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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호랑이가 사육사의 목을 문 사고가 일어난 지난달 24일 한 관람객이 호랑이 우리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호랑이숲 조성을 위해 낡고 좁은 여우사에 무리하게 호랑이를 전시한 것, 곤충 전문가인 사육사를 맹수사로 인사발령 낸 것 등이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꼽힌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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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특집 / 동물원 살인사건
▶ 지난달 17일 제주도 한 관광농원에서는 사육중이던 반달가슴곰이 사육사를 물었다. 일주일이 지난 24일 서울대공원의 호랑이가 사육사를 물었다. 두 사육사는 결국 숨졌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열악한 사육시설, 비전문가인 사육사와 맹수가 만났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인재’라는 점이다. 동물원 관리는 잘 되고 있는 걸까. 사육사와 관람객의 안전, 동물의 안전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왜 돌아가셨는지는 가족도 모르고 대공원도 모르고 시청도 몰라요. 경찰 수사 발표만 기다리고 있는 우리도 답답해요.” 12일 자정이 넘은 시각,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대학생 아들의 눈은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전날 경기도 수원 아주대학교 병원 장례식장 1호실, 다음날 서울대공원장으로 장례를 앞둔 고 심재열(52) 사육사의 빈소는 한산했다.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를 포함해 전국 각지의 동물원에서 보낸 조화만 빽빽이 길을 막아섰다. 가족과 대공원 직원들만 듬성듬성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날은 서울시가 심 사육사의 순직을 인정하고 보상에서도 유가족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쪽으로 서울시와 유가족 사이의 타협이 이뤄진 날이었다.
“잘 끝났어. (현장에 가봤더니) 시설이 안 좋아. 나머지 사람들은 편하게 지낼 수 있겠지.”
서울시와의 협상에 참여한 둘째 형 심아무개(59)씨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호랑이에 물린 지 2주 만인 8일 새벽 2시 숨진 심씨의 장례식장에는 슬픔과 노여움, 지친 피로감이 짙게 깔려 있었다.
다음날 아침 8시30분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큰물새장 아래쪽에서 서울대공원장으로 심씨의 영결식이 열렸다. 100명이 넘는 동료 사육사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찬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아들의 마지막 사부곡을 들은 이들은 끄억끄억 울기 시작했다. 맹수사 사육사로 함께 일한 한 남성은 동료의 마지막 떠나는 길에 흰 국화꽃을 두고 고개를 떨궜다. 맹수사 사무실은 내년 5월 개장을 목표로 새로 조성중인 서울대공원 개장 30주년 기념 ‘백두산호랑이숲’ 공사 현장 뒤편에 있었다. 사무실에서 만난 이 사육사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 의자에 기대앉은 그는 힘들어 보였다.
“지금 내 몸 하나도 추스르기 힘든 상황이오. 홍보팀에 가서 물어보시오.”
사무실 안에는 심씨의 책상 위 물건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책장 가득 꽂힌 곤충도감은 그가 곤충에 관심이 많았음을 보여줬다. 문을 열자 포클레인이 소음을 내며 지나갔다. 포클레인이 지나가자 바로 옆 우리에 갇힌 호랑이 3마리가 어슬렁거리며 오가는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피해자 목 오른쪽의 이빨 자국 2개
지난달 24일 일요일 오전 10시10분쯤 심씨는 호랑이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 쓰러져 있었다. 호랑이 전시실 맞은편에 있는 동양관의 사육사들이 다친 심씨를 발견했고 400m 떨어진 식물원 앞 간이식당 직원이 구조 요청을 했다. 10시28분 119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심씨는 동양관의 한 사육사 무릎에 누워 있는 상태였다. 호랑이 로스토프(3)는 전시장 밖으로 나와 심씨로부터 5m 떨어진 통로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심씨와 동양관 사육사, 구조대 모두 호랑이와 141㎝ 높이의 창살문 하나를 두고 대치했다. 만일 호랑이가 관리자 문을 뛰어넘었으면, 사람들이 평소 다니는 길에 호랑이가 진입할 수 있는 긴박한 상황. 동물마취총을 구비한 구조대원들이 도착하기 전 호랑이는 자기 발로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현장에 제일 먼저 출동한 과천소방서 과천119안전센터 김동공(40) 소방장이 말했다.
