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
조효제의 인권 오디세이
흔히 받는 질문이 있다. 인권친화적인 조직을 운영하려면 어떻게 하는가? 요즘 인권에 대한 관심이 늘어서인지 인권을 그 운영에 반영하려는 기관이나 조직이 많아졌다. 인권을 앞장서서 실천하겠다는 자세는 바람직하고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방법이 너무 막막하다는 데 있다. 인권이 표제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슨 권리, 무슨 권리… 식으로 나열된 인권 표제들은 인권의 종류를 파악하는 데엔 도움이 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하느냐 하는 의문에 친절한 답을 주진 못한다. 게다가 권리만 열거해 놓으면 흔히 권리와 권리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학생인권이 중요하다고 하면 당장 교권은 어떻게 되느냐고 반박하는 게 대표적 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것이 ‘인권에 기반을 둔 접근방식’이다. 인권의 바탕을 이루는 원칙들을 활용해서 구체적으로 인권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취지다. 팬더 원칙을 만든 사람들은 이것에 따라 인권을 존중하는 개발을 추진하면 개발의 본디 이상에 가까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개발 과정에만 팬더 원칙이 유용한 건 아니다. 조직을 인권에 맞게 운영하려 할 때에도 이 원칙을 활용할 수 있다. 이런 방안들 중 팬더(PANTHER) 원칙이 있다. 본디 개발론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인권에 기반을 둔 개발 프로젝트를 시행하기 위해 고안된 일곱 가지 원칙을 말한다. 경제개발뿐 아니라 인간의 잠재된 능력을 활짝 꽃피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개발(발전)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팬더 원칙을 만든 사람들은 이것에 따라 인권을 존중하는 개발을 추진하면 개발의 본디 이상에 가까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개발 과정에만 팬더 원칙이 유용한 건 아니다. 조직을 인권에 맞게 운영하려 할 때에도 이 원칙을 활용할 수 있다. 특히 학교·복지시설·병원·언론·행정기관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에서 팬더 원칙을 활용하면 인권에 기반을 둔 조직을 꾸리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인권의 간판을 내건다고 인권을 존중하는 운영이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조직의 일상적 활동 속에 인권 정신이 반영되고 스며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체계적으로 방식을 익혀야 한다. 지금부터 팬더 원칙을 차례대로 살펴보자. 순서가 중요성을 나타내는 건 아니다. 첫째, ‘참여’(Participation)가 보장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존재를 증명하고 싶어한다. 자기 뜻이 관철되느냐 여부와 상관없이 의사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면 심리적 충족감이 배가된다. 그걸 존중해 주는 것이 인권이다. 타인과 사회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조직운영에 반영하는 것이 참여의 원칙이다. 여기서 맥락이 중요하다. 참여 문화, 대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권위적이거나 불통인 리더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조직에서 아무리 참여를 외쳐봐야 공염불이다. 우선 리더부터 적극적 경청을 실천하고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조직 내 여러 집단의 의견이 서로 경청되고 서로 섞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비민주적 운영을 숨기기 위한 알리바이로 참여를 내세워선 안 된다. 그리고 조직 내 자원분배에 대한 발언권을 인정하느냐가 참여의 관건이 된다. 둘째, 조직의 ‘책무성’(Accountability)을 지키는지를 따질 수 있다. 책무성 원칙은 원래 국가가 시민들에게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도 그렇게 해야 한다. 정확한 정보에 의거해 결정을 내리고, 약자와 소수자의 욕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며,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엔 솔직히 양해를 구해야 한다.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무능하고 책임회피적인 조직은 책무성에서 낙제점을 받는다. 전문적인 자세로 고객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최소한의 윤리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서비스 사용자에게도 책무성이 요구된다. 