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범.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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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몰라…그러니까 더 재미있지!
“내가 뭐라고 요즘 자꾸 이러는지 몰라.” 그러게. 대통령의 사생활과 관련된 루머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외신이 청와대로부터 친고죄인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하는 마당에, 강성범은 무슨 철밥통이라고 그러고 있는 걸까. 심지어 자기가 먼저 시작한 것도 아니고, 후배들이 하던 코너에 나중에 들어와서 말이다. 에스비에스(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의 ‘엘티이(LTE) 뉴스’ 코너에서, 강성범은 위험한 멘트를 골라 내뱉는다. 담뱃값도 오르고 전자담배에 붙는 세금도 오르며 자동차세와 주민세도 오른다는 소식에 발끈한 김일희가 “재밌냐?”라고 물어보면, 강성범은 실소를 터트리며 말한다. “재미있지. 야, 요즘 어느 나라가 이렇게 재밌냐?” “올린 건 어디다 쓴대요?” “몰라, 그러니까 더 재미있지!”
메인 앵커가 정현수이던 시절에도 ‘엘티이 뉴스’ 코너는 조심스레 정치풍자를 시도하곤 했다. 그러나 강성범으로 메인 앵커가 교체된 뒤 ‘엘티이 뉴스’는 더 깊게 들어가는 멘트로 사태의 본질을 찔렀다.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유가족들의 요구를 받을 수 없다며 사회의 근간과 원칙을 언급한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의 발언을 소개하며 강성범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요, 세월호가 침몰할 때 단 한 명의 실종자도 구조하지 못했을 때, 우리 사회의 근간과 원칙은 이미 무너지지 않았나요?”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지만, 강성범은 이내 겁먹은 표정으로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중얼거린다. “나 불안해 죽겠어. 나 하던 프로그램에서 전화 왔어. 다른 사람으로 교체한다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아슬아슬한 수위까지 한껏 풍자를 끌어올리는 강성범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웃찾사> ‘형님 뉴스’로 2006년 코미디대상, 2007년 방송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사람답다는 감탄이 터져 나온다.
그런데 사람들 참 이상하지. 그의 정치풍자를 보며 속이 시원하다고 하는 사람들, 함께 코너를 만들어가는 이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종종 이상한 이야기들이 튀어나온다. 왼쪽 한편에서는 “예전에는 햇볕정책 비난이나 하고 이회창이나 지지하던 사람이 이제 와서 진보적인 척하면서 장사하네. 기회주의적이다”라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오고, 오른쪽 한 귀퉁이로 가면 “어쩐지 인터넷 포털 프로필에 출신 지역이 안 나와 있더라니, 찾아보니 전라도 사람이더라”는 뜬금없는 출신 지역 이야기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이다. 사람들을 웃기러 나온 광대에게 “너는 어느 편인지 확실히 하라”고 피아 구분을 시도하는 이 기괴한 상황.
물론 강성범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여당 지지층과 야당 지지층이 서로를 종교적 열정 수준에 가까운 증오로 대하는 나라에서, 정치풍자를 코미디의 소재로 삼는 건 언제나 어느 한쪽으로부터는 욕을 얻어먹을 가능성을 안고 사는 일이라는 것을. 이미 2006년 ‘형님 뉴스’를 진행하던 시절, 북한 미사일 발사 소식에 “우리는 남아돌아서 북에 보내주고 있냐”는 멘트를 던졌다가 ‘수구꼴통, 4류 쓰레기 코미디’라는 모욕적인 언사와 “이회창 선거운동원이었느냐”는 비아냥을 들었던 바 있는 그다. 그럴수록 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지난 8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강성범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매일 좌우 색깔이 다른 신문을 2개씩 읽어본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강성범은 아직도 “이회창 지지자”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전라도 출신 연예인”일 것이다.
