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13 18:32
수정 : 2014.04.13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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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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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아동학대 사건이 가슴을 짓누른다. 어떻게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이토록 많은 아이들이 오랫동안 학대받다 죽음에 이르는 일이 반복될 수 있는가? 2005년 16명, 2008년 8명, 2012년 13명…. 2001년부터 2012년까지 거의 100여명에 이르는 아이들이 학대로 숨졌다. 이 수치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을 통해 접수된 사례일 뿐이다. 수사기관에 접수된 아동학대 사망사건은 해당 기관에 전달되지 않았고, 병원에서 숨진 아이들도 사인이 학대로 판명됐어도 역시 기관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따라서 실제 사망 사례는 훨씬 많아, 적어도 한달에 한명꼴로 이 나라 새싹들이 아동학대로 꺾였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엔아동권리협약 비준국인 이 나라 아동보호체계는 왜 이런 비극을 막지 못했나? 도대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죽거나 고통을 겪어야 안전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질까? 아동학대 판정 건수는 2001년 2105건에서 2012년에는 6403건으로 뛰었다. 10년여 사이에 무려 3배 이상 는 것이다. 신고율이 높아지고 기관 개입이 적극 이뤄진 데 따른 면도 있지만, 가정 해체로 인한 방임·유기·신체적 학대가 증가한 까닭도 크다. 물론 정부 및 우리 사회의 대응이 없지는 않았다. 지난해만도 어린이집 아동학대 근절대책(5월), 아동학대복지현황보고서 발표 및 아동복지법 개정 추진(7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12월) 등이 잇따랐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2월말 국무총리 주재로 아동학대 예방 종합대책이 마련됐고, 며칠 전인 이달 11일에는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당정협의도 있었다.
이렇듯 대책이 이어졌는데도 왜 비극은 반복되는 것일까? 우선, 정부 대책을 뜯어보면 대체로 관련 사건이 발생한 데 따른 ‘사후약방문격 방안’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고, 무엇보다 예산과 인프라 확충이 수반되지 않는 ‘허울뿐인 대책’이기 일쑤였다. 남윤인순 의원실(새정치민주연합)에 따르면, 중앙정부의 아동학대 관련 예산은 2013년 10억6700만원, 2014년에도 고작 11억6200만원이었다. 이런 상황은 아동학대 예방 업무가 ‘국가가 해야 할 우선적인 일(국가사무)’임에도 ‘지방사무’로 돼 있는 측면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난 1월말에 통과된 아동복지법 개정안에는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을 시·도 및 시·군·구에 1개소 이상 두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들 기관은 현재 전국 51곳에 그친다. 해당 규정을 명문화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중앙정부가 예산을 지자체에 지원하도록 하는 방안을 함께 마련했어야 한다. 그러나 ‘법 따로, 현실 따로’였다. 특례법에 근거해 책정된 예산은 0원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지자체가 해당 법 조항을 현실화할 재정능력이 있지도 않다. 그나마 지난 11일의 당정협의에서 아동학대 관련 예산의 우선확보를 추진하고 실태점검에 나서겠다고 했으니 두고 볼 일이다.
아동학대 예방은 제도만으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 근본 대책은 어쩌면 가해자의 80%가 넘는 부모에 대한 교육과 사회적 인식 전환에 있는지도 모른다. 훈육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부모들의 체벌·방임·유기 등의 신체적·정신적 폭력은 아이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긴다. 그것은 엄연히 범죄다. 이런 사실을 부모는 물론 우리 사회가 명확히 인식하도록 하는 노력을 정부와 학교, 언론 등이 꾸준히 전개할 때 비로소 아동학대의 예방 및 감소가 이뤄지지 않을까?(아동학대 상담·신고 전화 1577-1391)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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