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특집
일본 <도쿄신문> 우에노 미키히코 특파원이 겪은 3년
지난 9월18일 오전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국제공항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영접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는 장면을 서울 프레스센터에 모인 내외신 기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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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미키히코 <도쿄신문> 서울 특파원은 2015년 11월1일 부임해 오는 11일 특파원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우에노 특파원이 한국을 취재한 3년은 ‘한-일 위안부 합의’, 국정농단 사태와 대통령 탄핵, 남북·북미 정상회담 등 굵직한 사건들이 줄을 이었던 시기다. 일본인의 눈으로 바라본 격동의 한국 3년은 어떤 모습일까. 우에노 특파원이 한국을 떠나며 소회를 정리한 글을 길윤형 기자의 번역으로 싣는다. <도쿄신문>은 도쿄 지역의 종합 일간지로 한반도 문제, 재일 조선인 인권 문제, 한-일 과거사 문제 등에 대해 진보적인 논조를 유지하고 있다.
2016년 1월2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에서 전해 12월28일 발표된 ‘한-일 위안부 합의’가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는지를 확인해달라는 유엔 청원서 제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H6s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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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간 사고방식에 차이 있고
일본 정부 쪽 노력도 부족해 자신 주장 당당하게 밝히는
촛불집회 보며 청량감 느껴
일본 반정부 집회와 기세 달라 북 핵실험 때는 대피까지 고민
한국인 긴장하지 않는 모습 의외
김정은은 못 미더워…판단 틀렸길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생각한다”는 일본과 대조적으로 한국에선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말한다”는 것이 우선시되는 것 같다. 일본인에겐 “(자기)주장만 하고 이쪽 사정은 생각해주지 않는다”고 비치지만, 한국인끼리는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주변이 놀랄 정도로 큰 목소리로 논쟁을 벌인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담소하는 상황을 몇번이나 본 적이 있다. 거꾸로 한국인들로부터는 ‘일본 사람들의 본심을 알 수 없어 곤혹스럽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렇게 본디 타고난 기질에, 과거 시민의 손으로 민주화를 쟁취해냈다는 자긍심도 더해졌을 것이다. 촛불집회는 지치지 않고 4개월 넘게 이어져 마침내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으로 내몰았다. 일본에서도 총리관저 앞에서 정권에 반대하는 집회가 벌어지긴 하지만 한국 시위의 기세나 규모와는 완전히 다르다. 주장의 강함은 대립의 뿌리 깊음으로 이어진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그렇다. 지난해 대선에선 진보 쪽의 문재인 후보가 당선됐다. 취임 뒤 ‘적폐청산’이 시작됐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의 부정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두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기소를 당했다. 보수정권이 개입한 흔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옳지 않다’고 단정하는 풍조, 반대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것 같은 숨 막힘도 다소 느낀다. 부정은 공정하게 재판해야 한다. 그러나 소리 높여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의 뒤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일본을 돌아보면, 명확한 정치적 주장을 피하는 국민성 탓인지 정권 교체가 거의 없다. 자민당 중심의 정치가 반세기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 체제에도 문제가 많다. 일본 국민이 한국인처럼 자기주장을 좀 더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북한 핵실험을 취재하며 난 <도쿄신문> 서울 특파원 가운데 북한의 핵실험을 3차례 취재한 첫 기자이자,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을 취재한 첫번째 기자이기도 하다. 겨우 3년의 임기 중에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물론 그 과정은 평탄치 않았다. 특히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거듭 발사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군사적 위협으로 대응했던 2017년엔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감이 떠돌고 있었다. 우리 집을 포함한 재한 일본인 가족은 긴급사태가 발생했을 때 피란을 하거나 귀국을 하는 방법, 생필품을 비축하는 방법 등 정보 수집에 여념이 없었다. 일본 특파원들과 만나면, 가족들을 일본에 귀국시켜야 하나 회사의 피란 매뉴얼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등이 화제에 오르는 등 긴장 상태가 이어졌다. 그러나 내가 보는 한 한국인들은 일본인처럼 긴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왜 일본이 이렇게 소란스러워하나. 뭔가 특별한 정보라도 있냐”고 물을 정도였다. 그래서 현재 상황을 설명해도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한국인의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준 이가 의정부시를 취재할 때 만난 한 대학생이었다. 그는 “북한이 예전부터 무력도발을 해왔기 때문에 익숙”하다고 했고, “김정은 정권이 미국을 상대로 정말로 전쟁할 리가 없다”는 낙관적 생각과 함께 “실제 전쟁이 발생하면 멀리 달아날 수도 없다”는 일정 부분 포기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70년 가까이 전쟁 상태를 겪고 있는 국가이기에 지닌 감각이었다. 일본엔 없는 강인함을 엿보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2018년에 들어와 전쟁 위기는 일단 사라지고 북한과 한국, 미국 간 대화의 시기가 찾아왔다. 아직 정확하게 예상하기는 힘들지만,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향해 일보 전진한 것은 틀림없다. 최근 개인적으로 고뇌하는 것은 진보 쪽 전문가들을 인터뷰할 때마다 질책을 당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인은 왜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믿지 못하는가. 믿지 않으면 대화가 진행되지 못하는 게 아닌가”라고 이따금 타박을 당한다. 어떤 행동을 해야 믿을 수 있는가라는 논쟁은 결국 최종적으로는 김 위원장이라는 인물을 믿을지 여부로 귀착된다. 지금도 나는 회의적인 견해를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편, 언젠가 내가 전문가들에게 “제가 틀렸습니다”라고 사과하게 된다면 좋겠다는 기대도 간직하고 있다. 가급적 빨리 사죄할 기회가 찾아오길 신중하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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