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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16 18:56 수정 : 2014.05.19 13:51

공기 공급 호스를 문 민간잠수사들이 4월24일 전남 진도군 병풍도 세월호 침몰 해상에서 수색을 위해 바다로 뛰어들고 있다. 2006년부터 민영화 바람을 타던 수난구호는 2012년 해양경찰 산하 법정단체인 한국해양구조협회가 만들어지면서 민간업체의 구조 참여가 확대됐다. 연합뉴스

수난구호 민영화 시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헌법 34조 6항이 규정한 국가의 역할이다. 그러나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 국가의 역할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많아졌다. 깨진 창문 틈 사이로 살려달라는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은 해양경찰, 종잇조각이 된 국가 위기 관리 매뉴얼, 산 사람이 아닌 주검을 인양하는 정부의 늑장 대응, 해경 산하 법정단체이자 민간단체인 한국해양구조협회 소속으로 구조에 뛰어들었으나 시신 발견 실적을 부풀리려는 업체를 보며 ‘국가가 재난에 빠진 나를 구조해 줄 것인가’라는 자괴감에 빠져든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새롭게 드러난 것이 재해 예방과 구조의 민영화 과정이 어느새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최소한의 국가 역할이 민간으로 이양된 것이다. 국가 경찰이 도둑과 살인자를 잡지 않아 민간업체 세콤을 불러야 한다면, 화재가 났을 때 소방서 대신 화재보험회사에 연락을 해야 한다면 어떨까. 사회는 국가 부재를 넘어 인간의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채워질 것이다. 국민 보호와 안전 업무의 민영화는 공동체로서의 국가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가의 생명 보호마저 효율성과 비용 문제로 민간에 떠넘기는 것은 국가의 역할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2006년 수난구호 허가제를 신고제로

수난구호법 개정의 역사는 ‘국민 안전’이라는 공적 영역이 어떻게 민영화되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해양경찰과의 유착 의혹이 일고 있는 민간단체 한국해양구조협회는 2012년 수난구호법 개정으로 설립됐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수난구호법은 민영화 바람을 타고 있었다. 2006년 수난 구호 허가제를 신고제로 풀어주고 자격 제도도 없앴다. 선박안전법 16조(선박의 구난)는 “선박을 구난하고자 하는 자는 일정한 기준의 인력·장비 및 선박 구난 시설을 갖추고 해양경찰서장으로부터 1, 2, 3급의 선박구난자격증을 교부받아 선박구난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한다”고 돼 있었다. 그러나 선박안전법 16조를 폐지하고 수난구호법 16조를 신설해 구난 업체가 관할 해양경찰서장에게 통보만 하면 구난 작업을 할 수 있게 완화됐다. 해양경찰청은 2006년 8월 ‘수난구호법 중 일부개정법률안 신설강화규제 심사안’에서 “구난자격제도 폐지로 누구든지 선박 등을 구난할 수 있도록 하고 구난 작업에 필요한 인력·시설·장비를 동원함으로 평소 인력 및 장비 등에 대한 유지 보수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하여 구난 업자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덜어 주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앞서 1999년에는 100톤 미만 소형 선박에 대한 자격증 구비 의무를 풀어줬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999년 <해양경찰청 규제개혁 평가> 보고서를 통해 “소형 선박의 경우, 선박 구난 및 선박 해체 시 자격증 의무를 폐지하고 자격증 유효기간 폐지 및 대물성격인 선박 해체 자격증 및 선박 구난 자격증의 양도와 대여 금지 제도를 폐지함으로써 사업 진입을 용이하게 하여 해양오염의 방지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하였다”고 설명한다.

