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이 4월7일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폐지된다. 큰 형님으로서 ‘남격’을 이끈 ‘규사마’ 이경규. <한겨레> 자료사진
|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몰래카메라’ 등으로 변화 이끈
‘군림하는 아버지’의 초상
실패 겪으며 ‘듣는 사람’으로 변신
자기고백하며 최전선에 선 그에게
‘남격’ 폐지 책임 묻는 건 구차하다
“그러니까 지금 ‘남격’ 폐지가 이경규의 잘못이 아니라고요?”
“예, 전 그렇게 생각해요.”
“왜죠?”
“‘합창단’ 미션을 계속하자고 주장했던 건 <한국방송>(KBS) 사쪽의 결정이었고, 잦은 피디 교체나 멤버 교체, 엇비슷한 미션 우려먹기도 이경규가 결정했던 사안은 아니니까요.”
이경규에 대해 쓰겠다고 말하다가 한국방송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남격) 이야기가 나오자, 담당 기자는 의아하다는 듯 반문했다. 기자의 질문을 거칠게 해석하자면 아마 이런 이야기였으리라. 4년을 순항하던 ‘남격’이 이렇게 삽시간에 종영이 결정됐는데, 프로그램의 얼굴 격인 이경규에게 잘못이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고 보면 불과 십 수년 전만 해도 예능 프로그램 흥행의 공과 과를 모두 예능인에게 물었던 시절이 있었다. 마치 카메라 뒤에서 현장을 만들어 나가는 피디나 작가들은 없는 존재인 것처럼. 지금이야 어느 프로그램의 아무개 피디가 전에 무슨 프로그램을 했던 그 사람이라더라 하는 정보가 실시간으로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지만, 전에야 누가 그런 것까지 신경 써가며 티브이를 보았는가. 그러니 유독 이경규에게 프로그램의 성패에 대한 책임을 더 무겁게 묻는 게 익숙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가뜩이나 프로그램이 출연하는 예능인 자체와 동일시되기 쉽던 시절, 이경규는 1990~2000년대 한국 예능의 체질 변화를 주도한 대체 불가의 1인자 아니었나.
콩트 코미디가 하강세를 타던 시절, 그는 주병진과 함께 토크 코미디와 인포테인먼트 장르를 주 무기로 탑재한 <문화방송>(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일밤)의 얼굴이 되었다. 스타들의 민낯을 보여주는 일밤 ‘몰래카메라’로 예능에 리얼리티를 끌고 왔고, 방송인이 아닌 평범한 장삼이사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밤 ‘이경규가 간다’를 들고나왔다. 못난 남자들이 스포츠 종목에 도전하며 고군분투하는 일밤 ‘대단한 도전’으로 훗날 ‘무한도전’의 등장을 예고했으며, ‘전파견문록’으로 아이들이 출연하는 예능을 선보였다. 이경규가 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는 길목에 뿌려둔 빵 조각들이 오늘날의 예능 지형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작가만큼 예민하게 아이템을 발굴해내고, 피디가 놓치고 넘어가는 것들을 짚어냈다. 심지어 씨름판을 떠나 무엇을 하면 좋을까 서성이던 강호동에게서 방송인의 싹을 발견해내고 데뷔시켰다. 그런 예민한 감각과 치열한 태도는 그를 한 시대의 지배적 아이콘으로 만들어 준 동시에, 그를 함께 일하기 쉽지 않은 존재로 만들었다. 그는 자기 보기에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아이템을 제작진이 들고 올 때면 역정을 냈고, 자기가 생각한 방송의 모양새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후배에게 호통을 쳤다. 본인의 회고처럼, 그가 현장에 등장하면 모여서 담소를 나누던 작가들이 모세 앞의 홍해처럼 양쪽으로 갈라졌다.
그러니까 어쩌면 그는 군림하는 아버지 세대의 초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유능하고 치열하게 일해 모두를 이끌고 전진하고,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이들에게 역정을 내며, 자신이 그려놓은 이상적인 그림을 성취하기 위해 눈앞의 목표에 몰두한다. 하지만 그가 무슨 고민을 가지고 있고 어떤 꿈을 꾸는지는 당최 알 수 없는, 그래서 따라는 가지만 이해는 하기 어려운 존재. 모든 아버지들의 시간이 때가 되면 저물듯, 이경규의 시대도 흘러갔다.
