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법정에 선 양승태 사법부
⑫ 인사·평정권이라는 무기
통진당 해산으로 의원직 상실 다툴 때
재판부에 행정처 문건 전달 시도
수석부장 “심리적 부담 컸지만 파쇄
다만 각하 재검토 의견은 제시했다”
헌재 결정 다시 심리할 수 없다고
각하 판결하자 양승태 거세게 질책
“법관의 헌법 교육 방안 마련” 지시
근무평정도 ‘중’ 등급으로 하향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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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왼쪽)이 2014년 10월7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인사말을 하기 위해 단상으로 걸어가고 있다. 맨 앞은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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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고위 법관들이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대법관 이상의 고위 법관들이 이렇게 무더기로 법정에 서는 것은 사법부 역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2019년 3월1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첫 재판을 시작으로, 진실을 밝히고 유무죄를 따지는 긴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법정 르포의 방식으로 ‘사법농단 재판’을 중계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려고 합니다.
2015년 5월26일 서울 강남역 인근 한 일식집. 이규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조한창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를 만나 문건 하나를 건넸다. “법원행정처에서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법리 검토한 문건이다. 헌법재판소와 관련 있는 사안이니까 각하는 곤란하지 않겠나. 그 법리를 담당 재판부에 전달해달라.”
헌재의 통합진보당(통진당) 해산 결정으로 의원직을 잃게 된 이들이 법원에 행정소송을 내자, 당시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판단 방향을 정리해 문건으로 만들었다. 편하게 점심 먹자고 모인 자리인 줄 알았건만, 이 상임위원이 문건이 든 봉투를 꺼내자 분위기는 싹 달라졌다. 문건은 통상적인 보고서와 달리 법원 이미지 파일이 그려져 있지 않았고 작성자도 삭제돼 있었다.
“일선 재판부에 전달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됐어요. 저는 일선에서 재판만 했고 사법연수원 교수까지 했는데 (중략) 심리적인 부담감이 상당히 컸습니다.”(조 부장판사의 검찰 진술 조서) 그는 고민 끝에 그 문건을 담당 재판부(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반정우)에 전달하지 않고 파쇄해버렸다. 다만, 이 상임위원에게 피드백을 줘야 한다는 부담감에 그해 7월 부장판사 4~5명이 모인 회식 자리에서 반정우 부장판사에게 넌지시 ‘각하에 대해서 법리적으로 검토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조 부장판사는 당시 상황을 검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대차게 거절했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규진 개인의 뜻이 아니라 법원행정처의 뜻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고등부장으로 승진했고 그것으로 됐단 생각도 있었지만, 그래도 질책받는 것은 마음이 좋지 않은 거 아니겠습니까. (중략) 법원행정처 차장, 처장, 대법원장은 어떤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기껏 수석을 보내놨더니 일을 이렇게밖에 처리하지 못하나’란 인식을 가질 수 있지 않겠나 싶었고 제 업무능력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법원 마타도어에 미심쩍은 평정까지
2014년 12월 헌재가 통진당 해산 결정을 내리자,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 등은 “국회의원 지위를 돌려달라”며 행정소송을 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통진당 행정소송이 헌재와의 관계에서 사법부 위상을 확인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봤다. 통진당 티에프(TF)를 구성해 ‘통진당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 상실 여부 판단 권한은 헌재가 아닌 법원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밝혀줘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는 ‘법원행정처가 수립한 판단 방법’으로 정리돼 2015~2016년 소송이 한창이던 서울행정법원, 전주지법, 광주지법 등 일선 법원에 전달됐다.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반정우)도 그중 하나였다. 반 부장판사는 조한창 수석부장판사를 통해 법원행정처의 지시를 건너 들었지만, 그해 11월12일 그가 속한 합의부는 법원행정처 입장과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다. 헌재가 내린 의원직 상실 결정을 법원이 다시 심리·판단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 소 각하 판결한 것이다. 각하는 소송을 제기할 요건을 갖추지 못해 고소·고발 사건을 종결하는 것이다. 주심 서범욱 판사는 “헌재와 대법원의 권한 다툼으로 인한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만큼, “각기 주어진 권한에 충실해야 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행정13부 구성원은 법원행정처가 주도하는 마타도어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어떻게 이런 판결이 있을 수 있냐”며 목소리를 높였고 ‘일선 판사들이 헌법재판소와 사법재판소 기능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며 헌법 교육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실무를 맡은 문성호 사법정책실 심의관은 선고 일주일 뒤인 11월19일 헌법연구반 커뮤니티 소속 판사 10명에게 보낸 이메일에 이렇게 적었다.
