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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6 10:05 수정 : 2019.12.26 10:45

인공지능, 인터넷,자율주행차, 유전자편집 등
2010년대를 뜨겁게 달군 혁신기술이 남긴 것

2016년 두 여성과 한 남자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아이를 의료진이 안고 있다. 사진은 뉴사이언티스트에서 인용.

변화를 가속화한 디지털 기술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21세기 들어 두번째 지나간다. 지난 10년간 과학기술계에선 굵직한 성과들이 잇따랐다. 우주 만물에 질량을 부여해 `신의 입자'로 불려온 힉스 입자 발견(2012), 우주 탄생의 비밀을 풀 중력파 검출(2015)과 블랙홀 그림자 영상 포착(2019) 등 기초과학의 숙제들이 풀렸는가 하면, 우주탐사선이 보내온 자료를 분석해 화성에서 액체 상태의 물(2018)을 찾아내고 케플러우주망원경(2009년 발사) 같은 우주망원경으로 4천여개의 외계행성을 발견했다. 생명과학자들은 RNA 분자와 효소를 결합한 3세대 유전자가위 `크리스퍼-캐스나인'을 개발(2012)한 데 이어 영화 <옥자>에서처럼 슈퍼근육을 가진 돼지(2015), 세부모 유전자를 지닌 아기(2016)를 탄생시켰다. 우주과학자들은 지구에서 3억km나 떨어져 있는 소행성에 탐사선을 착륙(2019)시켰고, 우주개발업체들은 우주로 발사한 로켓을 회수해 몇번이고 쓰는 로켓 재활용(2017) 시대를 열었다. 인공지능 개발자들은 바둑과 포커, 온라인게임에서 잇따라 인간 최고수를 물리친 인공지능을 선보였고, 뇌과학자들은 생각을 읽어 글자로 써 보여주는 뇌인터페이스 장치를 만들어냈다.

 과학은 세계와 우주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기술은 그것에 개입하는 도구를 벼려준다. 과학기술의 성과가 축적될수록 세상의 변화 속도는 빨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디지털기술이 덧붙여져 변화의 가속기 노릇을 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은 작금의 변화 속도와 폭이 어느 정도인지를 상징하는 말이다. 기술 변화의 급류를 탄 지난 10년 과학기술은 세상을 얼마나 바꿔놓았을까?

2016년 3월 치러진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대결. 한국기원 제공

인공지능의 질주는 종마...인간의 지혜는 하룻망아지?

2010년대는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기술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혁신을 일궈낸 시기였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3D 프린팅, 자율주행차, 생명과학기술(바이오테크놀로지)의 성과가 두드러진다. 인공지능의 약진이 단연 압권이었다. 딥러닝 기술(2012)과 갠(GAN, 생성적 적대 신경망, 2014)이 기폭제 역할을 하고,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세기적 바둑 대결(2016)이 세계적인 인공지능 붐을 불렀다. 이제 웬만한 전자기기에선 인공지능이 필수 기능이 됐다. 인공지능은 데이터에 기반한 분석과 추론을 넘어 시, 소설, 음악, 영화, 그림 등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분야에까지 뛰어들었다. 요즘엔 10분에 하나꼴로 인공지능 특허가 쏟아지고 있다. 영국의 철학자 닉 보스트롬은 이런 상황을 "들판을 질주하는 종마와도 같은 인간의 기술 능력과 다리에 힘이 없어 비틀거리는 망아지와도 같은 인간의 지혜 사이에 벌어지는 장거리 경주가 벌어지고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구글 웨이모의 자율주행차. 위키미디어 코먼스

누구와도 교류하고 누구나 생산자가 되는 세상

딥러닝과 같은해 생명과학계에선 3세대 유전자가위가 탄생해 유전자를 읽는 시대에서 유전자를 쓰는 시대로 바꿔놓았다. 20여년간 정체됐던 3D 프린팅에선 2009년 FDM(압출적층성형) 방식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개인용 3D 프린터 시대가 시작됐다. 구글은 자율주행차 개발 10년만에 최근 미국의 한 도시에서 운전석 탑승자가 없는 완전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시작했다. 인터넷의 성장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인터넷 이용 인구는 지난 10년간 20억명에서 40억명으로 늘었고, 인터넷에 연결된 기기 수는 수십억 단위에서 수백억 단위로 급증했다. "세상 누구와도 실시간 교류가 가능하고 누구나 이동의 자유를 누리며 누구나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세상, 인공지능과 유전자 교정으로 선천적 한계를 뛰어넘는 인간"이 이 기술들이 지향하는 변화의 방향이다.

