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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 태어났으나 남성으로서의 성적 정체성을 깨닫고 남성으로 살려다 사회적 편견에 부닥쳐 살해당한 소녀의 실화를 담은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한 장면.(첫번째 사진), ‘여자’라는 몸보다 ‘남자’라는 영혼의 모습을 따라나선 세 성전환 남성(FTM)의 얘길 다룬 영화 <3×FTM>의 한 장면.(가운데), 성전환 남성(FTM)인 동시에 게이이기도 한 주인공 루카스를 통해 소수자 내 소수자의 얘기를 다룬 영화 <로미오즈>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영화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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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특집/ ‘법적 남자’가 된 남자들 이야기
교통 단속만 걸려도 철렁~
늘 조마조마했어요
몰래 내 지갑을 열어보는 사람
화장실에서 수군대는 사람
당장 취직부터 힘들었으니까요
왜 그렇게 됐나? 하는 질문은
가장 난감한 순간이고요
“당신은 진짜 남자입니다”
마침내 법원 판결이 떨어졌다
20여년년만에 혼인신고 하게 됐어요
각종 서류들을 변경하고
본인 확인에도 응할 수 있어요
내가 주민등록증을 내밀 때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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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지난 15일 성전환자가 성기 성형수술을 받지 않았더라도 기존 성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면 법적으로 성별을 바꿀 수 있다고 판결한 뒤, 성소수자단체들의 반응이다. 생식기 이상이 아닌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을 법원이 처음으로 허가한 지 23년 만에 법원은 ‘성기’에 대한 집착마저 내려놨다. 이번 ‘혁명’을 통해 비로소 ‘진짜 남성’으로 살 수 있게 된 5명 중 2명을 지난 19일 한겨레신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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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제 진짜 남자가 됐습니다!’
법원 앞에서 환호했던 날로부터 나흘이 흘렀다. ㄱ(49)씨와 ㄴ(32)씨는 자꾸 달력만 보게 된다. 두 사람은 지난 15일 법원에서 판결문을 받자마자 곧장 구청으로 달려가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해달라고 요청했다. 통상 일주일이 걸린단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가족관계등록부가 정정되면 이젠 동네 주민센터로 달려가 주민등록표를 고쳐야 한단다. 그 뒤 구청 통보 절차를 거치면 드디어 뒷자리 시작번호가 ‘2’에서 ‘1’로 바뀐 주민등록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고작 이 숫자 하나 바꾸려고 기다린 세월이 얼마인가.
시간 지나면 가슴이 사라질 줄 알았어
ㄱ씨는 아내만을 생각하며 날짜를 헤아린다. 아내는 산에 갔다 만나 첫눈에 반한 사람이었다. “나는 성전환한 남자예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아 첫 만남부터 솔직히 털어놨다. 아내는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부부의 연을 맺은 지 20여년. 그 긴 세월 동안 아내는 한번도 “어쩌다 그렇게 됐느냐”고 묻지 않았다. 아내에게 ㄱ씨는 그저 남편일 뿐이었다. “혼인신고도 못 한 채 시집살이를 하며 살아온 아내가 불쌍해서” 그저 혼인신고라도 하자고 시작한 소송이었다. “그래야 내가 먼저 죽어도 조카들이라도 숙모 대접을 제대로 할 거 아니에요.” 사실 ㄱ씨 아내의 가족들은 그가 성전환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꼭 이런 식으로 (속인 채) 결혼식을 올려야 하나. 혹시 누가 알아보는 사람이라도 있을까봐 두려워 결혼식장에선 도망가고 싶기도 했죠. 아내가 밀어붙이지 않았더라면 식을 올리지도 못했을 거예요.” 그는 20여년 동안 처갓집 식구들을 만날 때마다 늘 조마조마했다고 한다. “처가댁 식구들과 놀러 가도 한 차로 움직인 적이 없어요. 혹시 교통 단속에라도 걸려 운전면허증이라도 제시하게 되는 일이 생길까 봐….” ㄱ씨는 자신이 굳이 성전환자임을 밝힐 생각은 없지만, 이제 아내의 친정 식구들과도 좀더 맘 편하게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미혼인 ㄴ씨는 뒷자리가 1로 시작하는 주민등록증을 내놓을 순간을 상상하며 신이 났다. “이제 법적으로도 남자가 됐으니 회사의 각종 서류들도 변경해야죠. 회사엔 제가 그냥 남자인 줄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인사과는 제 과거를 알고 있잖아요. 인사과에 가서 주민등록증을 내놓을 때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요.” 공공기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ㄴ씨는 계약이 끝나면 다른 직장을 찾아볼 계획이다. “그냥 처음부터 제가 여자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출발하고 싶어서요. 성별을 정정해 새 직장을 찾는 데까지 최고 5년 시간을 잡았는데 이번 판결로 그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됐네요.” ㄴ씨가 웃었다.
