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7 19:50
수정 : 2013.06.1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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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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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황석영 특별기고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젊은 문인 137명이 ‘정권교체 선언문’을 신문광고로 낸 데 대해 최근 선관위가 이 문인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소설가 황석영씨가 선관위의 고발과 ‘표현의 자유 억압’을 비판하는 글을 보내왔다.
1970년대에 젊은 문인들이 ‘자유실천문인협의회’라는 이름으로 모였던 것은 당시의 군사독재 정부가 삼선개헌과 유신으로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유린했기 때문이었다. 많은 문학인들이 검열에 걸려서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거나 연행·구속·수감되고 고문을 당하기도 했으며 그 후유증으로 죽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세계 도처의 예술가·지식인들이 자기네의 사회·정치적 문제에 대하여 발언하고 비판하는 것은 하나의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서구 사회에서는 그리스 이래로 지식인의 비판적 기능을 인문정신의 기본으로 삼는다.
지난 12월13일에 137명의 젊은 시인·작가들이 때마침 전국을 휩쓸고 있는 대선정국에 관하여 ‘의사표명’을 했다. 미처 챙겨 보지 못하고 내용은 나중에 보았지만 한마디로 그들은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그 며칠 전에는 문화예술인 1만800명이 정권교체를 바라는 성명서를 냈는데 젊은 시인·작가들은 원고료 수입도 형편없을 텐데 서로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신문에 광고를 냈다고 한다.
검은 연기와 함께 타오른 용산의 철거민들, 죽어간 쌍용차 노동자들, 언론탄압과 민간인 사찰이며 뒤집히고 혼탁해진 강에 대하여 나직하게 이야기하면서 그들은 지난 5년간 우리에게는 어느 때보다도 힘든 시간이었다고 썼다. 그래서 그들은 조금이라도 삶의 가치가 높아지는 세상의 출발이 정권교체에 있음을 절실히 공감한다고 표현했다. 시인 작가들은 새로운 대통령을 원하는데 그가 세상에 절망이 아닌 희망을 파종하는 대통령이기를 바란다면서 각자 서명을 했다.
그러자 서울시 선관위가 이들을 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는데 ‘특정 정당 및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된 광고를 게재’한 것이 공직선거법 93조 및 255조에 위반되었다는 내용이다. 즉 정권교체를 바란다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해석한 듯하다. 검찰은 기소를 할 모양인데 아무리 법이라지만 사회구성원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도록 만든 선거법은 누구의 무엇을 위한 법인지 알 수가 없다. 미국에서는 언론인뿐만 아니라 신문사가 특정 정당의 후보자 아무개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 있고, 지식인은 물론이고 할리우드의 연예인들도 자신의 정치적 소신에 따라 공개적으로 아무개를 지지하고 정치적 활동에 나설 수도 있다.
이들 젊은 시인 작가들은 용산참사 때부터 독일 문단의 47그룹처럼 ‘비조직적’으로 개개인이 사안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면서 사회적 견해를 표명하기 시작했는데, 거의가 우리 문학의 미래를 끌고 나갈 실력 있는 차세대 문인들이다. 이들이 정권이 바뀌기를 원했다는 것은 현 정부의 참담한 실정에 분노했기 때문이고 저들의 독자이기도 했던 동시대 사람들의 삶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문학과 소설이 모든 사회적 교양의 척도이지만 우리네는 정치인들이 서로의 선동적인 거짓말을 비난할 때 ‘소설 쓰지 말라’고 하면서 문학을 하찮은 것으로 모욕하는 나라다. 산업의 발전을 위하여 기초과학을 육성하자는 말이나, 문화 역량을 키우려면 기초예술을 지원해야 한다는 말은 같은 말이다. 젊은 문학인, 미술인, 공연예술인 들의 열악한 한 달 생계비가 얼마인지 모르는 정치인들이 많건만 무턱대고 ‘시장논리에 맡겨야 한다’면서 기초예술 지원 프로젝트를 없애 버렸다. 대중연예의 기능과 본격예술의 그것이 다르다는 것을 한참 모르는 문화 정책이었다. 그런데 문인들에게 사회적 ‘표현의 자유’마저 포기하라면 이제 다시 싸울 수밖에 없다.
말로만 사회통합인가. 진정한 통합 의지가 있다면 승자는 자기를 지지하지 않은 절반의 민심을 다독이는 관용과 여유를 보여야 한다. 상처받은 절반을 제대로 끌어안지 못한다면 도대체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새 정부를 인정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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