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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1.25 19:34 수정 : 2013.07.15 16:26

[토요판] 이승한의 몰아보기

부당거래(2010년, 류승완 감독)
<채널 씨지브이>, 26일(토) 밤 12시

<부당거래>(류승완 감독)의 장르를 사회고발 스릴러라고 정의하는 글들을 볼 때마다 양평동 이씨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적어도 이씨에게 <부당거래>는 류승완이 늘 그랬던 것처럼 액션영화였으니까. 주먹이 오가는 대신 비수처럼 잘 벼려진 말들이 합을 맞추는 광경이나, 그 말들을 리드미컬한 호흡으로 척척 붙여낸 편집은 액션이란 말 외엔 표현이 어려웠다.

서로를 베고 찌르는 그 현란한 말의 성찬 중에 유달리 이씨의 뇌리에 깊게 박힌 대사가 있는데, 류승범이 연기한 검사 조양의 대사다. 다짜고짜 영장을 청구해서 남의 통화내역을 좀 뽑아서 보고하라는 조양의 명령에 나이 많은 부하직원은 “무슨 명목으로 영장을 청구할 것이냐”고 묻는다. 조양은 말한다. “난 명목 같은 건 모르겠고, 거 좀 꼭 검토하고 싶은데?”

이 무시무시한 말은 한 무리 안에서 권력의 정점에 오른 이만이 쓸 수 있는 말이다. 거기에 류승범이 구사하는, 반말과 존댓말이 미묘한 비율로 섞여 낭창낭창하지만 날카로운 비아냥과 공격성을 담은 특유의 말투가 더해지면서 메시지는 더욱 선명해진다. 조양의 그 대사를 떠올릴 때마다 이씨는 권력의 언어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온갖 표현으로 치장해 본질은 은폐했으나 결론은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암시하는 말들. 최근 그와 비견될 만한, 미로 같지만 날카로운 말들이 실제 검사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서 이씨는 반사적으로 조양을 떠올렸다. 이씨의 담당 기자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기자들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한다.

“이번 사건도 법원에서 무죄가 될 수도 있다.” “그게 무슨 뜻인가. 무죄일 공산이 있는데도 무리하게 기소를 했단 말인가.” “일반적으로 그렇단 이야기지. 무죄 가능성이 높단 이야기는 아니다. 기자들이 공익성 부분에 대해 계속 질문을 하길래. 무죄 가능성은 모든 사건에 항상 열려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무죄가 나올 가능성은 있나.”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안이다.”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재판 결과란 게 원래 무죄도 될 수 있고 유죄도 될 수 있는 것이니 무죄가 될 수도 있다지만, 그건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뜻이 그렇다는 게 아니고, 이 사안은 무죄의 가능성이 전혀 없단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광경을 보며 이씨는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냥 “아, 다 모르겠고 그냥 기소할 거다”란 말을 저렇게 에둘러 할 수 있는 것 또한 재주임을. 본질을 은폐하고 미사여구 속에 욕망을 담아내는 권력의 언어란 저리도 번잡하고도 능란하다는 것을.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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