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조국 민정수석(가운데)이 지난 3월20일 오전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조 수석, 김형연 법무 비서관.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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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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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설] ‘87년 체제’ 넘어 시대 변화·가치 담아내는 그릇으로
청와대가 ‘대통령 개헌안’의 순차 공개에 나서면서 20일 헌법 전문·기본권 내용을 발표했다. 완결된 개헌안을 공개한 건 처음인데, 국회의 개헌 작업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그 의미가 가볍지 않다. 다만, 예고한 발의일(26일)이 1주일도 남지 않았는데 여전히 요지만 내놓고 전문을 공개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야당이 ‘정략적 개헌쇼’라 비판하는 와중에 굳이 사흘씩이나 ‘쪼개기 발표’를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국민 관심과 이해를 높이려는 의도라 해도 ‘정략적 접근’이란 오해는 피하는 게 좋다.
헌법은 그 시대의 정신을 담아내는 그릇이어야 한다. 헌법 전문에 부마항쟁과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을 추가한 건 그런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국민 저항권’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촛불 시민혁명’을 넣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아직 진행중인 사안이니 성급하다는 반론에도 일리는 있다.
또한 헌법은 미래를 예시하는 방향타 구실을 한다. 생명권, 안전권 신설은 앞으로 국가가 지향해야 할 역할을 보여준다. 생명권은 사형제 폐지 논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안전하게 살 권리와 국가의 재해예방 의무는, 각종 위험에 노출돼 있고 언제 어디서 사고와 맞닥뜨릴지 알 수 없는 국민의 불안감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
헌법 개정은 제도 개혁의 출발점이란 의미도 지닌다. 국민발안제와 국민소환제 도입은 국민이 권력의 감시자로, 직접적인 입법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주민소환제가 있지만 국회의원은 명백한 비리가 드러나도 확정판결 전까지 책임을 지울 수 없었는데, 국민소환제가 도입되면 국민이 직접 소환할 수 있게 된다.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해 대의민주주의제를 보완하라는 목소리는 ‘촛불시민’의 요구이기도 하다.
검사의 영장청구권 조항 삭제는 국회의 사법개혁,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에 영향을 줄 것이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에 더해 영장청구권까지 독점하면서 발생하는 폐해가 적지 않은데, 헌법 개정으로 영장청구 주체를 변경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헌법은 그 시대의 사회·정치적 지표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 시절의 ‘국민 동원 체제’를 반영하는 ‘근로’란 용어를 ‘노동’으로 수정한 것은 뒤늦은 감이 든다. 이미 ‘노조’ ‘고용노동부’ 등 ‘노동’이란 용어가 보편적으로 쓰이는 게 현실이다. 국가에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수준 임금 지급 노력 의무’를 부과해 남녀 차별과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높인 점도 긍정적이다. 공무원의 노동 3권을 인정하되 현역군인 등 법률로 정한 예외적 경우에만 이를 제한할 수 있도록 했는데, 국제노동기구나 유엔 기준을 고려하면 당연한 개정이다.
미흡한 점도 있다. 환경단체들은 지구적 생태 위기를 반영하지 못했으며, 국가의 ‘동물보호 정책 수립 의무’를 명시했지만 생명권을 ‘동물들의 권리’로 확대하지 않았다고 아쉬워한다. #미투가 요구하는 실질적인 성평등 실현과 여성의 대표성 강화, 성소수자 차별 시정을 위한 제도가 부족하다고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일부 나온다.
[중앙일보 사설] 이런 개헌 방식은 헌법과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청와대가 이틀째 개헌안 쪼개기 발표를 이어갔다. 헌법이란 국가의 통치조직과 작용의 기본 원리와 국민 기본권을 규정하는 근본 규범이다. 그 가치와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전체적 맥락에서 살펴야지 어느 한두 가지 규정만 놓고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 의견을 듣고 평가를 받고자 한다면 한 번에 개헌안 전체를 공개하고 설명하는 게 타당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전체 공개 없이 변경된 내용 일부만, 그것도 찔끔찔끔 발표하는 것은 TV 중간광고처럼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쇼’로밖에는 비치지 않는다.
이런 절차적 문제 외에 내용 면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헌법 전문에 보수진영이 자랑스러워하는 산업화 역사는 빼고 ‘부마 민주항쟁’ ‘5·18 광주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등 진보진영이 강조하는 역사만 집어넣어 이념 갈등과 국론 분열을 부추길 소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많은 헌법학자가 고개를 젓고 있는 이유다.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시하는 것 역시 논란의 여지가 있다. 환경과 국토의 균형적 개발 차원에서 개인의 재산권을 어느 정도 제한할 수 있다는 데는 원론적으로 찬성할 수 있다. 하지만 토지공개념은 자칫 토지·주택 거래 허가제와 부동산 이득의 사회주의적 환수 개념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공청회 등 충분한 논의를 거쳐 국민적 합의를 이뤄야 하는 문제인데 이처럼 기습적으로 헌법에 포함시켜야 할 이유를 아무래도 찾지 못하겠다. 이미 헌법 122조가 국민의 재산권에 대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 밖에 지방분권을 강화하고 기본권을 강화하는 것도 청와대 개헌안의 핵심 중 하나인데 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것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제왕적이라 일컬어지는 대통령 권력을 실질적으로 축소하는 장치들이 마련돼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모두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부르고 ‘국민’을 ‘사람’으로 바꾼다고 해서 절로 지방분권과 기본권이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청와대 개헌안은 대통령 4년 중임제만 규정하고 있을 뿐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지 못하다. 그러면서 중임제로만 바꾼다면 제왕적 대통령의 임기만 8년으로 늘리는 결과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개헌의 무게를 헤아린다면 청와대 수석회의가 아니라 적어도 모든 국무위원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치열하게 논의하는 게 헌법정신에 맞다. 대통령이 해외 출장지에서 개헌안의 국무회의 상정, 국회 송부 등 3차례나 전자결재를 하는 것도 헌법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런 설익은 개헌안을 서둘러 던져 놓고 국회더러 표결이나 하라는 것은 오만이며 실제로 개헌 의지가 없다는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거듭 강조하지만 개헌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여야 합의 아래 국민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지 어느 한 진영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미리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마구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추천 도서]
[키워드로 보는 사설] 1987년 체제와 개헌 요구 헌법은 제·개정된 시대의 상황과 권력 관계를 반영한다. 현행 헌법인 1987년 헌법은 6월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그해 10월에 탄생한 헌법이다.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을 거치면서 장기집권과 독재에 대한 분노가 치솟은 때이다.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고 5년 단임제를 명시하는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공론화를 거치지 않았고, 전문가의 참여도 없이 여야 8인 정치회담이 주도하여 만들었다. 헌법의 국가적 과제를 결정하는 담당자는 국민이 아닌 정치인이었고, 헌법의 성격은 국가권력구조 하나로 집약되었다. 그러나 30여년간 국민들은 선출된 독재자, 민의를 무시하는 국회, 불공정한 사법부, 국민 말고 권력자에 봉사하는 관료들을 보았다. 권력 기관의 기능을 되돌리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며 변화된 시대에 맞게 더 많은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는 헌법을 원한다. 대통령 중심제뿐 아니라 여타 권력구조도 만능열쇠는 아니다. 헌법 완성은 끝없는 과정이다. 2018년의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 지방과 국회에 대통령의 권한을 나누고 제도 안에 쌓인 적폐를 청산하며 국민의 기본권을 확대하는 내용의 헌법을 발의했다. 우리 시대의 헌법으로 자격이 있는가. 국민이 ‘모든 권력의 주인’ 자격으로 이에 응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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