서울대공원과 아트랜드서
사육사를 공격해서 죽인
로스토프, 대장이, 순이
맹수 특성 고려하지 않으면
관람객까지 위험할 수 있다
‘어흥’이나 ‘으르렁’ 아닌
‘아우웅’‘어으’ 울음소리
로스토프는 암컷이 그리웠다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토해내는 수컷의 절망이었다
“피해자 목 오른쪽에 손톱 크기의 이빨 자국 2개가 나 있었고, 목동맥을 확인해보니 이미 의식이 없었어요. 대공원 관계자가 구급차를 따라 타려고 했는데 긴박한 상황이라 다른 차 타고 뒤에 오라고 했어요. 호랑이가 우리로 들어가자 주변에서 ‘문 잠가’, ‘문 잠가’ 소리가 들렸어요.”
이번 사건의 자세한 정황은 여전히 분명히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 근처에 폐회로카메라(CCTV)조차 없어 경찰도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 업무지침을 보고 추정할 뿐이다. 사육사는 보통 출근시간인 8시 이후 10여분간 밤새 동물의 상태를 살핀 이후 2시간 동안 사육장 청소와 먹이주기를 병행한다. 사육사가 밖에 있는 조작장치를 통해 내실 문을 열면, 밤새 내실에 갇혀 있던 동물은 대개 전시장으로 나온다. 이를 확인한 사육사는 문을 잠그고, 밀실이 된 내실 안으로 들어가 청소를 한다. 청소가 끝나면 먹이를 두고 나와 내실 문을 연다. 동물은 먹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고, 사육사는 다시 내실 문을 닫는다. 이때부터 전시장 청소가 시작된다.
문제는 사고 당시 밖에서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려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육사가 호랑이가 있는 전시장 안에 들어갔거나, 내실에 있던 호랑이가 전시장으로 나와 사육사를 공격했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대공원 쪽은 “사고 당시 내실 문은 잠겨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30년 된 여우사의 내실 문이 그리 튼튼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도 끊이지 않는다.
2일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의 한 관광농원(제주아트랜드)으로 들어가는 길은 썰렁했다. 구름이 낀 흐릿한 날씨는 이곳을 더욱 한산하게 느끼게 했다. 억새 핀 1차선 길을 따라가자 성처럼 웅장한 정문에 도달했다. 아기자기한 분재들이 심어진 넓은 정원 뒤편에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입은 4~5명의 관광객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콘크리트로 만든 가로 5m, 세로 5m, 깊이 3m 크기의 지하 우리를 내려다보며 감귤을 던졌다. 그들의 시선 아래 반달가슴곰 4마리가 두 발로 서서 겅중거리고 있었다.
“주세요, 주세요 해봐라. 아이고 잘하네.”
곰의 재롱에 즐거워하던 관광객들에게 관리인 박정갑씨가 말했다.
“옆 우리에 2마리가 더 있었는데 곰이 관리인을 물었어요. 관리인은 숨졌고 곰들도 사살됐습니다. 지금은 새끼들만 4마리 있습니다.”
열흘 전부터 곰을 관리하고 있다는 박씨는 관광지가 매각될 때까지만 일하기로 했다.
