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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01 20:16 수정 : 2013.11.03 16:30

‘5월 모임’에 참석한 네 명의 진보당원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검찰이 지하혁명조직이라고 지목한 ‘아르오’(RO)의 실체에 대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전면 부인했다. 지난 27일 한겨레신문사 9층 옥상에 모인 5월 모임 참석자 최영희, 김미라, 백현종, 정용준씨(왼쪽부터).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토요판/특집] 신매카시즘의 시대
① 통합진보당 ‘5월 모임’ 참가자들은 말한다

▶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에 대한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 재판이 오는 12일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 의원의 국회의원직 박탈 여부는 물론 진보당 해산 여부까지 걸린 중요한 재판입니다. 내란음모라는 엄청난 혐의에 가려 언론이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려 합니다. <한겨레> 토요판은 5월 모임 참석자에 대한 첫 언론 인터뷰를 시작으로 ‘신매카시즘 시대’ 3주 연속기획을 내보냅니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은 지난 8월28일 언론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130여명의 통합진보당(진보당) 당원이 지난 5월12일 서울 마포구 한 종교시설에 모여 국가기간시설 타격 등 동시다발적 폭동을 일으키기로 모의(내란선동 및 내란음모)했다는 것이 국가정보원(국정원)과 검찰의 수사 결과였다. 이 의원과 홍순석 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 등 7명이 이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됐다. 현직 국회의원이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에 대한 재판은 수원지방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검찰이 이 의원 등의 내란음모 혐의를 입증할 증거물로 법원에 제출한 것은 ‘5월 모임’ 내용 등이 담긴 47개의 녹음파일(70시간20분 분량)과 녹취록이다. 이에 대해 이 의원 등의 공동변호인단은 10월31일 3차 공판준비기일에서 녹취록의 주요 부분이 국정원과 검찰 등에 의해 짜깁기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녹취록에 나타난 사건 관련자의 발언에 대한 진위가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검찰이 제출한 녹취록 발언을 사실로 전제한다 해도 논란이 말끔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당내 행사에서 자기들끼리 자유롭게 떠들며 나눈 이야기를 사법처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과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가 하는 물음이다. 5월 모임에 참석한 4명의 진보당원은 지난 27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130여명이 모여 130여개의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는 과정에서 뜬구름 잡는 소리,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할 수 있다. 그런 발언을 거르고 합리적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바로 토론”이라고 말했다. 인터뷰에 나선 이들은 백현종(43·목사) 부천시협의회 의장, 최영희(37·택시운전) 고양일산시위원장, 김미라(41) 성남 분당구위원장, 정용준(44) 안산 상록갑 사무국장 등이다. 5월 모임 참석자의 첫 언론 인터뷰였다.

“그날 모임은 정세와 향후 사업 토론하는 자리”

-모임은 왜 밤늦게 열렸나?

백현종(이하 백)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걸로는 기억하지 않는다. 경기도당 관계자나 열성적 당원 등의 일정을 고려했을 때 아무래도 밤늦은 시간이 좀더 많은 사람이 참석할 수 있는 때라고 경기도당에서 판단하지 않았을까 싶다.

-분위기는 어땠나?

정용준(이하 정) 당원들이 모이는 강연회나 이전 당 행사와 다른 특별한 분위기는 없었다. 일단 경기도가 동서남북으로 퍼져 있으니까 강연 전에 서로 인사하고 안부 묻는 시간이 좀 있었고, 아이를 업고 온 여성과 인사도 했다. 아무래도 정세를 다루다 보니 진지한 분위기였다. 그래도 중간중간 웃기도 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강연이 이뤄졌다.

-앞서 한 말 중 궁금한 게, 경기도당 주최 행사였나?

그렇다. 도당과 지역위원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그날이었던 것 같다.

정·김미라(이하 김) 도당에서 정세 강연을 한다고 해서….

-참석자는 어떤 이들이었나?

당 활동에 적극적인 이들이었다. 지역위원장도, 사무국장도 있었고, 평당원도 있었다.

