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성씨의 동생 유가려씨가 14일 중국 길림성 용정시 인근 산에 올라 자신의 고향인 북한 회령시와 두만강 일대를 돌아보고 있다. 유씨는 자신이 국가정보원에서 진술한 뱀골초소 쪽 두만강 지역을 가리키며 “여자가 혼자 도강하기에는 수심이 깊다”고 설명했다. 유씨는 ‘국정원의 강요로 간첩행위를 한 것처럼 허위자백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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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특징 / 서울시공무원간첩사건, 유가려를 만나다
▶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항소심이 진행중입니다. 유우성(전 서울시 공무원)씨의 동생 유가려씨가 올해 초 ‘국가정보원에서 고문받아 오빠가 간첩이라고 허위자백했다’고 주장한 사건입니다. 비공개로 재판이 진행돼 고문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한겨레>가 중국으로 가 유씨의 증언을 직접 듣고 왔습니다. 현지 취재를 통해 검찰 주장의 이상한 점들도 새로 발견하고 왔습니다. 증거조작 논란이 다시 일고 있습니다. 검찰이 유우성(33·전 서울시 공무원)씨의 간첩 혐의를 입증하겠다며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가 조작됐다는 논란과 관련해(<한겨레> 7일치 11면 참조) <한겨레> 취재결과 조작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이 추가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 검찰은 유우성씨의 출입경기록을 입수해 지난달 법원에 제출했다. 그 기록에는 2006년 6월 이후 오빠가 북한에 한차례 방문한 것처럼 돼 있다. 검찰이 낸 증거를 보면 유씨는 계속 북한에 드나든 것처럼 보인다. 반면, 유우성씨는 2004년 3월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뒤 어머니 장례를 치르려 사흘간 북한에 머물렀던 2006년 5월을 제외하고는 다시 북한에 간 적이 없다며 맞서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최성남)는 또 지난 5일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윤성원)에 중국 화룡시 공안국이 지난달 보내온 공문을 제출했다. ‘화룡시 공안국이 유씨의 북한 출입경기록(출입국기록)을 발급했음을 확인한다’는 내용이었다. 변호인단이 유씨의 출입경기록이 조작됐다고 주장한 데 대한 반박자료였다. 위조 의심에도 “맞다”고만 말하는 검찰 먼저, 왜 검찰이 화룡시 공안국으로부터 출입경기록을 발급받았는지가 의문이다. 유우성씨의 중국 소재지는 중국 길림(지린)성 연길시(옌지시·조선족 자치주)로 되어 있다. 북한을 드나들 때 이용했다고 검찰이 주장하는 삼합 세관(출입국 사무소)은 길림성 용정시 관리 구역이다. 화룡시가 북한 국경과 맞닿아 있는 것은 사실이나 유우성씨 사건을 위해 선양 영사관이 화룡시 공안국을 접촉한 이유가 소명되지 않는다. 서울 강남구 거주자의 형사 사건 조사를 위해 중국 정부가 송파 경찰서에 요청해 강남구 거주자의 기록을 발급받고, 송파서는 이를 증명하는 공문까지 내어준 격이다. 검찰은 ‘화룡시 공안국 확인 공문’과 함께 11월1일 제출했던 유씨의 출입경기록도 한번 더 재판부에 제출했다. 그런데 11월1일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유씨의 중국-북한 출입경기록과 12월5일 한번 더 제출한 출입경기록에 미세한 차이가 발견됐다. 두 기록에는 모두 서류 왼쪽 상단에 화룡시 공안국 도장을 상징하는 ‘별 도장’이 찍혀 있다. 그러나 11월1일 제출된 서류에는 서류 왼쪽 위 중국(中國)이라는 글자에 겹치도록 별 그림이 찍혀 있는 반면 12월5일 제출된 서류에는 별 그림이 중국(中國) 글자 윗 부분에 찍혀 있다. 유우성씨 간첩혐의 증거로검찰이 제시한 출입국기록과
화룡시 공안국의 발급확인서
검찰이 제출한 중국 문서의
추가조작 정황이 드러났다 오빠가 간첩이라고 국정원에
허위 자백했다 밝힌 유가려씨는
중국서 반박 자료를 찾아다녔다
“검찰에 간첩 아니라고 했지만
