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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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참여했다고 방치하고선
퇴사 뒤 SBS 출연한다고
씹어댄다, “기껏 키워줬더니…”
6년전 자의와 무관하게
김성주 빈자리에 채워졌으니
이제 그에게 결정권을…
오상진(사진)이 <문화방송>(MBC)을 나와 <에스비에스>(SBS)에 나왔다. 시답잖은 말장난 같지만, 한 줄로 정리하자면 그렇게 됐다. 지난 2월22일 문화방송을 퇴사하고 한달 남짓, 그사이에 오상진은 에이전트와 계약을 맺고 에스비에스의 예능프로그램 <땡큐>에 게스트 출연을 확정했다.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이 많은 요즘 기준으로도 다소 빠른 행보, 그래서 더 그랬던 걸까, 문화방송 쪽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 그리 곱지만은 않다.
그가 사직서를 내던 날, 한 신문은 아나운서실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며 “아나운서의 위상이 과거와 같지 않은 가운데, 안정적인 방송사 조직원으로 남을지 아니면 ‘정글’로 뛰어들어 잘나가는 연예인 엠시(MC)들과 정면대결을 벌여 자신의 몸값을 높일지 갈등하다 후자를 택했다”고 사직의 이유를 분석했다.(<동아닷컴>, ‘MBC 오상진 아나운서 사표 제출, 안정? 모험? 갈등하다…’ 2013년 2월22일) 마치 지금껏 오상진이 아나운서로 재직했던 것은 오로지 ‘위상’ 때문이고, 갈등했던 것은 ‘안정’이냐 ‘몸값’이냐의 문제였으며, 결국 ‘잘나가’고 싶어 회사를 나간 거라고 말하고 싶기라도 했던 것처럼.
오상진의 <땡큐> 출연이 알려지자 또다른 신문에 등장한 ‘관계자’는 “그가 엠비시에 남아 있는 동료들을 생각한다면 조금 더 신중하게 판단하고 행동했을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스포츠한국>, ‘오상진의 ‘SBS행’ 소신인가 보신인가’ 2013년 3월18일) 전현무가 <한국방송>(KBS)에서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자사의 쇼에 섭외했던 문화방송 사람들이 할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문화방송 내 익명의 ‘관계자’가 꾸준히 매체에 불편한 심기를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를 읽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새어 나왔다.
“뭐, 재미있는 거라도 있어?”
“아니, 오상진 퇴사에 대해서 문화방송 반응이 굉장히 신경질적이길래.”
“아, 그거? 걔네 완전 화난 모양이던데? <땡큐> 나가는 거 일회성 게스트 출연 아니야?”
“맞아. 게스트로 나가도 이 난리니, 어디 정규로 패널이라도 들어가면 규탄대회라도 할 기세지.”
“촌스러운 것들. 6년 전에 김성주 나갈 때랑 어쩜 바뀐 게 없어?”
친구는 그저 무심코 뱉은 말이었겠지만, 그 소리를 듣고 나니 기시감이 확 밀려들었다. “가만, 나 이 상황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2007년 초 문화방송을 발칵 뒤흔들었던 김성주의 프리랜서 선언 때도 이런 논쟁이 있었다.
지금이야 아나운서들의 프리랜서 선언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2007년 2월 문화방송을 나갈 때만 해도 김성주는 ‘배신자’, ‘돈 때문에 언론인이기를 포기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피해갈 수 없었다. 김성주는 뉴스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종류의 방송에 등장하며 문화방송의 얼굴 노릇을 했다. <황금어장>, <두뇌발전소 큐(Q)>, <불만제로>, 라디오 <김성주의 굿모닝 에프엠(FM)>까지, 예능과 교양, 라디오와 스포츠 중계를 넘나들던 그가 회사를 그만두자, 문화방송은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회사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지만, 김성주는 여전히 문화방송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방송계 곳곳에서 영입 제안이 있었지만, 방송 복귀는 ‘고향’인 문화방송에서 하고 싶다며 일을 거절하느라 8개월을 내리 쉬었던 그였다. 자신을 그렇게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시켰던 것이 단순히 가격 경쟁력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문화방송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김성주의 뜻과 달리 그의 복귀는 그리 빨리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가 출연하던 많은 프로그램들에, 이제 막 입사 2년차가 된 새내기 아나운서 오상진이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김성주의 퇴사 이전에도 오상진은 분명 눈길을 끄는 아나운서였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에 훤칠한 키, 담백한 화술과 지적인 이미지, 눈과 입에 늘 걸려 있는 웃음까지. 그렇다고 입사 2년 만에 그 많은 방송을 꿰찰 정도로 한눈에 쏙 들어왔는가 하면 그건 아니었다. 그와 비슷한 이미지를 강점으로 내세웠던 김성주의 갑작스런 퇴사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회사가 비슷한 매력을 가진 후임을 전폭적으로 내세워야 할 필요가 없었다면, 오상진은 아마 지금보단 더 차근차근 인지도를 높였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오상진에게 ‘차근차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상진은 자의와는 무관하게 조직의 결정에 따라 김성주의 빈자리를 메워야 했고, 그해 연말쯤엔 <방송연예대상> 쇼·버라이어티 부문 남자 신인상을 받는 유망주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의 퇴사와 에스비에스를 통한 방송 복귀에 대해 문화방송이 자꾸 날 선 말들을 흘리는 이유 중 많은 부분이 여기에 있다. “기껏 기회를 줘서 성장시켰더니 회사를 나간다”는 배신감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김성주도 딱 그 논리였지. 이렇게 이윤 추구를 위해 회사를 떠나는 걸 그냥 묵과한다면, 회사가 직원을 위해 투자를 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면서.”
“하지만 지금 문화방송이 그런 말 할 입장은 아니지 않나? 어차피 자기들은 쓰지도 않을 거였잖아. 오상진 요새 문화방송에서 뭐 한 거 있어?”
“최근에 안동문화방송에 파견 가서 막걸리 축제 진행하고 왔댄다.”
“그게 다야?”
“응, 그게 다야.”
문화방송 노조가 170여일의 파업을 마치고 일터로 복귀한 건 2012년 7월이었지만, 오상진은 8개월이 넘도록 방송에 얼굴을 비출 수 없었다. 회사가 파업에 참여·동조한 직원들은 방송에서 최대한 배제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아나운서들은 뜬금없이 ‘미래전략실’이나 ‘사회공헌부’ 같은 부서로 발령을 받고 뉴스와는 거리가 먼 업무를 수행하거나, 더 운이 없으면 ‘신천교육대’라고 불리는 신천 엠비시 아카데미에서 ‘샌드위치 만들기’ 따위의 강의를 억지 춘향으로 수강해야 했다. 오상진은 아나운서실로 복귀했으니 그나마 운이 좋았던 걸까. 글쎄, 회사는 노골적으로 “파업에 참여한 문지애, 오상진 아나운서는 배제하는 게 원칙”이라고 이야기했고, 오상진은 출근만 할 뿐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시피 했다.
“단 한번도 문화방송을 떠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황금어장-라디오스타>, 2011년 11월18일)던 사람이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어떤 생각을 얼마나 했던 걸까. 회사의 보복성 인사 배제에 대한 분노? 꼭 그렇게 넘겨짚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오상진은 이미 몇 차례 자신의 퇴사를 사적인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라 못박은 바 있다. 하지만 방송인이 방송에 출연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막막한 일인지 정도는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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