-국가정보원과 검찰은 ‘5월8일 전 조직원 소집령’에 따라 모인 것이라 하는데?

전 조직원이라면 제주도 사람, 전라도 사람도 있어야 할 텐데 전 조직원이 경기도에만 사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경기도당원들만 보면 ‘다른 당원이 참 고생이 많다’ ‘나는 명단에 안 들어서 다행이다’ 이런 이들도 있다.

-국정원과 검찰은 이날 모임이 ‘북한의 전쟁 상황 조성 시 이에 호응하는 사회주의 혁명 수행 방법을 강구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주장한다.

당혹스럽다. 우리가 모인 이유와 전혀 다른….

-그러면 이날 모임의 목적이 뭐였나?

목표는 하나였다. 구성원들이 정세에 관한 인식을 일치시키고, 일치된 인식에 기초해 향후 반전·평화 실천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거였다. 이를테면 5월12일 당시는 전쟁 위기감이 최고조를 찍고 약간 소강상태로 내려온 시기였다. 당시 전 지역위원회가 전철역 등에 나가 반전·평화 서명을 받고 거의 매일 1인시위 등을 하다가 5월 뒤에는 진보정당이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6·15 남북공동선언 등 주요 행사를 앞두고 있었다. 현재까지 진행한 실천을 어떻게 평가하고 6월부터 전개될 중요한 시기를 어떤 관점, 자세로 맞을 것인가, 정세에 대해 이야기 듣고 또 토론하고 일치된 관점을 갖고 향후 사업을 준비하자, 이런 것이었다.

사회주의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은 것 같다.

“아르오의 실체는 국정원이 밝혀야”

이번 내란음모 혐의 사건에서 국정원과 검찰, 통합진보당 쪽이 가장 첨예하게 엇갈리는 부분이 내란음모의 주체로 떠오른 이른바 ‘아르오’(RO)의 존재 여부와 실체에 관한 문제다. 아르오와 관련해 ‘그날 모임의 참석자들은 아르오 조직원들로, 아르오는 이석기 의원이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으로 처벌받은 직후 새로 구상한 지하혁명조직이며, 민혁당과 유사하고, 강령은 북한의 대남혁명노선에 동조하며 북한의 대남투쟁 3대 과제를 활동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는 게 국정원과 검찰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르오에 대해 “개인적으로 처음 듣는다”(백) “이번에 처음”(정) “처음 들었다”(김)며 아르오의 존재부터 부인했다.

-아르오를 조작이라고 보는가?

조작이라고 생각한다. 검찰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 기자들이 ‘아르오의 실체가 뭐냐’고 물었을 때 결성 시기 등이 명확히 나오지 않았지 않나. 아르오 관련자라며 반국가단체 결성 등 혐의로 기소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도 답변하지 못한 걸로 알고 있다. 아르오의 실체는 국정원이 밝혀야 한다고 본다.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를 보니 그림도 그려놨던데, 그림을 보면서 굉장히 많이 웃었다. 거기 나온 이름은 (5월 모임에서) 사회를 보거나 질문을 한 사람이 전부였다. 4개 권역이라고 하지만, 거기에 인위적으로 갖다 붙여 넣었더라. 이런 어처구니없는 그림을 그려놓고…. 녹취록 보면 나오지 않나. 발표자, 질문자. 그게 전부다.

-검찰이 아르오 조직도에서 지역조직책을 구분해놨던데?

최영희(이하 최) 당일 모임에서 한번이라도 말을 한 사람을 묶어 그렇게 그려놓은 거다. 굉장히 황당하다.

-그런데 비밀지하조직이라면 원래 일부에만 알려지는 거 아닌가?

