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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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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각오했다. 엄숙한 분위기를 깼
다. “각하, 안 됩니다. 저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원만히 해결하겠습니다.”
외치다시피 말했다. 모든 참가자들
이 놀란 표정이었다
지난여름에 김영삼민주센터에서 나의 노동부 장관 시기에 관한 증언을 녹화·녹음했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화 시기로 넘어가던 때라 민감한 노동 분야에서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났는데, 그 가운데서도 현대중공업의 장기파업 문제는 얼마간 드라마틱했다. 노사관계의 중대 사건이었으므로 기록에 남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진영 장관의 사퇴 건도 있어 대통령과 장관의 관계에도 참고가 될 것 같다. 그때는 한국노총이 자기들만이 유일·합법 노동조직이라며, 나중에 민주노총으로 이름이 바뀌는 전국노조대표자회의(전노대) 쪽을 철저히 배격할 때이다. 전임 장관 때까지 전노대 쪽과의 접촉을 금기로 했다.
나는 복수노조를 인정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고, 상위 연합체의 복수노조는 당장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므로, 전노대의 권영길 상임 공동의장이 마침 같은 신문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동료이기도 하여 그와 만나는 것이 자연스러워 우선 그와 가끔 만났다. 그리고 대기업들의 노조는 거의 모두가 전노대 소속이었기에, 대기업 사장과 노조위원장을 함께 만나는 ‘상견례’ 순서를 가져 자연스럽게 전노대 소속 간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랬더니 한국노총 일부 간부가 사상공세를 편다. 이회창 당시 총리의 귀까지 들어갔으며, 미국 대사관의 카트먼 정치담당 참사관의 보고에도 올랐다. 알고 지내던 카트먼씨를 마주치니 “당신을 레드(red)라고 한다”고 놀라워한다. 나는 존 리드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레즈>(Reds)를 거론하며 “<레즈>를 좋아한다”고 농치고 말았다.
#거대 기업인 현대중공업에 파업이 일어나자 그 기업의 실력자 A씨가 노동부를 방문하여 “10여명이 사상적 위험분자이니 (긴급조정권을 발동하여) 경찰을 투입해, 그들을 잡아내 달라”고 요망한다.(그는 아마 정부 관계자 여럿을 만났을 것으로 추측된다.) 나는 언질을 안 주었다.
대우조선을 갖고 있던 김우중씨도 만나자기에, 전부터 아는 처지라 힐튼호텔의 그의 방에서 만나 노사분쟁에서 정부는 ‘공정히’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바로 이해하고 분규를 신속히 수습한 것 같다.
#현대중 쟁의가 장기화되면서 그 문제로 연일 노동부 간부회의. 이미 함께 회식을 한 바 있는 김정국 사장과 이갑용 위원장에게 가끔 전화도 했다. 이갑용씨는 전노대의 공동의장이기도.
#청와대 비서진의 간부 B는 현대중 문제에 유달리 개입하기 시작하여 점차 시시콜콜 간섭. 노동쟁의는 인간들의 격정적인 집단행동인데 사회경험이 일천한 ‘책상물림’의 그 개입이 위태롭게만 보였다.
#후반에 이갑용 위원장을 서울로 초청하여 여의도 화식집에서 김원배 국장과 함께 타협을 유도.
#이른바 재야의 노동운동가들을 대거 동원하여 설득을 요청했다. 김문수·장명국·박석운·문성현·이태복씨 등과 대우조선 최은석 노조위원장 등등이다. 김금수씨는 너무 친해서 굳이 부탁하지 않았다. 와이에스(YS)는 “남 장관, 재야와 친하다면서…”라고 매우 흐뭇해한 적이 있다.
#청와대 간부 B는 나에게 긴급조정권 발동(경찰 투입)을 시사.
#이때 한국노총 금속연맹 박인상 위원장(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 노조 출신)이 조언.
①조선업은 용접산업이므로 한여름엔 작업을 얼마간 쉬기도 한다.
②자동차산업은 일관작업이므로 쉬어서는 곤란하다.
③현대중에 경찰 1만명쯤 투입하려면 육·해·공으로 들어갈 것인데, 현대중 바로 옆에 있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을 자극하게 된다. 그것은 잠자는 사자를 건드리는 격이다.
따라서 긴급조정권 발동은 대단히 신중할 필요가 있다.(노동운동 백전노장의 고마운 조언이다.)
#내 판단으로는 사측은 협상에 힘쓰기보다는 긴급조정권 발동에만 기대하고 있는 듯했다.
#노동부 고위 직업관료 C가 청와대 간부 B를 만나 긴급조정권 발동에 동의해 주었다고 나에게 사후보고. 그동안의 회의를 통해 나의 태도를 알았을 것인데 그럴 수 있느냐고 질책. 낌새가 이상했다. 관료에게는 현실적 진리와 유리된 관료적 의사 진리가 있다고도 한다. 그런 게 대국을 망친다.