긴 시간이었다. 두 사람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조차 ‘왜 그렇게 됐느냐’고 묻곤 했다. “나는 그냥 남자일 뿐인데….”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두 사람은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감하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쭉 그냥 그렇게 살았거든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남자 옷을 입어야 편했어요. 사춘기가 돼 처음 가슴이 나올 때도 ‘난 남자니까 이건 없어질 거야’라고 생각했죠. 자기 주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더 커지기만 하더라고요.” ㄱ씨가 쓰게 웃었다.
머리는 내가 남자라고 하는데 몸은 자꾸 여자로 자라나는 부조화는 점점 참기 힘든 지경이 됐다. “바퀴벌레를 가득 넣은 두 개의 비닐봉지를 가슴에 메고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가슴을 도려내고 싶은 심정으로 살았어요.” ㄴ씨는 그 시절 “거울을 보는 것도 싫었다”고 했다. 압박붕대로 가슴을 조여 매고 제 사이즈보다 훨씬 큰 옷만 입었다. 어찌나 꽁꽁 동여맸는지 숨을 쉴 때마다 폐에서 웅~웅~ 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자세는 구부정해졌다. 그는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가서 압박붕대를 풀고 처음으로 압박 티셔츠를 입었던 날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바람을 가르는 자전거를 타도 가슴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그 해방감, 그 감각은 아직도 생생해요.”
매달 찾아오는 생리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공포였다.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빨리 생리를 끝낼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샤워를 할 때 질 속에 손을 넣어 일부러 파내기도 했어요.” ㄴ씨는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참아내기 위해 ‘자해’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부모님께 들키지 않기 위해, 주로 옷이나 시계로 가려지는 어깨와 손목을 칼로 그었다. 더이상 그을 곳이 없어졌을 땐 손가락 안쪽과 손바닥을 그었다. 우울증 약도, 상담도 효과가 없었다.
ㄴ씨의 마음에 처음으로 안정이 찾아온 건 고교 3학년 때다. “외국 인터넷 사이트에서 수술이 가능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됐거든요. 살 수 있다는 안도감에 가슴이 뛰었어요.” 여자친구와 사귀게 된 것도 마음을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나를 남자로 받아들여준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됐어요. 내 상처를 보며 울어주던 여자친구 덕분에 자해를 그만둘 수도 있었고요.”
성전환자로 산다는 건 불법체류자로 사는 것
두 사람은 남들과 다른 자신들을 바꾸려기보단 받아들여준 가족이 있는 게 “정말 복 받은 일”이라고 여긴다. ㄱ씨의 어머니는 그가 가슴 절제 수술을 받고 돌아왔을 때도 그저 “아프지 않냐”고만 물었단다.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도 어머니는 말리지 않았다. “왜 (성전환하겠다는) 나를 말리지 않았냐고 원망하지 마라.” 꼭 한번, 작은아버지가 이렇게 얘기한 게 반대라면 반대였을까. ㄴ씨의 가족들은 “나는 남자다”라는 ㄴ씨의 고백에 당황했지만, 이내 그를 아들로 받아들였다. “가족들이 억지로 치마를 입히고, 때려가면서 여자로 살게 한 친구들일수록 우울도가 심하고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운 경우들이 많아요.” 두 사람이 입을 모아 말했다.
세상은 가족 품안처럼 따뜻하진 않았다. 적대적인 시선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외형과 다른 ‘신분증’은 언제나 생존을 위협하는 걸림돌. “성전환자로 산다는 건 불법 체류자(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그들이 말했다. “불편한 정도가 아니에요. 먹고살려면 취직을 해야 하는데 당장 면접에서부터 막히거든요. 면접은 늘 ‘왜 군대엔 안 갔느냐’는 질문부터 시작되죠.
주민번호가 잘못된 거라고 하면 사기를 치는 게 되는데,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제 입으로 ‘여자였다’고 말하긴 싫은 거죠. 그렇다고 그냥 어물거리다 보면 뭔가 숨기는 사람처럼 비치고… 당연히 좋은 인상을 주기 힘들죠.” ㄴ씨가 얘기했다. 그는 지금의 직장에 취직하게 된 것도 “성전환자에게 부정적이지 않은 면접관이 있었던 덕분에, 운이 좋았던 것”이라고 여긴다.