검찰도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 아르오의 작동 원리에 대해 (일대일의 종적 연계만 유지하는 ‘단선연계’에 반해 1개 지역과 부문에 단선연계 조직을 2개 이상 배치해 불의의 사고가 발생해도 조직 활동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복선포치’라는 용어를 썼다. 그런데 130명이 모였다면 그것만으로도 상식적으로 (단선연계 등이) 말이 안 되는데, 조직도상 지역책이라는 사람들이 남들 다 보는데 앞에 나와서 발표했다는 건데,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지 않나. 백번 양보해서 ‘결정적 시기이니까 그런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그래서 앞에 나가서 발표한 것’이라고 하자. 그래도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공개된 장소에서 그렇게 모였다면 그 이후 뭘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난 그 뒤에 거리로 나가서 1인시위 한 것밖엔 없다.

-조직도에 아는 사람이 있나?

내가 안산위원회에 있는데, ○○○ 위원장은 들어가 있다. 국정원 조사는 받은 모양이더라. 지역위원장이 왜 들어갔느냐면 그날 질문을 했기 때문에 (세포원으로) 들어간 거다. 이석기 의원에게 질문을 했다.

그런 거다. 강연 끝난 뒤 6명이 토론한다면 토론을 진행하는 사람과 발표하는 사람이 있다. 오늘은 누가 합시다, 그래서 그가 발표했다면 그게 그림(조직도)으로 그려져 나온 거다.

“당시 모임은 자유토론이 가능했다”

5월 모임의 성격과 이곳에서 나온 내용도 국정원과 검찰, 진보당 참석자 사이에서 크게 엇갈린다. 다만 이날 회합이 이석기 의원의 정세 강연과 권역별 토론, 토론 결과의 발표, 이석기 의원의 마무리 발언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국정원과 검찰이 내란음모 혐의의 증거로 제시한 것은 5월 모임 녹취록과 녹취파일, 국정원이 밝힌 이른바 ‘내부협력자’의 진술이었다. “무장과 전기통신 분야 공격(김근래), 무기 탈취·제작 등을 통한 국가 기간시설 파괴(이상호), 첨단 해킹 기술로 주요 시설 마비(홍순석), 주한미군 정보 수집과 후방 교란 및 무장 파괴 등 군사전을 수행할 팀 구성(이영춘) 등”이라는 것이다.

-그날 밤 토의는 어떤 식으로 이뤄졌나?

그날 분위기를 알지 못하면 활자화된 말들만 갖고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홍순석 경기도당 부위원장이 발표했던 중서부 권역 토론회에 나도 중서부 권역이라 참석했다. 한 동지가 ‘총을 준비하자’고 했던 게 아니다. ‘그럼, 우리 총이라도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 거다. ‘에이, 총은 어려우니까 그러면 해킹 기술이라도 연마해야 하나’ 그런 식이었다. 그래서 홍 부위원장도 ‘그런 뜬구름 잡는 이야기 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뭐냐, 이걸 갖고 이야기하자’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나온 이야기가, 우리가 이런 전쟁 위기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보다 많은 대중과 만나서 우리가 느끼는 전쟁의 위기감을 확대해 모두가 함께 반전·평화를 외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주된 이야기였다. 전쟁 위기 상황 속에서 예비검속 등 위기를 느끼는 사람도 있었는데 ‘우리가 우리를 지킨다는 건 뭐냐, 그건 우리와 함께할 수 있는 더 많은 사람을 우리에게 묶어 세우는 것이다, 그 이상 우리를 지킬 수 있는 게 뭐겠느냐’ 이런 이야기였다.

-총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웃겼다. 다들 웃었다.

-돌아가며 이야기를 한 건가?

분임토론은 말 그대로 자유토론이다.

-정세 이야기가 나오고 전기통신 분야를 공격하는 걸 포함해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여러 의견이 나온다. 우리가 기계도 아닌데 생각하는 게 다르고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온다.

진보라는 의미로 모여 있지만 생각이 다양하다.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그래서 분임토론을 하는 거다. 거기서 보다 합리적이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게 뭔지 토론한다. 다만 토론 과정에서는 자유롭게 자기 견해를 밝힐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거다.

