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21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 남대문경찰서에서 서범규 남대문경찰서장이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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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경찰, 또 하나의 국정원 범죄 덮기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덮쳐노트북 훔치다 발각된 국정원
CCTV 영상과 지문 확보하고도
남대문서 “피의자 찾을 수 없다” 내사종결? 미제편철?
전·현직 수사담당자 말 엇갈리고…
사건 발생 1년 5개월 동안
피의자 특정 못한 채
경찰은 수사에서 손 떼고 말아 고등훈련기 T-50 수입을 논의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인도네시아 특사단의 보좌관 아크마트 드로지오는 2011년 2월16일 오전 9시21분께 머물던 롯데호텔 신관 1961호에서 나왔다. 전날 입국한 아크마트 보좌관은 이날 오전 10시 청와대에서 열리는 특사단 환영행사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길을 나서던 아크마트 보좌관은 갑자기 빠뜨리고 온 물건이 생각나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떠난 지 불과 6분 만인 9시27분께였다. 방에는 검은색 정장 차림의 낯선 남자 2명과 여자 1명이 짐을 뒤지고 있었다. 순간 자신의 방이 아닌지 의심했지만, 짐을 보니 자신의 것이었다. 정체불명의 괴한들을 마주한 아크마트 보좌관은 몸이 얼어붙었다. 괴한들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서 객실 밖 복도로 유유히 빠져나갔다. 충돌은 없었다. 아크마트 보좌관은 곧 정신을 차렸고, 복도로 황급히 나와 호텔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노트북 절도 사실을 알렸다. 이 직원은 곧 19층 비상계단으로 가서 숨어 있던 괴한들을 찾아냈다. 괴한들은 바로 노트북을 돌려주고 사라졌다. 국가정보원의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무단침입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2011년 2월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심지어 외신조차도 이 사건을 중요하게 보도했고, 일본 보수언론인 <산케이신문>은 “멍청한 한국 국정원 직원이 외국 특사의 컴퓨터를 훔치려 했다”며 원색적인 표현까지 사용했다. 국정원은 이 사건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했지만, 국정원 직원이 사건 신고 4시간 뒤인 2월17일 오전 3시40분께 남대문경찰서를 방문해 사건에 대한 보안을 요청한 것이 확인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사건은 신고 당시부터 석연찮은 부분이 많았다. 신고된 시각은 사건이 발생한 지 13시간여 뒤인 16일 밤 11시15분이었다. 신고한 사람은 특사단의 의전을 맡았던 인도네시아 주재 우리 군 국방무관(대령)이었다. 국가간 협상에 참여하는 특사단의 숙소가 무단침입을 당하고, 각종 협상전략 등의 정보가 담긴 노트북컴퓨터가 절도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늦은 신고였다. 일각에서는 ‘사건을 불문에 부치자’는 국정원의 제안을 인도네시아 특사단이 거절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특사단의 태도가 돌변했다. 신고 당시 “침입자들이 이동식 저장장치(USB)를 통해 자료를 유출했는지 조사해 달라”며 노트북을 경찰에 건넨 특사단은 다음날인 17일 오후 3시께 “(노트북 내의) 어떠한 정보에 대한 접근도 원하지 않는다. 노트북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특사단은 “향후 문제 삼지 않겠다”는 확약서를 작성하고 노트북을 돌려받았다. 특사단을 이끌고 귀국한 하타 라자사 경제조정장관은 2월21일 인도네시아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침입자들은 방을 잘못 알고 들어온 호텔 손님이었고, 오해가 풀렸다”고 밝혔다.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이 발생하고 석달 뒤, 인도네시아 국방부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T-50 훈련기 16대 판매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액은 총 4억달러다. 이 계약은 지금까지도 T-50 훈련기의 유일한 수출 실적이다. 국정원 직원이 외국 특사단 숙소에 무단침입해 절도하다가 발각됐다는 웃지 못할 촌극이 국내외로 화제가 됐지만, 경찰의 수사는 겉돌기만 했다. 경찰이 이 사건에서 수집한 중요한 증거는 노트북에서 채집한 지문과 호텔 복도를 촬영한 폐회로텔레비전(CCTV)의 녹화 영상이었다. 경찰은 “녹화 영상이 너무 어둡기 때문에 피의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영상 화질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언론은 경찰에 영상 원본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당시 수사 관계자는 “우리가 시시티브이를 공개하면 국정원도 롯데호텔도 다 죽는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도 폐회로텔레비전 영상은 공개되지 않았다. 