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9일 방송한 <티브이엔>(tvN) ‘에스엔엘 코리아(SNL KOREA) 이영자 편’ 오프닝중인 여성 코미디언 이영자씨. <티브이엔>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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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무대장악 카리스마와 ‘덩치’로
스타덤 올랐다 그 때문에 나락으로
잇단 복귀 실패와 고난의 시간
성공작이 ‘안녕하세요’인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다
이경규가 그랬던가, “젊은 사람들은 아무거나 보고 까르륵 잘 웃지만, 우리는 이제 누군가 프로페셔널하게 웃겨주지 않으면 좀처럼 웃지 못한다”고. 이경규만큼 연륜과 나이를 먹은 건 아니지만, 티브이를 보고 글을 쓰는 게 업이 된 지 7년 차가 된 나도 그렇다. 웃으면서도 머릿속으론 저 개그의 기저에 깔린 코드는 무엇인지, 이 사람은 어떤 전략과 매력으로 사람을 웃기는지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있노라면 불현듯 ‘남들처럼 아무 계산 없이 속 편하게 웃어본 게 그 언제였던가’ 싶은 것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가끔 아주 드물게, 분석을 잠시 잊고 넋 놓고 웃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최근엔 <티브이엔>(tvN)의 <에스엔엘 코리아>(SNL KOREA) 이영자 편이 그랬다. 오랜 동료 신동엽과 함께 한 19금 개그의 끝 ‘그 겨울, 바람이 분단다’나 ‘먹방(먹는 방송) 전문가 칼로 리(Lee)’로 등장한 ‘위크엔드 업데이트’ 코너도 좋았지만, 내가 배를 잡고 뒹굴었던 코너는 따로 있었다. 앞의 두 코너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제가 덜 된 꽁트, ‘오늘은 내가 짜파구리 요리사’가 그것이다.
짜장라면 ‘짜파구리’ 광고 촬영장, 광고 내용은 대략 이렇다. 광고 모델 박재범이 ‘짜파구리’를 끓이며 “세상에서 제일 좋아!”라고 외치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례로 묻는다. “아빠보다 더?” “엄마보다 더?” 박재범이 웃으며 “당연하죠!”라고 외치면 촬영은 무사히 끝난다. 그런데 어머니 역을 맡은 단역 연기자 이영자가 문제다. ‘엄마보다 짜파구리가 더 좋다’고 말하는 내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야,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고작 이 짜파구리가 엄마보다 더 좋아?”
이영자는 흥분해서 계속 엔지(NG)를 내고, 광고장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진다. ‘이번엔 정말 마지막 촬영’이라던 마지막 촬영, 이영자는 마치 꾹 눌러 담은 울분을 살풀이하기라도 하는 듯 세트에 놓인 소품들을 사방팔방으로 던진다. 세트 벽에 부딪힌 접시들이 산산조각이 나고, 국수 면발들이 허공에 흩날린다. 삽시간에 생지옥으로 돌변한 촬영장 한가운데에서, ‘파괴의 신’과 같은 기세로 이영자가 박재범에게 묻는다. “엄마보다 더?” 생명의 위협을 느낀 박재범이 “엄마 다음으로 제일 좋은 짜라짜라짜짜 짜파구리!”라고 외치며, 콩트는 끝난다.
이렇게 콩트를 잘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 긴 세월을 이런 걸 안 하고 참았던 걸까. 마치 꽃잎을 날리듯 가벼운 몸짓으로 접시를 부수는 그의 몸짓, 참았던 울분을 터뜨리는 순간 지어 보이는 표정, 그 모든 난장판 가운데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콩트를 지탱해 보이는 그 힘이라니! 앞에서 언급한 19금 개그나, 먹성 좋게 음식을 먹는 ‘먹방’ 개그는 다른 사람들도 하려면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정갈한 광고 촬영장을 혼자 힘으로 생지옥으로 돌변시키는 완력, 그 아수라장 안에서도 자기 호흡을 잃지 않고 중심을 지탱해내는 카리스마는 분명 이영자만의 것이다.
