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채널에서 시사코미디를 진행중인 김구라씨. 팬들은 그가 다시 <문화방송>의 <황금어장―라디오스타>로 돌아올까 궁금하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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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이미 6개쇼 진행하는데도‘라스’ 복귀 초미의 관심사
속물인 탓 호불호 갈리는 그
다들 독설가로만 소비할때
‘라스’는 도리어 물어뜯으며
속물혐오 시청자까지 포섭
그의 방송 2막 여기 달렸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방송인 김구라가 <문화방송>(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라스)와 지난해 초까지 맺었던 인연의 완전한 끝은 여기라고 생각했다. 토요일에 방영되던 <한국방송>(KBS) <이야기쇼 두드림>(두드림)이, 김구라가 합류하자마자 수요일 밤으로 방영시간을 옮겼기 때문이다. 수요일 밤은 라스의 밤이기도 했다. 김구라의 팬들이나 그의 복귀를 기다리던 <라스>의 팬들이나, 이 상황이 난감하긴 매한가지였다. 김구라 본인조차 “최동원 선수가 롯데 간판선수로 뛰다가 구단의 결정에 의해서 삼성 유니폼을 입었을 때도 롯데 경기에 등판을 안 할 수는 없었다”는 비유를 써가며 난처함과 안타까움을 전할 지경이었으니까. 상황은 불과 며칠 사이에 급변했다. 방송 시간대를 옮긴 지 몇 주 되지도 않아, 한국방송이 <두드림>의 전격 폐지를 결정한 것이다. 이때부터 김구라 <라스> 복귀 임박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제 슬슬 김구라가 복귀할 만한 판이 깔리지 않겠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라스> 제작진이야 여러 루트를 통해 꾸준히 김구라에 대한 애정을 고백했지만, 방송사 차원에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복귀에 대해 조심스러워했다. 그러나 지난 5월29일 새벽 유세윤이 경기도 고양시 일산경찰서를 방문해 음주운전을 자수하는 기묘한 사건이 터지면서, 예측은 확신으로 변했다. 남의 흉사에 다른 이의 복귀를 점치는 건 점잖은 일은 아니지만, 이젠 김구라나 문화방송이나 <라스> 복귀를 망설이는 게 더 어색한 상황이 된 것이다. 발 빠른 어느 매체는 벌써 문화방송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김구라 복귀 임박’ 기사를 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좀 이상한 일이다. 폐지가 예정된 <두드림>을 제외하고서라도, 김구라는 이미 지상파-케이블 채널-종합편성채널을 아우르며 4개 채널에서 6개의 쇼를 진행하고 있다. 수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하고도 일주일에 5일 밤 그를 만나볼 수 있다. 진행하는 쇼의 장르도 가지가지다. 스타 게스트와 밀폐된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는 밀착 토크쇼 <티브이엔>(tvN) <택시>에서부터, 시사·정치 토크를 전면에 내세운 <제이티비시>(JTBC) <썰전>을 지나, 게임 참가자들끼리 서로 속고 속이는 두뇌 서바이벌 게임쇼 <더 지니어스-게임의 법칙>(티브이엔) 등이 김구라의 프로그램이다. 오히려 지난해 4월 방송을 잠정 중단하던 때와 견줘봐도 더 왕성하고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도 그의 <라스> 복귀 여부에 이렇게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인 이유는 물론 김구라의 역량이 가장 많이 드러났던 쇼가 <라스>라는 점일 것이다. 감히 남들은 꺼낼 엄두를 내지 못하는 재산, 가정사, 스캔들, 송사에 대한 궁금증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는 속물근성, 연예인 신변잡기에서 팝 음악, 방송계에 대한 각종 지식들을 적재적소에 늘어놓는 디테일, 두 번 다시 안 볼 사람 대하듯 게스트를 다루는 독한 태도까지. <라스>가 게스트의 불미스러운 과거나 기괴한 루머를 숨기는 대신, 만천하에 까발려 블랙 코미디의 재료로 삼음으로써 ‘웃어넘길 수 있는 일’로 만들어 주는 ‘독한 힐링’ 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연 김구라의 공이다. 감히 ‘최동원의 롯데’에 비할 수 있는 쇼 프로그램. 유재석에게 <무한도전>이 있고 강호동에게 <황금어장-무릎팍도사>가 있다면, 김구라에겐 <라스>가 있었다. 과연 그것뿐일까? 