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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28 09:22 수정 : 2019.09.28 10:42

[토요판] 특집
구술 서사 연구자 김영희 연세대 교수

농성 천막 철거·송전탑 건설 뒤
밀양 주민들과 활동가 인터뷰
기록집 이어 그림책 펴내

지난 19일 연세대 백양누리 무악로터리홀에서 열린 ‘밀양 할매 그리고 말하다’ 전시회에서 김영희 연세대 교수가 서로를 그려준 얼굴 그림과 자화상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김 교수의 왼쪽에 고 김사례 할머니가 그린 ‘김영희’ 얼굴 그림이 걸려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말은 허구입니다.” 말을 듣고, 기록하고, 분석하는 구술 서사 연구자는 이렇게 단언했다. “실제로 말할 수 있는 자리와 기회, 그 말에 대한 존중이 언제나 불균등하잖아요.” ‘스피커’를 가진 유력 정치인이 삭발로 ‘말’을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어떤 말들은 계속 들리지만, 어떤 말들은 계속 누락되죠. 사회적 메인 이슈일 때는 그 말을 듣지만, 조명이 사라진 뒤에는 그 말을 듣지 않게 되고요.” 김영희(46) 연세대 교수가 ‘밀양 할매’의 말을 들으러 처음 간 5년 전은 밀양을 비추던 조명이 꺼진 직후였다. 그해 6월11일 행정대집행으로 농성 천막이 모두 철거됐고, 송전탑이 들어섰다.

그러나 주민들은 여전히 말하고 있었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그는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주민들의 말, 이들과 함께했던 활동가 인터뷰 등을 촘촘히 엮어 지난 7월 <밀양을 듣다>(오월의봄)를 펴냈다. 김 교수를 지난 19일 연구실에서 만나 ‘말을 들어야 하는 까닭’을 물었다.

그림이 품고 있는 이야기

―밀양에 주목한 이유는.

“대학생이던 1993년부터 밀양 현지 조사를 다녔다. 밀양에는 이야기가 많다. 전쟁과 빨치산, 산골 전설, 약산 김원봉까지. 정작 답사를 가지 못했던 시기에 송전탑 사건이 본격화했고, 계속 마음에 걸렸다. 한국 사회는 사건이 참 많은데, 편향이 있다. 제일 급한 이슈를 중심으로 사건들을 줄 세우고, 하나가 급히 마무리되면 다음 이슈로 넘어간다. ‘아직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그들이 떼를 쓰거나 다 끝난 일을 이야기한다고 여긴다. 결국 잊히기 때문에 말을 못하게 된다.”

―구술 서사를 하다가 그림을 그려 책(<송전탑 뽑아줄티 소나무야 자라거라>)까지 냈다. 왜 그림이었나.

“송전탑 꼭대기에 올라가 외치고 싶다는 할머니들 말이 인상적이었다. 왜 한국에서는 땅에서 말하지 못할까. 왜 (굴뚝·철탑 같은) 높은 데서 이야기할까. 들어주지 않아서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라는 사회적 담론장에서도 할머니들은 제대로 발언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아예 운동장 밖에 있었다. 탈핵을 오랫동안 끈질기게 이야기해 중심 이슈로 만들고, 공론화위를 가능하게 한 사람들인데…. 공론화위가 시민들의 담론장이라면 할머니들은 왜 시민이 아닌가? 왜 당사자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닌가? 이런 걸 생각하다 보니 말을 벗어난 것을 하고 싶더라.”

―그림 속에 이야기가 들어 있다.

“할머니들은 몇년 몇월에, 이렇게 육하원칙으로 말하지 않는다. 밖에 새가 나는 걸 보면서 ‘천막에 있을 때 새가 되고 싶었지’라고 말하며 새를 그렸다. 조용히 그리는 게 아니라, ‘송전탑 뽑아줄티 꽃들아 피어라’, 중얼거리면서. 사회적 공론장에서 말하는 규범과 관습, 문화와는 다른 방식을 볼 수 있었고, 그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송전탑 그림에 새와 꽃, 나무가 들어가 있다.

“엄청 놀라웠다. ‘송전탑을 그려보자’고 했지 ‘송전탑과 자연을 그려보자’고 한 게 아니었으니까. 송전탑은 위압적으로, 로봇같이 그렸다. 반생명이다. 꽃과 나무, 새는 생명이다. 그리고 자신은 생명의 편에 서 있다. 송전탑 반대가 생명지향 운동이라는 감각을 갖고 있는 거다. 우리가 노선을 정리한 적도 없는데.(웃음) 농성 천막도 따뜻한 집으로 인식한다. 천막을 공들여 가꾸기도 했고, 거기서 연대자들과 같이 밥 해 먹고 국 끓여 먹었으니까.”