진술 번복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변호인단은 검찰이 화룡시 공안국의 도장까지 위조해, 역시 또한 위조가 의심되는 출입경기록에 도장을 찍어 재판부에 제출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출입경기록뿐 아니라 ‘유우성 출입경기록을 발급한 게 맞다’고 밝힌 화룡시 공안국의 공문도 위조 의심을 받고 있다. 검찰은 5일·13일 두차례 이 공문을 반복해 재판부에 제출했는데 공문 위에 적힌 팩스 번호가 서로 다르게 찍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3일 제출된 공문은 작은 글씨로 ‘04334223692’라고 팩스 번호가 써 있는데, 5일 공문에는 ‘96802000’라고 써 있다. 13일 문서에 찍힌 팩스 번호는 화룡시 지역 번호가 맞지만 5일 문서의 팩스 번호는 선양 지역 번호로 추정된다. 같은 공문에 두개의 다른 팩스 번호가 찍힌 것도 이상하지만, 길림성 소재 화룡시 공안국이 비행기로 한시간 거리인 랴오닝성 선양시에까지 와서 선양 한국 영사관 팩스로 공문을 부쳤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검찰은 중국 주재 선양 영사관을 통해 화룡시 공안국으로부터 공문서를 받아 재판부에 제출했다. 선양 영사관은 공문으로 ‘중국 길림성에 2006년 이후 유우성씨의 출입경기록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재판부에 제출된 화룡시 공안국 발급 유우성씨 출입경기록은 2001~2006년까지의 기록이다. 선양영사관의 요구사항과는 정반대의 출입경기록을 화룡시 공안국이 보냈다는 것이어서 이 점 역시 의문이다. 출입경기록 뒷면에 적힌 ‘화룡시 공안국 출입국 관리과’ 명의도 이상하다. <한겨레>가 16일 직접 화룡시 공안국을 방문했지만 이곳의 명칭은 ‘출입국 관리대대’로 확인됐다. 공안국 출입국 관리과가 공식 명칭을 잘못 적어 선양 영사관에 기록을 발급했다는 것 역시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 화룡시 공안국 관계자는 <한겨레>에 “우리가 발급한 적 없는 서류다. 위조 같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화룡시 공안국 발급 공문서가 맞다”는 설명 외에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20일 오후 서울 고등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는 이 부분이 부각됐다. 재판부(재판장 윤성원)는 변호인단의 요청을 받아들여 검찰에 내년 1월17일까지 ‘화룡시 공안국과 문서를 주고받은 한국 직원 등에 대해 증인신문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전기 고문실로 끌고 가려 했어요” <한겨레>는 12~17일 연길시를 방문해 유우성씨의 여동생 유가려(26)씨를 만났다. 그는 한국 검찰에 대한 반박자료를 찾기 위해 중국 현지에서 동분서주하고 있다. 유씨는 7월3일 중국으로 추방당해 연길에서 아버지와 함께 지내왔다. 유가려씨는 국정원에서 고문받은 뒤 ‘오빠가 간첩이라고 국정원에서 허위 자백했다’고 폭로한 이다. 국정원은 지난 1월 유우성씨를 체포했지만 7개월 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1부(이범균 재판장)는 무죄 판결했다. 동생 유씨가 국정원에서 한 진술을 재판 도중 뒤집은 것이 크게 작용했다. 이 사건은 화교 남매 간첩사건 또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으로 불린다. 국정원이 참고인을 가혹하게 다뤄 허위자백을 강요했다는 폭로로 세상은 시끄러웠지만(<한겨레> 9월7일치 14면 참조) 국정원에서 유씨가 고문받은 상세한 내용은 재판이 비공개로 진행돼 외부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원심 재판부는 고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유가려씨는 좀더 자세한 내용을 폭로했다. 유씨가 중국으로 추방된 뒤 한국 언론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정원 직원이 제 눈에 띄면 죽이고 싶다는 느낌이 들어요. 어떻게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런 짓을 할 수 있지요?” 유가려씨는 국정원 수사관들이 지금도 증오스럽다. 기자를 만나 분노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들 남매는 정확히는 중국 국적의 화교였다. 할아버지가 일제 강점기 때 북한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중국인이었고 일제가 패망한 뒤 가족들은 북한 땅에 정착했다. 