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본 첸이 3일 밤 홍콩 케네디타운에 있는 친구 아이리스 입의 집에서 티브이를 보던 중 렁춘잉 홍콩 행정장관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추켜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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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특집
홍콩 여자 이본 첸 이야기
▶ 휴가를 이틀 앞두고 야근을 하다 쏟아져 들어오는 외신 사진들에 마음을 뺏겼다. 홍콩 중심가를 가득 메운 시민들과 수만개의 우산들, 최루탄으로 시민들을 거칠게 진압하는 홍콩 경찰의 모습…. 홍콩 시민들은 민주주의가 붕괴된다며, 그걸 막아보겠다고 거리로 나와 있었다. 휴가 항공편을 취소하고 1일 아침 홍콩행 비행기표를 결제해버렸다. 홍콩 젊은이들과의 우연한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1주일간 홍콩에서 그들의 눈물과 열정, 희망을 보았다.
“우린 비 때문에 우산을 쓰는 게 아니에요. 홍콩 정부의 개가 된 경찰의 최루탄과 최루액 스프레이 공격으로부터 홍콩 사람들을 보호하려고 쓰는 거예요.”
폭우가 쏟아지던 3일 아침, 홍콩 정부청사들이 모여 있는 중심가 애드미럴티 역 근처에서 밤샘시위를 마치고 잠시 옷을 갈아입으려고 집으로 돌아가던 이본 첸(26)을 만났다. 비를 맞고 걸어가는 그에게 우산을 건네려 하자, 그는 지금 홍콩인들에게 우산이란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됐다고 했다.
미국 뉴욕시립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하는 이본은 홍콩을 ‘홍콩’이라 부르지 않고 ‘집’이라 부른다. 9월28일까지만 해도 그는 뉴욕에서 2주 뒤에 치를 중간고사를 준비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내년에 꼭 전문간호사(Physician Assistant) 자격을 취득해야 하고, 그러려면 4.0 만점에 3.5 이상의 학점을 받아야 한다. 거의 매일 밤을 새워도 공부해야 할 양이 너무 많아, 아르바이트하러 갈 시간도 없는 생활이었다. 쿼터(3학기제의 한 학기, 석달이 1쿼터)마다 2000달러 정도씩 받는 미국 정부의 학업보조금이 생활비의 거의 전부다. 또래들처럼 예쁜 옷도 입어보고 싶지만, 생활이 넉넉지 않아 브랜드 옷은 상상도 못 한다.
한 시위 참가자가 1일 저녁 홍콩정부청사 앞에서 3일 전 경찰이 시위대 진압을 위해 사용한 최루가스 탄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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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불사 선언하던 중국의 기억
이젠 그 힘이 홍콩을 향한다는
공포가 첸에게 강력히 밀려왔다
마음속에서 무언가 꿈틀댔다 어려운 유학생 형편에 800달러로
홍콩 가는 비행기 표를 구하고
7달러짜리 납땜용 글러브를 샀다
최루가스 공격에 대처하기 위해
고글과 방수재킷도 챙겼다 중국 반환 이후 젊은이들은 무엇을 느꼈나 첸은 중학생 시절까지 14년을 홍콩에서 살았다. 그리고 1997년 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반환된 지 몇 년 뒤인 2001년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떠난 이유는 여러가지였지만, 홍콩이 점점 살기 힘든 곳으로 변하고 있다는 어머니의 결단이 주요한 이유였다고 첸은 말했다. 홍콩의 중국 반환 뒤, 첸 어머니의 예상대로 실제 홍콩의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았고 홍콩 원주민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었다. 홍콩에서 태어나 자란 젊은 세대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힘겨워하고 있다. 고향을 사랑하는 첸은 ‘집’에 돌아올 때마다 퇴보하고 있는 홍콩의 모습에 매번 한숨을 쉬었다. 이런 우려 때문이었을까, 2박3일 시위를 벌이다 3일 오후 잠시 집으로 돌아갔던 첸은 한숨도 자지 않고 5시간 만에 다시 홍콩행정청 입구로 나왔다. 그리고 홍콩 젊은이들이 느끼는 중국 반환 이후의 현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중국 본토 사람들이 홍콩으로 몰려오면서 홍콩의 시장질서가 완전히 망가졌어요. 작년 초에는 (중국 내부의 불량 분유 파동 때문에) 본토 사람들이 분유를 사재기해 정작 홍콩에 사는 내 친구들은 아기에게 줄 분유를 구할 수 없었어요. 