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무엇일까. 결혼하지 않아도, 원래 형제자매가 아니어도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여성 신학자인 김애영 교수(왼쪽)와 박순경 교수는 “그렇다”고 말한다. 서로 아끼는 관계라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제지간으로 만나 20년 넘게 함께 살았다. 김 교수와 박 교수가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지난 1일 인터뷰를 하던 도중 즐겁게 웃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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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특집
▶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은 전통적인 가족 구성의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형태의 가족만 있지 않습니다. 서구 사회에서는 한부모 가족, 동성애 가족, 미혼모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한다는 것을 들어 단수형 패밀리(Family)보다는 복수형(Families)을 사용하는 추세입니다. 우리 사회에 자리잡기 시작한 ‘신가족’의 현재와 입법 과제 등을 자세하게 들여다보았습니다. 2006년 개봉한 영화 <가족의 탄생>(김태용 감독)의 이야기다. 집을 나가버린 형철(엄태웅)은 혼자 살고 있던 누나 미라(문소리)를 5년 만에 느닷없이 찾아온다. 그것도 스무살 연상녀 애인인 무신(고두심)과 함께. 셋은 같이 살게 된다. 며칠 뒤 이번에는 채현(정유미)이라는 어린 여자아이가 미라네 집 문을 두들긴다. 채현은 ‘무신의 전남편의 전부인의 딸’이다. 오갈 곳이 없어 무신을 찾아왔다. 형철이 어이없어하던 미라를 설득해 넷은 가족이 되어 산다. 미라와 무신은 채현의 엄마가 되어 채현을 키운다. 채현은 커서 아무렇지 않게 무신을 ‘엄마’라 부르고 미라에게도 ‘엄마’라고 부른다. 함께 지칭할 땐 “엄마들”이라고 부른다. 여자들만 있는 ‘콩가루 집안’(?)이지만, 영화 속 채현의 얼굴에는 구김살이 없다. 그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행복한 가정의 아이일 뿐이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이 영화는 말한다. ‘피가 섞이지 않아도 괜찮아. 엄마만 둘이어도 괜찮아.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아.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이라면 가족이 될 수 있어.’ 그러나 우리의 민법(779조)은 가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배우자, 직계혈족, 형제자매,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혈연관계가 아니면 원칙적으로 가족이 될 수 없다. 결혼을 하거나 호적을 정리해야만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법의 체계가 이러하기에 가족으로서의 여러 권리인 상속, 건강보험 부양 관계 인정, 국민연금 승계, 연말정산 세제 혜택 등은 민법이 규정하지 않는 형태로 가족 구성을 이룬 국민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영화 속 채현의 가족은 여러모로 법적 차별을 받는다. 비록 소수이지만 엄연히 혈연관계나 결혼과 같은 전통적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가족을 구성해 사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있다. 생활방식의 변화로 어쩌면 기하급수적으로 이러한 가족이 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한 고민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변화에 대비하지 않으면 사회는 혼란스러워진다. 혈연관계에 얽히지 않고 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가족제도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해보았다.
2001년 여름 캐나다 밴쿠버 인근 로키산맥의 호숫가에서 김애영 교수(왼쪽)와 박순경 교수가 나란히 앉아 찍은 사진. 김애영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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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배우자 등으로 한정
그러나 다양한 가족 유형 존재
사제간 박순경-김애영 교수는
24년째 함께 사는 가족이다 “서로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가
현대인들에겐 그게 더 중요해요”
두 교수 법적인 가족 되려면
호적 정리 외엔 방법이 없어 “이제 그만 살자”며 가끔 다투기도 하지만… 박 교수는 아홉 형제의 막내였다. 김 교수는 사형제 중 장녀였다. 이들의 부모는 결혼을 강권하지 않았다. 그 시대에는 좀 드문 부모의 유형이었다. 두 교수도 남성과의 결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독신주의자는 아니었어요. 다만 당시(1960년대 이전)에는 여성으로서 공부를 계속하는 것과 가정을 꾸리는 것은 양립하기 어려웠어요. 그러다 보니 결혼을 안 하게 됐을 뿐, 특별히 안 하려고 거부한 것은 아니에요.”(박순경 교수) “저도 독신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꼭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여자가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 어렵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도 어렵고요. 