2007년 1월 맥월드 전시회에서 공개된 최초의 아이폰. 위키미디어 코먼스

생활 급변의 진원지가 된 스마트폰...'스마트폰 승수' 현상도

 지난 10년간의 기술 혁신이 가져온 생활 변화의 중심에 스마트폰이 있다. 2007년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으로 시작된 스마트폰 세상은 2010년대 들어 활짝 꽃을 피웠다. 모바일기기를 중심으로 지구촌 전체가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인터넷망과 인공지능 기술이 선봉장 역할을 했다. 일상의 허브가 된 스마트폰은 소셜미디어의 번성을 가져왔다. 소셜미디어는 2010년대 초반엔 새로운 정보 유통 수단으로 자리매김하면서 2012년 폐쇄 통제사회인 중동에 민주화 운동(`아랍의 봄')을 불러왔다. 이어 2010년대 후반엔 문자 시대를 끝내고 동영상 정보시대를 열었다. 구글은 2017년 2월 전세계 유튜브 시청 시간이 하루 10억시간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한 사람이 시청할 경우 꼬박 10만년이 걸리는 분량이다. 오늘날 소셜미디어의 중심 페이스북 이용자는 25억명, 동영상 채널 유튜브 이용자는 10억명이 넘는다. 이는 기존 미디어의 급격한 퇴조를 수반했다.

 스마트폰은 방대한 규모의 관련기기 및 서비스 시장도 만들어냈다. 케이스, 충전기, 스피커, 헤드셋 등의 관련제품과 앱, 스트리밍 음악, 수리, 보험, 클라우드 등 관련서비스 시장이 한 해 수천억달러에 이른다. 이를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의 `통화 승수' 효과에 빗대 `스마트폰 승수'라고도 부를 정도다. 컨설팅업체 딜로이트는 이 시장이 2020년 459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새해 스마트폰 시장 추정치 4840억달러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두 시장을 합치면 무려 1조달러에 육박한다.

2010년대는 소셜미디어의 시대로 부를 만하다. 픽사베이

새로운 경제 플랫폼이 된 인터넷...산업 주역이 바뀐다

 인터넷이 새로운 플랫폼으로 등장하면서 곳곳에서 산업의 주역도 바뀌고 있다. 직접 시설투자를 하지 않고 연결망을 구축하는 것만으로도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예컨대 2010년 서비스를 시작한 우버 등 차량호출업체는 불과 몇년 사이에 기존 택시업계를 위협했다. 숙박 공유 플랫폼인 에어비앤비는 2008년 설립 이후 10년 사이에 세계 상위 5개 호텔 체인보다 많은 숙소를 확보했다. 에어비앤비 웹사이트에 따르면 현재 등록 숙소는 191개국 10만개 도시 700만개, 누적 이용객은 5억명에 이르며 매일밤 200만명 이상이 에어비앤비 숙소를 이용한다.

소셜미디어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드라마 시리즈 `블랙미러'의 한 장면. 예고편 갈무리

