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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14 19:17 수정 : 2013.11.15 00:37

윤구병 농부철학자

‘영세중립’의 꿈은 … 이승만도, 김일성도, 김대중도 함께 꾸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 꿈은 ‘푸른 꿈’이 아니라 ‘빨간 꿈’이 되어버렸다.

1904년에 조선왕조의 마지막 임금이자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조선 반도’의 ‘영세중립’을 ‘선포’했을 때 아메리카 합중국도, 일본도, 중국도 콧방귀를 뀌었다. ‘미 국방성’은 ‘합중국의 이익에 어긋난다’고,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는 ‘울타리 밖 일은 우리에게 맡겨’라고, 중국의 위안스카이(원세개)는 ‘대청제국의 속국인 주제에 감히…’ 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당시에 ‘조선’과 손바닥만한 땅으로만 맞닿아 있는 ‘제정 러시아’만이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쳤지만 곧 일본과 맞짱 뜨다가 져서, 그 이듬해 ‘조선’은 ‘대일본제국’의 먹이가 되었다.

‘영세중립’의 꿈은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과 ‘고종’만 꾸었던 게 아니다.(이승만도, 김일성도, 김대중도 함께 꾸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 꿈은 ‘푸른 꿈’이 아니라 ‘빨간 꿈’이 되어버렸다. 실제로 박정희 시대에 이 꿈의 조직을 이끌었던 ‘한국 영세중립화 통일추진위원회’ 위원장 김문갑과 부위원장 김성립은 ‘영세중립’이라는 말을 입 밖에 냈다는 이유만으로 ‘반미용공분자’로 몰려 저마다 10년, 5년 동안 옥살이를 해야 했다.(이미 돌아가신 이분들은 자제들이 ‘재심’을 청구하여 52년 만인 2013년 5월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한반도’를 호랑이 꼴로 바꾸고 싶어 한 사람들이 있다.(판화가 오윤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조선반도’는 ‘호랑이’ 꼴이 아니라 ‘토끼’ 꼴이다. 그리고 이 ‘토끼’를 노리고 있는 러시아나 중국이나 일본이나 아메리카 합중국은 죄다 호랑이, 사자, 늑대, 스라소니 같은 사나운 짐승들이다. 100년 전에도 그랬고, 100년 뒤에도 그럴 것이다. 틈만 나면 ‘조선 땅’을 한입에 집어삼키려 드는 이 짐승들의 날카로운 송곳니와 발톱을 벗어나는 길은 ‘영세중립 통일조국’으로 거듭나는 길밖에 없다. ‘6자 회담’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있다.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다. 차라리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라지. 이 짐승들은 자기들이 허리를 동강내어 밥상 위에 올려놓은 토끼가 어느 날 갑자기 허리춤을 추스르고 발딱 일어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얄타회담’을 상기해 보라. 이 회담은 우리나라를 실질적으로 두 동강 낸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들의 ‘땅따먹기’ 놀음판이었다.

이미 이탈리아는 손을 들었고 독일이 무너지기 얼마 안 남은 1945년 2월에 소련 땅 크림(크리미아) 반도 얄타에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이 모여 쑥덕공론을 벌인다. 스탈린: “폴란드는 우리와 국경이 맞닿아 있잖아? 나한테 줘.” 처칠이 머리를 굴린다. “그럼 그리스는 우리한테 넘길 거지?” (앞뒤 사정을 모를 사람들을 위해 잠깐 귀띔하자면 15만명이 넘는 ‘자유 폴란드군’은 영국 편에 서서 유럽 전선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거기에 견주어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군’은 신통찮게 싸웠다. 처칠이 마지막 순간에 등 돌림으로써 폴란드는 속절없이 공산권으로 넘어간다. 그리스 공산당원들은 스탈린을 도와 발칸 반도를 붉게 물들이는 데 앞장서 왔다. 그러나 지중해를 마음대로 오가면서 아라비아 반도의 석유를 퍼 나를 꿈에 젖어 있던 처칠은 그리스가 공산화되면 오가는 길목에 암초가 생길 것을 걱정한다. 스탈린이 처칠 말에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그리스 공산당은 파파도풀로스의 군사독재 18년 동안에 그야말로 ‘초토화’된다.) 루스벨트: “독일은 네 조각으로 나누자고. 한 조각은 프랑스에 떼 주고 나머지는 우리 셋이 고루 나누지. 공업 시설은 모두 네 나라가 의논해 제 나라로 실어 가고 다시는 이 나라가 힘을 못 쓰게 ‘목축 국가’로 만들어 버리자고.” 처칠과 스탈린: “거참 좋은 생각이구먼.” (그러나 미-소 간에 ‘냉전’이 시작되면서 이 계획은 수정된다.) 루스벨트: “태평양은 우리 ‘나와바리’잖아. 필리핀, 일본, 대만, 그 밖의 태평양 연안 땅은 모두 우리 몫이니까 넘보지 마.” 스탈린: “그런데 극동지역, 만주와 조선은 어떻게 할 거야?” 루스벨트: “중국은 장제스(장개석)에게 맡기고 조선은 우리 세 나라가 신탁통치하지 뭐. 40년쯤 말이야.” 스탈린: “너무 길어. 그사이에 폭동 일어날걸.” 처칠: “급하지 않으니까 두고 보자고.”