분유통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분유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가진 엄마의 마음은 상상도 못할 만큼 초조해요.” 친구들의 경험을 전한 것이었다. 첸은 분유뿐만 아니라 식자재와 한약재부터 집 월세 등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자본력을 가진 중국 본토 사람들이 사재기를 통해 가격을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을 보호하는 게 홍콩 정부의 의무와 책임인데 정부가 너무 무능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첸은 시위대와 함께 밤을 지새우고 4일 낮 비에 젖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홍콩에서 머물고 있는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첸의 친한 친구 아이리스 입(31)은 상거래 법률 분석 및 자문가로 법률회사에서 일한다. 그 역시 1996년 홍콩을 떠나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치고 7년여 직장생활을 한 뒤 2010년 홍콩으로 돌아왔다. 이직을 하면서 고향에 온 아이리스 역시 홍콩의 문제를 마주하고 있는 젊은 세대다. 그는 첸과 마주 앉아 최근 5년간 직접 홍콩에서 생활하면서 피부로 느낀 변화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이리스는 지난 17년간 엄청나게 많은 수의 중국 본토 사람들이 사업부터 자식교육까지 다양한 이유로 홍콩으로 이주해오고 있다며,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홍콩 사람에 비해 중국 본토 출신 이주자 비율이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의미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중국 본토 사람들은 공장을 열 때 본토에서 사람들을 데려와 고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결국 홍콩 현지인 고용과는 별개예요. 외국계 기업도 중국 사업자들과의 업무상 관계를 위해 베이징에서 사람들을 고용해 홍콩 지사로 데려와요. 친구가 제이피모건에 다니고 있는데 직장에 본토 사람들이 태반이고 홍콩 사람의 경우에는 승진도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홍콩의 중장년 세대는 막 개혁개방을 시작한 중국에 들어가 공장 투자 등으로 상당한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이제 중국인들이 홍콩으로 밀려들면서 홍콩 젊은 세대는 교육과 취업 등 일상생활에서 박탈감을 느낀다고 한다. “사립 초·중·고등학교와 홍콩대학 같은 일류 대학에서 부자 부모를 둔 본토 학생들의 비율은 점점 늘고 있지만 홍콩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학생의 비율은 점점 줄고 있어요. 결국 홍콩에서 태어나 자란 젊은 세대는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에요.” ‘한달 월세 196만원’ 그나마 싼 편 첸과 아이리스 세대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는 부동산 시장에서 나타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다. “중국 본토 사람들은 막강한 자본력으로 140만홍콩달러(약 20억원)짜리 집 여러채를 현찰로 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열쇠를 받아 가요. 마치 과일가게에서 ‘사과 열개 주세요. 바나나도 한다발 주시고요’라고 말하는 것같이 느껴져요. 반면 홍콩 젊은이들은 집을 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중국 본토 사람들이 집주인인 집에서 비싼 월세를 내고 사는걸요.” 아이리스도 홍콩섬 서쪽 케네디타운에 위치한 53㎡(약 16평) 크기의 아파트에서 월세를 내며 산다. 월세가 1만4000홍콩달러(약 196만원)이고 별도로 인터넷과 전기·수도료 등 관리비로 3000홍콩달러(약 42만원)를 낸다. 이마저도 각별한 사이인 지인의 집이라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홍콩에서 이 정도 위치에 비슷한 크기의 집을 월세로 구하려면 보통 2만2000홍콩달러(약 300만원) 정도를 지급해야 한다. 12년째 법률 관련 일을 하는 아이리스는 월 4884달러(약 510만원)를 벌고 있어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하지만 홍콩의 대졸 신입사원 월급이 1700달러(약 190만원)인 상황에서 사회초년생 젊은이들에게 월세는 큰 부담이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 캥거루족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젊은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겠어요. 