특히 보수적인 신학계에서는 그래요. 아버지도 딱히 결혼하란 얘기 안 하시고 그저 내가 행복하게 잘 살도록 응원해줄 뿐이었어요.”(김애영 교수) 그래도 서로 사랑하지 않는 사이의 남남이 어떻게 가족을 구성해 사는 것이 가능할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 이에 대해 두 교수에게 물었다. 김 교수가 대답했다. “피는 물론 물보다 진하죠. 하지만 거기에만 고착돼선 안 돼요. 사람은 때에 따라 다른 사람이 더 의지가 되고 중요한 관계가 될 수 있어요. 저에게는 제 교수님(박순경)이 그런 분이죠. 교수님과 함께 살면서 저는 인생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서로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가’가 현대인들에게는 더 중요하죠.” 생각해보면 그렇다. 나의 비밀, 나의 꿈, 나를 화나게 하는 것,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등을 나의 삼촌, 이모, 부모 혹은 나와 결혼하는 이성만이 다른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란 법은 없다. 평생을 동물복지에 헌신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에게 일상의 관심사는 동물이다. 딱히 결혼에는 관심이 없다. 그에게는 자신의 이런 고민과 관심사를 공유하는 누군가가 더 가족같이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박 교수와 김 교수는 신학을 연구하는 학자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통일운동에도 함께 관심이 많았다. 여성이라는 소수자로서 우리 사회에서 여러 부대낌을 느끼며 산다는 것도 두 교수가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였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서로 가장 아끼는 관계가 되었다. 결혼을 거부한 것은 아니지만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구와 살아야 할까. 박 교수와 김 교수는 둘이 함께 사는 게 서로에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둘은 가족이 되었다. 물론 함께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리 공통점이 많은 사람이라 해도 살다 보면 싸운다. 남편과 아내는 부부싸움을 하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다툼이 있다. 박 교수와 김 교수는 어떨까. 박 교수가 말했다. “1년에 한두번 정도는 냉랭하게 지낼 때가 있지요. 너무 화가 나서 ‘이제 그만 같이 살자’고 말을 내뱉은 적도 있어요. 하지만 그냥 분하니까 소리쳐보는 거지요. 진짜 그러자는 건 아니고요. 한참 싸우다가도 ‘서로에게 스트레스 주면 뭐 하냐. 이러면 안 되지’ 하고 그냥 참아요.” 둘은 아침 산책을 따로 나간다. 김 교수가 설명했다. “박 교수님은 산책도 늘 정해진 코스대로만 다니세요. 정해진 시각에 출발해서 정해진 시각에 딱 맞춰서 돌아오시고요. 저는 그런 게 싫어요. 생각나는 대로 좀 돌아다니는 게 좋거든요. 그래서 같이 산책을 가지 않고 따로 나가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가족끼리 싸우지 않고 오래 같이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요령이다. 두 교수의 생활도 여느 가족들의 사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다만, 두 교수는 법적으로는 가족이 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김 교수가 설명했다. “제 호적을 정리해서 박 교수님을 제 어머니로 지정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하지만 제 어머니는 분명 살아 계시고 저는 제 어머니를 사랑해요. 호적을 정리할 순 없는 것이죠. 그래서 박 교수님과 법적 가족이 되는 걸 포기했어요.” 결국 두 교수는 가족이면서도 법적으로는 그냥 남남으로 살았다. 두 교수는 서로의 재산에 대해 상속권을 주장할 수 없다. 만에 하나, 박 교수가 먼저 세상을 뜨고 박 교수의 친족들이 나타나 재산권을 행사하면 김 교수는 아무런 대처를 할 수 없다. 박 교수는 은퇴해서 현재 소득이 없다. 박 교수는 지역의료보험에 가입돼 있고, 김 교수는 현직 교수여서 직장의료보험에 가입돼 있다. 일반적인 가족이었다면 박 교수는 김 교수의 직장의료보험에 함께 가입돼 있을 것이고, 이중으로 보험료를 내지 않을 것이다. 두 교수는 우리 사회의 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희는 사실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것 빼고는 가족으로서 함께 사는 데 큰 불편함은 없어요. 하지만 다른 동거가족들은 국민연금, 의료보험 등에서 불이익을 받고 불편함을 느낄 거예요. 저소득층일수록 그 불편함의 정도는 클 겁니다. 법의 체계가 바뀌어야 합니다.” 이제 두 교수는 떨어져서 살 수 없다. 갈수록 몸이 허약해져가는 박 교수는 김 교수가 절대적인 의지 대상이다. 박 교수는 뇌졸중으로 4년 전 쓰러진 적이 있다. 김 교수가 빨리 발견한 덕분에 박 교수는 병원에서 제때 치료를 받았고 현재 큰 후유증이 없다. 박 교수는 혼자 손톱을 깎지 못한다. 김 교수가 도우며 이런저런 작은 불편함을 덜어준다. 김 교수는 기꺼이 자신의 어머니처럼 박 교수를 보살핀다. 박 교수는 그것이 고맙고 익숙하다. 지금은 각자의 방에서 오랫동안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으면 넌지시 살펴보고 돌아가곤 한다. “무슨 변이라도 생긴 건지 걱정되니까 살펴보러 가는 거죠. 애영이는 하늘이 내게 보내준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박 교수가 김 교수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창밖에 보이는 우면산 자락의 우거진 수풀이 더욱 푸르게 빛났다.