2012년 수난구호법 개정은 민과 관의 필요에 의한 합작품이다. 해경은 적은 비용으로 큰 구조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으로 민간업체들을 해경 산하 법정단체로 만들었다. 해양경찰청은 해양구조협회의 법인 설립에 앞서 타당성 여부를 위한 연구 용역 보고서를 한국해양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했다. 그런데 이 연구를 책임진 해양대 윤종휘 교수는 현재 한국해양구조협회 부총재를 맡고 있다. 평가에 객관성이 결여된 것이다. 이 보고서는 한국해양구조협회 설립의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해상수색 구조 주도 기관인 해양경찰은 해상치안, 해양안전, 해상보안 및 해양환경 보호 등 다중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모든 자원을 해상 조난 사고 대응에 투입할 수 없어 인명 및 재산보호에 한계가 있다. 민간자율구조단의 지원과 협조가 요구된다. 민간해양구조대도 1인 1회 출동수당 금액을 순경 3호봉 봉급월액을 30으로 나눈 금액으로 산정해야 한다.”

보고서는 해수욕장 수난 구조 체계의 일환으로 협회 설립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지만, 정작 해양구조협회는 해수욕장뿐만 아니라 해수면에서의 수색구조를 지원하는 종합기관이다. 이 협회 소속인 민간업체 언딘마린인더스트리가 침몰한 세월호 수색을 주도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2012년 수난구호법 개정은
민과 관의 필요에 의한 합작품
저비용으로 구조 효과 본다며
민간업체를 해경 산하 단체로
법 개정 앞두고 의원 로비도

구난 기술 개발하지 않는 정부
2014년, 부처별 팩스와 전화로
사고 정보 공유하다 우왕좌왕
사고대비 훈련은 1시간 동안
시나리오만 읽다 연극처럼 끝난다

김진애 전 의원 향해 쓴 호소문

한국해양구조협회의 전신인 한국해양구조단은 수난구호법 개정안 통과를 앞두고 의원들에게 홍보 활동을 벌였다. 한국해양구조단은 2007년부터 해양경찰청이 위탁하는 해상 안전 및 수난 구호 업무를 해오던 터였다. 현재 한국해양구조협회 본부장을 맡은 황대식씨는 수난구호법 개정을 반대하던 김진애 전 의원을 향해 호소문을 쓰기도 했다. 다른 구조대원들도 이 글을 퍼날랐다.

“해양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합당한 수난구호 체계를 갖추려면 3만명의 인력이 충원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국가 예산과 인력의 운용 측면에서 당장 시행하기란 쉽지 않고 비효율적일 것입니다. 해경청은 민간 자율 구조선을 활용하여 함정의 유류비를 연간 약 10억원 예산 절감했습니다. 그간의 해수욕장 안전 관리만 보더라도 민관의 협력 체계 없이는 수상 안전은 무방비 사각지대에 내몰리고 방치되어 있습니다. 해양경찰관 1명의 연간 소요 예산을 대략 5000만원으로 기준한다고 할 때 이 예산으로 민간 인명 구조 봉사자들의 협력 체계에 투자한다면 많게는 200명의 구조 전문 인력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각 경찰서에는 구조 능력이 있는 구조대원 8명 정도가 배치되어 있고 구조대장과 응급처치원, 운전수 등을 제외하면 고작 5명 정도가 1개 시도의 3배 면적이 넘는 해역에 대한 인명구조를 맡고 있으니 무슨 대응이 가능하겠습니까. 현실은 이미 요구조자(현실 사정을 감안할 때 구조를 해야 하는 대상)는 익사한 후 사체 인양입니다. 실례를 들면 태안해양경찰서의 경우 관내에 비관리 해수욕장을 제외한 관리 해수욕장만 대천해수욕장을 위시하여 26개 해수욕장을 관리합니다. 고작 태안해경 구조대 8명으로 안전 관리가 가능합니까.”

한국해양구조협회 임원들은 의원들에게 기부금을 냈다. 국토해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심사가 진행되던 2010년, 강의구 한국해양구조협회 고문은 당시 법사위 소속인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에게 500만원을 기부했다. 박 의원은 “법사위원일 때는 수난구호법 개정안이 상정되지 않았고 다른 위원회로 옮긴 이후 개정안이 통과됐다”고 말했다. 법안이 통과된 뒤 2013년 이혁영 한국해양구조협회 부총재는 민주당 박지원 의원에게 500만원을 후원했다. 나종팔 한국해양구조협회 부총재는 2010년과 2012년에 걸쳐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에게 1000만원을 기부했다.