민주주의는커녕 먹고사는 문제부터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어요. 부모님은 1997년 (중국으로의 반환) 이전이 더 살기 좋았다며 영국 식민지 시절을 그리워해요. 나도 그 시절이 그립고요.” 아이리스가 열변을 토하자 첸이 옆에서 거들었다. “홍콩은 원래부터 경쟁이 치열한 곳인데, 이제 중국인들이 몰려와 좋은 일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어요. 홍콩 사람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는 게 현실이에요.” 첸은 “홍콩 정부는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중국 본토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지 못하는데, 중국 중앙정부가 2017년 홍콩행정장관 선거 후보자들을 미리 걸러 친중국 인사만 행정장관이 될 수 있게 하면 홍콩의 일국양제는 망가질 것이고 그 이후는 어떻게 될지 뻔하다”고 덧붙였다. 물밀듯 밀려드는 중국인들과 중국 돈으로 커지는 빈부격차는 첸과 같은 젊은이들이 중국의 정치개입에 반대하며 민주화 시위에 나서게 만든 중요한 동력이었다. 홍콩행정청 앞 애드미럴티역 출구 계단에서 점거농성에 참여중인 대학생들에게도 말을 걸었다. 많은 이들이 홍콩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 학생은 홍콩의 미래를 매우 비관적으로 보았다. “한때 중국 본토 사람들의 시각은 국제화되지 않아 홍콩을 교두보로 삼지 않고는 세계를 상대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고 상황도 변해 홍콩 이용가치가 꽤 떨어졌어요. 그렇기에 중국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홍콩을 주무를 거예요.” 또 다른 대학생은 홍콩도 중국처럼 여론통제 사회로 변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50대 이상의 기성세대는 민주주의에 대해 잘 알지 못해 홍콩이 완전히 중국화되어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은 그래도 공산당이 집권하지는 않잖아요. 홍콩이 중국 공산당의 영향 아래 운영된다면 우리의 미래와 민주주의는 퇴보할 게 불 보듯 뻔합니다. 중국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그리고 구글 등 인터넷 여론을 통제하고 있어요. 홍콩에 여행을 온 중국 본토 사람이 나에게 이번 시위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내가 대답할 때마다 들어본 적이 없다며 놀라더라니까요.” 그 옆에 있던 대학생 시위 참가자도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홍콩 인구는 700만명인데 작년 중국인 방문객이 5400만명이에요. 이미 홍콩 경제는 중국 본토 사람들 없이는 자립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홍콩이 무슨 힘이 있겠어요.” 일주일간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센트럴 점거농성에 참여했다
중국 간섭과 홍콩정부 무능이
자랑스런 홍콩 망가뜨린다는
분노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파트를 현찰로 사는 중국인
집 살 엄두도 못내는 홍콩 출신
사업과 자식교육 등의 이유로
중국 본토 출신들 늘어나면서
홍콩 젊은 세대는 심한 박탈감
농성 6일째인 3일 오후 홍콩섬에 있는 홍콩정부청사 앞 구름다리 사이로 우산 100여개가 엮여 걸려 있다. 이 우산펼침막은 우산혁명을 상징하며, 9월28일 경찰이 최루가스를 이용해 시위대를 과잉진압하는 과정에서 부서진 우산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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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위기에 맞서자.
우리 인생에서 이 밤 그냥 보내면,
다시는 마음껏 외칠 기회가 없을까 두렵다. 우산을 같이 들자, 함께 버티자,
비록 불안하지만 홀로이고 싶지 않다.
함께 우산을 들자. 손을 맞잡고.
버텨나가자. 함께하면 이긴다.
담대하게 쟁취하자. 두려운가.
폭우가 몰아친대도, 투지는 꺾이지 않는다. 우산은 한 송이 한 송이의 꽃, 끝날 때까지 흩어지지 말자.’ 홍콩/글·사진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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