12발의 실탄 맞고 죽은 대장이와 순이
지난달 17일 일요일 아침 6시30분 이 업체의 관리인 임아무개(당시 79살)씨는 평소와 같이 일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아 어둑어둑한 시간이었다. 지난밤 동료 직원이 부탁한 대로 정문 근처 무밭에서 무를 3개 뽑으러 다녀왔다. 그리고 임씨는 곰에게 아침밥을 주기 위해 사료를 담아 우리 앞 나무데크 위에 두었다. 그 우리의 주인은 2005년생 수컷 대장이와 암컷 순이였다. 둘은 다 자란 곰으로 부부였다. 그게 임씨의 생전 마지막으로 확인된 모습이었다.
오전 9시 동료 직원 박정아씨와 업체 회장인 황아무개(63)씨는 사무실로 출근했다. 항상 사무실에 들러 박씨가 타주는 커피를 마시고 하루를 시작하는 임씨가 보이지 않았다. 황씨가 임씨를 찾아나섰다. 황씨는 임씨를 대장이와 순이의 우리 안에서 발견했다. 임씨는 곰들에게 공격받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9시34분 황씨의 신고를 받고 제주 동부경찰서 소속 구좌지구대 경찰관들과 제주소방서 119구조대원들이 출동했다. 10시 무렵 제주대 수의과 소속 야생동물구조센터의 문경화 수의사와 영산강유역환경청 제주사무소 박수홍 주무관도 현장에 도착했다. 임씨는 곰들이 자는 내실 앞쪽까지 끌려가 있었다. 곰들은 우리 안쪽에서 경찰이 쏘는 권총 소리에 흥분한 듯 왔다갔다했다. 지원 요청을 받고 인접 지역인 조천, 함덕 지구대에서도 경찰들이 달려왔다. 문경화 수의사가 당시를 돌아봤다.
“도착해보니 경찰관이 이미 실탄 몇 발을 쏜 상태였어요. 기동타격대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고, 어서 마취라도 해 달라고 했어요. 마취총 2발을 한 마리를 향해 쐈어요. 한 마리는 구조물 같은 데에 숨어 있었어요.”
환경청이 정한 매뉴얼에 따르면 야생동물을 포획할 땐 마취총부터 쏘게 되어 있다. 임씨의 시신을 추가로 훼손할 수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실탄사격이 이뤄졌다는 게 관련자들의 공통된 대답이었다. 경찰은 마취총보다 실탄을 먼저 발사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이날 경찰들은 38구경 권총으로 12발의 실탄을 발사했다. 경찰은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암컷이 10시20분쯤 권총을 맞고 죽었음을 확인했다. 10시40분쯤 제주 동부경찰서 기동타격대원들이 도착했다. 남은 한 마리에게 K-2 소총 4발을 더 발사했다. 남은 수컷도 사살됐다.
임씨의 사인은 피를 많이 흘린 것이었다. 일명 실혈사, 저혈성 쇼크사였다. 임씨를 부검한 제주대학교 법의학과 강현욱 교수는 “다리 쪽의 대퇴동맥과 팔 쪽의 요골동맥이 파열돼 과다출혈로 숨진 것으로 보인다. 몸에 곰이 할퀸 자국이 많았다”고 말했다. 사건 현장에는 부서진 사다리와 임씨의 모자가 남아 있었다. 곰 우리를 비추는 시시티브이는 없었다. 제주 동부경찰서 쪽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업체 운영인 황씨를 입건해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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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8시30분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열린 심재열 사육사의 영결식을 찾은 동료 직원들이 그의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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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고 사항에 그친 허술한 곰 사육시설 관리지침
사육사 임씨와 임씨를 숨지게 하고 사살된 반달가슴곰 2마리의 만남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황씨는 광주의 한 사육곰 농가에서 반달곰 4마리를 한 마리당 200만~300만원에 샀다. 황씨가 2008년 개장한 제주도 관광지는 분재원과 미술관이었다. 이곳에 관광을 목적으로 곰을 들여와 반달곰농원을 새로 시작할 계획이었다. 제주도에 반달가슴곰을 전시 목적으로 이용하는 곳은 이곳 말고는 없다. 업체는 분재원 끝에 10m 넘는 길이의 지하 우리를 만들었다. 반달가슴곰 4마리뿐 아니라 불곰 4마리(성체 2마리, 새끼 2마리)와 반달가슴곰 4마리까지 총 12마리의 곰을 사들였다.
