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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8.07 21:43 수정 : 2016.08.07 22:59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특별기고]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전 외교통상부 장관)

계속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한국과 미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결정을 불러왔고, 중국이 이에 반발하고 있다. 동북아 정세를 더욱 악화시킬 소지가 있다. 근본 요인은 정권과 체제의 생존에 집착하는 북한의 핵 개발 욕구다. 모든 카드를 동원해서라도 북한의 행동을 억제하겠다는 중국의 의지가 모자라는 것도 배경의 하나다.

그럼에도, 한국-중국 간 벌어지는 사드 논쟁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할 뿐 아니라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한다. 한국의 목표는 사드 배치가 아니라 사드가 필요하지 않은 안보 환경이다. 한국은 동북아 군비경쟁의 주 근원인 북한의 핵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중국이 대북정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드는 미국의 미사일방어망(MD·엠디)의 한 부분이다. 미국은 1980년대 중반부터 아시아와 유럽에 엠디 전진기지 구축을 시도했다. 냉전 종식으로 옛 소련의 위협에 대한 방어 명분이 약해지자 미국 보수세력은 아시아에서는 북한 미사일, 유럽에서는 이란 미사일의 위협을 막는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1998년 7월 나온 이른바 ‘럼스펠드 보고서’가 대표적인 엠디 추진론자들의 목소리였다.

이 보고서는 처음엔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라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한 달 뒤 북한이 위성 발사 명분으로 대포동 로켓을 발사함으로써 이 보고서에 권위를 부여해주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동북아 군비경쟁이 연쇄작용을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를 중국에 전달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을 억제하는 데 힘을 쏟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과 일본이 중국 포위를 위한 엠디 배치의 구실로 북한 미사일을 이용하려 한다며, 오히려 한국의 가담을 반대한다는 데 역점을 두었다.

한국의 목표는
사드 배치가 아니라
사드가 필요하지 않은 안보 환경

당장 해야 할 일은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 중지와
미국의 제재 해제를
접목함으로써
비핵화라는 큰 바퀴의 굴림을
일단 만드는 것

그다음 북한 핵의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단계로
굴러가게 하는
관성을 축적하는 것이 과제

2015년 이란 핵 협상의 타결로 이란 미사일에 대한 위협 인식이 수그러들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사태로 2014년부터 러시아의 위협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은 잠재적 위협으로 지목해온 러시아를 겨냥해 동유럽에 엠디를 본격 배치하기 시작했다. 한편 아시아에서는 현재화돼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만으로도 한국에까지 엠디를 배치할 사유가 된다고 판단했다.

중국은 미국이 북한을 넘어 다층적 의도를 갖고 사드를 배치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으로서는 중국을 겨냥한 레이더망을 설치할 이유가 없다. 만약 한국에 배치될 레이더의 탐지 권역에 중국이 들어간다면, 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로 인한 유탄을 맞는 것이다. 정확히 보면 북한의 핵무기 집착은 북한 스스로를 가장 큰 피해자로, 한국을 1차 피해자로, 중국을 부수적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중국이 상호 적대선상에 서는 것은 서로가 갖고 있는 선의와 상충된다.

대포동이든 무수단이든 미사일의 사거리와 관계없이 북한의 핵 능력만 통제된다면 엠디 배치 필요는 반감된다. 2008년 이후 북한의 핵 개발은 사실상 방치 상태에 있다. 한·중·일이 핵심 주민인 동북아의 한가운데에 방치할 수 없는 위험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1962년 미국은 쿠바에 배치된 소련의 미사일을 사활적 문제로 보고 모든 외교적 자산을 투입했다. 미국은 이탈리아와 터키에 배치된 자국 미사일을 철수하면서 소련과 서로 체면과 실리를 살렸다.

