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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7.23 19:31 수정 : 2013.06.17 15:37

김승환 한국헌법학회 회장

[언론법 강행처리 후폭풍]

국회의 의사원칙 중에 일사부재의가 있다. 만약 하나의 법률안 기타 의안에 대해 국회가 토론과 표결을 통해 일단 의사를 확정했음에도 같은 회기에 다시 표결에 부치도록 한다면 이는 같은 회기에 국회의 의사가 복수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 경우 국회의 의사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또한 하나의 법률안 기타 의안이 한 번 부결되었으면 의원들이 그 안건에 대해 시간적 여유를 갖고 신중하게 검토해본 뒤 회기를 바꾸어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 다수결은 생각하는 다수결이어야지, 속전속결식 다수결이어서는 안 된다. 다수결은 단순한 숫자놀음이 아니라 헌법과 국회법이 규정하는 절차를 거치고 소수파의 의사를 숙고하면서 의사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일사부재의 원칙은 보통 소수파에 의한 의사진행 방해를 막기 위한 것이다. 하물며 다수파가 이 원칙을 깨는 것은 국회의 권한에 대한 더 큰 위협요소가 된다. 일사부재의 원칙은 헌법이 규정하는 국회의 입법권이 실질적이고 헌법합치적으로 행사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일사부재의 원칙은 헌법상 불문의 원칙이고 국회법 제92조가 이것을 확인하고 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이윤성 부의장에게 사회권을 넘겼고,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한 결과 145명의 의원만이 투표에 참여함으로써 재적의원 과반수가 표결에 참여해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재적의원 과반수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해당 법률안이 부결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 경우 국회는 같은 회기에 다시 해당 법률안에 대한 의결절차를 밟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이윤성 부의장이 “재석의원이 부족해 표결 불성립되었으므로 다시 투표해 달라”고 요청하고 이에 따라 재투표가 실시되었지만, 이런 경우 의사진행권자가 재투표에 회부할 권한 자체가 헌법이나 국회법에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비록 이윤성 부의장이 “표결 불성립”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국회 의사의 법적 성질이 의장이나 부의장의 용어 표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원래 재투표란 처음의 투표가 법적으로 무효가 되었을 경우에 치르는 투표를 말한다.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재선거를 생각해 보라.

방송법의 불법 처리에 이의를 갖는 국회의원들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여기에는 당연히 가처분 신청도 뒤따라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이 법률안의 의결과 관련하여 국회의장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을 판례로 확립해 놓았다. 헌법재판소법 제65조는 “헌법재판소가 권한쟁의심판의 청구를 받은 때에는 직권 또는 청구인의 신청에 의하여 종국결정의 선고시까지 심판 대상이 된 피청구인의 처분의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왜 이토록 헌법질서를 짓밟고 국회의원의 헌법적 권한을 파괴하면서까지 방송법 개악에 병적인 집착을 하는지 그 이유는 이미 김형오 국회의장의 입을 통해서 명백하게 드러났다. 그것은 족벌신문 조중동에 지상파방송을 넘겨주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뇌리에는 민주적 헌법질서에서 방송이 차지하는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 왜 방송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특히 한국에서는 시장지배적 신문사업자로부터 독립해야 하는지, 공영방송은 무엇인지, 방송 내에서도 경영권과 편성권 사이에는 어떤 경계선이 그어져야 하는지는 생각할 가치조차 없다. 2009년 7월22일은 이명박 정권에 의해서 헌법 제21조가 규정하는 방송의 자유와 독립성이 학살당한 날이다. 방송의 자유와 독립성은 민주주의 존립의 기초라는 점에서 이날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정권의 토목공사에 의해서 처참하게 찢긴 날이다. 이제 방송의 자유와 독립성에 대한 침탈로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알 권리는 뇌사상태에 들어갔다.

김승환/한국헌법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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