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복귀 이후 강호동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새로운 도전으로 이목을 끌었던 <한국방송> 2텔레비전의 예능프로그램 <달빛 프린스>는 8회 만에 폐지로 가닥을 잡았다. <달빛 프린스>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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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뚝심으로 방송 주도하던 그이젠 힘빠진 ‘자폭’개그만 날린다
혹시 조율사로 거듭나는 중?
하지만 우리 엄마 이르기를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 요즘 이 바닥에서 사흘 걸러 하루 듣는 이야기가 ‘강호동(사진)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다. 기자들이, 방송업계 사람들이, 동료 글쟁이들이, 술자리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심지어는 점심 끼니를 때우려 들어간 밥집 아주머니들까지도 그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산다. 야심 차게 복귀한 <황금어장-무릎팍도사>의 부진과, 강호동의 새로운 도전으로 이목을 끌었던 <달빛 프린스>의 8회 만의 폐지 결정은 티브이깨나 보는 사람들 사이에선 연초의 화두였다. ‘네 생각은 어떠냐’고 묻는 이들에게 ‘복귀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예전처럼 감을 잡겠는가. 지금 평가하는 건 온당치 않다’고 답을 하는 것도 한두번. 대통령이 바뀌고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사람들이 내게 묻는 것은 오로지 ‘강호동 어떻게 생각하니’뿐이었다. 티브이 글을 쓰는 업보라는 게 이런 건가. 오랜만에 어머니 댁에 가보니, 어머니께서도 이젠 <스타킹>이 아니라 <불후의 명곡>을 보고 계신다. “엄마, 엄마 좋아하는 강호동도 돌아왔는데 요즘은 <스타킹> 안 보나?” “엄마는 이게 더 좋더라. 그리고 강호동이 요새 뭐 예전만 하니? 영 힘이 빠져서.” 힘. 강호동을 정의하는 수많은 단어 중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는 단어일 거다. 그가 이만기를 꺾고 천하장사가 되던 선수 시절부터,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서 게스트를 번쩍 안아 올려 환영인사를 대신하는 예능인이 된 지금까지, 강호동은 변하지 않는 힘의 상징이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 ‘아, 저 사람은 강하다’고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 무언가. 강호동이 티브이에만 나오면 화면을 향해 미친 듯이 짖어대는 강아지가 <티브이 동물농장>에 소개되기도 했으니, 화면을 뚫고 나올 듯한 그 기운은 우리만 느끼는 게 아닌가 보다. 하지만 정말 그게 다일까? 강호동 말고도 힘이 세거나 기운이 센 코미디언들은 많다. 괴력의 소유자로는 노홍철이나 정준하도 있고, 기가 세기로는 이경실이나 이영자도 둘째가라면 아쉬울 사람들 아닌가. 개중 강호동의 위치에까지 올라갔거나, 올라갔더라도 그 자리를 강호동처럼 오래 지켜낸 사람은 없다. 애초에 강호동을 정상의 자리에 올린 게 힘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좀처럼 다시 원래 위치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힘이 빠져서만은 아닐 것이다. 강호동이 <해피선데이> ‘1박2일’에서 하차하고 얼마 안 되어서의 일이다. 강호동이 빠지고 나면 나머지 멤버들만으론 쇼가 영 맥을 못 출 줄 알았는데, 웬걸, 꼭 그렇지도 않은 게 아닌가. 나름 그 이유를 분석한답시고 고민하던 내게, ‘1박2일’의 광팬인 친구가 슬그머니 귀띔을 해주었다. “사실 나도 강호동이 없으니 좀 흔들릴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강호동이 빠지고 나니까 완력으로 멤버들을 억누르는 사람이 없어서 오히려 보기가 덜 부담스럽더라고.” “그래요? 그래도 강호동이 있어야 나영석 피디한테 뭔가 내기도 걸고 승부수도 던질 사람이 있지 않나?”