#청와대에서 드디어 확대 국무회의가 열리다. 전 각료, 지방 시도지사, 외청 청장들, 청와대 비서들이 모두 참석한 이례적인 대규모 회의다. 처음 보았다. 거기서 김영삼 대통령은 몇 가지 훈시를 하는 가운데 특히 현대중 문제에 비중을 두어 언급하며 “특단의 조치를 취할 것”을 큰소리로 강조했다.
‘특단의 조치’-되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나려 하고 있다. 내 머릿속의 컴퓨터가 급속히 작동했다. 반평생의 지식과 지혜가 이 순간에 평가를 받는다. 짧게는 노동부 장관의 사명이나 명성이 걸린 일이다. 와이에스는 기(氣)가 대단하다. 어느 저명 학자는 와이에스의 아우겐마스(Augenmaß, 독일어로 눈대중)를 높이 평가하는 말을 했다. 오랜 정치투쟁의 경험으로 순발력은 대단하다. 그 와이에스가 특단의 조치를 선언했다.
와이에스가 기가 세다면 나도 얼마간의 기가 있다. 할 수 없다. 이 순간을 놓치면 ‘만사휴의’(萬事休矣)다. 와이에스는 나를 임명하면서 ‘정치중진’ 운운 평가했다. 다른 관료 출신 각료와는 다르다.
나는 각오했다. 엄숙한 분위기를 깼다. “각하, 안 됩니다. 저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원만히 해결하겠습니다.” 외치다시피 말했다.
모든 참가자들이 놀란 표정이었다. 그리고 회의는 바로 끝났다. 잘되었다. 거기에 법을 집행하는 검찰총장·경찰청장이 모두 있었으니 사태의 엄중함을 느꼈을 것이다. 아마 와이에스 정권 5년에 그러한 “노!”는 내 경우 말고는 없었을 것이다. 역대 정권을 통해서도 드문 예일 줄로 안다.
#청와대에서 과천의 노동부까지는 1시간 남짓이 걸린다. 노동부에 도착하니 간부들이 긴장한 표정이고, 일부에서는 “장관이 곧 해임될 것”이라는 쑥덕공론도 있단다. 긴급조정권은 법률상 장관의 권한이니 굳이 발동하려면 교체할 수밖에.
나는 평소에 노동부 직원들에게 스트라이크에 관한 교육이나 연구를 시킨 바 없다. 다만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을 프랑스가 마음먹고 영화화한 것과, 미국의 노동쟁의 영화 <강철의 혼>을 대강당에서 상영하여 간접적으로 노동쟁의에 관한 인식을 갖게 한 것뿐이다.
#현대중 사태는 언제 그랬더냐는 듯이 바로 깨끗이 타협이 되고 61일간의 파업이 끝났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회사 쪽이 경찰 투입이 물 건너간 것으로 알고 협상을 서둔 것이라고 보아야겠다. 여하간 잘된 일이다.
#분규 해결과 함께 이갑용 위원장 등 간부 여럿이 구속되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법은 법이다. 그러나 경찰이 투입되었더라면 구속자는 100 단위로 늘어났을 것이고 법 적용도 더욱 가혹했을 것이다. 그런 것이 10 단위로 끝난 것이니 거기서 위로를 찾을까.
#그 후 아무 말도 없는 침묵이다. 와이에스도 아무 말 없고, 현대중 사용자도 아무 말 없고, 노조 쪽에서도 아무 말 없으며, 청와대 간부 B, 노동부 간부 C도 아무 말이 없다.
다만 “자율의 원리가 노동행정의 한복판에 자리 잡게 된 중요한 계기”, “노동부가 자율타결의 기조를 막판에 포기했다면 집단적 노사관계에 관한 한 노동행정은 최소한 2~3년 후퇴했을 것”(<한겨레> 1994년 8월25일치)이란 평이 남았다.
현대중공업은 그 후 계속 산업평화가 유지되고 있다. 나 스스로의 평가도 비슷하다. 큰 노사분규에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발동하여 대규모 경찰력을 투입하여 노조 쪽을 ‘불공정하게’ 처벌하던 군사정권, 권위주의 정권 이래의 관행이 처음으로 제동이 걸린 계기로 생각한다. 그 후로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 후 당에서 “청와대 주변에 암적 존재가 있다”고 와이에스의 심기를 건드린 일이 있었다. 그러나 여하튼 와이에스가 괘씸하게 생각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국회의원 후보 공천을 사전에 통보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 전의 부패한 정치에 싫증이 나서 공천을 반납하고, 아끼는 후배를 대신 추천해 당선시켰다. 그런데 씁쓸한 후일담이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이갑용씨의 자서전이 나왔기에 정독했더니 오로지 투쟁, 투쟁, 투쟁… 투쟁만의 강조이다. 그러는 게 아닌데….
남재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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