아마 중국으로서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가 미국의 카리브해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중국이 동북아 지리를 어떻게 보는가는 자신의 시각일 뿐이겠지만, 바로 코앞에서 벌어지는 위험을 내버려두고 동네의 핵심 주민 노릇을 할 수는 없다. 사드를 배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위험 자체가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치열한 외교 역량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중국만이 갖고 있는 역량을 말한다. 지구상에서 북한에 대해 중국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진 나라는 없다. 단지 중국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무게 때문에 북한이 휘청거릴 정도의 영향력 행사를 주저하고 있을 뿐이다.

북한 핵 문제를 두고 미국과 중국의 정책 당국자들 사이에는 상반된 저류가 흐르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갖고 있는 카드, 즉 대북 제재 해제, 군사훈련 축소, 미-북 관계 정상화 같은 당근을 먼저 써보라고 한다. 반면 미국은 중국이 갖고 있는 카드, 곧 대북 에너지 지원이나 금융거래 같은 대외 통로를 차단하는 채찍을 먼저 가해보라고 한다. 순리로 보면 당근을 먼저 주고 그래도 안 되면 채찍을 쓰는 게 합당하다. 미국은 몇 차례 북한과 합의사항 이행에 실패하자 이제는 북한 핵은 중국의 문지방에 걸려 있는 문제이니 중국이 먼저 나서라는 것이다. 옳고 그름보다는 누가 더 아쉬운가의 판단으로 미루어져 왔다.

북한 핵이 표면에 나타난 지 25년이 넘도록 미국과 중국은 이런 판단을 유보하며 8부 능선을 넘지 않을 만큼의 외교력만 투입해왔다. 두 나라 모두 북한 핵을 사활적인 문제로 보고 해결의 길을 끝까지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중국은 시진핑 주석 취임 이후,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한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와 ‘아시아인에 의한 아시아의 안보’를 강조하고 있다.

중국이 국력에 맞는 역할과 책임을 다하겠다면 동북아에서는 한반도의 현상 고착이 아니라 발전적 변화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북한 핵과 사드 문제로 인해 동북아가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로 굳어가려 한다. 한국의 집단적 이성은 이런 구도를 반대한다. 중국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움직일 쪽은 중국이다.

중국은 10년 넘게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reasonable security concerns)를 미국이 수용해주면 북한도 핵 포기에 긍정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혀왔다. 북한 핵?미사일의 1차 목표가 한국이라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은 북한뿐 아니라 한국의 ‘합리적 안보 우려’도 고려해야 한다. 가장 큰 위협을 받고 있는 한국의 우려를 해소할 출구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의 방어 노력을 중국이 반대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사드의 군사적 효용에 대한 논란은 별개의 문제다.

당장 해야 할 일은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 중지와 미국의 제재 해제를 접목함으로써 비핵화라는 큰 바퀴의 굴림을 일단 만드는 것이다. 그다음 북한 핵의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단계로 굴러가게 하는 관성을 축적하는 것이 과제다. 요체는 북한이 진지한 자세로 협상에 임하도록 하는 것이다. 외교라는 예술의 핵심은 꼭 써야 할 카드라면 먼저 적시에 쓰는 것이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카드를 어떻게 써서 미국이 갖고 있는 카드도 내놓게 할 것인가는 중국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당연히 한국도 이 작업에 전면적으로 협력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 국민의 압도적 다수한테는 북한을 규탄하는 것을 넘어 중국에 대한 좌절감이 쌓이고 있다. 근래 중국은 친밀·성실·혜택·포용이라는 ‘친성혜용’(親誠惠容)을 기초로 공동의 발전과 번영을 추구하며 지역 운명 공동체를 만들자고 주창하고 있다. 한국을 위시한 중국의 이웃들은 중화주의와 같은 역사 속의 질서가 아니라 서로를 포용하는 현대적 개념의 친성혜용 외교노선을 환영한다.

그런데 목전에는 중국이 미국과의 사이에 한국을 가운데 두고 압박하는 형국이 전개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유소작위’도 ‘아시아의 안보’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중국이 스스로 천명하고 있는 외교노선에 걸맞은 역량을 발휘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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