자, 이쯤에서 한번 정리해 보자. 루스벨트와 트루먼이 걱정했던 대로 마오쩌둥(모택동)이 중국 대륙을 뻘겋게 물들이면서 아메리카 합중국은 아시아 대륙에 내디딜 발판을 잃었다. 루스벨트가 만주에 진치고 있다고 믿었던 ‘일백만 관동군’이 무서워서 옛날 러시아가 만주에서 누렸던 특권을 다 다시 가지라고 인심을 썼는데도 움쩍도 않던 스탈린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바로 다음다음 날인 1945년 8월8일에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극동 쪽으로 번개같이 짓쳐 내려온다. ‘미 국방성’에서 이 소식을 들은 대령 두 명이 조그마한 세계지도에 있는 ‘조선 반도’에 허겁지겁 38선을 긋는다. “‘코리아’를 잃으면 ‘자판’이 빨갛게 물든다.” “소련군의 진격을 38도 선에서 멈추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한반도’는 ‘분단’되었고, 뒤이어 곧 ‘6·25’가 터졌다. 잔혹한 ‘짐승’들이자 ‘전쟁광’들이 이렇게 토끼 꼴을 한 한 나라 한 민족의 허리를 하루아침에 토막 낸 것이다.

‘6자 회담’? 이 회담이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해 준다고? 이런 말에 솔깃해할 얼빠진 놈년들에게 한마디 하고 넘어가자. “세계 역사에서 ‘외세’에 기대 민족문제를 해결하려 한 어떤 시도도 성공한 적이 없다.” ‘6자’란 무엇인가? ‘남’과 ‘북’을 빼면 ‘미’, ‘일’, ‘중’, ‘러’다. ‘미’라는 짐승이 북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거의 몰살하고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사냥해 와 허드렛일로 부리면서 몸집을 불리고, 지금 온 세상 군사비를 다 보태도 이 나라 군사비의 발뒤꿈치도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안다. 이 짐승이 ‘평화협정’을 받아들이고 ‘토끼’ 허리에 박아 넣은 피 묻은 발톱을 뺀다? ‘일’이라는 짐승은 어떤가? 역사 기록을 보면 ‘세 나라’ 시대부터 걸핏하면 이 땅에 몰려와 바닷가 마을들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드디어는 ‘조선 반도’라는 토끼를 한입에 집어삼켰던 짐승이다. 그리고 현재 다시 고삐가 풀려 으르렁거리면서 날뛰고 있다. ‘중’이라는 짐승? 이 짐승이 얼마나 사납고 콧등 성할 날이 없이 몇천년 넘게 둘레에 있는 약한 짐승들을 물어뜯었는지를 ‘토끼’는 몸으로 겪어서 알고 있다. ‘러’·‘미’라는 짐승과 함께 이 땅을 이 꼴로 만들어 놓는 데 앞장선 짐승이다.

이 짐승들이 서로 으르렁거리는 틈을 타서 몸을 빼쳐내려면 ‘남’과 ‘북’ 사이에 ‘기’가 통해야 한다. 이 ‘기’는 곧 ‘말’이다. ‘말길’이 열려야 한다. ‘큰소리’가 아니라 ‘속삭임’이 필요하다. 남과 북이 언제 어디서나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만나서 ‘소곤소곤’하고 ‘속닥속닥’해야 한다. 이제야말로 호랑이 아가리에서도 벗어나고 용궁에서도 되살아나온 ‘토끼의 꾀’가 필요한 때다. 마치 우리가 ‘호랑이’라도 된 것처럼 으스대서는 안 된다.

‘속삭임’과 ‘소곤거림’의 ‘열쇳말’은 ‘영세중립’과 ‘통일조국’이어야 한다. 처음에는 귀에 설 것이다. 그러나 곧 이 말이 ‘우리의 소원’임을 누구나 알게 될 것이다. ‘통일조국’은 조금 늦어도 된다. 그에 앞서 ‘영세중립’이 입에서 입으로, 귀에서 귀로 ‘소곤소곤’, ‘속닥속닥’ 퍼져야 한다. ‘스위스 방식’이 좋을지, ‘오스트리아 방식’이 더 나을지, ‘코스타리카 방식’으로 갈지는 뜻이 모아지는 대로 따르면 된다. 먼저 ‘인터넷’을 뒤져 보자. ‘네이버’나 ‘다음’이나 ‘구글’에 ‘영세중립’을 ‘입력’해 보자. 이 길은 가시밭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엄두가 안 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걷지 못한 길은 아니다. 이미 여러 나라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 길을 뚫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남’과 ‘북’이 마음을 열고 손을 맞잡고 기를 쓰면 된다. 이 길만이 ‘복지’와 ‘교육’과 ‘의료’ 예산을 늘리는 길이고, ‘창조경제’와 ‘보편복지’에 이어지는 길이고, 우리가 우리끼리 살길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말자.

윤구병 농부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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