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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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정당을 만드는 일이지요…
최 박사가 강조하는 중용사상은 물
론 적당히 중간을 취하는 게 아닌
줄 압니다. 때론 오히려 대담할 줄도
아는 게 진짜 중용이 아니겠습니까 얼마 전 신문을 보니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개소식에서 안철수 의원 오른쪽 옆에 최상룡 박사(후원회장)가 있고, 다른 쪽에 최장집 교수(이사장)와 장하성 교수(소장)가 있는 사진이 크게 나서 눈에 띄었습니다. 우리 정계의 잠룡이라 할까 다크호스인 안철수 의원의 정책적 참모, 그러니까 브레인트러스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니까요. 멘토 세 분이 모두 고려대 소속이라 무엇한 느낌이 있었지만 안 의원은 서울대이니 균형상의 문제가 될 게 없고 여하간 기대를 모았습니다. 최장집 교수와는 묘한 인연이 있습니다. 김종인·최장집·이정우씨 등 7명인가가 7, 8년 동안 가끔 시국문제를 놓고 연구모임을 열어왔는데, 한 분은 박근혜씨 캠프로 가서 두 번의 선거에 ‘경제민주화’의 기치로 크게 기여하고는 얼마간 뒷전으로 밀린 듯하고(그 깃발도 축 늘어져 무대 뒤에서 오락가락하고), 또 한 분은 문재인씨 진영의 정책 브레인으로 활약했으며, 드디어 세 번째로 안철수씨 그룹의 정책참모가 나온 것입니다. 참 우연치고는 절묘한 우연입니다. 그래서 최장집 교수의 평생의 정치학 연구가 꽃을 피우기를 기대했는데, 그만 얼마 못 가 헤어지는 꼴을 보게 되었으니 실망이 큽니다. 어느 신문은 ‘최장집의 고도’라는 칼럼에서 최 교수를 고도(Godot)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에 비유하며, 그에게 안 의원은 실망스럽게도 고도가 아니었다고 하였습니다. 사진의 나머지 분들 중 장하성 교수는 지면을 통해 훌륭한 경제학자로만 알고 있는 처지고, 최상룡 박사는 나와는 어언 40년쯤의 지적인 벗으로 지내는 처지라 이제 최 박사의 역할에 기대를 거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최 박사가 건네준 <최상룡 오럴 히스토리·기록>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습니다. 일본학자 서너명이 12회에 걸쳐 서너 시간씩 40여 시간을 최 박사의 평생에 관해 질문하고 답변한 것이라 객관성도 있고, 자서전이나 전기의 새로운 형태라고 하겠습니다. 일본 도쿄대에 유학을 하고 주일대사를 했기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기획을 한 것 같습니다. 일본어로 나온 게 아쉬운데 나는 아주 꼼꼼하게 완독했습니다. 가까운 시일 안에 우리말 번역본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정치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꼭 읽어볼 만합니다. 최 박사의 평생에 걸친 정치철학 연구의 결정을 엿보는 듯하고 배우는 바가 많았습니다. 평화와 중용의 사상에 관한 연구가 그렇습니다. 다만 언론인의 근성이라 할까 습성대로 좀 문제점을 말하자면 정치철학은, 19세기까지의 철학 자체가 그러한 것이지만 오랫동안 신학의 지배와 속박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게 아니어서 사회과학의 차원에서 보기엔 흡족하지 않은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스피노자의 신(神)에 대한 지적 열애는 유교의 중용사상에서 말하는 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성(誠)과 유사한 경지가 아니겠습니까” 하고, 최 박사가 평화사상에서 존경하는 스피노자에 관한 강조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권말에 첨부한 최 박사의 한·일·중 3국 관계의 미래상에 관한 2012년의 연설문 ‘지금 동아시아를 생각한다-일·중·한 협력의 있을 바’에서 정치철학은 느끼지만 그 중요한 군사관계가 완전히 사상되어 있어 사회과학으로서는, 현시점에서, 겉도는 듯한 느낌을 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득한 미래의 꿈입니다. 현실정치적 힘의 조정이나 조화가 필요한 게 아닐까요. 특히 요즘 현실은 미국의 ‘아시아 귀환’ 운운으로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이 높아가는 현실이 아닙니까. 그 샌드위치 나라들의 고민일 것입니다. 여하간 최장집 교수가 우리나라 일급의 정치학자라면 최 박사도 우리나라 최상급의 정치철학자입니다. 그리고 최장집 교수가 떠난 지금 안철수 캠프의 가장 중요한 정치멘토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최 박사에게 기대도 하고 부탁도 하는 것입니다. 거칠게 내 의견을 이야기하지요. 나는 최장집 교수가 마음먹고 한번 이상적인 정당을 만들어보려고 덤빈 것으로 봅니다.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쏟아부어 ‘진보적 자유주의’ 노선에 따라 노동을 중시하는 정당(일반이 이해하기 쉬운 구체적 방법론은 분명히 말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을 만들려 한 것입니다. 