곰의 사육시설 신고를 받은 영산강유역환경청 제주사무소 박수홍 주무관은 업체 쪽이 ‘민간 시설치고는 괜찮은’ 우리를 만들었다고 기억했다.
“개인이 만든 시설치고는 크게 잘 만든 편이었어요. 지금 사육시설 관리 기준이 없어요. 보통 양수 신고를 할 때 사육시설 도면이나 사진을 제출하면 사육시설이 권고 기준에 맞게 지었는지 확인하지요.”
현재 사육곰 농가는 사육시설 기준이 있다. 전시 목적으로 들여온 경우도 해당된다. 1980년대 정부가 농가소득 향상을 위해 곰 수입을 허락하면서 농가에서 곰을 사육할 수 있게 됐다. 국내에 사육곰 농가가 점차 늘어났고 곰을 사고파는 거래도 시작됐지만 특별한 규정이 없었다. 2005년에야 사육 시설 기준을 만들어 규제에 나섰다. 곰을 사고팔 때는 곰을 사들이는 농가가 곰의 사육시설을 신고하도록 한 것이다. 사육시설에 대한 관리지침은 약소하다. 사육사는 높이 2.5m 이상의 담과 마리당 사육사 4㎡, 운동장 10㎡ 이상의 면적으로 하고 이중출입문과 자물쇠장치 등 안전시설을 마련하라는 내용이 전부다. 사육사에 대한 교육과 사육시설의 관리 부분은 없다. 이마저도 권고 사항이라 강제할 수 없다.
2012년 여름 이후 업체는 우리를 새로 옮겼다. 기존에 우리가 있던 토지의 용도가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옮긴 우리도 사정은 비슷했지만, 전의 우리와 달리 사육사가 외부에서 곰의 내실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없었다. 우리의 크기가 조금 줄었고 콘크리트 벽면에 그려져 있던 나무 그림 등도 사라졌다. 출구가 없는 우리에 살게 된 곰들은 마취된 채 크레인으로 들어올려 옮겨졌다. 관리를 맡은 영산강유역환경청 제주사무소 쪽은 따로 양도양수 신고가 필요 없는 우리 변경이었고, 폐쇄식 구조라 따로 우리의 출구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영업이 잘 되지 않는 관광지에 사는 곰들의 사육 환경은 좋지 못했다. 처음에 들여온 반달가슴곰 8마리(대장이, 순이 포함 성체 3, 새끼 5)와 불곰 4마리, 그리고 새로 낳은 새끼2마리까지 총 14마리의 곰 중 반달가슴곰 6마리(대장이, 순이, 새끼 4)가 남았다. 4년 만이었다. 2012년에만 다른 곰에게 물려 죽거나 새끼가 어미에게 물려 죽는 등 4마리가 폐사했다.
한 마리의 새끼곰은 울타리를 뛰어넘어 도망쳤는데 포획 과정에서 마취총을 많이 맞아 쇼크사하기도 했다.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도 이곳의 곰들이 울타리를 탈출하는 일이 종종 있어 출동한 적이 많다고 기억했다. 새끼곰들은 우리 중간에 지어 둔 정글짐 모양의 운동기구에서 울타리 밖으로 점프해 탈출했다.
곰들은 아침저녁으로 임씨가 주는 개사료와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간식을 먹었다. 지난해 4월 <한겨레>가 만난 적 있는 임씨는 썩거나 버려진 당근을 다듬어 관광객들에게 곰 먹이로 팔고 있었다. 반달가슴곰 대장이와 순이, 그리고 당시 함께 같은 우리에 머물던 진이(암컷, 2012년 폐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한겨레> 2012년 5월5일치 3면) 대장이가 나이가 많은 진이와는 놀지 않고, 순이랑만 친하다는 것이었다. 임씨는 당시 살아 있던 불곰이 2012년 1월의 어느 추운 날 새끼 2마리를 낳았는데 밤새 얼어죽었다는 것도 전했다.
