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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13 09:21 수정 : 2019.04.13 09:27

[토요판] 법정에 선 양승태사법부
② 증인으로 나온 판사들

임종헌 ‘심복’ 정다주 판사 첫 증인
임, 마이크 잡고 직접 증인 신문
“행정처 심의관, 대검보다 훨씬 적다”
“사법부는 법률제정·예산 권한 없다”
‘법원은 힘없는 을’이라는 내부인식
재판개입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어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해 10월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고위 법관들이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대법관 이상의 고위 법관들이 이렇게 무더기로 법정에 서는 것은 사법부 역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2019년 3월1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첫 재판을 시작으로, 진실을 밝히고 유무죄를 따지는 긴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법정 르포의 방식으로 ‘사법농단 재판’을 중계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려고 합니다.

“증인이 근무할 당시 법원행정처 심의관 수는 몇 명이었습니까.”(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서른 두분 안팎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한 숫자는 헷갈립니다.”(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

“법무부 대검과 비교할 때 그 숫자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죠.”

“그렇습니다.”

“거의 새벽에 퇴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죠.”

“그랬습니다.”

“오로지 우리 사법부의 ‘방파제’ 역할을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2년을 버틴 것이죠.”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윤종섭) 심리로 열린 임종헌(60)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 이날 오전 10시30분쯤 시작된 정다주(43) 의정부지법 부장판사에 대한 증인신문이 밤 9시를 넘어갔을 때다. 정 부장판사는 2013~2015년 법원행정처에서 기획조정실 심의관으로 근무했던 인물로, 임 전 차장의 ‘심복’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등에서 ‘재판 거래’를 의심케 하는 문건을 여러 건 작성했다. 법원행정처를 나간 뒤 서울중앙지법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임 전 차장 지시를 받아 판사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 ‘잠입’해 회원인 척 “언행을 자제하자”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임 전 차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피고인도 증인을 신문할 수 있지만 법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임 전 차장은 “피고인(본인 지칭)과 오랜 인연이 있는데 이런 자리에서 뵙게 돼 마음이 많이 아프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데 대해서 상급자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 뒤 정 부장판사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사법행정의 어려움’을 언급하며 동의를 구한 것이다. 피고인과 증인으로 맞대면한 판사들. 임 전 차장은 증인 신문으로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호칭에 ‘님’자 붙이지 말아주세요”

정다주 부장판사는 ‘사법농단’ 관련 재판의 첫 번째 증인이었다. 240여쪽에 달하는 임 전 차장의 공소장(1차 기소)에서 제일 앞부분을 차지하는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과 관련돼 재판부가 증인으로 채택한 이들만 41명에 달한다. 강제징용 손배해상 뿐 아니라, 국정원 대선개입,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 재판 개입에 다수 연루됐다고 의혹을 받는 정다주 부장판사와 시진국 창원지법 통영지원 부장판사, 박상언 창원지법 부장판사까지 합하면 44명이다. 2일 정다주 부장판사에 이어 9일은 박근혜 정권 당시 외교부에 파견을 다녀온 정아무개 전 판사가 증인 선서를 하고 증인석에 앉았다.

“재판장의 소송지휘권에 근거한 권고 사항입니다. 증인신문에 앞서 소송관계인 모두에게 용어 사용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증인이 증언을 하면서 이 사건 관련자들을 지칭할 필요가 있을 때 가급적 종전 직위 자체만을 사용해주십시오. 대법원장님, 대법관님, 법원행정처장님, 기조실장님 등 ‘님’이라는 경칭을 사용하는 경우 관행에 따른 존경의 표시를 넘어서는 의미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을 주의해주십시오.”

재판장인 윤종섭 부장판사는 증인신문에 앞서 주의사항을 거듭 고지했다. 불필요한 오해가 불거지지 않게 하려는 조치다. 한때 법원행정처에서 ‘모신’ ‘대법원장님’이고, ‘법원행정처장님’이지만 지금은 피고인과 증인일 뿐이라는 점을 주지시키려는 의도로 보였다. 증인석에 앉은 정다주 부장판사와 정아무개 전 판사는 검사석에서 빌려온, 혹은 증인석에 구비돼있는 녹색, 푸른색 골무를 왼손 엄지에 꼈다. 이 골무들은 하루에도 수백장씩 서류를 넘겨야 하는 판사 업무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고 검찰에 출석해 작성한 진술서를 한장 한장 빠르게 넘기면서 확인했다. 재판장도 피고인도 증인도 모두 전·현직 판사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 법정에 펼쳐진 셈이다.

정다주 당시 울산지법 부장판사가 지난해 8월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받기 위해 출석하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백소아 기자

“잘못됐다, 부담됐다, 하지만…”

지난 9일 두 번째 증인 정아무개 전 판사는 검찰 질문에 “우리 법조인 입장에서는”, “저는 법조인이니까”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해 답했다. 정아무개 전 판사는 외교부에서 파견 법관을 지냈다. 2012년 일본 전범기업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에 손해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당시 잘 알던 사이가 아니었던 임 전 차장의 연락을 받고 외교부의 내부 분위기를 정리해 문건으로 보고했다.

그는 법정에서 외교부가 외교부 입장을 대법원에 설명할 방법을 물어왔을 때 “이는 부적절한 처사”라고 얘기했다고 밝혔다. “시기적으로도 이미 판단을 다 했는데 대법원에 가서 다시 (외교부 입장을) 설명하는 것은 우리 법조인은 여러모로 안맞다는 걸 알지 않습니까.” “우리 법조인 입장에서는 중요한 관계자가 대법원에 와서 (입장을) 설명한다는 것은 굉장히 부적절한 행위입니다.” 검사가 물었다.