사람을 웃기려 나온 광대에게 어느 편인지 묻는 기괴한 상황
강성범의 정치풍자에 동의 않더라도
다시 한번 김흥국을, 김제동을
부당하게 잃는 일이 없기 위해
마음껏 광대로 살 권리를 지켜줘야 연예인들은 종종 정치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 작품이나 행사라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흔쾌히 참여하곤 한다. 여당 지지자로 유명한 이덕화는 개발독재시기의 폭력적인 시대상을 정면으로 응시한 에스비에스 드라마 <자이언트>(2010)에 출연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오랜 지지자인 송재호는 10·26을 다룬 블랙코미디 <그때 그 사람들>(2005)에 박정희 대통령 역으로 출연했으며, 같은 작품에서 김재규 역을 맡은 백윤식 또한 “정치적 의도에는 동의하지 않으나 캐릭터의 예술성에 도전해보겠다”는 전제를 달고 작품에 참여했다. 야당 지지자들이라고 다르진 않았다. 2007년 대선에서 ‘3번’을 찍었다고 밝힌 바 있는 가수 김장훈도 정치적 지지 의사와는 별개로 국가적인 축제라는 판단에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의 초대가수 초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날 행사의 사회를 본 사람은 김제동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양극화될수록 시사나 정치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는 연예인들에게 “그러니까 넌 누구의 편이냐”고 묻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난다.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 세상 모든 사람을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지 않고서는 안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연예인에게도 자연인으로서의 정치적 자유가 있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은 고려 대상에서 탈락한다. 이효리가 제주도에 내려가 유기견들을 돌보고 채식주의를 실천하며 사는 일상을 블로그에 올려도 앵무새처럼 ‘친노좌빨’이라는 딱지만을 반복해서 붙이기 바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편에는 티브이엔(tvN) <꽃보다 할배>를 보면서도 이순재와 백일섭의 보수 성향을 언급하며 “방송에 못 나오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서 있다. 이런 풍토에서라면 어디 무서워서 조금이라도 정치적인 함의를 띤 작품에 참여할 수 있겠나. 무슨 험한 꼴을 보려고. 과도한 진영 논리는 상대 진영의 사람들이라면 꼴도 보기 싫어하는 심리로 뒤틀려 자란다. 지난 선거에서 누구를 찍었는지로 사람의 수준이나 됨됨이를 가늠하고,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이라면 불이익을 당해도 싸다는 기괴한 심보. 문화방송(MBC) 라디오에서 김미화나 김종배가 석연찮은 과정을 거쳐 교체되었을 때 핏대를 높이던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그 유탄을 맞아 김흥국이 라디오에서 퇴출된 뒤 억울함을 호소하며 삭발시위에 나서는 광경은 쉽게 비웃어버렸다. <한겨레> 누리집에 올라온 김흥국의 삭발시위 기사 밑에는 “정몽준 뒤나 쫓아다니며 가진 자들 편을 들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가식적인 쇼를 하느냐”는 식의 모욕적인 댓글들이 달렸다. 반대 진영도 마찬가지다. 김제동이 이상한 과정을 거쳐 한국방송(KBS) <스타 골든벨>에서 퇴출됐을 때 어떤 이들은 심현섭의 공백은 그의 이회창 지지 전력 때문이었노라 주장하며 피장파장이라 말했다. “누가 먼저 그랬든 옳지 않은 일이니 이런 일이 더는 있어선 안 된다”는 상식적인 주장은, 서로를 손가락질하는 고성에 묻혀 힘을 잃었다. 시사 코미디나 정치풍자는 늘 당대를 겨냥한다. 당대에 일어나는 시사 현안에 대해 다루다 보면 정치색과 무관하게 결국 정부와 정치인들을 비판하는 건 피할 수 없다. “코미디의 풍자는 사회의 압력을 해소하는 순기능이 있다. 좌냐 우냐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코미디가 늘 강자와 권력을 상대해야지, 약자를 상대로 하는 건 비겁하지 않으냐”는 <웃찾사> 이창태 감독의 말처럼 말이다. 여기에 과거에 누구를 지지했느니 출신 지역이 어디라느니 잘못된 잣대를 들이대며 피아 구분에 나서는 건, 질러 말하면 천박한 일일 것이다. 지난 10월3일 방영된 ‘엘티이 뉴스’는 조금 수상한 이유로 인터넷상에서 사라졌다. ‘오이시디(OECD) 국가 중 원인 불명 사망 1위’라는 소식을 전할 때, 의학적으로 병인이 밝혀지지 않은 사망을 마치 의문사인 것처럼 소개하는 오보가 있었다는 게 제작진이 밝힌 이유지만, 적잖은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인사 문제로 논란이 일 때마다 책임 회피성 국외순방에 나선다는 내용 때문에 사라진 게 아닌가를 의심하고 있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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