지난해 만난 임씨는 곰들이 개나 강아지같이 순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곰에게 먹이를 던져주면 재롱을 부린다며 직접 시연을 해 보이기도 했다. 특히 우리 안쪽 철창이 있는 내실 관리가 허술했다. 임씨는 곰들이 ‘알아서’ 내실과 외부를 오간다고 설명했다. 진이가 죽기 전인 지난해 여름 진이를 검진하기 위해 우리를 방문했던 제주대학교 수의학과 이정갑 교수는 임씨가 우리 안에 들어가는 것을 겁내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곰이 밥을 잘 안 먹는다고 해서 항생제 주고 온 적이 있어요. 그 우리가 나갈 곳이 없어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어요. 나는 무서우니까 멀리 있었는데 관리인은 곰들이 순해서 괜찮다고 생각하는지 겁먹지 말라고 하며 곰을 한쪽으로 몰아넣고 그랬어요.”
임씨는 전문 사육사가 아니었다. 황씨의 사업을 20년 넘게 도운 지인으로, 회계 일을 맡아왔다. 2009년 곰이 이곳에 온 후부터 곰을 돌보며 관리인으로 이곳에 머물렀다. 임씨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임씨의 죽음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한 동료는 사고 당일 날이 춥고 궂었던데다 곰들이 아침밥도 먹지 않은 상태라 예민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항상 모자를 쓰는 임씨가 우리에 떨어진 모자를 줍기 위해 우리 안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생태보건부 양두하 박사는 반달가슴곰의 생태에 대해 전했다. “곰 지능은 80~85 정도로 높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반달가슴곰의 성격은 온순하다. 보통 야생에서의 반달가슴곰은 먼저 사람을 피한다. 다만 새끼를 양육하는 시기나 먹이를 앞에 둔 상황이나 갑자기 마주쳤을 때 같은 특정한 상황에서는 돌발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보통 곰에게 11월은 겨울을 앞두고 동면을 준비하는 시기로 음식물을 먹어 몸을 찌우는 시기다. 물론 사육곰은 야생의 곰과 똑같은 몸의 변화를 보이지는 않는다.
2일 사고가 났던 대장이와 순이의 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옆 동에 있는 새끼곰들은 그대로였다. 관리인은 전날밤 싸둔 곰들의 배설물을 치우기 위해 위에서 호스로 물을 뿌렸다. 곰들은 물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다녔다. 이빨을 드러내며 자기들끼리 으르렁대다 공중에서 사료가 떨어지자 달려와 허겁지겁 바닥을 핥았다. 검은 등을 웅크리고 급히 배를 채우는 모습이나 아작아작 개사료를 씹는 소리가 괴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업체는 육지로 곰을 보내기 위해 양도 신고를 마쳤다. 영업실적이 좋지 않고 빚이 늘어 관광농원 자체를 매각하려 내놓은 상태다. 5일 전화 통화에서 황씨는 “25년간 부모같이 모신 분이 돌아가셔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임씨가 맹수도 밥 주는 사람은 따른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착잡해했다.
“다른 동물과 맹수의 사육은 완전히 달라”
개인이 운영하는 규모가 작고 열악한 전시 시설과 국내 최대 동물원에서 일어난 것만 빼면 두 사건은 공통점이 있다. 열악한 사육시설, 비전문가인 사육사와 맹수의 만남이 최악의 인재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반달곰농원처럼 서울대공원도 사육사의 전문성이 떨어졌다. 심씨는 1987년 서울대공원에 입사해 곤충관에서 근무하다 올해 1월4일에 전격적으로 맹수사로 인사발령을 받았다. 12일 동물원에서 만난 한 사육사는 인사상 문제가 많았다며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맹수사에 있는 4명의 사육사 중에 팀장 1명만 빼고 다 맹수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조리실과 사슴사에 있다 온 사육사, 공무직(임시직에서 전환된 경우), 그리고 심씨였다. 심씨는 곤충만 좋아하고 공부하던 사람인데 잘못 인사를 냈다.”
