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인이 지난 7일 서울 번동 암벽 훈련장에서 마무리 훈련을 하고 있다. 손가락 끝에 힘을 집중해야 하는 고통을 초월한 얼굴 표정이 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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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스타 ㅣ 암벽타기 여제 김자인
발가락 풀리며 추락의 공포 엄습정신 몰입하며 “조금만 더 위로”
지난해 세계1위 내준 스파이더우먼
12일 열리는 파리 세계선수권 별러 온몸의 글리코겐이 다 소진됐다. 홀더에 걸고 있는 손가락에 점점 힘이 빠진다. 순간 추락의 공포가 몰려온다. 이미 수직 높이 11m. 힘차게 구부려 홀더에 걸쳐 체중의 대부분을 지탱하는 엄지발가락의 긴장감도 풀어진다. 앞으로 올라가야 할 높이가 3m. 다시 정신을 집중한다. 오직 정신력만이 추락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 내 몸엔 안전 자일이 걸려 있지. 추락해도 안전해.” 타협의 유혹이 시작된다. “이만큼 올라왔으면 됐잖아. 자인아. 그만 내려가자.” 달콤한 타협을 뒤로하고 손을 뻗는다. “난 세계 최고야. 할 수 있어.” 자존심이다. 중력의 밧줄이 몸을 끌어내리지만 손가락, 발가락 마디에 힘을 준다. 거친 숨소리가 스스로를 강하게 자극한다. 이 순간, “무아의 경지에 들어간다. 추락의 공포도 사라진다. 떨어진다는 의식은 지워진다.” 스포츠클라이밍의 ‘여제’ 김자인(24·노스페이스)이 올 시즌 세계랭킹 1위 탈환에 나선다. 오는 12일부터 5일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10일 출국한다. 마음은 그다지 가볍지 않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으로 세계 1위 자리를 빼앗겼고, 올 상반기에 열린 세차례 월드컵에서 2위와 두 차례 9위를 해 상처를 받았다. 지난 런던올림픽에서 역도의 장미란 선수가 4위를 한 뒤, “부상으로 금메달이 멀어져갔음을 알고서도 주변에 이야기 못했다”며 울먹일 때 김자인도 펑펑 울었다. 가을학기엔 대학원 휴학까지 하며 운동에 몰두했다. 문득 2004년 고1 때 첫 출전한 프랑스 월드컵이 떠오른다. 당시 아시아 정상이었던 김자인은 일반부 최하위권인 41위에 머물렀다. 큰 실망에도 다시 홀더를 잡은 김자인은 2010년 스포츠클라이밍 6개 대회에서 5개 대회를 우승하며 ‘스파이더 여제’로 자리매김했다. 키가 153㎝, 43㎏의 조그만 몸으로 암벽타기 세계정상에 오른 비결은 무엇일까? 이름 때문인가? (산을 좋아해 산에서 인연을 맺은 그의 부모는 자일의 ‘자’와 인수봉의 ‘인’을 따 이름을 지었다.) “처음엔 암벽 정상에 오르는 것이 공포스러웠다. 이제는 그런 공포는 없다. 남들은 나를 괴물이라고 한다. 결코 타고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꾸준한 노력의 결과다.” 섬세하게 발달된 팔, 다리 근육이 신기하다. 최근 슬럼프의 이유는? “집중이 잘 안된다. 심리적으로 위축됐다. 세계 1등을 지키는 것에 대한 압박감에서 잠시 진 것 같다.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집착하지 않겠다.” 김자인은 파리대회에서 자신의 주종목인 리드 부문을 포함해 볼더링과 스피드 부문에도 출전해 사상 첫 종합우승에 도전한다. 또 21일부터는 벨기에 월드컵, 29일부터는 미국 월드컵에 잇따라 출전할 예정이다. 파리대회는 인터넷(www.ifsc.tv)에서 생중계로 전 경기를 시청할 수 있다. 스포츠클라이밍 종목에는 3가지가 있다. 13~15m의 벽을 정해진 시간 내 높이 올라가는 리드, 5m의 벽 5~6개를 안전장비 없이 오르는 볼더링, 정해진 루트에서 속도를 재는 스피드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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