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 드라마 ‘구가의 서’에서 주인공 최강치 역으로 출연중인 이승기. 이씨의 사극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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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1년만에 사극으로 복귀
극중 배역은 이전과 비슷
잘못된 선택 아닐까 우려되지만
군대 공백 앞두고 변신하느니
기존이미지 굳히는게 낫지 않을까
최근 “이승기의 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이가 부쩍 늘었다. 아마 <문화방송>(MBC) 새 월화드라마 <구가의서> 때문이겠지만, 질문의 온도로 미루어 보았을 때 단순히 신작을 시작해서 묻는 질문만은 아닌 것 같다. 하긴, 그럴 법도 하다. 사람들이 그의 연기에 대해 부쩍 관심을 갖는 건 <구가의서>가 이승기의 첫 사극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그가 예능을 ‘끊고’ 처음으로 공백기라는 것을 가져본 뒤 돌아온 작품이기 때문이리라.
지난 몇 년간 매주 한번에서 두번은 꼬박꼬박 안방극장을 찾던 이승기는, 지난해 초 <한국방송>(KBS) <해피선데이> ‘1박 2일’(이하 ‘1박 2일’)과 <에스비에스>(SBS) <강심장>을 모두 하차하고, 작년 5월 문화방송 드라마 <더 킹 투 하츠>(더 킹)를 마친 뒤 거의 1년을 내리 지상파 작품을 하지 않고 공백기를 가졌다. 물론 그사이 그는 케이블 티브이 <티브이엔>(tvN) <더 로맨틱>의 내레이션을 맡았고, 에스비에스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에 게스트로 출연했으며, 몇 편의 광고를 찍긴 했다. 하지만 그걸 지상파 예능의 고정 진행자로 매주 얼굴을 비추는 것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평소에 얼마나 까칠한 사람으로 보였던 건지는 몰라도, 내가 이승기의 연기를 “제법 괜찮지 않으냐”고 되물으면 사람들은 모두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이상하네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승한씨는 이승기 연기에 대해서 뭔가 쓴소리를 할 줄 알았는데.” 이제 내가 되물어야 할 차례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아니, 사극인데도 현대극하고 연기하는 게 똑같잖아요. <구가의서>의 최강치(이승기)가 왈짜 패거리와 싸우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컷’ 소리가 나고 자연스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차대웅이 스턴트맨으로 촬영 나온 드라마 현장이 이어질 것 같단 말이죠.”
<구가의서>에서 이승기가 엄청난 수준의 사극 연기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 또한 무시할 수는 없다. 판타지 퓨전 사극을 표방한 <구가의서>는 애초에 작품의 톤 자체가 진지한 사극 연기를 필요로 하는 작품이 아니다. 주인공 최강치와 담여울(수지)이 나누는 대화는 고스란히 떼어서 현대극에 가져다 붙여도 별 이상함이 없을 정도이고, 그것을 모두 배우의 잘못으로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그런 지적이 단지 <구가의서>가 사극이기 때문에 나온 것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껏 이승기가 맡아왔던 역이나 선보였던 연기들이 다 어느 정도 대동소이한 것도 사실이니까.
뭐가 대동소이하냐고? 이승기가 맡아왔던 주연 배역들은 한 문장짜리 공식으로 요약 가능하다. “천방지축, 혹은 안하무인으로 제멋대로 살던 철없는 남자 주인공이, 어떠한 계기로 인해 고난을 겪지만 여자 주인공의 도움으로 차츰 책임감 있고 성실한 남자로 거듭난다.” 대입해 보아도 좋다. 에스비에스 <찬란한 유산>의 선우환(이승기)은 부자 할머니만 믿고 안하무인으로 사는 남자지만, 어느 날 부자 할머니가 자신에게 유산을 한 푼도 안 주겠다 선언을 하는 바람에 고난을 겪고, 고은성(한효주)과 함께 설렁탕집에서 일하며 점차 착실한 남자로 거듭난다. 문화방송 <더 킹>의 왕제 이재하는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며 놀고먹으며 사는 게 꿈인 철없는 왕제이지만, 형 재강(이성민)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뜻하지 않게 왕이 되었고, 사랑하는 여인 김항아(하지원)의 도움으로 점차 책임감 있는 왕으로 거듭난다.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차대웅도 그랬고, 심지어는 <구가의서>의 주인공 최강치 또한 시놉시스상의 줄거리만 보면 그 길을 걸을 예정이다.
