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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08 20:17 수정 : 2013.11.11 10:31

통합진보당 지방의원들이 지난 7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정부의 정당해산 심판 청구를 규탄하며 집단 삭발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종북세력’으로 끊임없이 공격받았던 진보당의 운명은 이제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토요판/특집] 신매카시즘의 시대
② 돌맞는 이석기와 통합진보당

▶ 정부는 지난 5일 헌법재판소에 진보당에 대한 정당 해산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북한의 3대 세습과 핵실험 등에 대해 조금 다른 목소리를 내는 진보당은 ‘자유민주주의 위해 세력’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진보당의 목소리가 공공의 이익에 끼치는 피해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한겨레> 토요판의 3부작 ‘신매카시즘의 시대’ 두번째 기사는 사상의 자유와 진보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출발합니다.

10만명의 당원, 6명의 국회의원이 속한 통합진보당(이하 진보당)이 정당 해산의 위기를 맞았다. 정부는 지난 5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진보당에 대한 해산 심판 청구안을 통과시켰다. 유럽을 순방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전자결재로 이에 동의했다. 진보당은 헌법재판소에 당의 운명을 맡기는 처지가 됐다.

정부가 찾은 진보당 소멸의 이유는 ‘북한식 사회주의 추구’에 있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안이 의결된 뒤 브리핑을 열어 “진보당은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진보당이 최고 이념으로 삼고 있는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의 김일성이 주장한 대남 혁명전략과 동일하다”고 밝혔다.

법무부가 5일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청구’ 제목으로 낸 33쪽짜리 보도자료와 황 장관의 브리핑 등에 담긴 내용은 이렇다. △진보당의 중심은 이석기 의원 등 과거 엔엘(NL) 주사파다 △진보당은 주체사상을 신봉하며 북한을 추종한다 △자주·민주·통일의 가치는 종북주의와 맞닿아 있다 △진보당의 주요 정치노선은 혁명을 통한 사회변혁이다. ‘정당해산 심판 청구’라는 과격한 결론까지 공유했던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이런 주장은 일부 ‘진보세력’이 진보당을 비판할 때 동원했던 ‘주사파’ ‘종북’ ‘구시대의 유물’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진보세력에는 진보당 탈당파와 진보 지식인,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 진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언론이 모두 포함된다. 진보당을 둘러싼 혐의는 정당한가.

사노맹에도 ‘주사파’ 혐의 덧씌운 공안당국

우선 주사파란 주체사상파의 줄임말이다. 주체사상파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과 계급주의로서의 김일성주의를 신봉하고 조선노동당을 전체 조선혁명의 영도조직으로 굳게 믿고 활동하는 세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정치노선을 기준으로 주사파는 ‘수령관’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다른 정파와 뚜렷하게 갈린다. 수령관이란 김일성과 그의 뒤를 이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을 남북한 전체의 영도자로 믿고, 통일대통령으로 추대해야 한다는 일종의 지도자론을 가리킨다.(3대 세습을 통해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은도 여전히 추종하는지는 알 수 없다. 주사파가 지금도 존재하는지 여부도 불분명하다.)

주사파라는 용어는 1980년대 중후반 운동권을 중심으로 일반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일부에서는 학생운동을 지탱해온 두 개의 주요 계열인 엔엘(NL·민족해방)과 피디(PD·민중민주) 가운데 엔엘 전체를 주사파로 지목하기도 하지만 이는 정확한 규정은 아니다. 엔엘 내부에도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이 존재했다. 엔엘계에는 반제·반미와 북한에 대한 맹목적 추종주의에 대한 교조적 집착을 특징으로 하는 주사파가 있는가 하면, 이들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자주적 반미주의자(혁신계열)도 존재했다.

법무부가 밝힌 통합진보당
당해산 심판 청구 이유는
주사파·북한 추종·종북이었다
진보세력이 진보당 비판 때
동원했던 논리와 비슷했다

엔엘은 운동권 내에서 주사파로
지목됐지만 실제로는 구성 다양
그러나 주사·비주사 구분이
모호한 상황에서 역대 정권은
비판세력에 주사파 낙인 붙여

외부에서 볼 때 이들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있다. 남북 분단 상황에서 주체사상과 김일성주의를 지도이념으로 받드는 주사파라고 고백한다는 것은 ‘전향’ 목적이 아니라면 곧바로 강력한 탄압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지하화한 이들 주사파와 비주사 계열이라 할 수 있는 엔엘 자주파는, 적어도 겉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었다. 주사든 비주사든 이들은 반미와 통일근본주의 등 강한 민족주의적 에토스를 공유하는 처지였다.

