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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05 19:31 수정 : 2013.12.08 16:59

남재희 언론인

우리는 미국을 비판하는 일을 너무 금기로 하고 있다
미국에도 좋은 미국이 있고, 나쁜 미국이 있다
6·25 공산침략에서 우리를 도운 미국은 좋은 미국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우리 내정에 개입하고
우리를 강대국 정치 장기판의 졸로
취급하는 미국은 나쁜 미국이다

얼마 전 민주당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홍종학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이 증세 문제에 주저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트라우마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말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7년 부가가치세를 처음 실시했다가 그게 나쁜 제도는 아닌데 국민들에게는 생소하여 큰 저항에 부닥쳤다. 그래서 다음해인 78년 총선에서 야당에 득표율에서 1.1% 패배하는 낭패를 당한 것이다.

 박정희 정권 몰락에는 그 부가가치세 문제도 있지만, 유신체제에다가 김영삼 야당 당수를 국회에서 제명한 일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다.

 나는 그 모임에서 미국의 정책도 매우 중요했던 게 아니냐고 말했다. 예를 들어 리처드 홀브룩의 경우다. 그는 외교관을 하다가 언론인으로도 활약한 매우 유능한 인물인데, 지미 카터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을 때는 그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그런 그가 국무부의 동북아 및 태평양 담당 차관보로 임명될 줄 미처 예상 못했던지 큰 실수를 하였다. <뉴욕 타임스 선데이 매거진>(1975년 9월7일치) 기고에서 한국 정치의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박정희 대통령을 ‘교체’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쓴 것이다.

 그 요점은 다음과 같다.(나의 귀띔을 받고 <신동아> 잡지가 1989년 10월호에 기사를 썼다.)

 “개디스 스미스 교수는 최근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을 교체(replacement)하여 한국이 북한과 대화에 나설, 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정권으로 바뀌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시사했다. 이와 같은 제안은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런 절호의 기회가 온다면 시도해 봄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좀처럼 올 것 같지 않다.”

 그 후 국무부에 들어갔는데, 직책과 걸맞지 않게 베트남 등에는 자주 드나들면서 한국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왔어도 눈에 안 띄게 왔는지 모른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참사가 있고 난 후 방한하여서는 미국 대사관저에서 대규모의 리셉션을 열었다. 글라이스틴 대사 때다.

 초선 국회의원으로 초청을 받고 갔던 나는 키가 매우 큰 그와 마주치자 착잡한 심정이 되었다. 인권을 매우 중시한 카터 대통령 때이기에 그만의 뜻도 아닐 듯하다. 그래서 우선 가치중립적인 질문인 “박 대통령이 죽고 난 후 방한하니 느낌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미국 쪽 인사들이 나를 둘러싼다. “구체적으로 어떤 표현을 썼는데 그러느냐.”

 “박 대통령을 제거하라고(get rid of him) 쓰지 않았느냐”(‘replacement’를 나는 ‘get rid of him’으로 잘못 기억하고 말하여 약간 실례를 한 셈이다.)

 “정확히는?”

 “개디스인가 하는 교수가 전에 쓴 글에서 한국사태를 해결하는 데는 박 대통령을 제거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도 같은 생각이라는 요지로 쓴 게 아니냐.”

 그때 홀브룩은 물론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놀랐다”(surprised)는 말이 등 뒤에서 낮게 흘러왔다.

 한-미 수교 100주년 축하사절(김용식 단장) 일행으로 방미했을 때 뉴욕에서의 만찬에 공교롭게 홀브룩과 바로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시치미를 떼고 그가 관심이 많았던 베트남전에 대한 평가 이야기만 하고 말았는데 참 자리배치가 공교로웠다.

 그는 대단한 거물 외교관으로, 보스니아 내전의 휴전협상에 참여하여 실력을 발휘하였고, 유엔대사도 지냈으며, 만약에 케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면 국무장관으로 발탁되었을 거라고 언론에서 추론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아깝게도 요절.

 박정희 대통령의 비극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주 최근에는 김재규 평전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도 나왔다.