왜 이런 걸까? 몇 가지 추측 가능한 가설들이 있다. 첫째, 이승기를 캐스팅하는 사람들이 타입 캐스팅을 한 것이다. 둘째, 이승기 본인의 취향이 그런 역들 쪽이다. 셋째, 나름 전략적인 선택이다. 세 가지 가설 중 1번이나 2번을 선택하는 게 제일 간단한 설명이겠지만, 3번을 고르면 조금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벌써 연기 데뷔 9년 차가 된 이승기는 계속 비슷한 역을 맡는 걸까?’
잠시 이승기의 데뷔곡 ‘내 여자라니까’를 돌이켜 보자. 그 곡의 성공 뒤에는 ‘늘 동생으로만 보이던 녀석이 어느 날 나에게 남자 냄새를 제법 풍기며 고백을 해 온다면 어떨까’라는 여성들의 판타지가 있었는데, 그 판타지가 성립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일단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실제로 어려야 하고, 둘째로 고백을 하는 동생이 어느 정도는 훈훈하게 잘생겨야 하며, 셋째로 그렇다고 다른 세상에서 온 것처럼 지나치게 잘생기거나 강렬한 자기 색깔이 있어선 안 된다. 둘째와 셋째가 어느 정도 상충되는 것처럼 보여도 꼭 그렇지는 않다. 이 동생은 내 근처에도 하나쯤은 있을 법한 친근한 외모와, 고백을 해주면 넘어갈 수도 있겠다는 훈훈한 외모의 교집합 안에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 이승기가 서 있었던 것이다.
이승기의 독특한 매력이 여기에 있다. 이승기는 ‘이 작품은 이승기가 아니면 안 되’게 만드는 그만의 강렬한 카리스마나 짙은 자기 색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대신 그에겐 어느 곳에 떨궈 놓아도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무난함, 어디선가 한번쯤은 마주쳤던 것 같은 친근함, 늘 한결같은 익숙함이 있다. 더군다나 매주 주말 안방을 찾았던 ‘1박 2일’에서의 활약은 그런 이승기의 매력을 더 확고하게 했다. 이승기는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먹고, 마시고, 자고, 달리고, 주저앉고, 일하고, 놀고, 웃고 떠드는 일상의 모든 모습을 매주 카메라 앞에 보여줬다. 거기에 더해 모범생답지 않게 조금만 들춰보면 허술한 점투성이였던 ‘허당’의 이미지는 그에 대한 대중들의 경계심을 해제했다. 분명 스타는 스타인데, 여행지 어딘가에서 툭 하고 마주쳐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은 스타.
그렇다면 갑작스런 연기 변신이나 도전은 적어도 지금까지의 이승기에겐 오히려 위험한 일일 것이다. 실제로 <찬란한 유산>과 ‘1박 2일’을 동시에 병행하던 시절, 드라마 초반 안하무인이고 까칠한 선우환 캐릭터에 적응하지 못한 시청자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일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결국 비슷비슷한 캐릭터 중 하나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 정도의 이미지 변신만으로도 대중이 당혹감을 느낄 정도였던 셈이다.
내게 질문을 던진 사람들의 근심도 실은 여기에 있다. 지난 몇 년간은 매주 얼굴을 비추는 예능을 병행하고 있었기에 ‘익숙한’ 캐릭터들을 맡아 선보이는 게 대중들에게 더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더라도, 근 1년의 공백기를 가지고 돌아온 지금에도 여전히 같은 전략으로 승부를 걸어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그것도 지금까지 해 왔던 현대극이 아닌 사극에서?
물론 여기에도 무난한 모범 답안은 있다. “이제 기껏해야 2회 나왔는데, 드라마를 좀더 보시고 판단하셔도 늦진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내게 질문을 던진 사람들은 고작 그 정도의 대답으로 만족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렇게 대답을 해보자. 모든 배우가 작품마다 파격적인 변신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세상엔 자신이 잘 소화할 수 있는 배역을 맡아 좋은 연기를 펼치는 사람들도 있고, 배역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키는 사람들도 있다. 이 대답으로도 충분치 않다면 현실적인 이유도 덧붙이자. 올해 이승기의 나이 스물 일곱. 이제 슬슬 군대의 부담이 다가올 나이가 되었다. 그렇다면 2년간의 공백을 앞두고 무리하게 연기 변신을 시도하는 편이 나을까, 아니면 대중에게 늘 사랑받았던 익숙한 이미지를 공고히 하고 가는 게 나을까?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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