은행업무 등 주민번호를 통해 본인임을 확인하는 절차가 수반되는 일들은 언제나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은행에서 전화가 오면 ‘ㄱ씨 본인 바꿔주세요’란 말을 어김없이 듣게 돼요. 본인이 맞다고 해도 믿질 않을 때가 많죠. 주민등록 도용 범죄가 하도 많다 보니 의심받기 일쑤지요. 본인 확인이 필요하다며, 은행에 오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처음 몇 번이야 웃어넘기지만 이게 몇 년씩 반복되면 은행 번호만 떠도 전화기를 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있어요. 요즘엔 제 처지를 잘 아는 주위 여자친구에게 대신 통화를 해달라고 하기도 하죠.”
쉬쉬하고들 있지만, ㄴ씨가 다니는 회사 동료들은 그가 성전환자라는 걸 대부분 아는 눈치다. “한번은 제가 지갑을 책상에 놓고 자리를 비운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저 몰래 제 지갑을 열어봤대요. (제가 성전환자라는)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던 거겠죠.” ㄴ씨는 회사에서 사무실이 있는 층의 화장실을 쓰지 않는다. “제가 같은 화장실을 쓰는 게 불편하다는 얘기가 돌아돌아 제 귀에까지 들어오더라고요.”
이런 일들이 벌어질 때는 ‘분노’보다는 ‘공포’ ‘불안’이 먼저 엄습한다. “나를 어떻게 대할까, 혹시 해코지나 하지 않을까 겁부터 나는 거죠. 성전환자라는 게 밝혀진 뒤 ‘확인해보자’며 옷 벗김을 당한 사람들도 있고, 더럽다고 폭행당한 사람들도 있고 그러니까요.” ㄴ씨가 말했다. 그러다 보니 먼저 피해가는 데 익숙해져 있다. ㄱ씨가 일찌감치 일반적인 취업 생각을 접은 것도 그런 이유다. “서류 한번 보고, 위아래로 저를 훑어보는 시선이 싫어서 서류를 요구하는 회사엔 아예 취직 자리를 알아보지도 않았어요.” ㄱ씨는 지금 자영업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친구들과는 관계를 끊고 ‘남자 ㄱ씨’로만 아는 사람들만 만나고 있다.
돈 버리고 몸 버리며 그것까지는…
신분증 때문에 이렇게 불편하다면 법이 요구하는 대로 성기 성형수술을 하고 하루라도 빨리 성별 변경을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두 사람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성전환 수술은 정신과 치료, 호르몬 투여, 가슴·자궁 등 생식기 제거 그리고 성기 성형 순으로 진행돼요. 그런데 호르몬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신분증과 외향이 확연이 달라져 취직이 잘 안 되죠. 몇 년 동안 뼈빠지게 돈을 모아 가슴·자궁 등 제거에 필요한 돈 500만~1000만원을 모아 수술을 받아요. 그러고 나서 또 몇 년, 성기 성형에 필요한 돈 3000여만원을 벌어야 해요. 그러다 세월 다 가요.” ㄴ씨가 말했다. ㄱ씨는 꼭 경제적 이유만은 아니라고 얘기했다. “호르몬 투여만 해도 벌써 간에 무리가 와요. 수술이 안전하게 잘 끝난다면 또 모를까. 요도 협착이나 염증, 피부 괴사 등 부작용이 많아서 2~3번씩 재수술을 받고도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해요. 돈 버리고 몸 버리는 거 알면서도 성기 성형하는 이유는 법이 그걸 요구하니까, 그런 것뿐이에요.” ㄱ씨는 “발기도 안 되고 생식기능도 없는데 부작용까지 감수해가면서 남성 성기를 굳이 달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반면 ㄴ씨는 “돈을 더 모아 가장 양질의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고 싶다”고 했다. 두 사람에게 신분증은 생존을 위한 ‘필수’였지만, 성기는 ‘선택사항’일 뿐이었다.
법원의 판결로 성기 성형수술 없이도 성별 변경을 할 수 있게 된 두 사람. 하지만 마냥 얼굴이 밝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을 보니 ‘그럼 고추 달린 여자도 여자냐’란 댓글들이 많더라고요. 이번 판결 때문에 자칫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돼요. 우리에겐 성별 변경 문제가 단순히 성기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ㄴ씨가 말했다. 그는 이번 판결이 그저 1심 판결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다른 법원에선 다른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는 얘기죠. 성기 성형을 하지 않고도 성별을 변경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이 하루빨리 만들어져야 해요.”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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