호랑이가 넓은 우리에서 좁은 우리로 옮겨진데다 함께 지내던 암컷 펜자와 격리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로스토프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수컷 로스토프는 암컷 펜자와 함께 2011년 5월21일 한-러 수교 20주년을 맞아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총리로부터 받은 선물이었다. 서울대공원 쪽도 “로스토프는 다른 호랑이와 섞지 않고 항상 펜자와만 함께 지내도록 했다”고 밝혔다.
올 3월 이들의 신변에 변화가 생겼다. 28억원의 예산을 들여 기존 맹수사를 백두산호랑이숲으로 개보수하는 공사가 시작되자, 호랑이 관람이 중단됐다. 이광구 서울대공원 동물복지팀장은 “호랑이를 보러 오는 관람객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로스토프와 펜자를 여우사(여우를 사육하고 전시하는 용도의 우리)로 보내 전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여우사는 다른 맹수사와는 달리 이중삼중의 잠금장치도 없고, 우리와 관람객 사이의 깊은 해자(도랑)도 없다. 5평 남짓한 방으로 맹수가 지내기에는 매우 비좁다. 더군다나 로스토프는 올 10월 말부턴 혼자 남겨졌다. 암컷 펜자는 새끼를 낳으러 산실로 들어갔다. 산실은 전시장과 내실 바로 옆이지만, 직접 접촉할 수 없도록 사방에 벽이 둘러져 있다. 야생에서도 새끼를 낳은 암컷 호랑이는 굴을 파고 들어가 한달여간을 홀로 지낸다. 이 기간에 암컷은 거의 먹지 않고, 새끼를 핥고 안아주기만 한다. ‘동물을 위한 행동’의 전경옥 국장은 “동물원이 시설 규모에 맞게 동물의 번식을 계획적으로 해야 한다”며 비판했다.
사육곰 대장이와 순이를
사육사는 강아지처럼 여겼고
내실 관리도 그만큼 허술했다
날이 춥고 아침도 먹지 않아
예민하지 않았나 추정됐다
야생에서 만난 맹수보다
동물원 맹수가 더 위험하지만
관람객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동물의 번식·활동 고려 않고
사육사 안전도 무방비 상태
로스토프가 맞이한 상황은 그의 울음소리에서도 나타난다. 2~3일 방문한 여우사 우리는 검은 천으로 둘러져 있었다. 이틀간 대여섯시간 동안 머물렀더니 안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흥’이나 ‘으르렁’ 하는 소리가 아니라, ‘아우웅’, ‘어으’ 하는 소리였다. 야생에서 좁은 굴을 만들어 20여년간 시베리아호랑이를 관찰하고 7편의 다큐멘터리를 찍은 박수용 사이베리아타이거프로텍션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기자가 녹음한 로스토프의 울음소리를 분석했다.