시작은 일밤 ‘상상원정대’였다. 과학상식을 알기 쉽게 설명하며 시청자들의 상상력을 키운다는 거창한 포부와는 달리, 상상원정대의 내용물은 전세계 놀이기구 체험에 지나지 않았다. 겁에 질린 정형돈의 얼굴 클로즈업 정도만 뇌리에 남긴 상상원정대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뭐야 이거. 뭐 하자는 거야 대체. 일밤 ‘돌아온 몰래카메라’도 시원치 않았다. ‘돌아온’이라는 수사가 보여주듯 결국 원조의 재탕에 그칠 수밖에 없는 기획이었기 때문이다. 이거 예전에도 했던 거잖아. 그런데 예전만큼 재미있지는 않네. 2000년대 중반부터 이경규가 일밤을 통해 선보인 프로그램들은, 이경규의 이름값이 무색하게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무한도전’과 ‘해피선데이’ ‘1박2일’의 출현은 그의 입지를 더욱 줄였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직접 수개월을 연습해 댄스 스포츠에 도전했고, 1박2일은 여행 도중에 설정이 아닌 실제 상황으로 멤버를 낙오시켰다. 예능인의 긴장과 고통, 개인적인 약점 등이 낱낱이 화면 위에 드러나고 그것 자체가 엔터테인먼트가 된 시대에, 자신의 기호품(술, 담배)과 성격, 가족사항(아내와 딸) 정도를 제외하고는 사적인 이야기를 카메라 앞에서 해본 적이 없는 이경규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이경규가 프로그램 그 자체로 여겨지던 관성은, 프로그램의 실패를 이경규 개인의 실패로 보이게 했다.
시대의 속도에 뒤처진 것만 같았던 이경규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방송의 2006년 작 ‘그랑프리쇼 여러분’ ‘불량아빠 클럽’부터였다. 방송에 집중하느라 딸 예림에게 애정을 충분히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에서 시작되었다는 이 프로그램에서, 이경규는 처음으로 내밀하고 사적인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불량아빠 클럽은 쇼에 참여하는 연예인들에게 ‘과연 좋은 아버지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질문을 받은 연예인들은 그에 답하기 앞서 우선 ‘나는 어떤 아버지인가’라는 자문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아저씨’들의 말 못할 고민과 현재를 바라보게 된 이경규는 ‘남격’의 기획을 준비했다.
불량아빠 클럽을 지나, 일밤에서의 퇴출을 거쳐 이경규가 도착한 남격은 그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불량아빠 클럽이 그랬듯, 남격은 ‘나는 지금 어떤 남자인가’를 먼저 자문해 볼 것을 요구했고, 이경규는 자신의 실패와 노쇠함과 같은 단점을 고백해야 했다. 그는 절룩거리며 마라톤을 완주했고, 숨을 헐떡이면서 지리산을 올랐으며,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공황장애를 고백했다. 저 멀리 앞서 나가느라 등밖에 보이지 않던 아버지가, 옆에 걸터앉아 숨겨 두었던 수많은 약점과 내밀한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이경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던 선구자가 아니라, 우리와 같이 나이 먹고 고민하며 살아가는 동시대의 존재가 되었다.
“일단 회의에 참석하면 안 된다. 남의 좋은 아이디어를 내 스스로 막을 수 있다. 단지 이런 거 어떠냐고 물어봤을 때 의견을 낼 뿐이지, 옛날처럼 붙잡아놓고 말하지 않는다. 옛날엔 찾아가서 이거 왜 하냐고 따졌는데, 요즘엔 혼자 조용한 데 가서 누워서 생각한다. 이걸 왜 할까, 그래 그냥 하자.”
(“이경규 ‘어쨌든 누구든지 웃길 수 있다’” 2013년 1월2일 <텐아시아> 이가온 기자)
카메라 앞에서나 뒤에서나 가장 말이 많은 사람이었던 이경규는, ‘남격’과 <에스비에스> ‘힐링캠프’, <티브이엔>(tvN) ‘화성인 바이러스’를 거치며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되었다. 게스트의 사연에 귀 기울여야 하는 토크쇼, 멤버들 개개인의 삶에 찾아온 변화가 비등하게 중요했던 리얼 버라이어티를 거치며 생긴 변화다. 혼자 프로그램의 방향을 설정하지 않는 대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같은 그림을 공유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이경규는 여전히 예능의 최전선을 달린다. 일밤 ‘아빠! 어디 가?’, 한국방송 ‘인간의 조건’의 성공으로 대두된 (유사)가족공동체 예능의 맨 앞줄에, 아주 오래전부터 이경규가 있었다. 에스비에스 ‘붕어빵’이 그렇고, 최근 새로 시작한 한국방송 ‘풀하우스’가 그렇다. 그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꾸준히 내일의 예능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