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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3 11:17 수정 : 2019.11.24 16:01

빈 살만 왕세자는 현재 사우디 부총리 겸 국방장관, 경제개발위원회 위원장, 아람코 최고위원회 위원장을 동시에 맡고 있다. 살만 국왕이 있지만 의사 결정은 사우디 정치·경제·국방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빈 살만이 한다. 빈 살만이 미소를 짓고 있다. 연합뉴스

[토요판] 뉴스분석 왜
사우디 왕실 기업 ‘철옹성’ 아람코
86년 만에 베일 벗고 기업공개
12월 둘째주, 지분 1.5% 첫 거래
애플·삼성전자·구글 합쳐도 ‘넘사벽’

빈 살만 왕세자, 정치·경제·국방 실권
부패 관료 등 개인재산 117조원 몰수
‘탈석유’ 경제전환 비용 마련 올인
“젊은층 지지 기반, 정책 추진 동력”

빈 살만 왕세자는 현재 사우디 부총리 겸 국방장관, 경제개발위원회 위원장, 아람코 최고위원회 위원장을 동시에 맡고 있다. 살만 국왕이 있지만 의사 결정은 사우디 정치·경제·국방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빈 살만이 한다. 빈 살만이 미소를 짓고 있다. 연합뉴스

▶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소유 ‘사우디아람코’가 전체 지분 1.5%에 해당하는 30억주를 다음달 둘째 주 사우디 리야드의 타다울 증시에 상장한다. 아람코 상장으로 유입되는 자금은 사우디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탈석유시대’ 대비 ‘사우디 비전 2030’ 사업의 실탄으로 쓰일 전망이다. 빈 살만은 이외에도 부가가치세 등 각종 세금 도입과 규제 완화를 통한 투자 유치로 네옴 신도시 등 주요 프로젝트에 본격 나설 예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의 이슬람 교리인 와하비즘은 엄격한 율법을 강조하는 원리주의를 따른다. 보수적 남성 중심 사회 사우디에는 후견인 제도가 있다. 여성은 남성(남편, 아버지, 아들, 친척)을 반드시 후견인으로 둬야 한다. 여권 발급 등 각종 행정 서류를 신청할 때 후견인의 승인이 필요하다. 여성은 후견인 허락 없이 결혼도, 취업도, 해외여행도 못 한다.

사우디 여성 인권에 변화의 바람이 분 상징적 시점은 2017년 9월이다. 사우디 국왕은 왕령으로 ‘여성 운전 허용’을 발표했고, 지난해 6월부터 이를 시행했다. 사우디는 전체 인구 3400만여명 중 운전 가능한 30~50살 여성 400만여명이 운전대에 앉아 도로를 다닐 수 있게 됐다. 지난 9월에는 공공장소에서 외국인 여성의 ‘아바야 착용’ 규정도 없앴다. 아바야는 얼굴과 손발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이슬람 전통 복장이다. 사우디 여성은 아직 예외지만, 내국인에게도 영향을 미칠 풍속 변화라는 전망이 나온다.

‘검은 금’ 석유로 나라 살림을 꾸려가는 사우디 정부 소유의 핵심 기업인 ‘사우디아람코’(이하 아람코) 역시 설립 86년 만에 아바야를 살짝 걷어내고 기업공개(IPO·비상장기업이 주식시장에 상장해 주식을 투자자에게 팔려고 재무 내용을 공시하는 것)에 나섰다.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주식 상장’이란 수식어가 붙은 아람코의 기업공개에 전세계 투자은행(IB) 업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한 세기 가까이 가장 강력한 권력을 쥔 통화인 원유로 현금 걱정 없이 지내고 있는 아람코가 철옹성 같던 왕실 소유 기업정보를 대내외에 공개하면서까지 투자자에게 손을 벌리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12월 둘째주, 주식 1.5% 상장

아람코는 지난 17일 발표한 주식상장 방안에서 기업가치를 1조6천억달러(1880조원)~1조7천억달러(1998조원)로 보고, 주당 8~8.52달러를 공모가로 목표한다고 밝혔다. 매각 지분은 1.5%(약 30억주)이며, 기관투자자와 개인투자자에게 각각 1%, 0.5%를 매각한다. 아람코는 250억달러(30조원)를 끌어모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상장 관련 최종 방안은 다음달 4일 확정한 뒤 11일부터는 사우디 리야드의 타다울 증시에서 첫 거래가 시작될 예정이다.

아람코는 애플과 삼성전자, 구글 세곳이 합쳐도 넘어설 수 없는 영업이익을 내는 기업이다. 신용평가기관 피치(Fitch) 자료(2018년 기준)를 보면, 아람코 영업이익은 2240억달러(263조원)로 세계 1위다. 애플이 818억달러(96조원), 삼성전자가 776억달러(91조원), 로열더치셸이 533억달러(62조원), 알파벳(구글)이 404억달러(47조원)로 나란히 2~5위다. 아람코 순이익은 1111억달러(130조원)로, 이는 사우디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한다.