운동권 등 진보진영으로부터 주사파만 선택적으로 솎아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은 역대 정권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다. 권력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들은 주사파라는 붉은 낙인을 마음대로 찍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포의 효과는 그것의 실체가 불분명할 때 더욱 효과적이었다. 여기서 주사파라는 꼬리표가 갖는 특징이 나타나는데, 일단 주사파로 지목되면 그는 자신이 주사파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반복적으로, 그리고 주사파 혐의를 벗을 때까지 고백해야 했다.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인물이 바로 주사파라는 단어를 공식화한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이었다.

박홍 전 총장은 1994년 7월18일 김영삼 대통령과 전국 14개 대학 총장의 청와대 오찬에서 “주사파 뒤에는 사노맹이 있고 사노맹 뒤에는 사로청이 있고 사로청 뒤에는 김정일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총장의 발언은 운동권 계보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는 무지한 발언이거나 정권 비판 세력 절멸을 노린 고의적 오독이었다. 사노맹은 과거 시에이(CA)라 불린 제헌의회 그룹 출신과 피디(PD)들이 만든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동맹’의 줄임말로 남한과 북한을 모두 부정했던 진보그룹이었다. 주체사상과 주사파를 혐오하기로 따지면 극우·보수세력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을 이들에게도 공안당국은 주사파의 혐의를 덧씌웠다.

‘종북’ 용어 처음 쓴 건 2001년 사회당

주사파라는 낙인과 비슷한 효과를 갖는 ‘종북’은 그 경계가 더 애매했다. 2001년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은 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북관을 둘러싼 논쟁을 벌였다. 당시 사회당은 민주노동당의 ‘조선노동당 편향’을 비판하면서 종북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종북이 본격적으로 쓰인 건 2006년부터다. 국가정보원이 적발한 간첩단 사건인 ‘일심회 사건’에 연루된 당원에 대한 민노당의 제명안이 부결되면서 종북 논쟁이 불거졌다. 조승수, 노회찬 전 의원, 심상정 의원(현 정의당) 등은 민노당 자주파 일부를 ‘종북’이라고 비판하며 탈당했다. 자주파는 탈당파를 이해하지 못했다. 함께 폐지를 요구했던 국가보안법에 걸려 간첩으로 몰린 ‘동지’를 내치는 일은 그들에게는 신념에 대한 배신이었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통합연대가 합당해 출범한 통합진보당의 경선 부정 사태가 터지면서, 언론은 통합진보당 당권파를 다시 종북세력으로 지목했다.

진보당이나 진보당 소속 인사를 종북세력, 더 나아가 주사파로 지목해 비판하려면 이들 마음속에 어떤 사상이 자리잡고 있는지, 혹은 사적인 자리에서 어떤 발언을 했는지 따지는 것이 아니라 공적으로 주체사상과 종북주의를 어떻게 표현하고 이를 어떻게 실현하고자 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그러나 이정희 대표와 최근 이름을 많이 알린 이석기 의원 등 진보당의 그 누구도 공개적으로 김일성주의를 찬양하거나 북한을 추종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수령관을 강요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오는 논란이 우선 진보당의 강령에 대한 고의적 오독이나 몰이해, 혹은 조작된 공포다. 법무부는 5일 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안에서 “(진보당의) 최고 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는 과거 김일성이 주장하여 북한의 소위 건국이념이 된 것으로, 우리나라가 미국에 예속된 식민지이고, 소수 특권 계급이 주인 행세를 하는 거꾸로 된 사회”라며 해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구체적으로는 진보당의 주요 노선인 자주와 주한미군 철수, 연방제 방식의 통일 등을 ‘북한의 대남 혁명전략’과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이정희 대표는 이에 대해 5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주·민주·평등·평화통일을 향한 진보의 강령과 활동이야말로 자신의 기본권을 유린당하면서 무시당하고 차별받아온 노동자, 농민, 서민이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권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헌법정신을 올곧게 실현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한미군 철수 없이 민생 없다”는 진보당