“헌재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는 문제적 상황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중견급 이상 법관은 헌법 문제에 관심이 없고, 소장 법관은 편향된 교과서로 학습하는 것이 주요 원인입니다. 이를 파기하기 위해 헌법 교육 개편 방안을 논의 중입니다.” 반 부장판사는 헌법 문제에 관심 없는 중견 법관, 배석판사는 편향된 교과서로 학습한 소장 법관에 빗대 우회적으로 ‘공개 저격’한 셈이다.
2015년 말 이들은 미심쩍은 평정표도 받아들었다. 이날 법정에서 공개된 반정우 부장판사와 서범욱·김용찬 판사의 판사 평정표를 살펴보면, 세 사람 모두 공교롭게도 상·중·하에서 ‘중’ 등급을 받았다. 근무성적 중 ‘판결 작성’ 항목에는 “일부 사건에서 결론 도출하면서 객관적 여러 사정에 대한 검토가 부족한 채 주관이 강하게 반영됐다”(반정우), “일부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거나 논리 표현 과정에 적절하지 못한 설시가 있다”(김용찬), “일부 사건에서 이유 설시에 문제가 있었다”(서범욱)는 평가가 적혔다. 이는 이듬해인 2016년 평정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들은 “판결 작성에 오류를 거의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다. 상위 보직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반정우), “판결 결론이 적정하고 설득력이 높아 매우 모범적이다”(김용찬)라며 모두 ‘상’ 등급을 받았다. 2015년의 평정표는 김문석 당시 행정법원장 결재를 거쳐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전달됐다.
딜레마 상황 자체가 법관 독립 침해
대한민국 헌법(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관, 법원장, 일선 판사 등 모든 법관 인사권이 사실상 대법원장 한 사람에게 쏠려 있다. 배석판사, 단독판사, 지방법원 부장판사, 고법 부장판사, 법원장으로 이어지는 사실상의 ‘승진 코스’는 물론, 해외 연수, 파견까지 쥐락펴락하는 상황에서 판사들은 인사·평정권을 가진 윗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헌법과 법률, 양심 외에 짐 하나를 더 떠안은 셈이다. 그렇게 판사들의 소신이 위협당했다. 판사가 딜레마에 처했다는 것만으로도 ‘법관 독립’이라는 외부 환경은 파괴됐다.
2016년 5월2일 광주지법 행정1부 재판장 박길성 부장판사는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 행정소송 선고를 며칠 앞두고 전화 한통을 받았다. 이규진 상임위원은 전화에서 박 부장판사에게 ‘청구 기각이 옳다’는 법원행정처의 입장을 전달했다. 당시 박 부장판사는 고등부장 승진 인사를 앞두고 있었지만, 법원행정처의 요구와 다르게 김선숙·정철희 배석판사의 의견을 듣고 청구 인용을 선고했다. 하지만 부담을 떨치려 애써야 했다고 검찰 조사 과정에서 털어놨다.
“판결 관련 전화를 받는 게 바람직하지 않으니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중략) 그 전화로 제가 조금도 압박을 느끼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강도 5로 치면 2 정도의 수치만큼이라고 할까, 그 정도의 압박을 느꼈습니다. 법원행정처와 다른 판단을 할 경우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고등부장 승진 인사에서 재수하는 입장이었지만, 승진에 대해 그렇게 고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잊어버리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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