이영자가 처음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이유도 사실 그것이었다. 20대 초반부터 생계를 위해 유흥업소 밤무대에 오르며 체득한 카리스마와 무대 장악력, 무대 위에 털썩 쓰러지는 것만으로도 땅이 울리는 듯한 위압감을 주던 체구, 귀여움과 질펀함, 무서움을 말투 하나로 넘나들던 연기력까지. 공채 시험엔 수차례 낙방했던 그가, 전유성에게 발탁되어 특채로 티브이에 출연하자마자 3주 만에 스타덤에 오를 수 있었던 건 그가 그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던 여성 코미디언이기 때문이다.(그와 가장 스타일이 닮은 예능인으로 다른 여성 예능인이 아니라 강호동이 거론되는 걸 생각해보자.)
참 얄궂게도, 이영자를 성공 가도에 올렸던 카리스마와 완력, 체구, 위압감은 그를 힘들게 하는 걸림돌이 되었다. 덩치가 큰 코미디언이란 점은 이영자의 매력이었지만, 그 점을 콤플렉스로 여겼던 이영자는 비밀리에 지방흡입을 했다가 거짓을 말한 대가로 지상파 방송을 떠나야 했다. 사람들을 쥐락펴락하는 위압감과 카리스마는 그에게 부와 명예를 주었지만, 한번 나락으로 떨어진 뒤엔 ‘나대기 좋아하는’ 비호감 이미지로 받아들여졌다. ‘나대기 좋아하는’, ‘비호감의’, ‘거짓말을 한’, ‘뚱뚱한’ 여성 코미디언에게 대중은 관대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상파 방송 복귀를 시도할 때마다 그의 주변에서 연이어 터지는 고난은 그를 점점 더 깊은 고립으로 몰아갔다. 이영자는 불과 5년 사이에 친구를 잃고, 친구의 남편을 잃고, 친구의 남동생을 잃고, 친구의 전남편을 잃었다. 상처는 아물어 간다 싶으면 다시 벌어지길 반복했다. 그 과정을 겪는 동안 몇 차례 지상파 프로그램들을 시도하긴 했지만, 언제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이영자는 그렇게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는 데 실패한 수많은 예능인 중 하나가 되는 것 같았다.
삶이란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이영자의 극적인 부활은 외려 그 고립과 고난을 통해 시작되었다. 반복된 복귀 실패와 개인적 층위의 고통을 겪으면서, 이영자는 몇 년을 <현장토크쇼 택시>(이하 <택시>) 한 프로그램에만 집중했다. 심적으로 다른 프로그램을 더 맡을 여력이 안 되었던 탓이다. 그 프로그램은, 다들 아는 것처럼 예능인 이영자의 인생을 바꿨다.
호스트 두명이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 달리는 차 안에서 뒷자리에 앉은 게스트와 대화하는 형식의 <택시>는 이영자에겐 분명 새로운 도전이었다. 시청률이 높지 않은 케이블이란 환경, 본격적인 ‘몸개그’를 보여주기엔 한없이 좁기만 한 촬영현장, 도로 위를 달리는 동안엔 좋으나 싫으나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릴 수도 없이 게스트에게만 집중해야 하는 여건. 자신의 이야기로 상대를 녹다운 시키는 게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줘야 하는 장르적 특징까지. 처음 이영자가 <택시>에 캐스팅되었을 때, 그가 오래 버티리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영자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햇수로 6년간 프로그램을 지탱해 냈다.
그렇다. 지탱이란 표현이 맞을 것이다. 화려한 조명이나 세트 장치도 없고, 도망갈 곳도 없이 좁은 자동차 안. 이런 환경에서 게스트로부터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흐름을 이어 나가는 것은, 어지간한 기운으로 쇼의 중심을 잡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본인의 최대 장기인 몸개그를 지우고, 본인에게 유리한 환경인 관중석이 있는 무대를 치웠다. 그런 제약을 안고, 이영자는 자신의 기운을 외부로 발산하는 대신 그 기운으로 상대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품어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영자의 튼튼한 리액션과 추임새, 적절하게 이야기에 개입해 흐름을 조율하는 능력은 <택시>를 통해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고난의 시간들은 역으로 게스트를 더 깊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슈퍼스타케이(K) 2>의 우승자 허각에게, 그가 환풍기 수리공으로 일하던 시절의 고생담을 묻는 토크쇼 호스트는 많았다.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이영자만큼 그 질문을 진실하게 던진 사람은 없었다. “각이는 돌아보니까 어때? 좀 잘 살아낸 것 같아?” 이영자는 어떤 이의 인생은 살아지는 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를 전투하듯 ‘살아내’는 것이란 사실을 안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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