여기서 특히 논란을 빚는 개념은 자주다. 1980년대 운동권에서 ‘자민통’이란 줄임말로 불렸던 자주와 민주, 통일은 독립된 세 개의 가치라기보다 진정한 진보를 위해서라면 우리 민족의 자주적 결정을 통한 통일, 곧 분단현실의 극복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맥락적 개념이다. 이 가운데 자주라는 말은 ‘남의 보호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 일을 스스로 처리함’이란 뜻풀이를 갖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종종 다른 맥락으로 해석이 되기도 한다. 이에 대한 비판의 논거를 제공한 것도 역시 진보 진영이었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은 2012년 6월호 <월간조선> 기고글에서 자주라는 가치는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친북·종북성의 뿌리는 ‘지령 수수 관계(간첩 암약)’라기보다는 조선노동당과 유사한 가치 체계가 아닐까 한다. 이 핵심은 인간의 자유, 행복, 인권이 아니라 ‘자주’ 혹은 종속성 극복을 최상위 가치로 놓는 것이다. 단적으로 민주노동당 강령(2011.6.19)에서 ‘자주’라는 단어가 무려 11번이나 나온다. ‘자주 평등 인간해방의 새 세상을 향해’ ‘민족의 자주적 발전과 평등사회’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해 자본주의 폐해를 극복’(중략) 어쨌든 인간의 자유, 행복, 인권이 아닌 ‘자주’를 최상위 가치로 놓게 되면 역사적 정통성은 항일(무장) 투쟁 세력이 국가의 중추를 이룬 북한에 있기 마련이다.”

이어 김 소장은 “자주를 최상위 가치로 놓게 되면 북한이 대미 자위권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는 핵무장에 관대하게 되어 있다. 반공화국 사범들을 구금한 수용소와 혹독한 인권 유린에도 관대하게 되어 있다.(이것이 바로 내재적 접근법이다) 또한 가까운 미래에 현실화되어야 할 북핵 포기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고, 아주 먼 미래의 일이 되어야 할 주한미군 철수-한미동맹체제 해체-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을 강령에 명기하는 추태를 보인다”고 주장했다. 월간조선은 김 소장의 글을 “진보당의 진짜 문제는 시대착오적 이념: 좌파논객의 통합진보당 강령 분석”이란 제목으로 실었다.

월간조선이 ‘좌파논객’으로 호명한 김 소장의 주장을 다소 길게 인용한 이유는 그의 발언이 최근 진보 진영 일각에서 등장하고 있는 ‘친미진보’ 논리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른바 ‘비례대표 경선부정’ 사태 이후 통합진보당을 탈당한 천호선 정의당 대표는 지난 7월23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주라는 개념을 보자. 미국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건 현실적이지도, 현명하지도 않다. 절대화하면 안 된다. 현실에 맞게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 내가 있던 과거의 통진당과 달리 우리는 민주적 질서와 원칙이 잘 작동하고 있다.” 천 대표가 탈당 전 속해 있던 진보당 새로나기특위는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와 한미동맹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이를 번복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이에 대한 진보당의 태도는 분명하다. 주한미군 철수를 말하지 않고 민생을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는 것이다. 국제법을 보면 파견국가의 군대는 해당국이 그 주둔비용을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제5조를 보면 주한미군의 유지비는 미국이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해마다 약 1조원에 이르는 방위비 분담금을 지급하고 있다. 주한미군이 미처 쓰지도 못해 현금으로 보관하고 있는 ‘방위비 분담금 불용액’은 7380억원에 이른다. 최재천 민주당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해보면 미군은 쓰지 않고 남겨둔 이 돈을 반환하지 않고 미국 지방은행 무이자 계좌에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 정부는 연간 이자수익만 148억원을 손해보고 있는 것이다.

지난봄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폐업 조치한 진주의료원의 한 해 적자규모는 70억원 수준이었다. 34개 전국 지방의료원이 십수년간 누적해온 적자는 5000억원이다. 우리 정부가 해마다 미군에 꼬박꼬박 지급하는 약 1조원이면 이 모든 부채를 갚고도 추가로 지방의료원을 확충할 수 있다. 서울시 무상보육 예산이 한해 1조656억원인데, 이 역시 1년치 방위비 분담금으로 거의 해결할 수 있다. 이처럼 주한미군 철수는 시대착오적이고 이념적인 구호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당면한 절박한 현실의 문제이자, 진보가 지향하는 복지의 출발이라는 것이 진보당의 주장이다.

