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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3.06 19:06 수정 : 2014.03.06 20:53

남재희 언론인

그러다가 이번에 10년간 아카데미 활동을 하고 노동관계 주무간사였던 신인령 박사의 한신대 강연 ‘현실참여와 크리스찬아카데미 운동 경험’이 책으로 엮여 나와 총체적인 회고를 듣게 된 것이다. 나로서는 신박사의 회고가 처음 듣는 중간집단교육의 전모이다. 그래서 아주 감동이 크다.

강원용 목사한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크리스찬아카데미의 중간집단교육 간사 6명이 몽땅 중앙정보부에 구속되었다는 것이다. 아카데미에 전면적 탄압이 시작된 것 같다고. 마침 내가 초선이지만 국회의원이어서 공화당의 박준규 당의장과의 신라호텔에서의 만남을 주선해 주었다. 유신 말의 살벌한 상황에서 그 후의 일은 짐작이 가기에 묻지를 않았다.

그것이 1979년 3월에 일어난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이다. 아카데미는 농촌·노동·청년·여성·종교 등 여러 파트로 중간집단을 육성하기 위한 대대적인 교육을 하였으며 거기에 쟁쟁한 간사들을 배치하였다. 한명숙(나중에 총리), 신인령(이화여대 총장), 이우재(국회의원), 김세균(서울대 교수), 황한식(부산대 교수), 장상환(경상대 교수) 등이다.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민주정치의 밑바탕이 튼튼해지기 위해서는 농촌의 농민조직, 산업 현장의 노동조직, 기타 각계의 조직체들, 이른바 중간매개집단(intermediary group)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강 목사가 서울 수유리의 아카데미하우스와 수원의 사회교육원에서 대대적인 교육을 한 것이다. 분야별 30명 내외의 활동가들을 초청하여 1차 교육 4박5일, 2차 교육 5박6일.

그러자 위협으로 느낀 정권이 일망타진에 나섰다. 간사들뿐만 아니라 교육에 참여했던 사람들도 연행하여 조사해 엮어 들어갔다. 편리한 대로 반공법을 적용했다. 궁정동의 한밤중의 총성으로 탄압도 끝났고 뒤이어 구속자들도 풀려났다. 아카데미 사건도 큰 것이지만 더 엄청난 일이 벌어져 그 속에 매몰된 채 지났다.

그렇게 세월이 30여년이 흘렀다.

그 후 <한겨레>에서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씨의 자서기록을 연재하여 거기서 편린이나마 아카데미 교육의 생생한 양상을 들을 수 있었다.

“크리스찬아카데미 교육을 통해 의식의 성장을 경험한 이총각은 그곳에서 원풍모방, 와이에이치(YH)무역, 반도상사 등의 많은 노동자를 만나 평생동지의 연을 맺어갔다. 그에게 아카데미 프로그램은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교육이어서 열심히 참여하고 공부했다. 노래와 촌극 공연, 명상 등의 프로그램에도 함께했는데, 특히 그때 회사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을 소재로 연극을 만들어 조합원 연기를 하며 완전히 몰입했던 경험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다가 이번에 10년간 아카데미 활동을 하고 노동관계 주무간사였던 신인령 박사의 한신대 강연 ‘현실참여와 크리스찬아카데미 운동 경험’이 책으로 엮여 나와 총체적인 회고를 듣게 된 것이다. 나로서는 신 박사의 회고가 처음 듣는 중간집단교육의 전모이다. 그래서 아주 감동이 크다.

“교육목표는 우리 사회를 민주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민간단체인 중간집단을 강화 또는 결성하기 위해 그 리더와 운동가를 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산업사회의 경우 미조직 현장에서 신규노조를 결성하거나 노동자 소그룹을 조직하고, 이미 조직된 기존 노조의 경우에는 어용노조를 극복하고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노조로 발전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교육내용은 한마디로 의식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사회구조에 대한 이해, 자기가 처한 현실에 대한 직시, 무엇을 어떻게 해서 사회를 정의롭게 변화시킬 것인가 등 사회의식과 개인의식, 그리고 역사의식을 일깨우는 기본 위에 분야별 활동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첨가했지요.

교육프로그램은 강의, 토론, 워크숍(과제 작업), 생활과정의 의례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주입식 교육을 지양하고 민주적 활동양식에 대한 직접 체험과 참가자 간의 경험 교류, 그리고 정서적 감동 중심으로 구성하여, 각자 자기 삶의 방향을 결단하게 하는 교육이었어요.