-후방 교란과 무장 파괴 대응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녹취록에 나오던데?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다만 전쟁 나면 휴대폰도 안되고 다 안될 텐데 그러면 피난 가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냐, 그럼 혹시 모르니 서울시청 앞에 촛불 들고 모여야 하는 거 아니냐, 죽든 살든 한곳에 모여야 하는 거 아니냐, 이런 이야기는 있었다.

내란음모 혐의의 주된 발언은 경기남부 지역책으로 지목된 이상호씨의 무기 탈취 등을 통한 국가 기간시설 파괴 관련 내용이다. 국정원과 검찰은 공소장에서 ‘시설을 파괴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고, 철도는 통제하는 곳을 파괴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구체적으로 통신 분야는 혜화동, 분당’이라고 적시했다. 하지만 국정원이 밝힌 이러한 구체적인 진술은 이씨의 분반에서 이뤄진 토론과 이후 권역별 발표 내용들이 뒤섞인 것이다. 실제로 이씨와 같은 분임조에 있지 않았던 이들은 이상호씨의 이런 발언에 대해 “못 들었다”(김) “국가 기간시설 파괴, 이런 이야기는 못 들었다”(정) “기억이 나지 않는다”(백)고 말했다.

-녹취록에는 나와 있는데 당시 이런 말을 못 들었나?

뒤쪽에 앉아 있었는데 분반토론 발표는 행사 마지막 순서였고 발표는 대개 3~5분 안팎으로 짧은 시간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거 끝나면 집에 가니까 뒷자리는 어수선하기도 했고 잘 안 들리는 부분도 있었다.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조는 토론해 보니까 전쟁 위기 시에 이렇게 하자고 하더라, 그러면 뒤에서는 깔깔대고 웃기도 했다. 이런 위기에 우리 북부 지역은 반전·평화운동을 더 잘해야겠다 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러면서 웃고 정리했다.

-이정희 진보당 대표가 여러 차례 말을 바꾸다가 ‘농담’이라고 했다. 농담이라도 실제 그런 발언이 있었다는 얘기 아닌가?

그 부분에 대해 언론에 불만이 많다. 9월4일 이정희 대표가 5장짜리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해당 녹취록에 대해 상세히 해명하고 있다. 마지막에는 공당으로서의 책임까지. 그런데 최종적으로 농담, 이렇게 언론이 요약해버리는 건 너무나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농담이라고 예로 든 건 ‘부산 가면 총을 구할 수 있는 거 아니야’ 한 거다. 그걸 진담인 것처럼 발표한 것을 두고 이정희 대표가 농담이었다고 해명한 거다. 기억이 난다. 부산 가면 총을 구할 수 있다? 다들 웃었다.

-녹취록에 구체적인 타격 대상으로 혜화동, 분당, 이런 이야기들이 일단 나왔지 않나?

이상호씨의 분반에 있지 않아서 실제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분반토론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었다는 거지, 결정 사항이 아니었다. 그날 모임 말미에도 아무런 결정이 없었다.

-유류시설과 철도시설 파괴 같은, 녹취록에 담긴 이상호씨 발언에 대한 느낌과 판단을 묻는 거다.

자유토론 과정에서는 인정하기 어렵거나 ‘저런 이야기를 해도 돼?’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이야기도 오갈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그걸 국민 앞에 합리적으로 내놓을 수 있느냐, 실천할 수 있느냐, 그건 다른 문제다. 걸러지고 모아지고, 이런 게 토론이라고 생각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거다. 다만 이걸 모아서 현실화하는 문제는 다른 것이다.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경기도당이 주최한 모임이고 공적인 당원모임에서 국가 기간시설 파괴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건 너무 과한 것 아니냐, 국민 눈높이에 비춰 볼 때 지나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당이 여러 차원에서 모임을 주최할 수 있다고 본다. 공적 모임이라면 주요 간부 모아서 결정과 집행이 있어야 할 텐데, 당시 모임은 그야말로 토론하고 정세를 공유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자유토론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공적 모임이었다면 결정을 내리고 당의 활동 방향을 규정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아니었겠나 싶다.