서비스를 막무가내로 오용하지 말고, 자기 쪽에서도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 셋째, ‘차별 없음’(Nondiscrimination)은 인권의 고전적인 원칙에 속한다. “모든 제도는 명백히 그렇지 않다고 입증되지 않은 한 당연히 차별적일 거라고 간주해야 한다.” 조너선 만의 경고다. 차별을 당하지 않는 사람의 눈에는 차별의 현실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차별당하는 사람일수록 그것을 적극적으로 드러낼 방법을 모르거나 그렇게 할 용기가 없는 경우가 많다.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과 집단을 적극적으로 찾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문제를 보려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여성·장애인·외국인 등 널리 알려진 차별 대상 외에도 드러나지 않은 차별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한 집단의 차별을 해결하면 모든 사람이 이득을 본다. 장애인을 위해 전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 노약자와 유모차 부모들이 함께 혜택을 누릴 수 있지 않은가. 넷째, ‘투명성’(Transparency) 원칙을 기억해야 한다. 투명성이 인권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정보의 공개와 공유 때문이다. 비대칭적 정보, 불투명한 정보는 부패의 온상이 되기 십상이다. 언론자유가 소중한 인권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정보가 공개되어 있어도 적극적으로 서비스 사용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또한 어려운 행정용어는 그 자체가 불투명한 정보다. 모든 공적 정보는 그 사회의 의무교육 이수자 정도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언어순화의 차원이 아니다. 인권존중이냐 인권유린이냐를 가르는 문제다. 다섯째, 모든 조직은 ‘인간 존엄’(Human dignity)의 원칙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 거창한 게 아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체면과 위엄을 지켜 주자는 뜻이다. 학생이 치욕적인 언사나 체벌이나 왕따로 몸과 마음이 멍들 때, 성적으로 줄을 세워 멀쩡한 아이의 자존감을 그 싹부터 잘라 버릴 때, 청소 아주머니가 창고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식사를 해야 할 때, 공중파에서 조선족의 말투를 우스개로 만들어 조롱할 때, 치매 노인이 기저귀 한 장으로 하루 종일 버텨야 할 때, 인간 존엄은 사전 속에나 존재하는 말로 추락한다. 조직의 수장은 자기 조직 내에서 인간 존엄을 해칠 수 있는 리스크 요인을 주의 깊게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여섯째, ‘자력화’(Empowerment) 원칙도 인권에 기반을 둔 조직운영에 필수적이다. 인권의 목표는 인간의 핵심 이익을 보호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인간을 활짝 핀 존재로 키우는 데 있다. “나도 같은 인간이다”라고 당당히 주장할 줄 아는 사람을 만들자는 게 인권의 궁극적 목표다. 조직 입장에선 구성원들에게 어떤 종류의 권한을 우선적으로 부여해야 할지를 잘 골라야 한다. 또한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 구성원 혹은 고객이 있다면 왜 그러는지 원인을 찾아봐야 한다.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선 자력화된 고객이 목청을 높이는 상황이 피곤하고 귀찮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서비스 제공기관의 존립 목적임을 잊어선 안 된다. 물론 사용자가 자기 권리를 책임 있게 행사할 수 있도록 계몽하는 것도 서비스 제공자의 몫이다. 지연과 학연이 은연중에, 혹은 노골적으로 작동하는 조직은 그 자체로 인권침해 조직이다. 최근 모 권력기관의 높은 서열을 특정 지역 출신들이 싹쓸이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국가기관이 스스로 인권유린 기관임을 자인한 셈이다. 일곱째, ‘법의 지배’(Rule of law) 원칙이 있다. 마셜의 시민권 이론 중 제일 먼저 나오는 공민적 권리의 핵심 내용이다. 조직 내에서 법의 지배 원칙은 규정과 절차를 뜻한다. 모든 사람을 규정대로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 업무상 잘못이 발생했을 때 적절히 배·보상해 주는 것, 민원과 진정을 접수하고 공정하게 다룰 수 있는 부서나 절차를 완비하는 것 등이 법의 지배다. 만일 조직 내에서 법의 지배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왜 그런지 따져보는 게 중요하다. 지연과 학연이 은연중에, 혹은 노골적으로 작동하는 조직은 그 자체로 인권침해 조직이다. 최근 모 권력기관의 높은 서열을 특정 지역 출신들이 싹쓸이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국가기관이 스스로 인권유린 기관임을 자인한 셈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