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6.20 20:09
수정 : 2012.11.2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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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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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스타
링의 야수 밥 샙과 싸울 땐
거대한 암벽에 충돌한 느낌
국내 무대 챔피언 되는 게 꿈
“오늘 죽는구나.”
상대방은 나보다 60㎏ 더 나간다. 팔뚝 굵기가 내 두배다. 검은 피부에 울퉁불퉁한 근육. 얼굴을 올려 쳐다보니 숨이 막힌다.
그가 휘두르는 주먹이 얼굴을 스쳤다. 처음 느껴보는 엄청난 충격이다. 제대로 맞으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몸끼리 부딪쳤다. “헉” 사람의 몸이 아니다. 마치 커다란 암벽에 충돌한 것 같다. 일단 뒷걸음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한방 맞아 쓰러지더라도 도망가다가 졌다는 이야기만은 듣기 싫었다. 탐색전도 필요 없었다. 상대방에 대한 파악은 이미 끝났다. 비록 8연패를 한 한물간 주먹이라고 하나 한때 세계 챔피언이었다. 연패를 끊는 희생자가 바로 나일 수 있다.
간신히 1회전을 버텼다. 살았다는 안도감이 든다. 곧바로 그만 포기하고 싶었다. 순간 “헉헉헉”대는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상대방도 매우 지친 것이다. 그리고 링 주변에 앉아 나를 응원하는 아내(김정애)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가 내 경기를 경기장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다. “아!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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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가 16일 ‘로드FC’ 경기에서 60㎏ 더 나가는 밥 샙과 대결 자세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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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별명은 ‘북파공작원’. 물론 북한에 갔다 온 적은 없다. 가난했던 시절, 월급을 많이 준다는 신문 광고를 보고 입대를 했다. 군 특수부대였다. 군 생활 5년간 제대로 휴가 한번 못 갔다. 비상시 북한 후방에 침투해 작전을 수행하는 부대. 상상하기 어려운 훈련과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 험하다는 강원도 산을 안방 드나들듯 헤매고 다녔다. 제대할 때 통장엔 8500만원이 쌓여 있었다.
제대하곤 고물상 하는 아버지를 도와 일했다. 틈틈이 체육관에 다니며 군대에서 절정으로 끌어올린 체력을 유지했다. 그러다 지난해 8월 ‘주먹이 운다’에 나갔다. 한 케이블 채널이 전국의 ‘싸움꾼’들을 맞붙여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때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깡다구 있는 경기 모습에 별명까지 ‘북파공작원’이 된 것이다.
본격적인 격투사의 길로 들어섰다. 전적은 6승3패1무. 6승 가운데 4승이 KO승. 3패는 모두 KO패. 대부분 경기가 화끈했다는 이야기이다. 다른 선수처럼 체계적으로 배운 운동도 없다. 선수 프로필엔 킥복싱이 주무기라고 써 놓았지만 그냥 쓴 것이다. 그야말로 실전 격투기였다. 물론 그렇다고 길거리 주먹짓은 해본 적이 없다. 같이 고생했던 군부대 동료들이나 부대 명칭에 불명예는 주지 않아야 했다.
다시 2라운드 시작을 알리는 공이 울린다.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들린다. 부담스럽다. 링에서 그 ‘괴물’과 다시 맞붙었다. 상대방은 체력이 약점이다. 이리저리 체력 소모를 위해 유인했고, 마침내 그를 올라탔다.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심판이 말렸다. 이겼다. 2회 2분 만에 TKO승. 누구도 내가 이길 것이라고 예상하진 않았고, 나도 그랬다.
지난 16일 강원도 원주 치악체육관에서 열린 토종 격투기 대회 ‘로드 FC’ 무제한급 경기에서 나는 살아남았다. 키 195㎝, 몸무게 141㎏의 ‘야수’ 밥 샙(39·미국)을 이긴 것이다.
경기가 끝나고 인터넷을 보니 미리 짜고 밥 샙이 져준 의혹이 있다는 악성댓글도 많이 있었다. 참아 넘겨야 한다. 내 희망은 다른 선수처럼 세계적인 유에프시(UFC) 무대에서 챔피언 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국내 무대에서 챔피언이 되고 싶다. 얼마 전부터 지역 교육청에 기능직으로 취직했다. 하루 1~2시간 짬을 내 운동을 하지만 화끈한 내 경기는 계속될 것이다. 나는 ‘멋진 격투사’ 김종대(31·팀포스)이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사진 로드F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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