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까지 마친 드라마 <굿닥터>에서 배우 주원은 지적장애가 있는 소아외과 의사 박시온 역을 맡았다. 과하지 않고도 눈길을 사로잡는 젊은 배우의 연기는 또래 중에 돋보인다. 로고스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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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이미지 변신 서둘지 않고 ‘제빵왕…’부터 ‘굿닥터’까지
성장통 겪는 청춘 역 소화
“나이 맞는 역 하고 싶다” 포부
그의 나이 27, 거듭 증명중 “(앞으로 어떤 인물을 연기할지) 정해놓진 않았지만, 20대의 열정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인터뷰 끝에 붙은 포부를 보며 난 고개를 갸우뚱했다. 20대의 열정이라니, 조금은 막연하고 다분히 상투적인 말 아닌가. 마치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거나 “맛있는 것 먹고 싶다”처럼, 그것만으론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을 표현이라 생각했다. 생애 첫 티브이 드라마 출연작에서 악에 받친 악역을 연기한 이 스물네살의 청년은 이렇게도 말했다. 무슨 일을 하든 인간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좋은 연기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는 건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는 여전히 명확하게 와 닿지 않았다. ‘이런 캐릭터도 해보고 싶고 저런 캐릭터도 해보고 싶다’고 구체적으로 말하는 신인 배우들 틈바구니에서, 힘주어 포부를 이야기는 하되 확언은 하지 않는 이 젊은 배우를 읽어내는 건 쉽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20대의 열정’이란 말이 무엇인지는 다음 행보를 지켜봐야 알 일이라 생각했다. 알 듯 모를 듯, 주원에 대한 내 첫인상은 그랬다. 그러니까 그때가 막 <한국방송>(KBS) <제빵왕 김탁구>(2010)가 끝난 직후였다. 시청률 50%를 넘겨 ‘국민드라마’가 된 <제빵왕 김탁구>에서, 주원은 치졸하고 악랄하지만 내치자니 어딘가 불쌍한 악역 구마준을 연기했다. 친부도 양부도 모두 다가가 사랑을 청하기 어렵기만 하고, 욕망으로 가득한 어머니는 자신을 몰아세우며, 사랑하는 사람은 좀처럼 시선을 주지 않는다. 당연히 자신의 것이 되리라 생각했던 거성그룹의 차기 회장 자리는 자꾸만 멀어져 간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어디 한군데 기댈 곳이 없어 삐뚤어지기 시작하는 구마준은 미워할 수는 있어도 외면할 수는 없는 존재였다. 모든 게 서툴고 어리석어 제 마음을 깨닫지도, 바로 표현하지도 못하는 바보 같은 ‘어른아이’. 주원은 구마준을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채 자라난 ‘소년’으로 표현해냈다. 소년. 아마 낯설지는 않았을 것이다. 2009년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한국 초연에서 주원은 김무열의 뒤를 이어 주인공 ‘멜키어’ 역을 맡았다.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온 격정에 몸을 맡긴 탓에 또래 여자아이를 임신시키고, 미처 생각해 본 적 없는 시련 앞에서 산산조각이 나는 소년 멜키어는 사춘기 소년이 겪을 수 있는 감정의 극과 극을 오가는 캐릭터였다. 어른들이 만든 부조리한 세상 앞에서 방황하는 순수한 소년 멜키어와, 제 이복형 김탁구를 향해 삐뚤어진 분노를 쏟아내는 악역 구마준을 같은 선상에 올려놓는 건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어리고 서툰 걸음으로 비틀거리는 청춘이라는 점에서 두 배역은 어딘가 닮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제빵왕 김탁구>의 구마준이 주원의 첫인상이었을지 몰라도, 뮤지컬 팬들은 주원이 어린 날의 혼돈과 실수, 방황을 연기하는 것을 이미 한차례 본 이후였던 셈이다. 물론 20대 초반의 배우가 두 작품 연속으로 소년을 연기하는 게 그리 특이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젊은 배우들이 인기를 얻으면 점차 성숙한 이미지로 변신을 시도하며 나이의 한계를 극복하려 하는 데 비해, 주원은 그 이후로도 소년과 남자 사이 어딘가를 서성이는 인물을 연기해 왔다.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에겐 버림받았다는 상처를 품은 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추적하는 데 매달리는 <오작교 형제들>(한국방송·2011)의 황태희, 어머니와 형을 잃고는 그에 대한 죄책감과 복수심으로 탈을 쓴 인생을 살기 시작한 <각시탈>(한국방송·2012)의 이강토, 단순히 ‘멋지다’는 이유로 첩보원이 되고 싶은 철없는 부잣집 도련님에서 점차 진짜 요원이 되어가는 <7급 공무원>(문화방송·2013)의 한길로까지. 