강의는 일단 강사들이 맡았지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강의가 아니라 토론과 워크숍의 실마리를 던지는 발제에 불과했습니다. 대신 토론과 워크숍을 중심으로 했지요. 당시는 노동자들이 토론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었어요. 80년대 들어오면 달라지지만, 토론이 뭔지 워크숍이 뭔지 모르는 이들이 그냥 그 속에 던져져 씨름하면서 스스로 터득해 나갔습니다. 한편 강의, 토론, 워크숍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활과정의 의례나 축제 등이었습니다. 강의를 들을 때보다 명상시간, 각자 자기 경험과 소신을 발표하는 시간, ‘아카데미 향연(축제)’ 프로그램 시간에 문득 눈을 뜨는 참가자들이 있었어요. 죽어도 마음을 안 열 것 같던 어용노조 간부가 어느 날 자기고백을 하면서 반성했습니다. 정말 깜짝 놀랄 일이었지요. 우리가 반성하라고 강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강의 못지않게 함께하는 생활과정적 프로그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모든 과정에서, 심지어는 강의 시간에도 그 시작 직전에 언제나 노래를 불렀어요. 춤추고 노래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가슴이 갑자기 열리는 거예요. 그런 경험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일수록 변화의 움직임이 더 잘 일어나더라고요.”

“우리가 선택한 운동의 패턴이 당시 상황과 시대정신에 가장 적합한 것인지 회의를 품기도 했고, 강원용 원장님이 강조하시는 세심한 조심모드의 지침이 불만스럽기도 했어요. 그런데 아카데미 사건으로 감옥에 갇혀 골똘히 생각해보니 강 목사의 조심조심철학이 맞았다고 생각되어 조바심치던 일을 반성했습니다. 성에 차지 않더라도 조심하여 1, 2년만이라도 우리 교육을 더 지속할 수 있었다면, 전국적 운동거점과 네트워크 형성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컸습니다.”

신 박사는 작은 체구의 여성으로 전혀 투사의 용모가 아니다. 그런데 ‘겁 많은 자의 용기’라고 이문영 교수가 말한 것을 닮은 듯 그 가냘픈 여성이 어떻게 그런 담대한 활동가가 된 것인가.

중간집단교육의 내력을 말하자면 1968년에 미국에서 나온 그레고리 헨더슨의 <한국: 소용돌이의 정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책은 한국에 관한 귀중한 연구서인데 일본에서는 즉각 번역되었으나, 한국에서는 독재정권의 비위를 건드릴까 저어한 때문인지 꺼리다가 김대중 정권 때 가서야 처음 번역·출판이 되었다. 그때는 헨더슨 사후로 출판기념회에 그의 부인이 참석했다.

요지는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지방자치가 실시되고(그때는 임명제였다), 사회 각계각층의 중간매개집단이 조직·강화되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헨더슨이 주한미국대사관의 문정관을 지내는 등 국무부 관리였기 때문인지 노동조합 문제는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나는 마침 미국 유학중이라 그 책이 정식 출간되기 전에 읽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박 정권이 각 분야를 조여나가자, 강 목사가 아카데미의 진로를 놓고 번민할 때 우연히 내가 그 중간집단교육 이야기를 하였다. 그랬더니 한완상 박사로 하여금 교육계획을 세우도록 하여 그것이 대대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강 목사는 미국에서 신학 공부를 할 때 라인홀드 니부어를 존경하고 따랐다. 니부어는 유니언신학교 교수가 되기 전 디트로이트의 자동차공장지대의 노동자들을 상대로 10여년간 선교활동을 했었다. 강 목사는 파울 틸리히도 존경하였다.

나는 예수를 비폭력적인 혁명가로 보는 견해에 막연하게나마 가담하고 있는데 강 박사도 생전의 언행으로 볼 때 그렇게 믿는 듯했다.

유식한 체하는 듯한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다. 미국 하버드 신학대학의 교수였던 하비 콕스는 그의 책 <터닝 이스트>(Turning East)에서 고린도전서 1장 26~28절 번역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다른 성경의 번역들은 매우 완화된 표현이다. “He has chosen things low and contemptible, mere nothings, to overthrow the existing order.”(“현존하는 질서를 전복하기 위해”가 주목된다. 로마의 압제와 관련된 게 아닐까?)

요즘 슈퍼스타가 되어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이 관심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지난해 12월 미국 진보센터 10주년 연설도 주목을 끌었다. 거기서 그는 이렇게 강조하였다.

“노동조합이 기울지 않는 운동장을 갖도록 단체교섭권이 제대로 작동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이 보다 많은 교섭을 할 수 있고, 중산층이 보다 나은 임금을 받게 해야 한다.”

강 박사가 살아 계신다면 어떤 운동을 하실지….

남재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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