김구라의 잡다한 지식을 보려면 <썰전>을 보면 되고, 사람을 홀리는 현란한 언변과 두뇌 회전을 보려면 <더 지니어스-게임의 법칙>을, 속물근성과 독한 태도를 보려면 <에스비에스>(SBS) <화신>을 보면 된다. 김구라는 이미 충분히 자기 역량을 펼치고 있고, 스스로 “경기력이 있으니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한숨 돌린 상황이다. 사람들이 김구라의 <라스> 복귀를 기대하는 것에는 ‘친정 복귀’라는 상징적 의미나 ‘역량 발휘’라는 실리적 이득보다 더 큰 요인이 있는 건 아닐까? 많은 이들이 잊고 있는 것 중 하나지만, 김구라가 처음 지상파에 진출했을 때 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그가 하던 인터넷 방송을 접한 적 없던 이들조차 그가 남의 욕을 해서 뜬 사람이란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고, 아들 동현이와 함께 방송 출연을 하면 “저 살려고 아들 팔아 면피하는 놈”이란 반응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는 방송을 통해 과거 자신의 발언에 상처 받았던 연예인들과 만나 사과하는 것으로 과오를 씻으려 했지만, “먹고살기 위해” 욕을 했던 것처럼 사과 또한 지상파 방송에서 “먹고살기 위해” 하는 것으로 비쳤다. 그는 “평생 그 짐을 짊어지고 살 것”이라 말했지만, 본디 말은 쉽고 사람의 진심은 확인할 수 없는 법이다. 김구라를 지상파로 밀어 올려준 과거의 언사들은, 그를 언제든 지상파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양날의 검으로 돌변해 그의 발목 언저리를 맴돌았다. 그의 과거가 어영부영 수습이 된 뒤라고 상황이 본질적으로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호오가 강렬하게 갈리는 종류의 예능인이었지, 단 한 번도 모두에게 무난한 호감을 사는 사람인 적은 없었다. 그것은 그의 어두운 과거 이전에, 그가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메커니즘 탓이 더 컸다. 기본적으로 김구라는 ‘세상 사람들 모두 적당히 속물같이 산다’는 것을 전제로 움직이고 생각하며 말을 하는 사람이다. 세상에 돈 안 좋아하는 사람 없고, 연예인의 사생활 안 궁금한 사람 없으며, 같은 값이면 더 잘나가는 사람들에게 더 잘하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그는 말한다. 김구라는 ‘티브이를 보는 당신 또한 그렇지 않냐’는 듯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어 시청자들의 간지러운 구석을 대신 긁어줌으로써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이런 속물근성을 대리 충족시켜 주면서, 동시에 이런 속물근성을 혐오하는 사람들까지 함께 만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김구라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길거리에 널리고 널린 게 그런 속물근성을 드러내는 중년 남성이에요. 내가 왜 티브이에서까지 그런 사람을 보아야 하죠?” 하지만 진행자들이 게스트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물어뜯는 순간이 더 많았던 <라스>는, 김구라의 속물근성을 대놓고 비웃을 수 있는 유일한 쇼이기도 했다. 다른 쇼들이 김구라를 ‘신랄한 독설가’로만 소비할 때, <라스>는 끊임없이 그의 과거를 소환하고 그가 상징하는 수적 보편의 욕망의 얄팍함을 상기시켰다. 김구라가 자신의 물적 성공과 입지의 변화를 과시하며 후배들을 ‘입조심’시킬 때, <라스>는 김구라의 가장 어두운 시절을 기억하던 왕년의 팬 김희철을 투입시켰다. 김구라가 짐짓 점잖은 척 뒤로 물러설 때, 다른 엠시들은 꾸준히 인터넷 방송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며 그의 성공 비결이 사실 원색적인 폭로와 비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라스>가 가장 흥미진진하던 순간들은 김구라가 게스트에게 민감한 질문을 던져대는 순간이 아니라, 그 질문이 얼마나 치졸한가가 폭로되는 순간들이었다.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고 온 정지훈을 게스트로 불러다 앉혀놓고 기껏 묻는 게 “거기 스타들이랑 같이 밥 먹으면 계산은 누가 합니까?”로 그치는 순간의 파괴적인 허탈함이란.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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