아람코는 사우디 내 유전과 가스전 개발, 원유 수출을 독점한다. 지난 4월 아람코 감사보고서를 보면, 아람코의 확인된 원유 매장량만 2600억배럴이다. 2017년 기준으로 일일 원유 생산량은 1020만배럴, 해운 수출량은 687만배럴이다. 영국 석유회사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ritish Petroleum)의 ‘2019 세계 에너지 통계 보고서’를 보면, 2018년 기준 사우디의 확인된 원유 매장량은 2977억배럴로 베네수엘라(3033억배럴)에 이어 2위다. 이는 전세계 매장량의 17.2%에 이른다. 일일 원유 생산량은 1228만배럴로 전세계 생산량의 13.0%로 역시 2위다.

아람코는 애초 미국 자본에서 출발했다. 1933년 미국 ‘스탠더드 오일 오브 캘리포니아’라는 회사가 사우디 정부로부터 석유 탐사와 채굴 허가를 받아 자회사를 설립했다. 이 자회사는 1944년 초반 회사명을 ‘아라비안 아메리칸 오일 컴퍼니’로 바꿨다. 이 회사명의 약어가 아람코다. 이후 엑손과 모빌, 스탠더드 오일 오브 캘리포니아, 텍사코 등 4곳이 아람코 지분을 나눠 가졌다.

아람코는 1950년대 세계 최대 육상유전으로 알려진 가와르(Ghawar) 유전과 세계 최대 해저유전인 사파니야(Safaniya) 유전을 발굴했다. 1970년대 자원 국유화 붐이 일어나며 사우디 정부가 지분을 늘리다가 1980년 아람코 주식 100%를 취득했다. 아람코는 사우디 정부를 대신해 모든 광구를 보유, 관리, 운영한다.

아람코 기업공개 계획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건 2016년 1월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이하 빈 살만)가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아람코의 신규 기업공개를 검토하고 있다. 기업공개가 아람코의 투명성을 높이고 부패를 근절함으로써 사우디 시장과 아람코에 이익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빈 살만은 2015년 5월 제2 왕세자 시절 아람코 이사회 위에 ‘아람코 최고위원회’를 신설해 본인이 위원장에 올랐다.

당시 빈 살만은 아람코 기업가치를 2조달러(2351조원)로 보고 지분 5%를 매각해 1천억달러(117조원)를 모으려고 했지만, 사우디 왕가에서 핵심 기업을 헐값에 팔아치우려 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기업정보 공개를 두고도 부정적 반응이 잇따랐다. 아람코의 실제 가치가 8800억달러에서 1조1천억달러 수준일 것이란 영국 경제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FT) 등의 분석도 기업공개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난해 8월 아람코의 기업공개 계획이 철회됐다는 보도들이 나왔고, 올해 초 아람코 최고경영자(CEO) 아민 나시르가 기업공개를 하더라도 시기는 2021년 이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빈 살만이 지난 8월 자신의 최측근 야시르 알루마이얀 사우디국부펀드(PIF) 총재를 아람코 회장에, 지난 9월엔 아람코 기업공개 지연의 책임을 물어 칼리드 팔리흐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을 경질한 자리에 신임 압둘아지즈를 임명하며 분위기가 돌변했고, 12월 둘째 주 타다울 증시 상장으로 급물살을 탔다. 지난 4월 아람코는 처음으로 국제 채권을 발행해 120억달러(14조원)를 끌어모았다. 시장에선 아람코가 기업공개 전에 국제 금융시장 반응을 탐색한 행동으로, 채권에 몰린 자금을 보고 빈 살만이 기업공개에 자신감을 갖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우디아람코의 야시르 알루마이얀 회장(오른쪽)과 아민 나시르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3일(현지시간) 사우디 동부 다란에서 기업공개(IPO)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 8월 최측근인 알루마이얀 사우디국부펀드(PIF) 총재를 아람코 회장에 앉혔다. 연합뉴스

사우디 정치·경제 실권자

투자은행 업계는 아람코의 기업공개 규모에 관심이 쏠려 있지만, 이번 돈잔치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아람코가 기업공개에 나선 배경인 빈 살만의 사우디 내 통제력과, 그가 내건 ‘사우디 비전 2030’이다.

살만 사우디 국왕은 2017년 6월 제1 왕위 계승자였던 무함마드 빈 나이프를 폐위하고 제2 왕위 계승자였던 빈 살만을 왕세자로 임명했다. 빈 살만은 현재 왕세자 겸 부총리, 국방장관, 경제개발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고, 아람코 최고위원회 위원장도 겸임한다. 사우디 정치·경제·국방의 실권을 장악한 것이다.