데이터 집중과 온라인세상이 드리우는 혁신의 그림자들

 하지만 모든 현상엔 양면이 있는 법이다. 혁신이 세상을 좋게만 바꿔가는 건 아니다. 밝은 면 뒤엔 그림자가 있다. 인터넷은 국경없는 세계 시장을 만들어냄으로써 부의 집중을 심화시켰다. 블룸버그 기준 세계 10대 억만장자의 거의 절반이 IT 기업 창업자들이다. 빅데이터는 정보를 쥔 쪽의 권력 비대화를 불렀고, 이는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2020년까지 인공지능과 연결된 6억대 가까운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겠다는 중국의 방침은 빅데이터가 만드는 디스토피아 사회를 연상케 한다. 인공지능은 진짜같은 가짜 콘텐츠(딥페이크)를 쏟아내면서 공동체의 근간이 되는 사회적 신뢰 수준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2~3년 후엔 진짜보다 가짜 정보를 더 많이 접하게 될 것이라는 음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넷플릭스의 인기 SF 드라마 시리즈 <블랙 미러>에선 소셜 미디어가 펼치는 디스토피아 세상이 등장한다. 공주의 납치 장면과 납치범의 요구 조건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생중계되고, 정부는 가짜 영상을 만들어 대응해 나간다. 제목으로 쓰인 '검은 거울'은 화면이 꺼진 전자기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현대인들은 자유시간의 대부분을 인터넷과 함께 보내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편리한 디지털 도구를 얻는 대신 인간을 잃고 있다

 무엇보다도 디지털 혁신은 인간의 일상을 온라인 세상이라는 우리 안에 가뒀다. 인간 사회의 지난 역사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다양한 도구를 이용하면서 자유를 확대해가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제 인간이 만든 도구 시스템에 인간이 갇히는 순간을 맞고 있다. 인간은 앉아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디지털 도구를 얻는 대신 인간을 잃고 있다. 고독을 얻고 관계를 잃고 있다고나 할까. 한 조사에 따르면 세계인은 평균 하루에 6시간40분 인터넷에 접속한다. 수면과 식사, 운전, 업무나 수업 등 필수불가결한 시간 외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디지털 기기가 보여주는 자극적 콘텐츠와 함께 보내는 셈이다. 디지털기술 혁신의 중심지인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모든 자극을 끊어버리는 `도파민 단식'이 주목받는 건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를 보여준다. 2010년대는 인간의 일상이 디지털 자극에 전면 노출되는 전환의 시기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시간을 독서에 활용할 경우 연간 수백권을 읽을 수 있다. 픽사베이

어떤 도구를 왜 만들어야 하는가...생각의 힘을 키우자

 곧 닥칠 2020년대엔 5세대(5G) 네트워크가 시대가 본격화한다. 정보 지연이나 정체가 없는 새로운 디지털 고속도로가 뚫리는 것이다. 이는 모든 기기의 연결성과 스마트화를 재촉할 것이다. 그렇다면 고삐 풀린 기술의 질주 본능을 조련하는 방법을 시급히 찾아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바람직한 삶과 가치는 무엇일까? 어떤 기술이 이를 함양하고, 어떤 기술이 이를 해칠까? 역사와 철학, 삶과 윤리, 맥락과 소통을 통해 생각의 힘을 키우는 인문학이 그 답을 뽑아내는 화수분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아이비엠계열 기술컨설팅업체 블루울프가 직원 대부분을 인문학도로 채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한다. 이 회사의 에릭 베리지(Eric Berridge) 대표는 2018년 5월 `기술에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라는 제목의 테드 강연에서 "과학은 우리에게 물건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지만, 무엇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건 인문학"이라고 말했다. 소셜미디어와 TV 시청시간을 독서에 활용할 경우 연간 1천권이 넘는 책을 읽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은퇴를 선언한 이세돌은 바둑 인공지능 앞에서의 좌절감을 그 이유로 들었다. 바둑을 `둘이 만들어가는 하나의 작품'으로 배운 그는, 인공지능 시대에 과연 그런 것이 남아 있을지 고개를 갸웃했다. 인공지능 바둑에선 인간 묘수와 실수, 꼼수가 뒤섞여 만들어내는 드라마가 없다. 치밀한 계산과 추론이 만드는 승패 결과만 있을 뿐이다. 그래도 괜찮을까? 기계시대의 디스토피아를 피하려면 이제 호흡을 가다듬고 기술 아닌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방법을 생각할 때가 아닌지 생각하며 2020년대를 맞는다.

곽노필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곽노필의 미래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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