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게, 그 역할을 이승기랑 은지원, 이수근이 나눠 가져가서 생각했던 것처럼 허전하지 않아요.” 강호동이 부담스럽다는 의견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코미디언들이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게 재미있어 보이는 반면, 강호동이 후배들을 툭툭 치는 걸 보면 어딘가 무서워 보이는 게 사실이니까. 친구와의 대화에서 진짜 중요한 부분은 ‘내기를 걸’ 사람의 자리가 어떻게든 채워져서 괜찮았다는 대목이었다. 내기. ‘1박2일’에서 강호동은 끊임없이 내기를 건다. 제작진에게, 멤버들에게, 더 센 벌칙과 더 큰 보상을 걸고 한판, 복불복 한 사람에게 몰아주기를 걸고 한판. 강호동은 유재석처럼 주어진 미션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매 순간 승부를 걸어서 미션에 살을 붙이고 그 결과로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내는 타입의 사람이다. 말하자면 그건 ‘액션’으로 예능을 하는 사람과 ‘리액션’으로 예능을 하는 사람의 차이일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멘트와 행동을 모아 보기 좋게 정돈하는 리액션 예능의 극한에 유재석이 서 있다면, 강호동은 그 반대편인 액션 예능의 극에 서 있던 셈이다. 이를테면 ‘1박2일’에서 기상 악화로 예정된 촬영을 진행하지 못하게 되자, 불쑥 ‘이만기 교수님을 찾아가자’고 제안하더니 즉석에서 십수년 만의 리턴매치까지 이끌어낸 에피소드는 정교한 계산이나 리액션의 예능으로는 불가능한 장면이었다. 그것은 모래판 위에서 상대의 근육이 움찔거리는 찰나를 포착해 본능적으로 가장 좋은 수를 찾아내는 데 청춘을 바쳤던, 승부사만이 던질 수 있는 액션이었다. 문제는 복귀 이후다. 자신만의 문법을 가지고 예능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자기 방식을 버렸다. 액션을 주로 던지던 사람이 갑자기 리액션만으로 프로그램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서 그는 게스트의 말에 포복절도하는 리액션은 선보일지언정, 예전처럼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게스트에게서 다른 모습을 이끌어 내지는 못한다.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는 ‘건방진 도사’ 유세윤의 몫이 되었고, 강호동은 멋쩍게 자신의 잠정은퇴와 부진을 언급하는 ‘자폭’ 개그를 반복한다. 모든 엠시들이 죄다 리액션으로만 일관하던 <달빛 프린스>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강호동의 갑작스런 노선 변경 이유는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강호동의 액션 예능은 분명 양날의 검이었으니까. 그를 사랑하는 사람만큼이나 달갑잖게 생각했던 이들이 많았던 것은 액션 위주의 예능이 지닌 한계였다. 앞장서서 액션을 던지고, 무리를 자기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고, 그 과정을 뚝심으로 관철시키는 그의 방식은 효율적인 만큼 반감을 끌기 쉬웠다. 그리고 불미스러운 일로 일터를 떠났던 사람이 다시 현업으로 돌아올 때는 분명 남들의 시선에 위축되기 마련인 법이다. 어쩌면 그는 지금 액션의 예능에서 리액션의 예능으로, 상황을 주도하는 사람에서 상황을 조율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그의 스승이자 롤모델인 이경규가 <힐링캠프>를 통해 거듭나서,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불통과 역정의 이미지를 벗은 것처럼. 하지만 그건 하루아침에 가능한 종류의 변화가 아니다. 이경규는 <힐링캠프>를 하기 전에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을 통해 자신의 성격적 결함, 노쇠함, 공황장애를 고백하며 천천히 변화의 길을 걸었다. 하물며 지난 10여년간 정상에서 내려온 적 없이 자기 방식으로 예능의 문법을 다시 썼던 강호동이라면, 갑작스러운 변화는 오히려 독일 것이다. 사람들이 강호동을 그리워한 이유가 그의 공손함이나 차분함을 보고 싶어서는 아니지 않은가.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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