지난 7일 ‘결혼 1주년’을 맞은 김조광수 부부. 이들은 행복하다. 서로 아낀다. 그러나 법은 아직 동성 부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평생 함께할 특별한 한 사람은 남녀간 결합이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김조광수 부부는 소송중이다. 지난 1일 서울 독립문로 자택에서 인터뷰에 응한 김조광수(왼쪽)씨와 김승환씨.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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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김승환 부부
결혼식 뒤 남자친구가 아닌
평생의 배우자로 느끼며 살아
아직 법적 인정 안돼 소송중 배우자 아파도 수술동의서를
쓸 수 없고 차별은 일상적
동성결혼 인정 원하지만
생활동반자법도 단계적 대안
이성 부부와 같은 권리를 달라 “빵집 마일리지조차 함께 못 쓴답니다” 뿌리 깊은 이성애 중심의 가족관은 정부의 제도에만 박혀 있지 않다. 동성 부부는 배우자가 아파도 병원에서 수술동의서를 함부로 쓸 수 없다. 지난해 광수씨는 부정교합 교정 수술을 받았다. 보호자의 수술동의서가 필요한 일이었다. 다행히 병원은 승환씨가 수술동의서를 쓰도록 허락했다고 한다. 유명 동성애자 부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항공사 마일리지를 각자 적립해서 써야 해요. 원래 가족끼리는 합산해 쓸 수 있거든요. 항공사에 우리도 합산이 가능한지 물었는데 법적 부부가 아니라 안 된다더군요. 하다못해 빵집 마일리지도 법적 가족이 아니라서 합산해 적립할 수 없어요.” 광수씨가 웃으며 설명했다. 차별받는 게 너무 일상적이라 생긴 마음의 여유일 것이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동성결혼의 법적 인정을 원한다. 다만 그 이전에 동거가족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법(생활동반자법)의 제정이 단계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성결혼을 인정하기까지 사회적 논의 기간이 필요하다면 적어도 그동안 남들과 차별 없이 살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성결혼권을 요구하는 것은 남들과 똑같은 권리를 달라는 평등권을 위한 싸움이고요. 생활동반자법의 요구는 다양한 동거가족의 형태를 존중하라는 자유권을 위한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광수씨가 설명을 이어갔다. “생활동반자법이 생기면 동거가족이 많이 늘어날 거예요. 독거노인도 줄어들 겁니다. 정부는 계속 노인돌보미의 수를 늘릴 고민만 하고 있는데 생활동반자법은 복지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낼 겁니다.” 마지막으로 두 부부에게 평생 함께할 생각이냐고 역시 좀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물론 평생 함께 살려고 최선을 다할 겁니다. 결혼식은 그렇게 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선언입니다. 동성애자는 이성애자에 견줘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는 생각은 편견이에요.” 둘은 9년을 사귄 뒤 지난해 결혼했고 이제 결혼한 지 1년이 되었다. 둘이 함께한 기간은 벌써 10년이다. 성소수자 3159명을 상대로 이뤄진 ‘한국 성소수자(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 조사’(2014)를 보면, 11.6%가 연인과 동거하고 있다. 40대 이상 응답자의 51.2%가 연인과 5년 이상 관계를 지속하고 있고, 32.6%가 동거하고 있다. 연인과 동거 중인 성소수자 중 80.9%가 공동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법적 가족으로 인정받는다면 삶의 만족도는 더욱 높아지고 사회 전체가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이들은 믿는다. 허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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