주원이 맡은 인물들은 그 사람 자체로 설명이 끝나는 사람이기보단 늘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동생, 누군가의 제자였고, 그 성격은 제각기 달랐으되 상처와 결핍, 실수와 방황을 통해 성장한다는 점에서는 한결같았다. 아, 이게 그가 말했던 20대의 열정이라는 건가. 한 편 한 편 쌓이는 필모그래피를 접할 때마다, 나는 몇 년 전의 인터뷰를 떠올리곤 했다. 배우라는 직업은 자신이 직접 선택을 하는 일보단 누군가에게 선택을 받는 일이 많은 직업이니, 이것이 주원의 의식적인 선택이었다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런 배역들이 주원에게 들어왔다는 점이다. 아마 주원의 타고난 외모와도 관련이 있었으리라. 짙은 눈썹과 크고 깊은 눈이 격렬한 감정 변화를 표현하기 좋은 도구라면, 다소 짧은 인중과 아래로 내려오며 좁아지는 하관은 주원을 실제보다 더 어려 보이게 만들었다. 여기에 한국방송 <해피선데이> ‘1박2일’의 막내로 활약한 이미지들이 겹쳐지며, 주원은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소년의 이미지를 획득하게 되었다. 여러 역할로 분하며 살아가야 하는 배우에게 이미지 고착이라는 게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법이련만, 주원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누군가 선배들의 연륜이 부럽지 않으냐 물으면 주원은 “이순재 선생님 정도의 연배가 되면 나도 (연기를) 즐길 수 있을지 궁금하다”며 까마득히 먼 미래를 이야기했고, 앞으로 어떤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으냐 물으면 느긋하게 “그 나이에 맞는 매력을 지닌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주원이 한국방송 드라마 <굿닥터>에서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소아외과 레지던트 박시온을 연기하게 된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굿닥터>를 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주원의 서번트 증후군 연기를 두고 ‘실제 환자를 보는 것 같다’고 칭찬한다. 두 달 동안 실제 자폐증 환자들과 만나고 관련 다큐멘터리들을 찾아보며 자폐증 환자들의 행동양식을 연구했다는 주원의 연기에선 여러 가지 디테일을 찾아볼 수 있지만, 실제 서번트 증후군 환자나 자폐증 환자를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가 과연 올바르게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하는 게 조심스럽다.(그리고 찬사를 보내는 그 수많은 이들 중 과연 서번트 증후군 환자를 만나본 이들이 몇이나 될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막 세상에 발을 내디딘 청춘들이 흔들리고 여기저기 부딪혀 가며 성장하는 모습을 꾸준하고 성실하게 묘사해 온 이 젊은 배우가 세번째 주연작에서 보여주는 연기의 완성도와 그 성격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 때문에 눈앞에서 형이 죽어가는 걸 지켜봐야 했던 트라우마는 박시온에게 소아외과 의사라는 목표를 설정해주었다. 아직 완치가 안 된 자폐증 증세는 그의 사회적 지능을 예닐곱살 어린아이 수준에 머무르게 했다. 자신을 돌봐주던 형을 그리워하고, 자신에게 의사의 길을 열어준 최 원장(천호진)을 따르는 ‘어른아이’. 과거의 상처에 사로잡혀 있고, 결핍으로 인해 잦은 실수와 방황을 경험하는, 누군가의 동생 혹은 제자라는 몇 개의 낯익은 키워드는 박시온을 설명하는 주요 요소다. 연기의 테크닉에선 큰 차이가 있을지언정, 박시온은 그동안 주원이 표현해 왔던 인물들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인물인 것이다. 박시온이란 캐릭터가 모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단순히 비장애인이 장애인 연기를 열심히 해서가 아니라, 그가 경험하는 감정들이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 경험한 바 있는 청춘의 통과의례 같은 상처이기 때문이다. 비록 사회적 지능은 한없이 어리다 할지라도, 감정의 질감들은 또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남들의 비웃음을 이겨내고, 홀로 고립된 것 같은 외로움을 이겨내며, 세상 안에서 자신을 증명하는 첫발을 떼기 위해 애쓰는 젊음의 고군분투. 그것은 지금 그 나이가 아니면 표현하기 어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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