유우성 남매 모두 북한에서 나고 자랐다. 화교이지만 조선인 정체성을 가졌다. 독재국가인 북한도 싫었지만 중국에서 살기도 어려웠다. 유가려씨는 오빠처럼 화교 신분이 아닌 북한 국적자로 위장해 지난해 가을 한국으로 왔다. 이름은 유광옥으로 새로 지었다. 유가려씨는 제주공항에서 국정원에 바로 탈북자로 신고한 뒤 경기도 합동신문센터로 보내졌다. 유가려씨가 합동신문센터에 들어간 뒤 일주일째 되던 날이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아줌마 수사관’(국정원에서 알려준 이름)이 유씨를 조사실로 불러냈다. 서류뭉치를 유씨에게 던지며 화를 냈다. “너 진짜 광옥이 맞아? 너가 광옥이가 아니란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그때부터 폭행이 시작됐다. “대머리 수사관과 아줌마 수사관이 저를 주로 조사했어요. 번갈아가면서 저를 때렸어요. 아줌마가 저를 너무 때려서 손이 빨갛게 되면 대머리 수사관으로 바꾸어서 때렸어요.” 화교 신분을 속였으니 국정원의 추궁이 처음에는 이해될 법도 했다. 유가려씨는 결국 11월5일께 ‘오빠랑 함께 한국 국적을 얻어 살고 싶어 화교라고 거짓말했다’고 자백했다. 실제 한국에는 재북 화교들이 북한을 나온 뒤 한국 국적을 얻어 살고 있는 사례가 왕왕 있다. 그런데 국정원은 화교라는 자백을 받아낸 뒤 유가려씨와 오빠 유우성씨 모두 북한 보위부가 보낸 간첩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제가 화교라고 자백하고 며칠 뒤였어요. 아줌마 수사관이 부르더니 ‘네 오빠가 탈북자 정보 같은 기밀을 넘겨주고 하지 않았냐’고 물었어요. 저는 깜짝 놀라서 ‘그건 절대 아니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오빠가 스스로 간첩이 맞다고 이미 인정을 했다는 거예요. 너무 놀라웠어요.” 유가려씨는 오빠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국정원의 설명을 믿을 수가 없었다. 국정원은 ‘오빠가 조사를 받고 있어서 안 된다’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오빠는 국정원에 2013년 1월10일이 되어서야 연행됐다. 유씨는 중국에 있는 아버지에게 연락해달라고 부탁했다. 거절당했다. 수사관의 폭행 수위는 점점 심해졌다. 유씨는 조사실의 구조와 수사관이 앉아 있던 위치 등을 종이에 상세하게 그려가며 자신이 겪었던 폭행 순간을 증언했다. “조사실 들어가면 책상 두개가 있어요. 하나는 제가 앉고 하나는 대머리 수사관과 아줌마 수사관이 앉아요. 조사하다가 제가 ‘간첩 아니다’고 말하면 다가와서 일으켜 세워요. 주먹으로 때리거나 뺨을 때려요.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기도 해요. 아줌마 수사관은 뺨을 때리거나 제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어요. 너무 맞아서 바닥에 쓰러져 있다가 벽을 짚고 겨우 일어날 때가 많았어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제게 집어 던져요. 공포감에 온몸이 ‘트드드드’ 떨려요.” “조사실에는 카메라가 있는 방과 없는 방이 있는데 어떤 때는 카메라가 없는 방으로 데려가 욕을 하면서 때렸어요. 모두 4층에 있는데 카메라 방은 끝에 있고 (카메라 없는) 조사실은 몇 미터 떨어져 있어요. 거의 맞지 않는 날이 없어요. 원하는 (진술) 문장 하나를 만들려고 며칠을 그렇게 보내요.” 유가려씨는 전기고문실이라고 불리는 방에 끌려가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비교적 담담하게 인터뷰를 이어가던 유가려씨는 이 부분에서 눈물을 계속 흘렸다. 유씨가 힘들어해 질문을 멈추고 쉬기를 반복해야 했다. “어느 날은 저를 전기고문실로 끌고 가려 했어요. 아줌마 수사관과 대머리 수사관이 전기 고문실이라고 했어요. 저는 너무 무서워서 안 가겠다고 버텼어요. 수사관들은 저를 바닥에 질질 끌면서 억지로 끌고 갔어요. 결국 어떤 문 앞에 다다랐고 저는 그 문 앞에 앉아서 온 힘을 다해 버텼어요. 한참을 그렇게 실랑이를 한 끝에 그곳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었어요.” “전기고문을 하는 대신 수사관들은 제 가슴과 등에 ‘화교 유가려’라고 큰 종이를 붙였어요. ‘말 안 들으니까 망신 주겠다’고 했어요. 저를 합동신문센터 청사 앞에 세워놨어요. 다른 탈북자들이 몽땅 내려와서 저를 구경했어요. 