아마 유럽의 훌륭한 정당들을 염두에 둔 듯도 합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돌덩이를 쌓아서 완벽한 성채를 구축하려 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이 안철수 의원의 구상과 안 맞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마치 정치철학과 사회과학이 얼마간 다르듯, 정치학과 정략(전략·전술)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안 의원은, 혹시라도, 완벽한 석조 성곽이 아니라 엉성하지만 규모가 대단히 큰 목조의 성채를 구상한 것은 아닌지요. 노선도 여야간 중간에서 약간 모호하게 잡아서 여야 성향 양쪽의 지지를 끌어모으고, 목조의 그 높은 성곽에 올라타서 민주당 조직을 휘어잡고 옮겨타는, 그러한 전략을 구상한 것은 아닌지요. 좀 심하다 할지 모르겠으나 자연계에 그런 일들이 있습니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새도 있고, 남의 껍데기를 차지하고 칩거하는 연체동물도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그런 전략을 보아왔습니다. 만약에 그런 정략이라면 최장집 교수의 구상과 안 맞는 것이지요. 최 교수가 정당 게임이라면, 안 의원은 후보 게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말한다고 하여 민주당이 석축의 훌륭한 성곽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상대적인 비유이지요. 최장집 교수가 ‘프랜차이즈 정당’ 같다고 했지만 민주당 조직도 엉성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축적이 있기에 좀 나은 편입니다. 또 한 분 거론되는 잠룡 박원순 서울시장은 민주당 소속이어서 그런 차원의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최상룡 박사는 박원순씨 희망제작소의 고문으로 두 분 사이에 유대가 있지요. 박 시장은 만약에 재선에 성공한다면 뚜렷한 잠룡이 된다는 것이 일반의 상식적 판단이지요. 그러나 지금 현재는 지난 대선에서 48%라는 가히 당선권에 육박한 득표를 한 문재인 의원이 선두주자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이 구체적으로 밝혀짐에 따라 48%란 수치가 크게 확대되어 계속 머릿속을 맴돕니다. 최상룡 박사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정략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치학의 기본 에이비시(ABC)가 더 중요한 게 아닌가요. 정당을 만든다면 그 노선이 분명하고, 조직 기반을 어디다 둘 것인가도 중요할 뿐 아니라,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지만 구체적인 사람, 사람들의 결합을 집대성하는, 힘들고 땀 흘리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설혹 세를 과시하여 민주당의 조직으로 옮겨 타서 장악한다는 정략이라 한다 하더라도, 후보 경쟁만 있는 게 아니라 본선인 진짜 선거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게 아닌가요. 그렇다면 기존의 민주당 조직에 단순히 옮겨 앉는 게 아니라, 자기의 확실한 조직을 갖추고 그 둘을 합치는 것이, 그리하여 상승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정도이고 승리를 기약하는 길이 아닐까요. 역시 정도는 땀을 흘리는 길입니다. 확실히 정당을 만드는 일이지요. 최장집 교수의 옹고집대로일 것입니다. 안 의원 캠프에 남은 정치철학의 현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국회의원 수를 100명쯤 대폭 줄이고, 중앙당의 기능도 아주 크게 축소시킨다는 전날과 같은 일대 실책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최 박사의 필생의 사업을 맞은 것 같습니다. 최 박사가 강조하는 중용사상은 물론 적당히 중간을 취하는 게 아닌 줄 압니다. 때론 오히려 대담할 줄도 아는 게 진짜 중용이 아니겠습니까.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이 잘 알고 있겠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대단한 정치력의 발휘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언론에도 계속 보도되는 대로 빈부격차는 심화일로에 있고, 밑에 깔린 서민층의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안철수 캠프도 그 현실의 타개에 큰 역할을 하겠다는 각오를 무엇보다 먼저 가져야 하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현실 정당정치를 처음 하시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결단입니다. 재주가 아니고 만용에 가까운 담대한 결단입니다. 남재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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