인간의 자유와 행복이 아닌 주한미군 철수 등 자주를 말하는 것은 ‘추태’라는 김대호 소장의 주장이나 미국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건 비현실적이라는 천호선 대표의 주장도 그들이 생각하는 진보의 노선이라면 서로 토론과 논쟁을 하면 된다. 토론 없이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시대착오적’, 심지어 ‘종북의 뿌리’라는 식으로 선을 그어버리면 대화가 이어질 리 없다.

국가보안법 폐지 말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 곧 대북관의 문제도 진보당이 주로 비판받는 지점이다. 북한에 대한 진보당의 기본적 태도는 ‘북한을 하나의 국가·체제로서 인정하자’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북한 땅에 한국의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현실을 인정하고 북한 정권을 사실상의 국가권력으로 받아들여야 진정한 관계 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보안법상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북한을 국가·체제로 인정하자고 했으니 종북이라고 한다면 또 서로 할 말이 없어진다. 이런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과감히 밝힌 정치 지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금기를 깨고 현실을 이야기하자’는 제목의 연설에서 보안법의 시대착오적 성격을 이렇게 지적했다.

“북한 정권을 인정하거나 그쪽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북쪽의 주장을 수용하는 말을 해서도 안 됩니다. 좌경용공이 되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이런 금기는 법적·정치적 당위를 강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어떻게 상대방과 대화를 하고 합의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국민을 설득하고 국제사회를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진지하고 책임있게 통일을 추구하는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금기를 깨야 합니다.”

진보당의 누구도 공개적으로
북한을 추종한다 하지 않았지만
국가로 북한 인정하자는 주장과
핵실험·3대세습에 대한 침묵은
‘종북’이라는 딱지로 이어졌다 

‘종북’이나 ‘자주’ 개념 비판은
진보진영 내에서 먼저 시작됐다
“한때 진보운동 함께했다면
그들이 느끼는 피해의식에 대해
쉽게 돌을 던질 일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했던 배경과,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분단을 극복하려면 상대방을 이적단체로 규정한 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당의 강령에 담긴 문제의식은 사실 거의 같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진보당의 보안법 폐지 주장을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에 갖다 붙였다. 진보당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을 한다는 식이다. 북한을 국가나 체제로서 ‘인정’하자는 진보당의 태도를 북한에 대한 ‘추종’으로 해석한 결과다.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한 진보당의 태도는 이런 측면에서 좋은 먹잇감이었다. 법무부는 5일 보도자료에서 “진보당은 종북이념에 기초하여, 남북전쟁 위기에서 오히려 북한에 동조하고, 북한의 3대 세습을 옹호”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살피면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함구한 사실 등을 예로 들었다. 법무부의 무리한 주장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3대 세습에 대한 진보당의 태도는 일부 진보 진영에서도 꾸준히 비판받는 지점이다.

이정희 대표는 민노당 대표 시절이었던 2010년 8월 북한 3대 세습을 둘러싼 민노당의 태도와 관련해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남북관계가 평화와 화해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임무이다. 그 대응방식을 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지금 그것은, 금강산에서 그러했듯, 북의 권력구조에 대해 말하지 않아온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와 진보당(당시 민노당)의 ‘침묵’에 대해서는 진보 진영 안에서도 찬성하지 않는 쪽이 더 많다. 이 대표 역시 이를 의식한 듯 “이것 때문에 비난받아야 한다면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진보당은 지금까지도 이 문제로 비판받고 있다. 다만 그 비판의 방식이 말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침묵조차 말하지 않으니 ‘옹호’라는 식으로 몰아세우는 이 정부의 유치한 흑백논리와 얼마나 다른지 되짚어볼 대목이다.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진보당의 태도도 논란의 대상이었다. 당시 진보당은 당 비상대책위 성명으로 “북한 3차 핵실험을 둘러싸고 한반도 정세가 긴장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이 상황이 한반도 위기로 치닫는 것에 대해 진보당은 결단코 반대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은 대화 없는 북-미 관계, 파탄 난 남북관계의 안타까운 귀결”이라고 밝혔다. 또 진보당은 이에 대한 해법으로 미국 오바마 정부에는 북-미 대화를, 박근혜 당선인에게는 대북 제재나 강경책보다는 대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제시하라고 주장했다. 북한에 대한 비판은 없었다.

