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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왼쪽)과 유럽연합(EU) 스테번 바나케러(가운데) 유럽연합 의장국(벨기에) 외교장관, 카럴 더휘흐트(오른쪽)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2011년 10월6일 브뤼셀 유럽연합이사회 본부에서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에 정식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뒤쪽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반롬푀이 유럽연합 상임의장 등이 지켜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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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FTA 협상 문서 ‘부존재’ 논란
한-미, 한-EU FTA 협상 때
양쪽이 주고받은 협상 자료
법원, ‘공개하라’ 판결에도
정부 “말로 협상해 글 없다”
공무원 논문·정부 용역 보고서엔
협상 경위와 핵심 내용 다 나와
EU는 2015년부터 실시간 공개
“통상정책 민주적 통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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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왼쪽)과 유럽연합(EU) 스테번 바나케러(가운데) 유럽연합 의장국(벨기에) 외교장관, 카럴 더휘흐트(오른쪽)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2011년 10월6일 브뤼셀 유럽연합이사회 본부에서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에 정식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뒤쪽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반롬푀이 유럽연합 상임의장 등이 지켜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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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한-미,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에서 양쪽이 주고받은 협상 문서를 정보공개하라고 잇따라 판결하자, 정부는 “구두로 협상한 탓에 주고받은 협상 자료가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한-미,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은 협정 발효 후 3년까지만 협상 자료를 비공개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협상에 참여했던 전직 외교관의 법정 증언이나 정부의 용역 보고서를 보면 협상 자료가 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정부가 ‘협상 문서 부존재’를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속내를 따져봤다. 편집자 주
“정부는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지식재산권 협상에서 우리 정부가 유럽연합에 제공한 문서 자료를 찾지 못했다.”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만든 협상 문서를 공개해달라는 행정소송에서 피고인 산업자원통상부 장관은 지난 12일 대법원에 낸 ‘상고이유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원고인 남희섭 변리사(법학박사)는 한국과 유럽연합이 2011년 7월 자유무역협정이 잠정 발효됐는데, 당시 양쪽이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8차례 협상을 진행할 때 주고받은 문서를 공개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산업부는 거부했다(2016년 7월4일). 이에 남 변리사는 정보공개거부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공개하라”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협상 문서) 비공개로 인해 보호될 국익이 정보공개로 국민이 누릴 이익보다 크다고 인정될 근거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한국과 유럽연합은 자유무역협정 발효 3년까지만 협상 자료를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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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자원통상부는 대법원에 제출한 상고이유서에서 “협상 자료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희섭 변리사가 관련 부분을 짚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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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구두로 협상해 전자문서 없다”
하지만 산업부는 “협상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여전히 공개를 거부한다. 이들은 “한-이유 에프티에이를 비롯한 외교통상 협상에 있어서는 협상 당사국 사이에 직접적으로 주고받은 문서는 많지 않고, 양측이 협상장에서 직접 만나 구두로 진행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외교통상 분야의 업무 특성상 민감한 사항을 다루는 문서가 많기 때문에 내부보고에서조차 전자문서가 이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협상 과정에서 구술 또는 종이 문서 등 다양한 형태의 의사소통 수단이 사용되기 때문에, 협상 당시 주고받은 모든 형태의 의사소통 내역을 통합해 검색할 수 있는 방법도 없는 상황이다.”(2019년 12월12일, 상고이유서) 에프티에이 협상은 협상장에서 문서 없이 말로 진행했고, 민감한 사항이 많아 대부분 글로 보관하지 않았기에 산업부에 협상 문서가 대부분 없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정부의 주장에 남 변리사는 “사실이라면 에프티에이 기록 보관을 엉망으로 하는 것이고, 거짓이라면 사법부를 기만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만약 협상문을 두고 유럽과 우리 정부가 다툼이 생기면 주고받은 협상 문서를 보면서 잘잘못을 따져야 하는데, 우리 정부가 그 문서 자체를 보관하지 않고 있다면 정말 큰일이다. 협상했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 다 퇴직했는데, 협상 문서조차 없으면 어떻게 이런 분쟁에서 이길 수 있겠나”라고 했다. 그는 “통상 관료가 협상에서 잘못했던 것들이 드러날까봐 ‘부존재’를 이유로 내세워 협상 문서를 국민에게 감추려는 꼼수”라고 의심했다. 실제로 수조원대의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가 잇따라 제기되고, 우리 정부가 패소한 첫 사례가 나오면서 통상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다.
‘협상 문서 부존재’라는 정부의 주장에 법원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지식재산권분과 분과장으로 협상에 참여했던 전직 외교관(현 교수)이 2018년 3월 법정에서 “협상은 구두로 하지만 그 내용은 협상에 참석한 공무원이 기록해 정리한 후 외교 전문으로 남긴다”고 증언했다.
“협상장에서 기록은 어떻게 하나?”(원고 쪽)
“그 자리에서 메모를 하지만 외교 전문으로 다 남긴다.”(증인)
“결재도 받고 (기록을) 남기나?”