-설사 그렇다 해도 유류시설 파괴 같은 이야기가 나온 게 온당한가?

구분지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날 모임은 경기도당이 주최한 공식적인 자리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기도당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분명히 문제다. 그런데 이야기한 건 당원이었다. 당원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130명이 모여 130개의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나눴다. 이 과정에서 누구는 졸아서 할 이야기가 없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과한 이야기, 어떤 사람은 농담, 어떤 사람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도 했던 거다. 그런데 그 130명의 언어 가운데 하나만 뽑아서, ‘그래도 당의 공식적인 자리인데 그런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니냐’ 이렇게 접근하는 건 너무 선정적이고 부당한 거 같다.

-통합진보당은 원내정당으로서 국가로부터 정당 국고보조금을 받고 있다. 국민 세금이다. 그런데 일부 발언이라고 해도 ‘내부에서 내부를 향해 총을 들이대는 발언 아니냐’는 시민들의 시각이 있다.

최 국고보조를 받는 정당 당원이 내부에서 내부를 공격하고자 모임을 했다, 이런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 이번 사건을 터뜨린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진보당이 고립되고, 그래야 진보당 탄압에 성공하는 것 아닌가. 5월12일 당원 모임이 녹취록으로 만들어져 공개될 가능성에 대해 알았다면 우리는 농담 한마디에도 자기검열을 했을 거다. 그런데 ‘농담 한마디에도 자기검열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진보당을 고립시키기 위한 시나리오 속에서 이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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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세력이 만든 이석기 1인정당 프레임”

5월 모임 참석자 네 명의 인터뷰는 약 4시간 동안 진행됐다. 대화가 길어지다 보니 인터뷰는 자연스레 1부와 2부로 나뉘었다. 1부 인터뷰가 5월 모임의 성격과 내용에 초점을 맞췄다면, 2부에서는 진보당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각과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되살아나고 있는 색깔론 공세와 종북몰이 등을 다뤘다. 북한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에 관한 진보당원의 생각도 들었다.

-녹취록을 보면 예비검속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우리는 예비검속 1순위가 될 것이다’ ‘어떤 시점에서는 예비검속을 피해야 하는 상황’ 등의 표현인데, 당시 한반도 전쟁 위기 상황에 대한 각자의 인식은 실제로 어땠나?

전쟁이 발생하거나 그 전 단계가 되면 한국전쟁 때 있었던 예비검속이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실제로 했다. 진보당원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는 2003년 ‘이라크파병반대국민행동’ 활동을 하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과 특수공무집행방해죄 등으로 두번의 전과 기록을 얻은 것이 떠올랐다. 나로서는 심각했다.

우리는 지난해 검찰로부터 당원 명부까지 탈취당했다. 당원들의 집 주소와 다니고 있는 회사가 어디인지 모두 드러난 상황이다. 평소에도 상시적으로 감시받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실제로 겪어보지 않으면… (그런 공포를) 잘 모를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5월 모임의 취지를 설명하며 예비검속에 대한 우려 등을 언급했다. 진보진영조차 이런 그들을 “피해망상과 과대망상으로 똘똘 뭉쳐 있다”고 비판했다. 예비검속이란 범죄 방지의 명목으로 범죄를 저지를 개연성이 있는 사람을 사전에 구금하는 것을 가리킨다. 한국전쟁 당시 우리 정부는 전쟁 발발 당일인 1950년 6월25일부터 9월 중순께까지 국민보도연맹원과 과거 좌익 또는 반정부 활동에 참여했거나 관련된 사람들을 전국적으로 소집·연행·구금(예비검속)하는 조처를 내렸다. 전쟁 상황이 불리해지자 정부는 남쪽으로 후퇴하며 소집·연행·구금된 이들 ‘좌익’을 집단학살했다. 전체 희생 규모는 알 수 없으나 각 군 단위에서 적게는 100여명, 많게는 1000여명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국민보도연맹 사건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2010)는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07’에서 “전쟁 이전에 이미 좌익이나 공산주의자는 남한 사회에서 정치적 증오와 사회적 배제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보도연맹원 등 좌익에 대한 인식은 이념적 적대감을 넘어 사실상 주민들의 일상적인 악감정으로 바뀌었고, 이는 정치·경제·사회적 반대자에 대해 ‘좌익’이라는 한마디만으로 상대방을 매장시킬 수 있게 하였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주도한 배경에 대해서도 많은 해석이 나왔다.

