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7.20 09:29 수정 : 2019.07.21 09:15

[토요판] 법정에 선 양승태 사법부
⑧ 전관 변호사의 ‘활약’

법원행정처, 판사 출신 변호사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추천
곽병훈·최철환 전 법무비서관 등
사법부-김앤장-청와대 잇는 ‘핫라인’

강제징용 사건 일본 쪽 대리인
‘전관’ 한상호 김앤장 변호사,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독대

대다수 일제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에서 전범 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들은 판사 출신 ‘전관 변호사’였다. 과거의 인연을 매개로 한 변론은 법원 담장밖을 넘어 청와대와 법원행정처까지 이어졌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증인은 ‘신기조’란 모임을 아나요.” (검사)

“네, 압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증인과 곽병훈, 신광렬, 이제호, 조귀장 김앤장 변호사 등으로 구성됐죠. 맞나요?”

“정확한 멤버는 기억 못 합니다.”

‘사법농단 1호 기소’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모처럼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8일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현 변호사) 재판에 증인으로 섰다. 그는 “불공정 재판이 우려된다”며 낸 법관 기피신청이 기각되자 불복해 항고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였다. ‘개점휴업’ 중인 본인 재판을 놔둔 채 법원 내부 자료 유출 혐의의 공범으로 묶인 유 변호사 재판에 증인으로 소환된 것이다. 한 달 만에 피고인이 아닌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한 임 전 차장에게 검찰은 ‘신기조’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신기조’는 ‘신광렬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모임’의 준말이다. 2006년 전후 신광렬 부장판사와 법원행정처에서 함께 일했던 10여명의 판사로 구성된 사모임으로, 신 부장판사가 식당을 ‘신기조’라는 이름으로 예약하면서 모임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이렇게 붙었다고 한다. 신 부장판사는 현재 ‘정운호 게이트’ 당시 법관 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이를 무마하려 검찰 수사기록을 법원행정처에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신기조 모임에는 기획조정심의관 출신인 임종헌 전 차장도 얼굴을 비쳤다. 또 이 모임에 참여했던 곽병훈 변호사(전 청와대 법무비서관)를 비롯해 일부 판사들은 법원을 떠나 국내 1위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소속을 옮겼다. 검찰 질문이 이어졌다.

“증인은 곽병훈 비서관에게 청와대 법무비서관에 갈 생각 있냐고 연락한 적 있습니까.” (검사)

“아마 연락은 했을 것 같은데, 정확한 기억은 없습니다.” (임 전 차장)

임 전 차장이 당시 판사를 그만두고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던 곽 변호사를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추천하지 않았냐고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이날 뒤이어 증인으로 나온 곽 변호사는 2015년 1월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일할 의사가 있냐’는 연락을 임 전 차장으로부터 받았고, 2~3일 뒤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한테서 ‘내정됐다’는 확답을 들었다고 했다. “(법무비서관 인사에) 법원행정처 의사가 반영됐다, 참작이 됐다.” (곽 전 비서관)

비서관 임명 소식 미리 파악

임 전 차장과 같은 법원행정처 주요 인사는 판사 출신 법조인을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자주 천거했던 것으로 보인다. 곽병훈 변호사의 후임 또한 법원행정처가 추천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검찰 수사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확보한 임종헌 전 차장의 유에스비(USB·이동식저장장치)에는 당시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법무비서관 최종 후보군’ 문건(2016년 4월 작성)이 저장돼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행정처는 판사 출신으로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던 최철환 변호사 등을 추천했고 그의 경력으로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이 서술돼 있었다.

법원행정처는 최 변호사의 법무비서관 임명 소식을 미리 파악하고 만찬 일정을 공유하기도 했다. 19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에서 공개된 한 심의관의 메일(2016년 5월 13일)을 보면, 기획조정실 심의관들에게 “법무비서관은 이르면 다음주 교체되는데(전면 보안사항입니다) 23기 최철환 김앤장 변호사(연구관 및 부장판사 출신)로 내정상태라고 한다. 법무비서관이 바뀌면 신임비서관과의 만찬이(시간이 좀 지나면 퇴임 비서관과도 만찬) 잡힐 우려가 있어 업무 부담이 늘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최 변호사는 그해 5월23일 실제로 청와대 신임 법무비서관으로 임명됐다.?

