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버마-타이 국경에서 열린 버마학생민주전선의 8888항쟁 16주년 기념행사. 버마학생민주전선은 국경의 민주혁명세력 가운데 아직도 미약하나마 유일하게 무장투쟁을 벌여왔다. 정문태
|
[토요판] 특집
랑군의 봄, 마지막 전사의 편지
▶ 국제분쟁 전문기자로 40여개국의 전선을 취재해온 정문태씨는 1989년부터 버마 반정부세력의 무장투쟁 현장을 지켜본 저널리스트다. 1995년과 1996년에는 버마 민주화운동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를 랑군 자택에서 두해에 걸쳐 단독인터뷰해 버마 외교부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찍혔다. 결국 1996년부터 비자 발급을 거부당했으며, 이는 2012년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버마 정부가 여전히 말로만 언론자유를 보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
중국 재원으로 지으려던
‘밋손 댐’ 건설계획까지 중지 중국한테도 포기할 수 없는 숨통
테인 세인 정부, 빗장 풀면서도
두 강대국 사이 깊어가는 고민 버마-타이 국경의 민족해방·민주혁명전선에도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밀어닥치고 있다. 소수민족해방단체나 민주혁명조직 쪽 사람들을 만나면 저마다 한 자락씩 버마 정부와 주고받은 밀담 사연을 털어놓는다. 이미 랑군을 다녀온 이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현재 국경에서는 버마 정부와 각 소수민족해방군들 사이에 벌어지는 평화회담이 변화의 중심 노릇을 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버마 정부는 카렌민족해방군(KNLA), 친민족전선(CNF), 몬민족해방군(MNLA), 카레니군(KA), 아라칸해방군(ALA), 샨주군(SSA)과 각각 휴전협정을 맺었다. 소수민족해방군 주력 가운데 이제 남은 곳은 아직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북부 카친독립군(KIA)뿐이다. 그런 가운데 버마 정부가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던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과 평화회담을 시작한 건 최근 변화의 질과 양을 가늠할 잣대로 삼을 만하다. 비록 전력은 미약하지만 민주혁명세력 가운데 유일하게 무장투쟁을 벌여온 버마학생민주전선을 평화회담 상대로 인정했다는 건 현 정부가 전면적인 내전 종식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렇듯, 랑군뿐 아니라 국경까지 동시다발로 불어대는 변화의 바람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결론부터 말해, 이 바람의 진행방향과 속도를 눈여겨보면 버마 안에서 일어난 자연풍이라기보다 바깥에서 불어온 인공풍일 가능성이 크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의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버마 정부와 건설적인 관계 설정 가능성을 처음으로 입에 올렸다. 그때부터 두 나라는 물밑 접촉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총선을 거쳐 2011년 3월 출범한 테인 세인 대통령이 아웅산 수치와 밀담을 나눴다는 정보가 흘러나왔고, 곧이어 미국 정부는 특사를 파견했다. 그 무렵 아웅산 수치는 “테인 세인과 충분히 협력할 수 있다”며 경제제재 해제 가능성을 거론했다. 9월 말 테인 세인은 외무장관을 워싱턴으로 파견했다. 10월 들어 그는 버마 북부 카친 지역에 중국 재원으로 건설하려던 4조원대 밋손댐 계획을 정지시켰다. 버마-중국 관계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버마 안팎에서 즉각 반응이 왔다. 아웅산 수치의 국민민주연맹은 이듬해 4월로 예상되는 보궐선거 참가 결정을 선언했고 이내 정당 등록을 마쳤다. 오바마는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의 랑군 파견을 밝혔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은 버마의 2014년 의장국을 승인했다. 11월 아시아 방문에 나선 오바마는 중국확장정책 저지를 복선에 깐 태평양의 세기(Pacific Century)란 개념을 내놓았다. 이어 12월 버마를 방문한 클린턴은 테인 세인을 만나 국제통화기금(IMF) 활용 방안과 함께 경제제재 해제 가능성을 밝혔다. 클린턴은 기자회견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방문이 아니다”라고 밝혀 오히려 그 방문의 성격을 더 또렷이 드러냈다. 2012년 들어서자마자 테인 세인 정부는 모든 소수민족해방세력들과 평화회담을 벌여나갔고, 4월1일 보궐선거에 참가한 아웅산 수치와 국민민주연맹은 44석 가운데 43석을 싹쓸이하며 현실 정치판으로 뛰어들었다.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아웅산 수치의 정치판 진입 허용과 소수민족해방세력들과 평화회담을 추진해온 테인 세인 정부에 미국은 선거가 끝나고 3일 만인 4월4일 경제제재 완화를 밝히며 화답했다. 테인 세인 정부가 변화의 속도를 높인 데는 경제제재 해제라는 현실적인 이유뿐 아니라 다가오는 2014년 아세안 의장국으로서 위상과 2015년 총선 대비라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이 새로운 인공풍이 강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역풍은 지난 20년 동안 버마를 뒤덮어 온 중국산 인공풍이다. 중국은 미국과 유럽이 경제제재를 발동하며 빠져나간 버마에 경제는 말할 나위도 없고 군사적 지원에다 외교적 바람막이 노릇까지 했다. 그 20년 동안 버마 군인 독재자들이 기댈 곳은 중국뿐이었다. 중국한테도 버마는 자원창고와 소비시장일 뿐 아니라 지정학적으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숨통에 해당한다. 예컨대, 비상시 남중국해가 차단당할 경우 원유 수송로를 비롯해 중국이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버마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중국봉쇄정책을 지녀온 미국이 최근 서둘러 버마를 지목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이 버마를 확보한다면 지정학적으로 중국포위전략은 완성되는 셈이다. 버마 정부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 경제, 군사, 외교적으로 지나치게 중국에 의존해온 버마 정부가 최근 새로운 바람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국경을 맞댄 거대한 중국을 쉽사리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테인 세인뿐 아니라 심지어 야당 정치인인 아웅산 수치마저 중국과 전통적인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메시지를 기회 있을 때마다 날려온 이유다. 이 새로운 바람을 놓고 지금껏 중국 정부는 “버마가 누구와도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그러나 언론들은 연일 미국의 버마 개입 차단을 외치고 있다. 지난 50년 동안 군인 독재자들에게 갇혀왔던 버마가 문을 열고 있다. 그러나 두 초강대국이 버마 땅에 불어댈 바람이 어디로 튈지를 예측하기엔 아직 너무 이르다. 다만 그 바람이 순풍으로 지나가지 않으리란 사실만은 분명하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anetwork@loxinfo.co.th
“카렌과 카친, 버마군은 늘 한쪽 묶고 한쪽 공격” 카렌민족연합 타카보 부의장
카렌민족연합 데이비드 타카보 부의장.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