나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라기보다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 사건’이라고 본다. 당시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이 점점 사실로 드러나고 있었고 시민의 분노는 촛불집회로 모였다. 이로 인해 국정원이 존폐 위기를 맞은 것은 물론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까지 의심받는 상황이었다. 이런 국면을 반전시키기 위한 희생양이 진보당이었다.

국정원이 소스(기삿거리)를 흘리면 언론은 받아썼다. 이석기 의원 집에서 러시아 돈인 루블화가 나왔고, 수차례 북한에 다녀왔다는 사실이 마치 대단한 문제인 것처럼 보도되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루블화는 동료 국회의원과 함께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쓰고 남은 것이었고, 북한 방문은 금강산 관광 등의 목적이었다. 아직도 많은 국민은 초기 언론보도만 보고 ‘북과 연계된 간첩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게 정치탄압이 아니면 뭔가.

-이번 사건 직후 ‘진보당은 이석기 의원의 1인 정당’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 의원이 실제 당의 중심인물인 것은 맞나?

‘이석기 1인 정당’ 프레임은 극우세력이 만든 것이다. 지난해 당 비례대표 경선부정 사태 때는 ‘이석기=경선부정 세력=진보당 중심’ 프레임을 만들려고 했는데 지금 관련자들이 잇따라 무죄 판결을 받고 있다. 이번에는 좀더 강한 프레임이 필요했고 다시 색깔론을 들고나온 것이다. 이 의원을 종북으로 몰아세운 뒤, 그런 이 의원이 다시 당을 실질적으로 대표한다는 논리다. 실제로 당 운영원리를 들여다보면 그런 논리는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이 의원을 뽑은 것도 당원의 직접투표에 의한 것이었다.

진보당은 진성당원제를 기반으로 당내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한 최초의 정당이다. 당내 선거 시스템은 지난해 당 사태 때 일부 문제를 드러냈고 극복해야 할 과제를 남겼지만, 그렇다고 누구의 1인 정당이라고 하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이석기 의원이 아니라 이정희 대표라고 해도 진보당을 1인 정당화 할 수 없다.

‘사이비종교·발달장애’ 표현 꼭 써야 했는지…

-비례대표 경선부정 사태, 그리고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경기동부(연합)는 다시 주목을 받았다. 진보당의 입장은 ‘경기동부의 실체는 없다’는 것인데, 동의하나? 김 전 시의원이 지역적으로 경기동부에 있는데.

(웃음) 내가 과거 전국연합 시절 청년회 활동을 해서 잘 안다. 당시에는 경기동부가 실제로 있었다. 다만 전국연합 활동을 접고 민주노동당을 창당한 뒤 우리가 경기동부라는 이름으로 모인 적이 없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경기동부라는 허상을 만들어 이를 괴기스럽고 비이성적이고 독선적인 집단의 상징처럼 몰아가고 있다. 신매카시즘이다.

-실제로 경기동부를 비롯해 광주·전남, 울산연합 등 당내 계파는 존재하는 것 아닌가.

지금도 정치적 성향에 따른 당내 정파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경기동부는 정파가 아닌 그저 악의적 네이밍(이름 붙이기)에 불과하다. 경기동부가 존재한다면 그들만이 공유하는 사상이나 실천 방식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것은 없다.

-이번 사건이 터지면서 극우·보수 세력과 별개로 일부 진보 지식인, 정치인도 진보당의 이념적 경직성과 폐쇄적 조직문화 등에 대해 비판했다.