 나는 사건이 있기 한두 달 전에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을 가까이서 본 일이 있다. 일본의 나카소네 중의원 의원이 방한했을 때 비록 그가 평의원이었지만 차기 총리가 거의 확실시되었기에 하루 동안은 국회의원인 내가 수행하고 다음날은 김윤환 의원이 보살피는 예의를 갖추었다.

 그때 남산의 중앙정보부를 방문해서 김 부장과의 면담에 윤일균 해외담당 차장과 내가 배석했다. 김 부장의 인상은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는 사람 같았다. 예를 들면 나카소네가 “세이도쿠(西獨), 도도쿠(東獨)” 하니까 그것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윤 차장이 설명해서야 대화가 계속 진행된다. 일본말을 잘하는 세대인데 이상한 일이 아닌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정치가 미국과 밀접히 연관이 되어 있고, 미국의 영향과 작용을 매우 깊숙이 받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조선일보>에 보니 백선엽 (예)대장이 4·19 직전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한국 책임자가 그에게 쿠데타를 시사했을 때 그도 얼마간 솔깃했다는 기사가 나와 있다. 그는 당시 합동참모본부(합참) 총장이었다. 전쟁-군대-쿠데타(또는 혁명)의 세 가지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특히 패전하였을 때 쿠데타의 개연성은 높아진다.

 이승만 정권의 독주를 제어하기 위해 미국에 의해 두 번의 쿠데타가 모의되었다는 것은 아주 오래전에 정보공개로 밝혀진 바 있다. 4·19, 5·16, 광주사태… 한국의 큰 정치변동마다 미국의 관여가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는 개스턴 시거 동북아 담당 국무차관보가 시빌리어나이제이션(Civilianization, 문민화)이란 용어까지 새로이 만들어가며 압박하였는데 결과적으로 그런 것은 좋은 방향이라 할 것이다.

 다른 나라의 예는 부지기수다. 이란·베트남·필리핀에서, 그리고 과테말라·칠레·파나마에서 미국은 계속 타국의 내정에 노골적으로 간섭하였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10월26일치)의 칼럼을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대중 대통령을 면전에서 “디스 맨”(this man, 이 자)이라 칭하는 오만불손한 태도를 취했던 막무가내 일방주의적 호전주의자, 그 아들 부시 대통령마저도 군수산업과 밀착한, 더 지독한 호전주의자 체니 부통령의 손아귀를 임기 종반에 가서야 벗어날 수 있었다는 서평을 겸한 이야기다. 백악관의 정책 결정 과정도 한심했다.

 한국 정치에서의 ‘미국의 한계(limit)’란 표현을 쓴 정치학자도 있다. 말하자면 손오공이 뛰어보았자 부처님 손바닥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의 크리스찬아카데미 토론 때 나는 그에게 “반미면 어떻고…” 하는 식의 말을 삼가라면서 그 ‘미국의 한계’론을 편 일이 있다. 아마 지독한 친미로 오해하였을 것이다. 그 후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청와대에서 한번 만난 기회에 명(明)·청(淸) 간에 현명한 외교를 폈던 광해군의 지혜를 참고로 하라고 말했다. 그가 나중에 말하던 ‘중간 균형자’론까지는 아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변해야 하는데.

 한국 정치를 생각할 때 미국의 역할(개입)을 빼버린다면 그것은 공허한 이야기일 수 있다. 재벌이나 군부나 거대언론 등등도 살펴보아야 한다. 거기에 비하면 노동자·농민·소시민 등등은 치이기만 한다.

 우리는 미국을 비판하는 일을 너무 금기로 하고 있다. 미국에도 좋은 미국이 있고, 나쁜 미국이 있다. 6·25 공산침략에서 우리를 도운 미국은 좋은 미국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우리 내정에 개입하고 우리를 강대국 정치 장기판의 졸로 취급하는 미국은 나쁜 미국이다.

 자칫 반미 외곬으로 흘러서는 안 되겠지만 미국에 대해서도 시시비비는 가려야겠다. 미국을 비난하면 반국가·불순분자 취급하기도 하고, 너무나도 미국의 과오에 함구하기에 우선 물꼬를 트는 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것이다.

남재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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