피해자의 노트북에서 채취한 지문도 수사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경찰청 지문감식센터는 아크마트 보좌관의 노트북에서 8점의 지문을 채취했다. 이 중에서 특사단원의 지문과 감정 불능인 지문 각 2점씩을 제외한 4점의 지문을 분석했다. 하지만 경찰은 “지문으로 신원이 검색되지 않는다”고 최종 발표했다. 경찰이 “피의자를 찾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시간이 흘렀고, 사건은 점점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수사 진행 상황을 다룬 언론 기사는 사건 1주년째인 지난해 2월이 마지막이었다. 경찰은 그때까지도 “아직 수사중”이란 말만 되풀이했다. 2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현재, 사건이 어떻게 처리됐을까? 당시 남대문경찰서 형사과장이었던 신성철 서울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장에게 문의했다.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 어떻게 처리가 됐나요?” “거기에 대해선 할 수 있는 얘기가 없습니다.” “검찰에 송치가 됐나요?” “답변할 수 없습니다.” “왜 답변할 수 없죠?” “아는 게 없으니까 남대문경찰서에 물어보세요.” 올 2월에 부임한 남대문경찰서 형사과장은 교육연수로 자리를 한달간 비웠다. 형사과장 직무를 대리하는 한우식 강력계장 역시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 어떻게 처리됐나요?” “2년 전에 여기 없었습니다.” “수사가 어떻게 처리됐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나요?” “그 사건 알다시피 민감한 부분이 있습니다.” “뭐가 민감하다는 거죠?” “그 사건은 미제로 종결됐습니다.” “왜요? 피의자를 못 찾아서요?” “예.” “국정원에 피의자를 찾아 달라고 요청했었나요?” “요청은 했습니다.” “대답이 왔어요?” “모르겠습니다.” 한 계장은 국정원에 답변을 요청했지만, 어떤 답변이 왔는지는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사건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물었다. “미제로 종결됐다는 것이 사건번호를 부여하고 미제편철을 한 건가요, 아니면 내사종결을 한 건가요?” “내사 종결했습니다.” “사건번호도 부여하지 않았다고요?” “예.” “언제 내사를 종결했나요?” “제가 그때 있지도 않았고, 전임 과장 있을 때 종결했습니다.” 피의자의 범죄 혐의가 인정돼 사건이 성립되면 사건번호가 부여된다. 하지만 경찰이 내사 단계에서 수사를 중단하면 사건은 사건번호도 없이 종결된다. 경찰 담당자는 2년 전 전국적인 관심사였던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이 사건번호도 부여되지 않은 채 종결됐다고 밝힌 셈이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전임 과장인 신성철 서울청 마약수사대장에게 다시 문의했다. “그 사건 내사종결했나요?” “입건해서 사건번호 부여하고 미제편철로 종결했어요.” “미제로 종결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피의자를 찾을 수 없어서요.” “국정원에 피의자를 찾아 달라고 요청은 했나요?” “답변할 수 없습니다.” “왜 답변할 수 없죠?” “미제편철 이상으로 얘기할 수 없습니다.” 두 관계자의 말이 엇갈렸다. 결국 남대문경찰서장과 강력계장에게 한 차례씩 더 문의를 한 뒤에야 이 사건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알 수 있었다. 남대문서장은 담당자에게 문의하면 정확하게 알려줄 것이라고 답변했고, 담당자는 그제야 사건의 처리 결과를 밝혔다. “전임은 내사종결이 아니라고 하던데요?” “미제편철이나 내사종결이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사건번호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인데요.” “아까는 사건 내용을 잘 알지 못한 채 대답했어요. 정확히 알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언제 미제편철이 이뤄졌고, 현재 수사를 진행중인지 궁금합니다.” “2012년 7월4일 미제편철이 이뤄졌고, 그 이후 수사는 종결된 상태입니다.” 경찰은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을 1년 5개월 만에 ‘피의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미제로 처리했다. ‘국정원 여직원’ 사건을 덮으려고 “국정원 직원이 정치적인 글을 게시한 적이 없다”고 발표했다가 거짓말이 들통난 경찰이 불과 9개월 전에도 국정원 직원의 범죄행위를 덮으려 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국정원이 범죄행위를 하고도 처벌을 피한 것은 예정된 일이었을 수도 있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2011년 2월21일 기자간담회에서 “피의자가 국정원 직원으로 밝혀지면 처벌하기에 실익이 없지 않으냐. 국익을 위해서 한 일인데”라고 말했다. 법치를 지키는 경찰 수장이 법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말을 한 셈이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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