수사관들은 저를 ‘나쁜 년’이라고 말하면서 얼굴을 자세히 보라고 했어요. 너무 창피해서 저는 고개를 푹 숙였어요.” 국정원의 가혹한 수사 과정에 괴로워하던 유씨는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유가려씨가 국정원에서 증언한 오빠와 자신의 간첩 행위 내용은 무척 구체적이다. 실제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진술들로 채워져 있다. 그는 100여장의 자필진술서를 썼다. 검찰은 ‘본인이 직접 알고 있지 않으면 이렇게 세세한 내용을 쓸 수 없다면서, 유씨가 재판 도중 자신의 주장을 번복했다 하더라도 국정원에서 한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해선 안 된다’고 재판부에 주장하고 있다. 유가려씨는 국정원에서 한 진술들이 수사관들이 써야 할 문장들을 며칠에 걸쳐 하나하나 외워서 쓰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수사관이 오빠가 북한에 들어온 날짜라는 것들을 칠판에 써요. 2006월 6월이나 2007년 8월을 쓰고 ‘이때 이때 네 오빠가 북한에 들어갔다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저를 설득해요. 저는 인정을 안 하죠. 안 하는 게 아니라 할 수가 없지요. 사실이 아닌데. 그러면 수사관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을 제가 할 때까지 질문을 멈추지 않아요.” “매일 숙제 내듯이 백장씩 외운 것을 쓰게 하기도 했어요. 진술서를 실제 쓸 때는 먼저 문답지를 정리해서 만든 대본을 프린트해서 옆에 두고 그것을 베끼게 했어요.” “제가 탈북자 명단을 서류로 건네줬다고 진술하니까 대머리 수사관은 유에스비(USB) 파일 아니냐고 하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진술이 완성되어 갔어요. 또 보위부와의 비밀 연락방법,인사말, 연락처, 가명 등도 어떻게 만들게 됐는지 이런 것들 모두 국정원이 알려준 거예요.” 유가려씨는 ‘북한 보위부에서 공작원 교육을 받을 때 첫날은 반탐부부장으로부터 사상무장 교육을 받고, 다음날은 혁명과업을 수행하는 공작원에 대한 영상물을 보고 감상문을 제출하였고, 마지막날에는 김일성·김정일·김정숙의 초상화 앞에서 충성 맹세를 했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대머리 수사관이 알려줬던 것으로 기억해요. 제가 나중에 말 몇개 더 집어넣은 것도 있지만 전체적인 틀은 거기서 만들어주어요.” 변호사의 면회신청 막은 국정원 유가려씨는 국정원에서 ‘오빠가 2006년 5월 말 보위부에 설득돼 남파 간첩이 된 뒤 중국으로 나간 때’와 관련해 “오빠가 두만강을 도강해 북한으로 왔다가 2006년 6월 초 삼합 세관으로 통행증을 갖고 중국으로 나갔다”고 진술했다. 이는 유우성씨 출입경기록과 논리적으로 일치하는 진술이다. 검찰은 이것을 ‘국정원에서 한 유씨의 진술이 사실이다’는 증거로 설명하고 있다. 유가려씨는 이 진술도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머리 수사관이 이때 이때 너희 오빠가 중국으로 들어갔다고 칠판에 설명해주고 이때는 이렇게 들어간 거 같다고 말해줬어요. 처음에는 대머리 수사관도 좀 오락가락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모두 통행증을 갖고 세관을 통해 북한을 왕래했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북한 들어갈 때는 두만강을 도강해 들어간 것으로 정리했어요.” 조사를 받으면서 수시로 폭행당했다면 몸에 멍자국이 있을 것이고 유씨가 병원 진료를 받을 때 폭행은 금방 드러났을 것이다. 유씨는 조사 도중 몸이 아파 국정원 수사관이 병원에 데려가 진료를 한 적이 있다. 검찰은 항소이유서에 ‘유가려의 진료기록을 보아도 폭행을 당하였음을 인식할 수 있는 상처나 멍을 발견한 사실이 없어 유가려의 폭행·협박 주장이 사실무근이다’고 주장했다. 유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화룡공안국 출입경관리대대장은
검찰이 낸 발급확인서 보고
“정식 공문과 양식도 다르고
이런 공문을 발급한 적 없다
문서를 위조한 것 같다” 밝혀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자료에는
2006년 6월10일 오후 3시17분
유우성씨가 삼합세관을 통해
북에서 중국으로 왔다고 했지만