모든 종류의 핵에 반대한다는 것이 진보의 원칙이다. 많은 국민도 이유를 떠나 한반도에서 이뤄지는 핵실험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북한 핵실험의 원인을 미국의 대북 고립정책에서 찾고, 이에 따라 북한의 핵은 자위적 수단이라는 진보당 주장은 그 자체로는 일정한 설득력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북한 핵이 거꾸로 한국 국민의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 핵실험과 미국에만 비판적 메시지를 보낸 진보당 태도는 과연 공정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북한 핵실험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더라도 최소한 원인 제공자(미국)와 최종 행위자(북한)를 함께 비판하는 것이 옳았다.

진보당이 자신에 대해 덧씌워진 각종 혐의 가운데 가장 억울하게 여기는 부분은 이른바 아르오(RO) 구성과 이를 통한 내란음모 혐의다. 검찰은 지난 9월27일 이석기 의원 등이 연루된 ‘내란음모 사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아르오를 이 의원이 이끄는 지하혁명조직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검찰은 “아르오는 (이 의원이) 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 사건으로 처벌받은 직후 구상한 새로운 지하혁명조직으로 북한의 대남혁명노선에 동조하며, 혁명의 결정적 시기를 맞기 위한 준비기에는 사상학습, 실천투쟁 등을 통해 조직 관리에 힘썼다”고 주장했다. 민혁당 사건은 1999년에 국정원으로부터 적발된 지하 정당 민족민주혁명당 사건을 가리킨다. 당시 이 의원은 민혁당 경기남부위원장으로 지목받았다.

엔엘은 일찌감치 포기한 혁명노선

검찰이 아르오를 지하혁명조직으로 지목하자 진보당과 정치권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의원 개인이 보여온 정치행보의 변화나 진보당 노선의 역사를 되짚어봐도 혁명이란 용어는 영 낯설었기 때문이다. 진보·학생운동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면 1970년대 후반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이나 1990년대 한국대학생총연합 중심의 전민항쟁노선 등 혁명을 꿈꾼 대중투쟁의 흐름이 일정하게 존재했다. 전민항쟁노선은 1997년 김영삼 정권의 퇴장과 함께 자연히 소멸됐다. 또 그해 민노당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국민승리21이 피디 계열을 주축으로 출범하며 대중투쟁은 제도권 정치로 속속 흡수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정당보다 ‘전선’을 중요하게 여겼던 엔엘도 1997년 대선 당시 국민승리21 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한 권영길 후보에 대한 지원을 시작으로 정당 가입을 시작했다. 2000년 1월 민노당이 창당하자 엔엘 쪽에서는 전국연합의 최대 지역조직인 경기동부연합을 선두로 순차적으로 입당을 완료했다.

아르오 모임에 참석한 진보당 관계자는 지난 9월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한겨레>와 만나 “요즘 세상에 무장투쟁이라니…”라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보운동의 역사를 조금만 살펴보면 지하혁명조직 등을 중심으로 한 혁명노선은 진보당, 혹은 엔엘 계열도 일찌감치 폐기한 노선이라는 것이 이들 주장이다. 특히 이 의원은 2005년 지금의 씨앤피(CNP)전략그룹의 전신이었던 씨앤(CN)리서치를 창업하며 본격적으로 의회주의,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를 통해 진보정부를 구성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때 이 의원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사실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종북 논란으로 결국 해산 위기까지 맞은 진보당과 관련한 가장 큰 비극은 많은 이들이 그들을 종북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도 종북으로 몰리기에 그들이 느껴야 했던 공포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해하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이었다. 5월 모임 참석자는 지난달 27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한국전쟁 당시 국민보도연맹 사건과 관련해 벌어졌던 예비검속 등이 현실적 공포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진보 일각에서는 이런 태도를 가리켜 피해망상, 과대망상이라는 용어로 비판했지만 국가보안법 수사선상에 단 한번이라도 올랐던 사람이나 집회 및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경험을 지닌 진보당원이라면 위기감을 느낄 수 있는 조건은 충분했다. 지난 3~4월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 위기 상황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면 말이다. 임승수 경희대 강사는 “지금 그들과 생각이 다르더라도 특히 한때 진보운동을 함께 했던 사람이라면 이들이 느끼는 피해의식에 대해 쉽게 돌을 던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정원의 잘못을 짚는 것과 별도로 이석기 의원 등도 일정하게 원인 제공을 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한다 해도 형편없이 추락한 진보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이들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조롱하고 비판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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