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4.02 19:55
수정 : 2013.04.03 08:43
|
최근 부진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차유람은 단순한 순위 상승이 아닌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당구의 완성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
별별 스타 ㅣ ‘당구 여신’ 차유람
“아무것도 모를때 정상 올라
이젠 큐대 잡으면 겁나
세계 순위 연연하지 않고
차유람만의 당구 만들 것”
부드럽고 질긴 고무 튜브를 당긴다. 단순하고 지루한 동작의 반복이다. 그리 큰 힘을 주지 않아도 고무 튜브는 당겨진다. 오른손, 왼손 번갈아 당긴다.
이제는 아령운동이다. 아주 가벼운 아령을 잡고 팔뚝 근육을 단련시킨다. 이어지는 스트레칭. 허리 굽혔다 펴기를 반복한다.
모든 운동이 근육의 힘을 키우기보다는 근육의 균형을 위한 운동이다. 균형이 깨지면 결코 이길 수 없다. 온몸의 섬세한 근육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남들은 그를 ‘얼짱’ ‘여신’이라며 치켜세웠으나 돌아오는 것은 심리적 부담뿐. 정말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다. 그래서 지난겨울, 차유람(26·한체대)은 유난히 고독했다.
|
차유람
|
“정말 아무것도 모를 때 세계 정상에 올랐어요. 이제는 겁이 나요. 당구 큐대를 잡는 것이 자꾸 무서워져요.”
철이 드는 것일까? “아직도 더 아프고 힘들 것 같아요. 피할 수만 있다면….”
올해 출발이 썩 좋지 않다. 지난달 16일 대만(타이완) 타이베이시립체육관에서 열린 2013 암웨이배 세계 여자 9볼 오픈 경기 16강에서 탈락했다. 시즌 개막전이었는데 중국 천쓰밍에게 역전패했다. 사실 시작부터 심리 상태가 좋지 못했다.
유난히 대만 팬들은 차유람을 좋아했다. 중계 텔레비전 카메라는 첫 경기부터 차유람한테 집중했다. 정신 집중이 안됐다. 팬 사인회도 힘들었다. 힘은 들지만 웃어야 했다.
|
차유람
|
‘강남스타일’의 말춤을 춘 것이 팬들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지난달 6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 톱랭커 나인볼대회’에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말춤을 춘 것이 유튜브에 공개됐다. 빼어난 외모에 춤까지, 그리고 강렬한 색깔의 당구공 이미지와 겹치며 차유람의 대만 팬들은 더욱 열광했다.
“올해 목표는 없어요. 더이상 세계 1위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요.”
차유람의 현재 세계 랭킹은 10위. 2년 전엔 3위였다. 그때 엉겁결에 두차례 세계 정상에 올랐다.
표정이 비장하다. 지난달 27일 서울 개포동 한 빌딩 지하에 있는 전용 당구 연습장에서 만난 차유람은 운동선수라기보다는 철학자 같은 ‘구름 잡는’ 이야기만을 한다. 지난 4년 동안 이곳에서 차유람은 자신을 조련해 온 이장수 감독과 당구공의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당구의 가치가 바로 저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차유람 당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인 거죠. 세계 1위는 더이상 목표가 아닌 거죠.”
사실 차유람은 좀 유별나다. 수원 율전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자퇴, 검정고시로 대학입학 자격을 획득했다. 정규 교육과정이 부담스러웠을까?
“학교는 당구 선수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대회 출전도 어려웠고요. 차리리 자퇴하고 나름대로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테니스를 시작하였다가, 6학년부터 테니스 라켓 대신 당구 큐대를 잡은 차유람은 2006년 9월 세계적인 당구 스타 자넷 리와 포켓볼 경기를 하며 얼짱 당구 스타로 이름을 알렸다. 2006년 도하,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차유람이 집중하는 훈련은 마인드 컨트롤. 한순간의 실수가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흔히 골프가 ‘멘탈 게임’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골프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요. 한번 휘두르고 나면 다음 샷까지 걸어가면서 캐디와 이야기하고 긴장을 풀어요. 그런데 당구는 모든 것을 혼자, 그리고 35~45초 안에 결정해야 해요. 그리고 내가 실수하면 바로 상대방의 찬스로 이어져요. 아마도 당구는 골프보다 훨씬 멘탈에 흔들리는 경기일 것입니다.”
“일반인들은 스트레스를 풀려고 당구를 치지만, 선수들은 당구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인 거죠. 더이상 우울하고 싶지 않아요.”
오는 5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는 차이나 오픈대회를 준비중이다. 또 6월에는 자신이 홍보대사로 있는 인천 실내무도 아시아경기대회, 8월에는 중국 선양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등에서 차유람은 진화된 자신의 당구를 선보이려 하고 있다.
“저의 당구에 자신은 있으나 아직 확신은 없어요.” 당구대 위에 놓인 당구공을 유심히 노려본다. 찬바람이 ‘휭’하니 분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