세관은 토요일 오후엔 문 닫는다 “병원에 가도 진료만 받았지 제 몸을 의사가 살펴본 적이 없어요. 국정원 수사관이 옆에서 지켜보고 서 있기 때문에 제가 맞아서 멍들었다고 얘기도 할 수 없어요. 의사는 ‘제가 가슴이 아프다’고 말하면 ‘여기 오는 탈북자들 모두 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찾아오는데 약 먹으면 된다. 젊은 사람이 무슨 병이 이렇게 많냐’면서 가볍게 여겼어요.” 수사관들은 때리다가 안 되면 회유·압박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오빠가 간첩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오빠를 장기간 교도소에 보내버린다고 하고, 간첩이라고 말하면 남한에서 김현희처럼 편하게 살게 해준다고 했다고 한다. 유가려씨는 ‘1년 정도 감옥에서 고생하면 남한에서 오빠와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저는 김현희(대한항공 858기 폭파범)가 누구인지도 몰랐어요. 수사관들이 김현희 얘기를 하면서, 남한에 침투한 사람인데 선거 전날인지 비행기 밑에다 폭탄장치를 놓아서 사람들 몽땅 죽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자기가 잘못을 반성하고 하니까 교화(감옥)도 안 가고 (한국 정부가) 여기서 잘 살게끔 모든 것을 조처해주었다고 하는 겁니다.” ‘오빠가 간첩이라고 말하면 서울시 공무원도 잘리게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냐’고 묻자 유씨는 이렇게 답했다. “어차피 오빠가 (탈북자 아닌) 화교인 게 밝혀졌으니 서울시에서 더 근무 못한다고 했어요. 또 2년 지나면 계약직에서 정규직 되는데 ‘네 오빠를 우리가 가만 놔둘 것 같냐. 어떻게 해서든지 막을 거다’고 했어요. 그래서 오빠를 일단 감옥에 가는 것만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해 간첩이라고 진술했어요.” 또 이상한 점은 국정원의 ‘허위 자백 강요’와 ‘고문 수사’ 사실이 왜 검찰의 보강 수사 단계에서 밝혀지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유씨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검찰 조사실에서 저는 오빠가 간첩이 아니라고 진술을 번복한 적 있어요. 그러자 검사님이 제 말을 끊고 저를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갔어요. 저에게 ‘이렇게 말하면 큰 실수하는 거다. 진술을 번복하는 것은 간첩죄보다 더 큰 죄다’고 말하면서 국정원에서 했던 방향으로 진술을 계속하게 했어요.” 국정원은 유씨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과 접촉을 못하도록 막았다고 한다. 민변 변호사들은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 머물던 유씨의 면회 신청을 했지만 만나지 못했다. “저는 변호사가 뭐하는 사람들인지 몰랐어요. 그런데 민변 변호사들이 자꾸 찾아오니까 처음에는 국정원이 말도 안 해주다가 나중에는 큰삼촌 수사관이 ‘민변 변호사들은 돈만 받고 도망친다. 한국에서는 검사가 변호사 역할을 한다. 변호사 선임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어요.” 유가려씨의 이런 증언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큰 문제다. 유씨의 조사를 맡았던 큰삼촌 수사관(50대 후반), 아줌마 수사관(50대 초반), 대머리 수사관(40대 후반)은 모두 형사처벌 대상일 수 있다. 형법 124조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 4조의 2 내용을 종합하면 ‘검찰·경찰 인신 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보조하는 자가 그 직권을 남용해 사람을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황필규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는 “고문 의혹 당사자인 국정원 수사관들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의 수사가 필요하고, 국회 차원에서 합동신문센터에 대한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화룡시 공안국·삼합세관 찾은 유가려씨 국정원은 유씨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국정원은 18일 <한겨레>에 보낸 서면답변서에서 “원심 재판부도 ‘유씨가 가혹행위를 당하거나 회유를 받지 아니한 상태에서 자유롭게 진술을 하였던 사실이 넉넉히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국정원 수사관들도 직접 법정에 출석해 회유·협박·폭행이 없었다고 증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가혹 행위를 당했다는 주장은 유가려씨 외 다른 탈북자들에게서도 들을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탈북자는 “국정원의 설명은 거짓말이다. 