민간 구난 업체를 구조 작업에 동원하는 가운데 해양경찰은 구조 장비 예산을 줄여갔다. 2010년부터 경비함정 운항에 필요한 유류비를 제때 지급하지 못해 이듬해로 비용을 이월해 지급했고 지난해 해상종합 기동훈련을 4일에서 2일로 줄였다. 2006년부터 실시된 연안구조장비 도입 사업으로 2011년 예산 53억원이 편성됐지만 점차 줄었다. 이후 예산은 2012년 44억원, 2013년 23억원, 2014년 35억원으로 감소했다. 잠수용 전문 바지선조차 구입하지 않은 해경은 2011년에는 140억원을 들여 39만3759㎡(약 11만9000평) 규모의 골프장을 해양경찰교육원에 만들기도 했다. 현재 세월호 침몰 해역에 있는 잠수 전문 바지선 또한 민간 업체인 언딘마린인더스트리 소유다.

그렇다면 규제 완화와 민영화가 구난 업체 활성화와 구난 기술을 향상시켰을까. 2012년 한국해양과학기술협의회 공동학술대회에서 최혁진 연구원 등이 발표한 ‘국내 해양구난 기술동향 기술개발 방안’을 보면, 20개 업체 조사 결과 구난 작업 종사 기간은 평균 약 16년인 것으로 조사됐다. 주요 사업 분야는 해난 구난업보다는 수중공사 및 준설업 또는 선박 해체업을 전문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기술 축적은 어려웠다. 보유 장비도 편차가 심했다. 2013년 민간업체별 보유 장비 실태조사에서 구난 전문 선박 1곳, 바지선 8곳, 다이빙벨 2곳, 감압장비 5곳, 에어 컴프레서 13곳으로 파악됐다.

시나리오 줄줄 읽는 선박 사고 모의훈련

정부의 구난 기술 개발 또한 없었다. 1996년 해양수산부 발족 이후 해양사고 관련 연구개발이 착수됐다. 1996년 해양안전 선진화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해양안전 중장기 발전계획, 어선 해양사고 방지 중장기 발전계획, 2020 해양과학기술 로드맵 등이 발표됐지만 해양사고 예방 및 유류오염 대응을 위한 연구였다. 최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사고 선박의 구난에 특화된 연구는 아직 본격적으로 수행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민영화에 기대 민간업체 활성화를 기대했지만 업체는 제자리걸음이었고, 정부 또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지방자치단체와 각 부처들이 공유하는 전산 시스템도 없다. 해양수산부가 지난 3월 보고한 ‘지능형 해양수산 재난 정보체계 구축 제안 요청서’를 보면 “해양재난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나 위기대응을 위한 전달체계는 없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해양의 특성상 선박(관공선, 주변 선박 등) 및 지자체, 유관기관 등과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여야 하나 팩스, 전화 등으로 정보가 전달되고 있어 신속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선박 충돌사고 모의 훈련은 엉터리였다. 지난해 7월17일 해양수산부가 처음 벌인 선박 충돌사고 대비 모의 훈련은 1시간 만에 끝났다. 실전을 연상케 하는 훈련도 아니었다. 해양수산부 해사안전국장 주재로 해경청, 지방해양항만청, 항만공사, 선주협회, 선박검사기관 직원들이 종합상황실에 모여 앉아 시나리오대로 말하는 방식이었다.

국가 재난이 발생해도 구호 비용은 개인의 몫이다. 수난구호법 35조(구조된 사람 등의 인계)는 구조된 사람 등을 인계받은 지자체가 구조된 사람에게 신속히 숙소·급식·의류의 제공과 치료 등 필요한 보호조치를 취하고, 사망자를 영안실에 안치하는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수난구호법 제38조(구조된 사람의 구호 비용)를 보면, 구조된 사람에 대한 조치에 소요된 비용은 구조된 사람의 부담으로 한다고 돼 있다. 국가의 부실한 안전 관리·감독으로 사고가 나도 개인은 비용을 내야 한다. 개인이 져야 할 책임은 정확하다. 그런데, 국가의 역할은 뭘까.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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