우리에 대한 그런 비판은 국정원이 흘린 정보를 기정사실화한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한 것인데, 적어도 진보라 불리는 사람들이 왜 국정원 말을 찰떡같이 믿는지 나는 되묻고 싶다. 그래도 한때 운동을 같이 했던 사람들에 대해 사이비종교 집단, 발달장애라는 표현까지 꼭 써야 했는지….

진보진영 일각에서 우리를 가리켜 낡은 진보, 골방 진보라고 하는데 그들이 바꾸고자 했던 1970~80년대 한국 사회의 현실과 구조적 모순, 그리고 지금 한국 사회의 현실과 구조적 모순은 과연 달라졌나. 변한 게 있다면 그건 단지 그들일 뿐이다. 우리의 현실 인식에 문제가 있다면 토론하면 된다. 우리도 사람이니 잘못하는 것이 있을 수 있고 현실 인식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잘못이 있다면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에 대해서는 낙인찍어 배제하려 하나. 진보라면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5월 모임의 내용이 알려진 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8월30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이석기 의원 등 모임 참석자를 가리켜 “딱 소설 속 돈키호테의 무장 수준, 철없는 애들도 아니고 30~50대 아줌마, 아저씨라고 하던데…. 발달장애죠”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도 페이스북에서 이들에 대해 “1980년대의 화석” “발달장애” 등의 표현을 쓰며 비판했다. 진 교수 등의 발달장애 발언에 대해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9월9일 “두 사람의 글을 보면서 주류사회(스스로를 정상인이라는 위치에 놓고 자랑하는 사회)가 가지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비하’가 너무나 두꺼운 벽으로 다가왔다”고 밝혔다. 진 교수와 김 소장은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 진보 논객으로 불린다.

-진보당의 현실 인식과 관련한 질문인데, 북한에 대한 진보당의 태도는 여전히 비판의 대상이다. 북한의 3대 세습과 3차 핵실험 등에 대해 진보당원은 일반적으로 어떻게 보나?

한반도가 분단돼 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해 비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흠집이 있다고 해서 비판부터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남북 화해를 위한 전략적 고민도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한국 사회에서는 진보당은 공식 입장을 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북한에 대해 똑같이 비판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비판받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3대 세습, 핵실험에 대해 ‘북한 잘했다’는 입장을 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 아니면 엑스 선택지만 제시하며 대답을 요구하는 것은 폭력적이다.

한국 사회가 미래로 나아가려면 결국 통일이라는 과제를 외면할 수 없다. 북한의 3대 세습 찬성·반대, 핵실험 찬성·반대, 종북이다 아니다 등에 대해 정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만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개별 의제에 대한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진보당은 제도권 정당인 만큼 주요 남북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것이 당연하다는 반론도 있다.

최 제도권 정당이기에 더 큰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운동단체라면 좀더 자유롭게 의견을 밝힐 수 있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책임성을 가져야 하는 공당이니까 개별 현안에 대한 입장 표명이 전체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판단하는 것이다.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당내 구조로 봤을 때 북한의 3대 세습이나 핵실험 등에 대해 당론을 결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워낙 많은 의견이 있다. 다만 당원 전체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을 객관적 실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습이라고 표현하지만, 그건 그들 나름의 국가를 운영하는 원리 아닌가.

-‘종북’의 꼬리표가 두렵지는 않나. 인터뷰가 나가면 그런 피해가 있을 수 있다.

이번 사건 관련 구속자 차량에 극우단체에서 ‘간첩’이라고 페인트칠을 해놓은 일이 있다. 거의 백색테러 수준이다. 내가 종북으로 몰리면 내 주변 사람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개인적 두려움을 떠나 내 자식에게는 종북몰이가 횡행하는 이런 사회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

박근혜 정권의 조작정치, 공포정치를 깨뜨리지 못하면 한국 사회는 유신부활이 아니라 유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위기감을 안고 두렵지만 나서서 우리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불이익은 예상하고 있다.

홍용덕 최성진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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