‘밀양 할매’와 ‘여성 연대’

김 교수가 특히 주목한 것은 밀양의 ‘연대’다. 지난해 논문 ‘밀양 탈송전탑·탈핵 운동 주체로서의 여성’에서 ‘여성 연대’를 강조했다. “희망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까지 만나고 있는 연대자들이 있어요. 여성이 다수죠. 농성장에는 살림의 문화 같은 게 있었어요. 모여서 구호 외치는 게 아니라, 진달래꽃 따다 전 지져 먹고, 국 끓이려고 같이 멸치똥 따면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거예요. 연대자들과 그런 일상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된 거죠.”

끝까지 남은 이들 가운데에도 할머니들이 많았다. 밀양에만 머물지 않고 쌍용차와 강정마을, 세월호 등과 관련한 연대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고공 농성 하는 걸 보면 예전엔 ‘뭘 저렇게 하나’ 생각했는데, 이제는 ‘오죽하면 저럴까’ 싶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연대를 통해 성장한 겁니다.”

‘밀양 할매’는 연대를 표상하는 말이라고 그는 짚었다. “할머니들은 견결한 싸움을 이어온 실천가예요. 젊은 활동가를 뒤쫓아간 게 아니라, 그들을 다독이고 리드했어요. 행정대집행 직후 활동가들이 실의에 빠지기도 했는데, 할머니들은 목에서 끊겨 나간 쇠줄을 주웠어요. 다음에 또 써야지, 그러면서요.”

―공론화위가 ‘밀양 할매’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독일 등에서는 공론화를 몇년씩 한다. 우리는 했다 치고 넘어가는 식이었다. 논의를 하려면 쟁점에 대한 합의부터 하지 않나? 그런데 모든 논의가 경제 원리로 귀결됐다. 과학자도, 생태학자도, 모두 경제를 이야기하는 건 굉장히 이상하지 않나? 전문가들이 ‘무식하다’고 말하는 할머니들만 생명과 미래를 이야기한다. 전기를 쓰지 않거나 원전 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할머니들은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말도 했다. 모든 원전은 시골에 있고 전기는 도시에서 소비하니까.”

―그림 그리기가 치유의 과정이 되기도 하는데, 밀양의 경우는 어떠한가.

“치유를 섣불리 말하고 싶지 않다. 사회적 문제인데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인식될 수 있어서다. 할머니들에게 치유는 탈송전탑, 탈원전이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 편히 가지세요’ ‘마을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세요’라고 할 수 없다. 문만 열면 송전탑이 보이고, 마을공동체는 다 깨져 있으니…. 한전은 지금도 집요하게 합의를 종용하고 있다.”

―국책사업에서도 되풀이되는 문제인데, 다른 방식은 없을까.

“개발주의 전략 안에서 오래된 관행이다. 강정마을도 마찬가지인데, 국가권력과 자본이 만나면 늘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국가 주도 개발사업 방식에 대한 비판과 뼈저린 반성, 성찰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말을 잘 듣는 게 중요하다. 살아가다 보면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당장 밀양을 사이좋은 마을로 만들 수 있나? 많은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그냥 지나가기도 한다. 그럴 때 최소한 문제 제기를 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그 말이 합리적이지 않고 감정적이더라도, 그 감정을 드러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회가 짊어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 아닌가.”

김 교수가 듣고 기록 중인 말 가운데는 국가폭력과 관련한 것이 많다. 1996년 8월 범민족대회를 불허한 경찰이 연세대를 원천 봉쇄한 ‘연대 사건’을 연구하고, 1987년 6월 항쟁 이후 노동운동을 했던 여성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조직적으로 참여했던 여성 노동자들을 만나 구술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에게 구술 작업은 조명이 비추지 않는 곳에 있는 이들에게 말할 자리를 만들어주는 일처럼 보였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지난 21일 연세대 백양누리 무악로터리홀에서 열린 ‘밀양 할매 그리고 말하다’ 전시회에서 여성주의 현대화가 이충열(오른쪽 둘째)씨가 밀양 용회마을 구미현 할머니(맨 왼쪽), 김옥희 할머니(맨 오른쪽)와 함께 쓰러진 송전탑 조형물에 꽃을 만들어 매달고 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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