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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21 17:12 수정 : 2019.05.21 19:06

지난 주말 미세먼지와 관련해서 중요한 보도가 나왔다. 국제호흡기학회에서 대기오염과 건강에 관한 기존의 연구들을 집대성하여 검토한 결과를 발표했다. 요지는 미세먼지의 영향이 여태까지 생각해온 것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어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신체의 모든 기관을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얼마 전 미세먼지가 심한 날 하루 종일 걸어 다닌 적이 있다. 조금 걱정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부터 천식에 몸살 기운으로 열흘 가까이 앓았고 지금도 잔기침을 하며 글을 쓰고 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다음 대선에서 미세먼지를 해결하는 이가 대통령이 될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늘었다.

미세먼지는 대기오염 또는 공기오염이라는 큰 틀에서 파악해야 한다. 공기오염을 모든 사람의 인권 문제로 바라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인류의 90퍼센트 이상이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기준치보다 나쁜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다고 한다. 유엔인권이사회는 최근 ‘청정공기호흡권’에 관해 환경권 특별보고관이 집필한 보고서를 심의하면서 공기오염을 중요한 인권 이슈로 다루기 시작했다. ‘깨끗한 공기를 누릴 권리’, 이 얼마나 직관적으로 와닿는 말인가.

인간의 삶은 숨으로 시작해 숨으로 끝난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첫 숨을 들이쉬고 한평생을 살다가 마지막 숨을 내쉬고 세상과 하직하는 게 우리들 인생이다. 이렇게 보면 깨끗한 공기는 근본적 차원에서 인간 존재의 핵심인 ‘숨’의 원천이 되는 질료다.

공기오염이 유발하는 인권침해는 세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생명권의 문제가 있다. 공기오염 탓에 전세계적으로 매년 700만명에서 900만명의 조기 사망자가 발생한다. 모든 사망자 9명 중 1명이 나쁜 공기 때문에 자기 명대로 살지 못하는 셈이다. 흡연에 의한 사망자보다 많고, 에이즈와 결핵과 말라리아를 합친 사망자보다도 많다. 이 수치에는 동남아의 200만명,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서태평양 지역의 200만명, 아프리카의 100만명이 포함된다.

두번째로 건강권 문제가 있다. 오염된 공기, 특히 초미세먼지는 혈류를 타고 온몸의 장기로, 심지어 뇌 속으로까지 파고든다. 호흡기, 심장, 폐암, 뇌졸중, 백내장, 발육부전, 당뇨, 비만, 피부병, 방광암, 장암, 골형성부전, 임신장애와 유산, 신생아 폐질환, 저체중, 정신질환 등 수많은 병이 미세먼지와 관련이 있다.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대기오염을 줄였더니 그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 체중이 그 이전 시기보다 양호했다는 연구도 있다.

마지막으로, 오염된 공기는 사람들에게 차별적인 영향을 끼친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미세먼지를 경험하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이 고생하는 건 아니다. 공기오염 때문에 특히 고통받는 취약집단이 있다. 장시간 실외공기에 노출되는 노동자, 정보가 부족하거나 오염된 실내공기를 마실 수밖에 없는 빈곤층, 이미 만성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더 고통을 받는다.

여성,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실내 취사와 난방을 전담하는 여성의 건강이 나빠지기 쉽다. 얼마 전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와 비정부기구인 한국제이티에스(JTS)가 방글라데시에 있는 로힝야 난민촌에 가스버너 10만개를 전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실내 공기오염으로 고통받는 저개발국의 일반적 사정과 연관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환기가 잘 안 되는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는 이주노동자들도 오염된 공기의 피해자가 된다. 아동은 생리적으로 공해에 특히 민감하고 유아기에 심신이 쇠약해지면 평생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저개발국 노인들의 건강수명이 선진국 노인들의 그것에 비해 훨씬 짧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초국경적 불평등도 발생한다. 부자나라에 공산품을 수출하기 위해 방글라데시, 인도, 파키스탄 같은 나라는 대규모의 공기오염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수출산업 종사자 중 공기오염에 의한 조기 사망자가 10만명 정도라고 한다. 무역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생명권의 불평등한 교환이다.

공기오염과 기후변화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우선 공기오염과 기후변화의 원인이 서로 겹치는 경우가 많다. 화력발전, 철강, 제조산업, 내연기관 등이 대표적이다. 온실가스 자체가 공기오염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공기오염이 단기적이고 지역적이라면, 기후변화는 장기적이고 전 지구적인 범위를 가졌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기후변화와 공기오염 간의 연관성을 대중들에게 인지시키지 못해 기후변화 초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작금의 미세먼지 사태에 대해 시민들이 느끼는 우려와 경각심은 차라리 잘된 일일 수도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대책과 기후변화 대책은 둘 다 함께 추진할 수 있으므로 ‘일석이조의 정책효과’가 있다. 최근 설립된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국가기후환경회의도 기후변화 대처까지 염두에 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미세먼지에 있어 중국 탓을 하곤 한다. 물론 중국 책임이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청정공기호흡권은 개인, 개별 가구, 로컬, 국가, 대륙, 국제적 차원에서의 행동이 다 함께 보조를 맞춰야 풀릴 수 있는 다차원적 문제임을 잊어선 안 된다. 인권이사회가 미세먼지 대책에 있어 이성적이고 체계적이고 숙의적인 접근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런 점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공기오염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는 절차적 의무와 실질적 의무를 모두 충족해야 한다. 절차적 의무에는 시민교육과 홍보, 정보 제공, 환경정책에 있어서의 시민참여 독려와 촉진 등이 있다.

국가의 실질적 의무에는 국가가 수행해야 할 통상적 인권의무의 구도가 그대로 적용된다. 우선 국가나 공기업이 공기를 직접 오염시키는 행동을 해선 안 된다.(존중의무) 그리고 기업 등 제3자에 의한 공기오염에 대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보호의무) 예를 들어 대기오염 물질의 측정치를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는 삼성전자, 지에스칼텍스, 금호석유화학, 롯데케미칼, 엘지화학, 한화케미칼에 대해서는 철저한 책임추궁이 있어야 한다.

유엔인권이사회는 청정공기호흡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7가지 단계의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한다. ①공기질과 공기질이 건강에 미치는 효과를 모니터링한다. ②오염 배출원을 찾아 그것의 경중을 평가한다. ③공기질에 관한 정보를 발표하고 홍보함에 있어 시민의 정보 접근권을 존중한다. ④대기질을 개선하기 위한 입법, 규제, 기준 설정 등을 추진해야 한다. ⑤공기질 개선을 위한 행동계획을 마련하고, 특히 취약계층을 위해 효과적인 보호조치를 도입해야 한다. ⑥공기질 개선을 위한 조치들을 이행·강제해야 한다. ⑦지속적 평가 및 수정을 통해 정책 사이클을 선순환시켜야 한다.

깨끗한 공기는 인간 기본권을 위한 공공재이자 삶의 은유적 상징과도 같은 신비로운 것이다. 카테리나 스토이코바 클레머는 이렇게 말한다. “시를 쓰려면/ 나비가 팔랑거리는/ 공기를 잡아야 한다.” 탁한 공기 속에선 생명도 시도 나오기 어렵지 않은가.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한국인권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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