, 주방 대여와 함께 메뉴개발, 마케팅전략 등 외식업 창업자들에 대한 교육시스템까지 갖춘 업체도 있다. 각각 ‘배달 특화 공유주방’ ‘인큐베이팅 공유주방’ 등으로 불린다. 음식 배달 서비스, 온·오프라인 판매채널 구축 서비스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도 추가될 수 있다.
국내에서는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외식창업을 꿈꾸는 청년·대학생들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돕는 ‘청년키움식당’을 운영하면서 처음으로 공유주방을 선보였다. 이후 지자체 등 공공기관이 인큐베이팅 사업에 참여하면서 현재는 ‘위너셰프’(공공기관·대기업 공동 출자), ‘서울창업허브’, ‘목포 엘에이치(LH) 공유주방’ 등 10곳 이상의 공공기관 중심 업체가 운영되고 있다.
민간업체로는 마이키친, 키친서울, 먼슬리키친 등이 대표적인 업체들이다.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공유주방 업체 ‘위쿡’을 찾아가보았다. 위쿡은 오픈주방과 개별주방(2호점 사직동)을 모두 갖추고 전문가가 참여한 프로그램을 통해 창업자를 키운다. ‘오픈주방’은 시간당 요금(9800원)을 내고 원하는 시간만큼 사용하는 형태다. 음식을 만들어 동영상을 찍어야 할 때, 신메뉴 개발을 해야 할 때, 소셜미디어를 통한 판매·케이터링 서비스·푸드트럭 판매 등을 해야 할 때 주로 이용한다. ‘개별주방’은 월 사용료 175만원을 내면 일정 공간을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위쿡은 입점 기업의 마케팅, 제품 개발, 브랜딩, 외식 경영 교육 등 식음료업 운영에 필요한 시스템과 교육도 제공한다. 온·오프라인 유통 판로를 제공하고 물류 서비스를 연동해 주기도 하는 일종의 플랫폼 역할을 한다.
지난 5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1호점을 연 ‘심플키친’은 배달 특화 공유주방이다. 13~16㎡(약 4~5평) 규모의 독립된 주방 9개가 갖춰져 있고 24시간 이용이 가능하다. 보증금 900만원에 월 대여료가 160만원(1호점 기준)이다. 160만원을 내면 배달업체 등록, 광고대행, 마케팅 영업, 회계업무 제공 등도 제공한다. 심플키친은 현재 3호점까지 확장했다.
국내 1위의 배달앱업체인 ‘배달의민족’도 공유주방인 ‘배민 키친’을 2016년에 선보였다. 우버의 맛집 배달 서비스 ‘우버이츠’는 조만간 한국에서 공유주방 실험을 본격화하겠다고 지난해 11월 밝혔다.
공유주방 유행 이유는
국내에서 공유주방 바람이 부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특히 발달해 있는 배달인프라를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매장 없이 주방만 이용하는 업체들은 대체로 배달을 통해 음식판매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캘러닉 역시 한국을 제 2거점으로 선택한 이유로 “배달 인프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산업 규모도 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이 20%를 넘고, 가장 쉬운 자영업으로 외식업이 선택되는 사회구조도 공유주방 유행의 한 원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음식점 수는 세계 1위로 미국의 7배다. 연간 새로 생기는 음식점은 18만개, 폐업률은 20%대(2016년 기준 23.8%)다. 음식점 창업 성공률이 낮은 이유는 경쟁이 치열한 것도 있지만 투자비가 높다는 것도 있다. 권리금과 보증금을 내고, 인테리어, 주방 설비 등을 갖추려면 아무리 적어도 1억원 이상의 초기 비용이 필요하다. 한번 실패하면 자본 손실이 크고 재기도 어렵다. 공유주방은 이런 고정비용을 줄이려는 외식업 창업자들에게 한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샐러드 배달업체인 ‘프레시코드’는 오프라인 매장 없이 공유주방에서 샐러드를 만들어 배달한다. 처음에는 7평짜리 공간에서 시작한 사업은 1년 사이 매출액이 5배로 증가할 정도로 성장해 주방을 넓혀야 할 상황이 됐다. 프레시코드는 공유주방을 선택했다. 정유석 프레시코드 대표는 “대규모 자체 주방을 만드려면 높은 설비투자 비용이 필요한데, 공유주방에서 월세 비용만 내고 고객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며 “우리같은 소규모 사업장들은 적은 추가 비용으로도 사업의 성패가 갈린다는 점에서 공유주방이 고정비를 아끼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경우도 해당 지역의 공유주방에 직원만 파견하면 간단하게 분점을 낼 수도 있다. 각종 신고서류 작성이나 세금 계산같은 번거로운 사무를 대행해주기도 한다. 입주업체가 제품을 판매해 발생한 매출은 공유주방의 계좌로 일괄 입금되고, 여기서 각자 사용한 재료비와 수도광열비, 세금 등을 제한 나머지 금액(업체에 따라 수수료를 제하기도 한다)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정산이 이뤄진다.
하지만 오픈주방의 경우 주문이 몰리는 식사 시간대에 사용자가 붐빌 수밖에 없어 장비나 시설을 사용하기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있다. 개별주방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필요한 주방 기구가 없을 수도 있다. 치킨집에 필요한 기구와 빵집에 필요한 기구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임태윤 심플키친 대표는 “음식 종류와 상관없이 가장 효율적인 주방 동선과 기구 배치는 비슷하다”며 “그 외 꼭 필요한 기구들은 입점 전에 맞춰서 넣어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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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공유주방 ‘위쿡’ 위쿡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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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위생법과 안 맞아
각종 규제 등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식품위생법에 따르면 ‘식품 또는 식품첨가물의 제조업, 가공업을 비롯해 식품접객업을 하려는 자’는 일정 기준에 맞는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공유주방을 이용할 경우 시설을 갖춘 것으로 인정되지 않아 사업자 발급이 되지 않는다. 대신 공유주방 회사가 사업자 등록을 하고, 입점업체는 공유주방업체와 계약을 맺어야 한다. 입점업체는 사업자등록을 못하기 때문에 세액공제를 받을 수가 없다. 공유주방에서 나온 가공식품은 공유주방 업체의 이름으로 유통이 된다. 식품 안전 사고가 일어난다면 음식 판매자가 아닌 공유주방 업체가 책임을 져야하는 구조다. 위쿡의 경우, 오픈주방을 빌려서 음식을 만들면 만들어진 제품을 위쿡 이름으로 팔아 후에 정산하는 계약을 맺고 있다. 위쿡의 ‘개별주방’과 심플키친은 주방들을 벽으로 나누어 개별 사업자로 등록할 수 있게 만들었다.
문정훈 서울대 교수(농경제사회학부·푸드 비즈랩)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스타트업은 정보기술(IT) 중심이었지만, 최근엔 식품 분야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는 스타트업이 증가하고 있어 공유주방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공유주방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에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시장 반응을 볼 수 있는 창업 중간코스, 창업 사관학교처럼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업장이 아닌 사람을 기준으로 사업자 등록을 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결국은 ‘치킨집 사장님’으로 귀결된다는 농담이 유행한 적이 있다. 공유주방이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더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전망은 미지수지만, 자영업 분야에서도 새로운 실험이 진행 중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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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공유주방 ‘먼슬리 키친’. 먼슬리 키친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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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공유주방 ‘위쿡’ 위쿡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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