빈 살만은 2017년 11월 부패 척결을 명분으로 정적으로 꼽혔던 빈 탈랄 왕자 등 사우디 정치·경제 주요 인사 500여명을 리츠칼튼 호텔 등에 감금하고 부패 혐의를 조사해 석방을 조건으로 총 1천억달러(117조원)의 개인 재산을 몰수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이하 코트라)는 사우디 정치환경 관련 보고서에서 ‘살만 국왕이 존재하지만 국가 주요 정책은 빈 살만 왕세자가 결정한다’고 밝혔다.

빈 살만은 2016년 4월25일 ‘사우디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이는 사우디의 사회·경제·국가경영 목표를 설정한 중장기 국가운영 계획으로, 한마디로 ‘오일에서 벗어나자’는 구호로 요약된다. 석유에 의존하는 국가 운영 방식은 당장은 편리하지만, 석유자원이 고갈하거나 유가가 추락하는 시기를 맞으면 곧장 위기에 직면하는 취약점을 안고 있다. ‘사우디 비전 2030’의 핵심은 석유 의존도를 낮춘 산업정책 로드맵과 이행계획이다. 사우디가 세운 비석유 부문 재정수입 목표는 2016년 531억달러에서 2020년 856억달러다.

사우디 재정수지는 유가에 큰 영향을 받는다. 사우디 재무부 자료를 보면, 2014년 저유가 이후 사우디는 2015년 965억달러, 2015년 830억달러, 2016년 636억달러의 재정적자를 보였다. 영국 에너지컨설팅업체 우드매켄지는 이와 관련해 ‘사우디는 급격한 인구 증가, 높은 청년 인구 비율, 원유에 의존한 성장의 한계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제조업 등 민간부문 주도의 새로운 성장 정책을 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우디 비전 2030’의 핵심 사업은 네옴(NEOM) 신도시와 키디야(Qiddiya) 엔터테인먼트, 홍해 관광 프로젝트다. 빈 살만은 재정수지 악화에도 다른 분야 예산을 줄이더라도 이들 프로젝트는 반드시 추진한다는 태도다. 네옴 신도시는 사우디 북서부 타부크주에 서울시의 44배 크기로 구축하는 스마트시티다. 총 5천억달러(587조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키디야 엔터테인먼트는 미국 디즈니월드 2.5배 면적의 부지에 조성하는 복합 엔터테인먼트 타운이다. 홍해 관광 프로젝트는 사우디 서부 움루즈와 알-와즈흐 사이 홍해에 있는 50개 섬 총 2만8천㎢에 건설하는 관광단지다.

이들 사업 진행에 필요한 자금 조달 방안 중 핵심이 바로 아람코 기업공개다. 아람코 기업공개 외에 부가가치세 등 각종 세금 도입, 투자 유치 차원의 규제 완화 방안이 있다.

윤여봉 코트라 사우디 리야드 무역관장은 “실권을 잡은 지 3년 차인 빈 살만이 사우디 내부 통제력의 자신감이 생겼다. 또 메가 프로젝트의 업적을 보여줘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일부 프로젝트는 아람코 기업공개로 자금이 들어와야 집행 가능하다. 아람코 기업가치 저평가가 무섭다고 기업공개 시점을 더는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회 변혁을 지지하는 인구 다수의 젊은층과 여성의 내적 기반이 정책 추진의 가장 큰 동력”이라고 분석했다.

민간 주도 경제육성이 핵심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산업을 다변화하려는 ‘사우디 비전 2030’은 여성 고용 목표를 기존 22%에서 30%까지 증가시키는 등 여성의 사회적 참여를 활발히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여성 운전 허용 등도 이런 사회적 프로젝트의 연장선에 있다. 그런데 사우디 여성 운전 허용에는 여러 제약 조건이 있다. ‘30살 이상, 차량 소유주의 승인, 도시 안에서 가능, 밤 8시 이후 운전 불가’ 등이다. 주사우디 한국대사관은 ‘사우디 비전 2030’ 관련 보고서에서 “사우디가 비전 2030 개혁 추진을 하며 추상적 목표 설정으로 낙관적 전망을 제시한다. 이는 사우디 정부가 실질적 체질 개선 노력보다는 가시적 성과 창출에 의존하는 환경을 조성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 운전 허용도 근본적 사회제도 변화에 목적을 두기보다 사우디의 개방성을 외국 투자자에게 보여주려는 제스처에 그친다면 ‘실질적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긴 어렵다.

아람코 기업공개도 마찬가지다. ‘사우디 비전 2030’의 핵심은 절대 왕정국가 사우디에서 왕실이 아닌 민간 주도의 경제 육성이다. 빈 살만은 민간부문 경제 비중을 현재 40%에서 65%까지 끌어올리려 한다. 그러려면 사우디 부의 핵심 원천인 왕실 소유의 아람코 주식 공개매각 비중을 대폭 확대해 민간 자본이 유입되도록 해야 했지만, 주식 매각 비중은 애초 계획했던 5%에서도 크게 밑도는 1.5%로 확정됐다. 주사우디 한국대사관은 ‘아람코 기업공개 관련 동향’ 보고서에서 “사우디 정부가 아람코와 관련한 지배적인 지분을 여전히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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