“그렇다면 외교부 관계자들이 대법원에 가서 정부 입장을 설명하는 것이 법조인으로서 부적절하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검사)

“제가 법대생 때부터 배워온 거죠. 삼권분립,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결하고, 법정 안에서 제출된 증거로 판단한다는 것이요. 대법원은 더욱 그렇지 않겠나 하는 믿음이 있죠. 물론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의심이 들긴 하지만 원론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한 것입니다.”(정아무개 전 판사)

임 전 차장의 심복이었다는 평을 받는 정다주 부장판사도 과거 임 전 차장의 지시에 부담감을 느꼈다는 취지로 말했다. 정 부장판사는 증인신문에서 “각종 보고서를 작성할 때 사법부의 권한을 남용하는 내용이 많았고 비밀스럽게 문건을 작성해야 해 부담이 됐다”, “이런 정무적 보고서들은 내용이 민감해 피고인에게만 보고하고 다른 심의관과는 공유하지 못했다”는 검찰 조사 진술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런 ‘부담’에도 정다주 부장판사가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따른 이유는 임 전 차장의 증인 신문 과정에서 엿볼 수 있다.

“행정처가 수행하는 사법행정의 목적은 크게 일선 재판의 지원 업무와 사법부 구성원의 공리 증진, 두 가지로 대변할 수 있죠.”(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그렇다고 생각합니다.”(정다주 부장판사)

“두 가지 업무를 수행할 때 가장 필수적인 수단이 법률 제·개정과 예산 확보죠.”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사법부는 법률 제·개정 및 예산 편성에 전혀 권한이 없죠.”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정부와 입법부의 협력 없이는 사법부 고유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데 상당히 어려움이 있죠.”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선 법원의 재판 독립은 절대적 가치로서 누구도 침범할 수 없지만, 그 재판을 지원하기 위한 기능을 수행하는 법원행정처는 외부 국가기관의 상호협력체계 구축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죠.”

“그렇습니다.”

“(행정처가) 청와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법원 출신 법무비서관이죠.”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법무비서관이 법원의 존재감을 청와대에 인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라고 생각하는데 증인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예산을 따올 수도 없는 빈약한 조직에서 행정처에 주어진 역할을 다하려면 입법부·행정부와의 ‘교류’가 불가피했다는 논리다. 인력도 없지만 우리는 야근까지 불사하면서 행정처 조직을 위해 한 몸을 바쳤다는 임 전 차장의 인식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다.

한 판사는 “‘대법원은 삼권분립에서 한 기둥을 떠받치고 있지만 힘 없는 기관이다. 을의 위치에 있는 무늬만 양반이다. 다른 기관과 뭐라도 주고받아야 하는데 줄 수 있는 것이라곤 재판밖에 없다. 법원 조직의 발전과 이익을 담보하기 위해 그동안 뭐라도 하는 것처럼 시늉만 냈다’는 논리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어 “연수원부터 뿌리가 같은 검찰을 의식한 발언이다. ‘법무부는 청와대랑 연결돼 원하는 걸 얻어내는 상황에서 우리가 법원을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는가’라는 주장은 행정처에 널리 퍼져있던 생각”이라고 짚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를 굴러가게 만들었던 논리적 토대이자 암묵적 공감대인 셈이었다는 것이다.

판사의 인사권을 쥐고 흔드는 내부 분위기도 ‘윗선’의 지시를 거부하기 힘들게 만드는 한 요인이다. 지난달 28일 임 전 차장의 재판에서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의 압박으로 재판결과를 수정해야 했다는 판사의 진술이 일부 공개됐다. 2015년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 조항에 ‘한정위헌’ 의견을 담아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 제청했지만 행정처 판단으로 ‘한정위헌’ 의견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서울남부지법 한 재판부 판사의 검찰 진술 내용이다.

“부장님이 잘못되진 않을까, 말 안 듣는 판사로 찍히지 않을까, 행정처 요구대로 바꿔서 당사자가 권리 구제를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이런 생각 때문에 한동안 힘들었다.” 한 심의관은 검찰 조사에서 행정처에서 쓰던 건배사 ‘KKSS’를 언급했다고 한다. “까(K)라면 까(K)고, 시(S)키면 시(S)키는 대로 하라”는 뜻이다.

전직 대법관부터 심의관까지

9일 재판부는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사건 등과 관련해 48명의 증인을 추가로 채택했다. 증인신문은 오는 7월까지 줄줄이 예정돼있다. 단독판사급 심의관부터 전직 대법관까지 그 면면은 다양하다. 재판부는 검찰의 증인신청을 받아들여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상고심 주심을 맡은 민일영 전 대법관을 증인으로 소환하기로 했다. 양승태 대법원 법원행정처 시절 재판이 행정처의 입김을 받아 그 결과가 뒤바뀌었는지 여부를 담당 법관인 민 전 대법관에 직접 신문하게 된다. 강형주 전 서울중앙지방법원장(전 법원행정처 차장)도 증인으로 채택됐다.

“재판 일정 때문에 출석하지 못한다” “해외 출장 일정이 있다” 등 각종 이유를 대며 증인신문에 불출석하는 판사들도 있다. 검찰은 증인들의 거듭된 불출석으로 재판이 지연될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재판부는 검찰과 피고인, 증인의 일정을 종합해 새 신문기일을 지정하느라 바쁘다. 사법농단에 연루됐다는 전·현직 판사의 법정 맞대면이라는 진풍경이 한동안 이어질 것이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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