“로스토프의 울음소리를 분석해보면, 두세번 ‘아웅’ 하고 울다가 ‘어으’ 하고 두 음절을 내뱉기를 반복하는데, 이는 야생의 호랑이들도 자주 내는 소리입니다. 먼저 ‘아웅’ 하는 소리는 대개 유대감을 표시하거나, 다른 호랑이를 만나고 싶어할 때 내는 소리입니다. 가까이 지내던 가족, 친구, 짝이 곁에 없을 때 이런 소리를 많이 내고, 배란기를 맞은 암컷을 쫓는 수컷들도 이런 소리를 냅니다. 또 ‘아웅’을 한 뒤에 내는 ‘어으’ 하는 소리는 심리적 강박증을 나타냅니다. 보통 야생에선 수컷들끼리 영역다툼을 한 뒤, 패배한 수컷이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토해내는 절망의 소리입니다. 동물원에선 넓은 곳에 있던 호랑이가 갑자기 좁은 독방에 갇혔을 때 내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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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7일 반달가슴곰 수컷 대장이가 자신이 살던 제주시 구좌읍 관광농원 안 우리에 설치된 놀이터에 앉아있다. 1년7개월 후인 지난달 17일 대장이는 담당 사육사를 물어 숨지게 하고 자신도 사살됐다. 제주/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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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에서 마주친 호랑이보다 동물원에 있는 맹수가 더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다. 박수용 대표는 “야생에선 호랑이가 먼저 인간을 발견하고 피하기 때문에 마주치기도 어렵고, 마주쳐도 새끼를 데리고 있는 암컷이 아닌 이상 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동물원 호랑이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갇혀 있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하기 때문에 암컷 호랑이가 새끼를 먹는 것처럼 야생에선 절대 볼 수 없는 이상행동을 하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다른 동물원에서 20년 경력의 한 사육사도 익명을 전제로 의견을 밝혔다. “호랑이, 곰 등 맹수의 사육을 10년 넘게 맡으면서 느낀 점은 다른 동물과 맹수의 사육은 완전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내실의 잠금장치가 견고하고, 사육사들도 강박적으로 잠금장치를 확인합니다. 게다가 옆방에 새끼를 낳은 암컷이 있다면, 수컷은 매우 예민해진 상태가 됩니다. 이럴 땐 사육사도 매우 조심스럽게 맹수를 대합니다.” 두 전문가는 호랑이의 상태가 예민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두 사건을 두고 동물원의 관리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1909년 창경원을 시작으로 100년 넘는 국내 동물원의 역사에서, 동물원의 동물은 동물원 자체 규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관리돼왔다. 지방자치단체, 민간 등 운영주체에 따라 다른 법률에 근거하고 있는 것도 동물원 관리를 어렵게 하고 있다. <한겨레>는 사고 발생 전인 지난달 1일 ‘국내 동물원 동물의 개체수 증감’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를 했지만 20일 가까이를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문화관광부 사이를 표류하다 답변할 수 없다는 내용의 통보를 받기도 했다.
동물보호단체와 전문가들은 ‘동물원법’에 주목한다. 지난 9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의원(민주당)이 발의한 동물원법 법안은 해당 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문화체육관광부·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등 관계 부처들은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나 환경부가 총괄 관리하는 법안 내용을 두고 불편함을 내비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원법은 동물원 허가제 실시, 환경부에 동물원 감시권한 부여, 정부가 동물원 종별로 사육환경 기준 마련, 동물원 사용 부적합 동물에 대해 환경부 장관의 고시 의무화, 동물원 동물 질병 및 폐사 현황 보고 의무화 등을 담고 있다.
동물원 운영이 관람객 중심에서 동물과 사육사의 안전을 우선 고려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약 5000㎡ 크기의 서울대공원 백두산호랑이숲은 관람객이 좀더 잘 관람할 수 있도록 이중, 측면, 근접관람으로 지어지고 있다. 그러나 동물의 번식 계획이나 안전시설에 대한 대책은 따로 없다.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이항 교수는 “외국의 동물원들은 ‘기관 종 수집 계획’을 세워 개체수를 조절해가며 그 동물의 전시 목적과 이유를 분명히 한다. 또 사육사가 다치는 사고가 난다면 동물은 사살될 확률이 높고, 그런 상황이라면 관람객도 위험해지기 때문에 세 주체의 안전은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사육사의 안전을 1순위로 둔다”며 서울대공원의 변화를 촉구했다.
제주 과천/최우리 기자, 과천/윤형중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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