“실제로 협상장에서는 그날에 있었던 협상 아니면 그 차수에 지식재산권 협상에서 우리가 뭘 주장했고 유럽연합이 뭘 주장했고 뭐는 해결됐고 뭐는 아직 안 됐다, 이런 것들을 정리해 분과장인 내가 컨펌(확인)을 한 다음에 (외교) 전문으로 본국에 보낸다. 보통의 경우 첨부 파일로 (양쪽이 제출한) 통합협상문과 중요한 문서들을 외교 전문으로 보내는데, 실제 협상장에 가면 정신이 없어서 다 보냈는지 일일이 담당 직원에게 확인하지는 못했다.”
둘째, 2009년 특허청 용역 보고서(‘한-EU FTA 협상에 따른 상표-디자인 분야 제도 정비 방안에 관한 연구’)에 이미 지식재산권 형사집행(처벌 조항) 협상 진행 경과와 주요 쟁점을 자세히 공개했는데, 정부의 협상 문서가 없다면 이 보고서 작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무 협상이 끝났지만 유럽연합의 요구로 추가 협상이 다음과 같이 진행됐다.
― 09. 03. 24. 제8차 협상을 끝으로 실무 협상 완료
― 09. 04. 20. EU가 형사집행 관련 문안을 이메일로 보내옴
― 09. 05. 07. 형사집행 분야는 협정 발효 3년 이내에 재협상을 하자는 수정안을 우리가 제시
― 09. 05. 26. 형사집행은 한-EU FTA 협정문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EU 회원국의 의견을 담은 편지를 의장국에서(체코) 보내옴
― 09. 06. 05. 한-EU 양측 수석대표 간 전화통화에서 형사집행 문안 관련 화상회의를 진행키로 함
― 09. 09. ? “협상 문안에 합의”
(‘한-EU FTA 협상에 따른 상표-디자인 분야 제도 정비 방안에 관한 연구’ 164쪽, 2009년)
셋째, 정부는 ‘우리나라가 유럽연합에 제공한 협상 문서는 ‘부존재’를 주장하면서도, 반대로 유럽연합이 우리나라에 제공한 문서는 ‘공개’ 결정했다. 협상 문서는 양쪽이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한쪽은 존재, 한쪽은 부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상고이유서에서 “외교통상 협상에서는 양측이 자국의 협상 전략 노출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에 협상 전에 주고받는 자료가 거의 없고, 협상장에서 직접 구두로 진행하는 내용이 대부분이고, 그마저도 양측이 협상장에서 구두로 합의에 이르면 기존의 협정문은 폐기하는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한다”며 협상 문서가 없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유럽연합, 실시간으로 협상 문서 공개
정부가 처음부터 ‘협상 문서 부존재’를 주장한 것은 아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발효 3년이 지난 뒤인 2015년 남 변리사가 두 나라가 주고받은 지식재산권 관련 협상 문서를 요구할 때, 정부는 “우리 정부의 협상 전략 등이 공표되면 다른 나라와의 교섭 정보로 활용되고 한-미 간 이해관계 충돌로 국제적인 신뢰 관계 유지라는 국가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협상 문서는 있지만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어서 공개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면서 비공개하는 게 정당하지 않다”며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정부는 법률대리인을 바꾼 뒤 ‘협상 문서 부존재’ 전략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후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에서도 지식재산권 관련 협상 문서를 공개하라고 요구하자, 정부는 ‘협상 문서 부존재’ 주장과 더불어 30년 전 유럽공동체(EC)와 지식재산권 협상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양쪽이 주고받은 협상 문서도 “우리나라의 협상 전략과 우선순위 등이 공개돼 우리 정부의 협상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거부했다.
남 변리사는 정부의 주먹구구식 이중잣대를 비판한다. 우선 30년 전 유럽공동체와의 지식재산권 협상 문서를 산업부는 법정에서도 공개를 거부했지만, 외교부는 30년이 지났다며 기밀을 해제해 외교사료관에서 공개하고 있다. 또 협상에 참여한 외교관이 작성한 논문(‘한-EU FTA 협상의 저작권 논의에 관한 소고’, 2008년) 등에는 협상 경과와 내용이 자세히 서술돼 있다. 남 변리사는 “산업부 주장대로 협상 문서 공개가 국익을 훼손하는 것이라면 외교부나 다른 공무원의 협상 문서 공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한-미,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은 발효 후 3년간 정보를 비공개하기로 합의했는데, 정부는 이 기간이 지났지만 협상 자료는커녕 보유한 협상 자료 목록조차 공개하지 않는다”며 “통상정책에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도록 유럽연합처럼 투명성을 확보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유럽연합은 협상의 투명성을 높여 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해 2015년부터 실시간으로 협상 문서를 공개하는 정책(
Transparency in action)을 실행하고 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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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는 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2011년 5월4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한-EU FTA 비준 반대 범국본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려고 하자 경찰 등이 저지해 충돌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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