이들은 법원행정처에서 함께 근무했다거나, 법원 내 연구 모임에서 안면을 익히며 법원행정처와 판사 출신 법조인을 묶어주는 ‘끈’으로, 청와대 법무비서관 자리에 올라 법원행정처와 청와대를 이어주는 또 다른 ‘끈’으로 단단히 묶였다. 한 판사는 “법원행정처 라인을 타고 이어지는 그 끈은 조직적으로 알음알음 모이곤 한다. 법원 내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고 판단되는 이들인데 김앤장 법률사무소나 청와대나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들의 활약은 사법농단 곳곳에서 빛을 발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재판에 외교부 의견을 반영하는 제도를 도입하거나, 청와대가 필요로하는 법원 내부 자료를 건네줘야 할 때 전관 출신 법무비서관은 ‘핫라인’ 역할을 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낸 정황들이 재판에서 공개되고 있다.

지난 5월7일 임종헌 전 차장의 재판에 전 외교부 국제법규과 과장이었던 황아무개씨가 증인으로 나온 가운데, 황씨가 2016년 8~9월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메모가 법정 증거로 나왔다. 외교부 인사와 곽 변호사의 통화내용을 자필로 적어둔 것이다. ‘곽병훈 (전 법무비서관), 대법원에서 너무 늦는 것 아니냐, 이러다 처리 못 한다, 빨리 프로세스 시작해야 한다.’ 석 달여 전 법무비서관 자리에서 물러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곽병훈 변호사가 여전히 ‘끈 노릇’을 하고 있던 정황이다.

법정에서 공개된 황씨의 검찰 진술에 따르면, 황씨는 외교부와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한 후배 직원(변호사)으로부터 ‘곽 변호사는 법무비서관으로 근무할 때 (외교부와) 대법원 사이 뒤에서 연락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시기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법원에 외교부의 ‘컴플레인(불만)’도 전달했고 김앤장 법률사무소와도 지속해서 연락했다고 한다. 청와대를 나와서도 ‘전직 판사이자 법무비서관’, ‘현직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로서, 법원행정처, 청와대,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가교 구실을 한 셈이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 최측근의 소송 진행 상황을 챙겨보기 위해 법원행정처에 관련 자료를 요구하기도 했다.

곽병훈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지난해 9월6일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의 강제징용 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조사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학연, 동기연, 근무연…끝없는 ‘인연’들

“조태열 차관이 고등학교 선배 아니냐.” 2016년 9월 임 전 차장은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과 관련해 조태열 당시 외교부 2차관을 만나는 자리에 이민걸 기획조정실장의 동행을 제안하면서 ‘학연’을 내세웠다고 한다. “사법연수원 동기이고 하니, 전달해달라고 하면 되겠네.” 법원행정처심의관이 특정 사건을 검토한 문제의 문건을 대법원 재판연구관에게 전달하는 것을 꺼리자, 임 전 처장은 재판연구관의 ‘동기연’을 통하라고 지시했다.

이처럼 사법농단을 가능케한 것은 각종 계기를 핑계로 만들어진 ‘인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인연을 매개로 한 변론은 법원 담장 밖을 넘어 청와대와 법원행정처, 대형 법률사무소까지 이어졌다. 근무연, 학연, 지연은 거래로 의심되는 정황을 실행으로 옮기는 실무자들 사이에서도 윤활유처럼 활용됐고, 곳곳에 등장하는 전관 변호사는 그 정점이었다.

대법원장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1998년 법복을 벗은 한상호 김앤장 변호사는 친분이 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2015~2016년 적어도 세 차례 독대했다. 두 사람은 1994년 법원행정처에서 함께 근무했고 부부동반 모임에도 함께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독대 자리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강제징용 사건에 대한 의중을 교환했다고 본다. 당시 한 변호사는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에서 일본 기업 쪽을 변호하고 있었다. 지난 12일 소환됐지만 건강상 이유로 출석을 거부한 한 변호사는 다음달 7일 양 전 대법원장과 법정에서 조우할 예정이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특집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