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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3.14 19:35 수정 : 2014.03.24 18:40

2013년 7월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회원들과 일본 시민운동가들이 한국 정부의 산업 폐수 해양투기 연장 시도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토요판] 특집
해양투기 26년사

1960년대 후반, 북유럽 국가들을 끼고 있는 발트해에서 1급 발암물질 비소가 고농도로 검출되어 큰 논란이 되었다. 인접 국가들이 버린 폐기물 해양투기가 원인이었다. 당시 세계 곳곳에서 해양투기가 행해졌고 심지어 폐기물을 배에서 소각하여 바다에 버리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바다에 버려진 공장 폐수에 의해 수산물이 오염되어 미나마타병이라는 공해병 사건이 발생했다. 이 시기는 레이철 카슨이 쓴 책 <침묵의 봄>이 발간되어 살충제와 화학물질의 위험성에 대한 공감이 광범위하게 이뤄지던 때였다. 1972년 국제사회는 스웨덴의 스톡홀롬에 모여 유엔 인간환경회의를 열고 ‘하나뿐인 지구’라는 슬로건을 채택했고 폐기물의 해양투기를 규제하는 런던협약을 체결했다.

한국에서는 1960년대 말부터 조미료나 수산물을 가공하는 공장들이 자체 선박을 이용하여 폐기물을 가까운 바다에 버렸다. 1980년대 말까지 아무런 통제 없이 매년 30만~50만t 규모로 해양투기가 이루어졌다. 정부는 1988년에 가서야 해양투기량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했다. 동해 두 곳과 서해 한 곳을 배출해역으로 지정하고 가축분뇨, 하수오니, 분뇨, 산업폐수 등을 투기하도록 했다. 1988년 55만2000t 이후 2005년까지 18년 동안 해양투기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2005년 992만9000t에 이르렀는데, 이는 1988년보다 18배나 증가한 양이다. 1988년 배출량을 기준으로 매년 100%씩 증가한 것이다.

환경부의 해양환경 관리 업무
해양수산부로 이관됐지만
해수부는 해양투기 방치하고
환경부는 해양투기 부채질

해양투기량이 해마다 증가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육지환경 관리에 치우쳐 해양환경을 도외시한 정부의 해양정책 때문이다. 어민사회의 낮은 환경인식과 바다생태계 보호에 관심을 보이지 않은 환경운동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가장 결정적인 정책적 실수는 1990년대 취해진 수도권 매립지의 하수오니 직매립 금지 조치로 인한 풍선효과였다.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삐져나오는 현상처럼, 육지에서 처리되어야 할 폐기물들이 고스란히 바다에 버려졌다.

1993년 김포 수도권 매립지에서 폐수 매립으로 인한 침출수와 악취공해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자 지역주민들이 폐기물 반입금지 조치를 취해 크게 사회문제화됐다. 환경부는 1997년 하수오니의 직매립 금지를 선언하고 2003년부터 시행했다.

문제는 직매립 금지에 따른 후속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자치단체와 기업 등 폐기물 발생원으로 하여금 발생량 자체를 줄이고 발생한 폐기물은 건조 및 재활용의 방법으로 처리되도록 행정적, 기술적 지원을 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니 처리 비용이 저렴하고 손쉬운 해양투기로 집중되었다. 매립지의 침출수 문제가 사회문제화된 1993년의 하수오니 해양투기 비율이 11.2%였는데, 직매립 금지가 시행되기 직전 해인 2002년의 하수오니 해양투기 비율은 73.2%로 치솟았다. 1996년 해양수산부가 신설되고 환경부에 있던 해양환경 관리 업무가 해양수산부로 이관되었지만, 해양수산부는 육상 폐기물의 해양투기 증가 현상을 막지 않고 바다가 점점 큰 쓰레기처리장화되는 추세를 방치했다. 해양환경 업무 책임에서 벗어난 환경부는 폐기물 해양투기를 부채질했고 사회는 이러한 현상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1977년 ‘해양오염방지법’, 1987년 ‘폐기물관리법’이 제정되었지만 이 법들은 폐기물의 해양투기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해양투기가 가능한 폐기물의 종류를 지정하고 있어 사실상 해양투기를 허용하는 제도적 장치로 작용했다. 한국 정부가 런던협약에 가입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1992년에 알려진 러시아의 핵폐기물 동해 해양투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지 국내 해양투기 문제를 제어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 정부는 2009년에 런던협약의 내용을 좀더 강화한 런던의정서에도 가입했지만 이후에도 해양투기를 계속했다.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국제협약의 규제 기한이 다할 때까지 끝까지 투기를 계속하고, 예외조항을 악용하여 투기 행위를 계속하는 나라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이다.

유기성 폐기물 외에 핵폐기물도 바다에 버렸다. 1968년부터 1972년까지 원자력연구소가 울릉도 서남쪽 바다에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115개 드럼(45t)을 버린 사실이 1997년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러시아도 핵폐기물을 동해에 해양투기했는데 이 사실은 1992년 그린피스 캠페인 선박이 동해에 나타나 폭로함으로써 밝혀졌다.

2005년 해양투기량이 1000만t에 육박하고 당시 동해바다에서 잡힌 홍게에서 돼지털과 사람의 머리카락이 검출되는 등 해양투기로 인한 폐해가 부메랑이 되어 식탁에 오르는 사태가 발생했다. 환경단체와 어민들이 항의하기 시작했고 정부는 ‘해양투기 저감 중장기 계획’을 발표했다. 2006년 폐산·폐알카리, 하수준설물 배출 금지, 2012년 하수오니와 가축분뇨의 배출금지, 2013년 음식 폐기물과 분뇨의 배출이 금지되었지만 가장 오염과 독성이 강한 산업 폐기물의 해양 배출은 계속 허용되었다. 어민사회의 반발에 대해 정부는 투기해역에서의 어업권을 보상한 뒤 조업행위를 금지하고 해양투기는 계속하도록 했다.

노무현 정부의 해양수산부는 2005년부터 매년 해양투기량을 100만t씩 줄여나가겠다고 약속했는데 이 정책은 해양수산부를 없앴던 이명박 정부에서도 계속 지켜졌다. 2012년 말 국무회의는 ‘육상 폐기물 해상투기 제로화 계획’을 의결한 뒤 2014년부터 해양투기를 종결하겠다고 발표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해양강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하며 해양수산부를 부활시켰다. 2013년도에 버려진 해양투기량은 116만t. 애초 약속했던 양보다 많지만 더이상 해양투기를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지키면 대한민국은 세계 유일의 해양투기 국가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이전 정부가 공언한 해양투기 금지 약속을 뒤엎었다. 폐수를 육상에서 처리할 준비가 아직 안 된 기업들은 계속 버릴 수 있다는 예외조항에 근거하여 2014년에도 해양투기를 계속할 기업을 신청받았다. 문제의 조항은 비용 때문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육상처리가 불가한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육상 폐기물을 바다에 버리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한국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이란 구호를 내걸고 ‘독도는 우리 땅, 일본해가 아닌 동해’라고 주장할 자격이 있는 걸까?

최예용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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