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2012, 한국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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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몰아보기
<인간의 조건>(2012, 한국방송)<케이비에스 엔 스포츠>(KBS N SPORTS). 5(토) 오전 9시30분 1~2회. 6(일) 오전 9시30분 3~4회 “삐이이…” 묵묵히 시킨 일을 하던 노트북 컴퓨터는 갑자기 화면을 온통 검은색으로 물들이더니 뭔가 불길한 글씨들을 토해내며 한참을 울었다. 당황한 양평동 이씨가 자판을 열심히 두들겨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몇 분인가 지났나, 돌연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전원이 나가 버렸다. 이씨의 머리도 일순 ‘전원’이 나갔다. 매주 치렀던 마감의 흔적들, 친구들과 떠난 여행에서 찍어온 사진 같은 것들이 다 지워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등줄기가 서늘했다. 황급히 켜 본 노트북은 퉁명스러운 경고문을 뱉어냈다. “그러게 평소에 백업 좀 해두지. 여기 있던 거 이미 다 날아갔음.” 수년간의 기록이 사라졌다는 충격이 이씨를 강타했지만 마냥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당장 막아야 하는 마감이 코앞에 있었다. 이씨는 급하게 노트북 화면을 찍어 담당 기자에게 사진을 전송했다. “사정이 이러니 좀 양해 부탁합니다.”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이었다. 휴대폰으로 초고를 쓰는 건 할 짓이 아니었다. 오래 붙들고 있기엔 자판이 너무 작았다. 그렇다고 노트에 적을 수도 없었다. 원고지 몇 장 분량이나 쓴 건지 글자 수를 일일이 세어 볼 순 없는 것 아닌가. 서랍을 뒤져보니 다행히 언제 산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누레진 원고지 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해서 이씨는 십수년 만에 원고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예기치 않은 사실에 놀랐다. 이씨의 문장은 너무 길었다. 그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문장이 원고지 두 장을 차지하는 꼴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아, 왜 이리 군더더기가 많았을까. 초고 쓰고, 탈고하고, 완성된 원고를 휴대폰으로 옮겨 적으며 이씨는 짧고 간결한 문장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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