합동신문센터에서 맞아서 척추를 다쳐 하반신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탈북자를 돕는 한 인권단체 관계자는 “원하는 말을 해주지 않으면 국정원 수사관이 욕을 하면서 모욕을 주고, 옷을 벗기거나 하루 종일 벽 보고 서 있게 하는 등 고문을 했다는 말을 내가 돌보던 탈북자로부터 올해 봄 전해 들었다. 외운 대로 진술서를 쓰지 않으면 잠을 안 재운다고도 했다”고 증언했다. 유가려씨는 14일 토요일 오후 기자를 두만강이 흐르는 중국 용정시 삼합 세관(중국 쪽 출입국관리소) 인근으로 안내했다. 연길시에서 한시간 반 정도 차를 타고 달리자 두만강이 보였다. 두만강 곳곳에 철조망이 있어 강가로 내려가볼 수는 없었다. 삼합 세관은 토요일 오후에는 운영을 하지 않았다. 정문 앞으로 가자 공안이 막아섰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오전 8시30분에서 오후 5시30분까지, 토요일은 오전 11시30분까지만 운영한다고 공안은 설명했다.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출입경기록에는 ‘유우성씨가 삼합 세관을 이용해 2006년 6월10일 토요일 오후 3시17분 북한에서 중국으로 들어왔다’고 돼 있다. 검찰의 오류가 새로 확인됐다. 두만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삼합 지역의 어느 산 정상을 올랐다. 북한 쪽 출입국관리소인 회령 교두 건물과 중국이 연결된 다리가 보였다. 너비 400m가량의 두만강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유가려씨가 두만강을 도강할 때 지났다는 북한 쪽 ‘뱀골초소’도 보였다. “모두 만들어진 진술이에요. 저쪽 두만강 뱀골초소 쪽(강 상류)을 보세요. 강물이 좀더 깊지요? 하지만 반대쪽(강 하류)을 보세요. 이런저런 발 디딜 곳들(삼각지 등의 퇴적층)이 있고 물도 얕지요? 키가 저만한 (약 160㎝) 사람이 도강을 하려면 어느 쪽을 이용해야 할까요. 저는 국정원이 뱀골초소를 알려주어 그쪽으로 도강했다고 말했어요.” 16일 오후 화룡시 공안국을 다시 찾았다. 진런펑 출입경관리대대장에게 검찰이 재판부에 13일 제출한 화룡시 공안국 공문을 보였다. 공문에는 ‘화룡시 공안국은 출입경기록 조회 결과를 발급하였음을 확인해드리는 바입니다.(2013년 11월27일)’라고 적혀 있고 화룡시 공안국 도장도 찍혀 있었다. 진런펑 대장은 이 공문을 보고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화룡시 공안국 정식 공문과 양식도 다르고, 우리는 이런 공문을 발급한 적도 없다. (한국 검찰이) 문서를 위조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진런펑 대장은 검찰이 화룡시 공안국으로부터 받았다고 설명하는 유우성씨 출입경기록에 찍힌 ‘화룡시 공안국 출입국관리과’ 명의의 도장도 이상하다고 설명했다. 진런펑 대장은 “정식 명칭은 ‘출입국 관리대대’이다. ‘출입국 관리과’라고 찍힌 이 도장은 우리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유가려씨는 화룡시 공안국의 입장, 삼합 세관에 들러 확인한 출입경기록의 오류 사실 등을 변호인단에 알렸다. 유우성씨 아버지 유진룡씨는 기자를 만나 화를 냈다. “국정원은 한번도 저를 찾아온 적이 없어요. 우리 아들이 간첩이라고 확신한다면 내게는 한번쯤 와서 확인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한국 국민들은 국정원 말은 무조건 믿는 건가요? 거기는 법도 없나요?” 아버지 옆에 앉아 있던 유가려씨는 오랫동안 머리를 감싸고 아픈 표정을 지었다. 연길(중국)/글·사진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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